“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의 폭력적 행태”
[정혜림의 대화] 윤미향 정대협 대표
[민중의소리] 정혜림의 대화 제작팀(진행 : 정혜림 아나운서, 기획 : 김동현, 촬영 : 김도균 최재덕, 편집 : 서세진) | 발행 : 2016-07-03 13:43:20 | 수정 : 2016-07-03 13:43:20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이슈로 만들어 낸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문제에 천착해 평생을 이 문제 해결에 바쳐온 인물이다. 피해자 할머니들뿐 아니라 그에게도 지난해 말 한일 정부가 내놓은 ‘합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윤미향 대표는 “피해자들의 지난 25년의 노력을 다시 한 번 흙탕물 속으로 끌고 간 것”이라고 한일 합의를 평가했다. 무엇보다 한일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의 ‘가해자’를 명시하지 않았다. 윤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 각국의 여성들을 성노예화 한 ‘범죄’이며 이 범죄의 법적 책임을 일본 정부가 지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 주장은 20년도 넘은 주장이다. 일본 정부가 회피해 왔을 뿐이고,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도 그 회피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합의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윤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의지만 있었다면 그 범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후 아시아 각국의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됐고, 그들에 대한 인적사항과 피해 사실들이 상당 부분 기재돼 있었다. 미국은 이 자료를 극비문서로 은폐했고, 최근에 와서야 일부가 세상에 공개됐다. 윤 대표는 이번 합의의 이면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한일 합의 이후 한미일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욱일기’를 단 일본의 전함과 잠수함이 우리 바다로 들어왔을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미주 한인 동포들의 행동에 대해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고 윤 대표는 전했다.
다음은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민중의소리> 정혜림 아나운서의 ‘대화’ 내용이다. 기사는 총 4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3편은 한일정부의 합의와 정부 주도의 재단의 문제점을 다뤘고, 4편은 할머니들과 국민이 함께 만드는 '정의기억재단'에 대한 내용이다. 1~3편은 영상으로 정리됐으며 4편은 텍스트 기사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재단은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으로 이행 한다는 개념으로 강행을 하는데요. 정부가 추진하는 재단이 왜 문제가 되지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지난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의 합의가 잘못됐다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다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어느 날 중학생이 수요시위에 와서 이런 발언을 하더라고요. 유치원생도 알 거예요. 그게 잘못됐다라는 건. 이번 합의 내용에 일본 정부가 국가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는 내용이 어디에 있나요? 사죄를 어떻게 했나요? 배상이라고요? 배상이 아니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어요.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이후에 파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중단하는 것, 지금 상태에서 잠깐 멈추는 것, 멈추고 다시 돌아보는 것 그래서 다시 해결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피해자를 집적 만나러 찾으러 다니면서 설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설득의 내용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똑같아요. 이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다. 정부가 책임을 통감했다. 배상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못했던 것이 정부가 해냈다. 이겁니다. 피해자들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우리는 일본이 천억을 준다고 해도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이 아닌 돈을 받을 수 없다. 김복동 할머니도 이용수 할머니도 길원옥 할머니도 나눔의 집에 계신 박옥선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 강일출 할머니, 김군자 할머니분들도 우리가 원했던 것은 일본 정부에 법적 배상이다. 공식 사죄하라는 것이다. 법적인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 스스로 배상이 아니라고 하는 돈, 지원금을 받아서 한국 정부는 배상금이라고 하면서 이 문제를 마감하려고 하는 것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게 정답이죠.
더군다나 그 10억 엔이 어떻게 측정됐는지 우리는 묻고 싶어요. 정말 그게 배상금이라고 할 지라도요. 우리는 아직도 얼마만 한 여성들이 끌려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계산했는가. 산출했는가. 몇 명을 나누기 얼마를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할 수 없는 거죠.
한국 정부가 그렇게 브리핑을 했더라고요. 자기들이 29명을 만났고 29명 중의 23명이 찬성을 했다. 가족들 포함해서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재단을 출범할 정당성, 근거가 있다고 얘기를 해요. 가슴 아픈 게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를 어떻게 판가름하고 있는 것이냐. 정말 29명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저희는 한국의 피해자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를 했던 238분의 피해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하면 약 245명이에요. 그분들만의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추정치지만 약 20만 명. 그것도 사실은 정확한 수치가 아니에요. 아직도 진실이 드러난 숫자가 아니에요. 그 많은 여성의 절절한 호소, 한, 억울함 그 숫자는 왜 얘기를 하지 않느냐. 왜 29명 중에서 23명 그 숫자를 가지고 그렇게 선전을 하면서 이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분열을 시키고,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을 분열시키고, 과거에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와 피해자를 아시아여성기금으로 분열을 시켰는데, 이제는 왜 한국 정부가 가해국인 일본 정부의 대리인이 되어서 일본 정부의 범죄를 은폐시켜주고, 일본 정부가 전쟁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보통국가가 될 수 있도록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인가. 묻고 싶은 거죠. 한국 정부가 왜 그런지도 20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국민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립추진위원회도 그걸 물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분명히 국회가 있지만, 국회의 간섭이나 관여를 배제하기 위해서 이번에 세우는 재단에 형태가 민간 재단이거든요. 민간 설립추진위원회라고 만들어져서 여성가족부에 내에 신청하면 여성가족부는 인허를 해주겠다는 거죠. 모순입니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 합의를 하면서 한국 정부가 만드는 피해자를 지원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낸다고 돼 있어요. 그 합의도 위반하게 되는 것이죠. 이미 합의는 무효와 되고 있어요. 한국 정부 민간 재단 설립으로. 잘못됐다는 얘기죠. 그 출범하는 민간 재단 추진위원회 면면을 보면 위안부 문제를 위해서 피해자 곁에서 정말 활동해 왔던 활동가들, 연구자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볼 수가 없어요. 당연하죠. 그분들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자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그 재단에 함께할 수 없는 것이죠.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대한 명단들은 이미 정부가 알고 있죠. 배제될 수밖에 없죠. 거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일본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한일 합의 자체도 어떻게 하면 일본 정부의 처신을 어떻게 하면 곤란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고려됐다면 이 재단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고려됐구나. 똑같은 것이 고려됐다는 것을 저희도 추측할 수밖에 없고요.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데 일본 정부가 이렇게까지 막말을 하고 또 합의를 했다고 하면서도 계속 되는 망언이 이어지고 있다 아까 전에도 말하셨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가 계속해서 이런 상황에서까지 합의에 집착하고 이걸 스스로 이행하겠다고 계속 밀어붙이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복잡한 과거의 역사까지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군 성노예제도가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난 이후에 제대로 처벌되고 피해자들은 인권 회복조치를 받았더라면 지금 어쩌면 인터뷰할 일도 없었겠죠. 어쩌면 피해자들이 길거리에 설 일도 없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그 책임은 첫 번째로 쭉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전쟁을 멈추게 했던 미국의 연합국 나라들에 책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 생존해서 귀향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대부분 미국의 포로로 돼 있다가 돌아올 수 있었어요.
김복동 할머니 같은 경우에도 싱가포르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힙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사를 받아요. 아 이 여성 일본 여성이 아니었구나. 조선 여성이었고 이곳에 끌려와서 이런 일을 겪었구나. 조사를 받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여성이 버마에 있던 여성들은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필리핀에 있었던 여성들은 필리핀에 있던 미군 포로수용소에 태국에 있었던 여성들도 태국의 있던 미군 포로수용소에 오키나와에 있던 여성들도 오키나와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이 돼요. 그곳에서 심문을 받거나 수용이 돼요. 포로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얼굴 사진까지 다 찍어서 고향, 키, 눈의 색깔 등등 그 속에 보면 피해자들의 신상이 다 있어요. 그 신상들이 1945년 8월 15일 재판에 미군의 연합군의 어떤 포로로 있다가 귀향 된 이후에 혹은 귀향 되지 않았더라도 그 전쟁이 끝난 후에 다 공개가 됐더라면 지금 어떤 세상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상당 부분 지금 진실이 공개됐을 것이라고 봐요. 피해자의 이름도 확인이 됐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여성이 전쟁터에 버려져 있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어 돌아왔는가 혹은 현지에 남아서 버려졌는가 등의 진실이 규명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조사기록들은 은폐됐습니다. 1990년대까지 극비문서로 보관만 됐고, 그 이후에서야 극비문서에서 해제가 됐죠.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맥아더 사령관도 전쟁이 끝날 무렵에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한 35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합니다. 그 속에는 그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이 다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서도 1990년대까지는 은폐됩니다. 그 이후에 해제가 되죠.
전쟁이 끝난 후에 식민지 조선에서 끌려갔던 여성들 아주 열악한 나라였던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필리핀이나 대만이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나 이런 곳에서 끌려갔던 여성들의 인권문제, 참혹한 현실은 미국의 국익 그것에는 오히려 걸림돌이었단 말이죠. 아무 의미가 없었단 의미죠.
특히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금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나라로 세우는 데 있어서 그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오히려 방해 거리가 됐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침묵한 거죠.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죠. 세균전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드러나고 있잖아요?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지 않고 정치적인 담합으로 일본과 한국 정부 간에 협상으로 신속하게 재빨리 또 24일 발표에서 28일 합의가 발표되는 그 나흘 동안 후다닥 마치 쓰레기통에 집어넣듯이 그렇게 할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양국 정부가 합의했던 뒤 배경에는 미국의 영향력,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 그 이후에 언론 보도라든가 그런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이 합의가 있고 나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미국의 시민단체들 혹은 유럽의 시민단체들 아시아의 시민단체들 해외 각지의 우리 동포들에게 요청했습니다. 이것에 대응해서 행동에 나서주십시오. 그래서 미국에 있는 한인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미국의 국무장관이라는 사람이 미국의 한인 단체들, 한인 동포들 위안부 문제로 행동하는 것 자제해야 한다. 이렇게 발언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일본이 역시 아베 정권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주는 의미 그 이유, 배경과 똑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죠. 그것이 합이 이후에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든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들 일본이 욱일기를 달고 잠수함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한국 해군과 잠수함 훈련을 한다든가 이런 여러 가지 모습들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나. 그 압박에 한국 정부도 손을 들었던 것이 아닌가.
박근혜가 집권 초기에 “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아베 총리와 만날 수 없다”고 선언했던 그 원칙을 눈물을 머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박근혜가 그것을 뒤에 삭 감추고 일본 아베 총리와 그 웃음이 무슨 웃음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한반도의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하는 서글픈 생각들이 가져지는 거죠.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약한데 무력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그런 어떤 한반도를 둘러싼 배경이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회복할 길이라는 것은 뭘까?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잖아요? 우린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꿈도 못 꿨던 일이잖아요? 지난 25년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활동과정 속에서 미국 정부가 도대체 위안부 문제가 뭐야? 뭐 길래 그렇게 방해가 되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게 하였던 건 바로 국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피해자와 저희가 국제사회를 훅 휘젓고 다니면서 미국의 의회 결의 채택으로 유럽 나라 의회 결의 채택으로 유엔에서 매번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1,200차가 넘도록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세계 각지에 평화비를 세우는 활동들이 굉장히 골치 아프게 만든 거죠.
일본 정부를 골치 아프게 만들고 박근혜가 하물며 위안부 문제를 이 정부의 중요 정책으로 외교정책으로 내걸 수밖에 없게 만든 배경은 우리 운동의 영향력이었다. 즉 앞으로도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건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목소리, 우리들의 포기하지 않는 행동, 국제연대 그것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희망을 절대로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29명 중에 23명이 찬성했다는 얘기도 납득하기가 어려운데 그 만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럼요. 어떤 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외교부가 전화해서 집으로 온다고 해서 난 오는 거 싫다. 왜 오려고 그러냐고 했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할머니 돈을 적게 받을까 봐 그래요?'라고 물었다는 거예요. 저는 정부답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지난 합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범국민적으로 반박이 있고 하니까 공격이 있고 하니까 저는 지금 정부가 합리적인 판단을 상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귀향이라는 영화를 얘기하자면 사실은 귀향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350만을 넘었다고 그래요. 그런 어떤 바람이라고 그럴까요? 그 바람도 지난 12월 28일 합의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합의는 잘못됐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정부가 그렇게 강행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폭력적으로 만나는 행위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렇게 하는 행위가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는 것은 한국 정부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리인 하나 없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사람들 없이 만났다는 것도 의문이고요.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무엇을 전달했는가. 한국 정부는 진실을 전달했어야 하죠.
그러나 여전히 지난 합의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것은 할머니들에게 진실을 알 수 있는 길을 막게 하지 않았느냐 생각이 들고요. 저희도 한국 정부처럼 일일이 “할머니 한국 정부를 만나면 그렇게 대답하세요”라고 말할 수 없어요. 얼마나 폭력적인 겁니까? 그럴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지만, 확인할 수 없지만 저는 이 시점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설사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가 그렇게 설명해서 그래 한국 정부가 설명한 것대로 해결이라면 나는 지지하고 싶어 얘기했더라면 오히려 그렇게 행동했던 한국 정부를 비난해야지 피해자들에게 "왜 동의를 했어요?"라고 비난의 여론을 향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폭력적인 사회라고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부탁은 드리고 싶어요. 어떤 일이 이뤄지든 간에. 피해자들의 행동에는 우리는 보호해야 하고 또 피해자들의 인권이 회복되는 그 날까지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돌보는 행동은 멈춰서는 안 된다. 할머니들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아픔을 겪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의미에서라도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자세를 새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저희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가족들을 보면서 느끼고 이미 배우고 있잖아요? 우리는 피해자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 그 아픔을 팔아서 심지어 돈을 벌었느냐. 이런 짓거리를. 저는 이런 짓거리를 일본 우익들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똑같다고 생각해요. 일본 우익들이 할머니들이 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매춘 값을 요구하는 것이냐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죠. 일본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늘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배우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얘기하고 싶어요.
윤미향 대표나 할머니들이 우리나라 극우세력들뿐만이 아니라 일본 극우세력들에게도 위협을 당하신 사례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극우들에 위협을 당한 건 과거에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극우라고 해야 할지 보수라고 해야 할지 위안부 문제에서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아요. 극우와 보수가.
위안부 문제는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심지어는 새마을운동하시는 분들도 또 전직 군인 출신들도 경찰 출신들도 할머니들의 그 아픔은 우리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가지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만큼은 그런 색깔과 인종, 성별 모든 것을 넘나들면서 함께 할 수 있었죠. 심지어 구 한나라당 의원들도 수요집회에 참석해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또 할머니들을 위해서 뭔가 지원 정책을 펴기도 했고, 그런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난해 12월 28일 그 이후로 선이 분명해져서 그 이후로는 인터넷에 윤미향 치면 굉장히 험악한 말들도 돌아다니고 있고 제 개인 인생사뿐만 아니라 제 개인 아무 관련 없는 제 가족들의 인생사까지도 공개되면서 저에 대한 공격으로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공격으로 그것이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고 정권을 반대하는 그런 목소리의 대표적인 것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 그게 좀 달라진 것이죠.
일본 우익들은 늘 상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죠. 일본 우익들은 지금 집회를 하는 현장을 보면 피켓에 제 얼굴이 붙여져서 하는 모습도 발견이 됐고 뭐 그렇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바른길을 가고 있으므로 또 모르겠습니다. 누가 들으면 자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 공격을 받는 것 혹은 인권 침해를 그분들에게 받는 것 그것은 내가 잘못 사는 건 아니구나. 내가 잘살고 있나 보다 라는 평가를 하는 기준이 되고 있구나. 참 웃기죠? 참 안타깝죠? 슬프죠?
공격을 받는 것이 내가 잘못 사는 것이 아니라는 평가를 스스로 내린다고 하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아픈 사회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저는 공격받는 것 괜찮습니다. 일본 우익들에게도 공격받는 것 괜찮은데, 설사 한국의 보수층 우익들로부터 지금 지난 12월 28일 후로 공격받는 것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피해자들은 공격받아서는 안 되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지금도 일본 우익들한테 공격을 받고 있고, 저희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에 가서 집회하고 그럴 때 늘 그 옆에는 일본의 우익들 공격이 있었어요. 불행하게도 할머니들은 일제 강점기 시기 일본말을 직접 배우신 분들이세요. 우리말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건 뭘 의미하냐면 일본 우익들이 일본말로 직접 가해를 해대는 망언들 예를 들면 너희들은 강제가 아니야. 너희들은 창녀였을 뿐이야. 너희들은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할 수가 없어. 너희들은 매춘해놓고 매춘 값을 요구하는 것이야? 심지어 너희는 장군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잖아. 이런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그 이야기들을 직접 그 말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억양, 강조하는 것 그것이 할머니들 가슴에 그대로 쏟아진다는 얘기거든요. 그대로 지금도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죠.
상상하면 참 눈물 나는 일이죠. 아무도 정부가 있어도 국제기구가 있어도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이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것 그분들이 길거리에 서서 우리의 인권을 회복시켜 달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게 오늘의 인권의 현주소다. 우리가 무엇에 귀 기울여야 하고 무엇을 들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것을 판가름해주는 척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픈 현실이죠.
국민 모금으로 진행하는 재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재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왜 재단을 준비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너무 힘이 나요.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하면서 고사리손으로 저금통을 가지고 오고 자기들이 아나바다 장터를 해서 모금을 해오는 걸 보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느낍니다.
‘마리몬드’라고 있어요. 할머니들의 그림, 작품을 꽃이라든가 이미지를 상품으로 만들고 팔아서 일반 시민들이 그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할머니들을 기억하게 하고, 할머니들의 역사를 해결하는데 동참하게 하는데도 굉장히 기특한 기업입니다. 그 기업의 직원들이 대부분 20대 청년들, 30대예요. 더 중요한 것은 주 고객이 중학생, 고등학생이에요. 소녀상 배지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하고요.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하고요. 티셔츠, 가방 굉장히 다양한 상품들이 있는데 주 고객들이 중고등학생들인데 마리몬드의 소녀상 배지를 판매해서 수익금이 정의기억재단에 기부가 됐는데 그것만 2억2천만 원이 넘어요. 참여한 사람이 2만 명이 넘습니다.
두 평화비 작자 소녀상 작가가 작은 소녀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판매를 통해서 수익금 전액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셨는데요. 거기에 참여한 사람이 2만 명이 넘어요. 저희 지난 25년 동안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모금을 참 많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참한 적이 없어요.
12월 28일 합의가 우리를 반성하게 하여 준거죠. 그게 이 모금에서 이뤄졌다고 보는데요. 청소년들의 모금도 참 가슴 아팠지만, 청소노동자들 수요시위에서 전달식을 갖고 참 가슴이 아팠어요. 이 땅의 노동자들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 아픕니까? 특히 요즘 들어서서 노동자들의 삶이 고공 저 높은 곳에 올라서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생명을 걸고 다리 위에서 농성할 수밖에 없고, 굴뚝 위에서 올라가서 농성할 수밖에 없고, 된서리 맞으며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추위를 맞이하며 그렇게 설 수밖에 없잖아요. 그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청소하면서 온갖 설움 다 받아가면서 그 모은 급여 그 노동자들의 급여가 얼마나 됩니까? 그분들이 모금해서 전달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 노동자 아저씨 노동자들 이런 소중한 뜻, 정의기억재단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러움이 가진 분들, 아픔을 가진 분들이 지난 12월 28일 합의로 보고 저 아픈 위안부 할머니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동안 할머니들이 많은 역사 속에서 아픔을 겪었던 미군 기지촌 피해 여성들과 함께 손을 잡고 세월호에서 아픔을 겪었던 그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고 굴뚝 위에서 농성하던 사람들에게 힘내라 손을 내밀었어요. 해고 노동자들 빨간 조끼를 입고 수요 시위에 온 노동자들을 향해서 “이 할매 나비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운다. 노동자들도 힘내라.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쨍하고 해 뜰 날 있다”고 하시면서 노동자들 앞에서 힘을 주기 위해서 대중가요까지 부르시면서 그렇게 웃음을 주려고 했던 할머니들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인 군인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보았던 그 여성들에게도 “한국 국민으로서 죄송합니다”라고 역사의 아픔에 역사의 폭력에 손을 내밀었던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참 가슴 아프죠. 왜 그분들이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할 수밖에 없는가. 당연히 지난 역사의 혜택을 받고 살았던 그자들이 있는데 그자들이 반성하고 사죄하고 그 아픔을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사죄 메시지를 베트남의 피해자들에게 할 수밖에 없는가. 그런 절규를 해왔던 것이죠.
지난 12월 28일 합의가 한국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시 돌아보게 하였고, 손잡게 하였고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저희가 참 힘이 있었던 건 세월호 가족들이 “정대협 여러분 어떻게 견디셨어요? 할머니들 어떻게 견디셨어요? 그 어떻게 온갖 음해를 받으면서도 어떻게 지금까지 할 수 있었어요? 저희가 한국 사회에서 그런 아픔을 겪다 보니까. 그런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이제야 할머니들이 보였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해오셨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그래, 우리 참 잘살았구나. 포기하지 않았던 것, 주저하지 않았던 것 참 잘했구나. 그런 어떤 자부감, 긍지감 또 그러면서도 한국사회를 향해서도 그래 우리가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정의기억재단이 그 희망을 평화로 만들어가는 도정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10만이 넘게 참여한 그 기부자들, 후원자들, 후원 회원들이 우리의 뜻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힘차게 나갈 수 있다. 아직은 사실 시작이에요. 이제 10억 원이 넘었거든요. 저희는 무궁무진 희망을 더 뿌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억, 천억 혹은 그보다 더한 그런 것을 통해서 앞으로 혹시 알아요? 정의기억재단이 우리 사회 아픈 곳곳에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치유가 돼서 정말 그들이 말하는 치유와 화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모범사례로 보여줄 날이, 미래 세대들에게 장학금도 해서 전쟁 때문에 혹은 가난이라는 것 때문에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정의기억재단에 아직도 참여하고 있지 못하고 계신 분들 더 늦기 전에 이 기회를 잡으셔서 이 멋진 훌륭한 역사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출처 [정혜림의 대화] 윤미향 정대협 대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의 폭력적 행태”
[정혜림의 대화] 윤미향 정대협 대표
[민중의소리] 정혜림의 대화 제작팀(진행 : 정혜림 아나운서, 기획 : 김동현, 촬영 : 김도균 최재덕, 편집 : 서세진) | 발행 : 2016-07-03 13:43:20 | 수정 : 2016-07-03 13:43:20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이슈로 만들어 낸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문제에 천착해 평생을 이 문제 해결에 바쳐온 인물이다. 피해자 할머니들뿐 아니라 그에게도 지난해 말 한일 정부가 내놓은 ‘합의’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윤미향 대표는 “피해자들의 지난 25년의 노력을 다시 한 번 흙탕물 속으로 끌고 간 것”이라고 한일 합의를 평가했다. 무엇보다 한일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의 ‘가해자’를 명시하지 않았다. 윤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시아 각국의 여성들을 성노예화 한 ‘범죄’이며 이 범죄의 법적 책임을 일본 정부가 지는 것이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이 주장은 20년도 넘은 주장이다. 일본 정부가 회피해 왔을 뿐이고, 이번 합의를 통해 한국 정부도 그 회피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합의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윤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2차대전 직후 미국이 의지만 있었다면 그 범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전후 아시아 각국의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됐고, 그들에 대한 인적사항과 피해 사실들이 상당 부분 기재돼 있었다. 미국은 이 자료를 극비문서로 은폐했고, 최근에 와서야 일부가 세상에 공개됐다. 윤 대표는 이번 합의의 이면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존재한다고 역설했다. 한일 합의 이후 한미일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욱일기’를 단 일본의 전함과 잠수함이 우리 바다로 들어왔을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미주 한인 동포들의 행동에 대해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고 윤 대표는 전했다.
다음은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민중의소리> 정혜림 아나운서의 ‘대화’ 내용이다. 기사는 총 4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3편은 한일정부의 합의와 정부 주도의 재단의 문제점을 다뤘고, 4편은 할머니들과 국민이 함께 만드는 '정의기억재단'에 대한 내용이다. 1~3편은 영상으로 정리됐으며 4편은 텍스트 기사다.
1. 정부가 추진하는 일본군 ‘위안부’ 치유 재단은 무엇이 문제인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인 재단은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으로 이행 한다는 개념으로 강행을 하는데요. 정부가 추진하는 재단이 왜 문제가 되지 모르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지난 12월 28일 한일 정부 간의 합의가 잘못됐다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다 알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어느 날 중학생이 수요시위에 와서 이런 발언을 하더라고요. 유치원생도 알 거예요. 그게 잘못됐다라는 건. 이번 합의 내용에 일본 정부가 국가가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는 내용이 어디에 있나요? 사죄를 어떻게 했나요? 배상이라고요? 배상이 아니잖아요!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어요.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이후에 파장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중단하는 것, 지금 상태에서 잠깐 멈추는 것, 멈추고 다시 돌아보는 것 그래서 다시 해결할 수 있도록 귀를 기울이고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피해자를 집적 만나러 찾으러 다니면서 설득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설득의 내용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똑같아요. 이것은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다. 정부가 책임을 통감했다. 배상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가 못했던 것이 정부가 해냈다. 이겁니다. 피해자들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전면에 나서서 우리는 일본이 천억을 준다고 해도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이 아닌 돈을 받을 수 없다. 김복동 할머니도 이용수 할머니도 길원옥 할머니도 나눔의 집에 계신 박옥선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 강일출 할머니, 김군자 할머니분들도 우리가 원했던 것은 일본 정부에 법적 배상이다. 공식 사죄하라는 것이다. 법적인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 스스로 배상이 아니라고 하는 돈, 지원금을 받아서 한국 정부는 배상금이라고 하면서 이 문제를 마감하려고 하는 것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게 정답이죠.
더군다나 그 10억 엔이 어떻게 측정됐는지 우리는 묻고 싶어요. 정말 그게 배상금이라고 할 지라도요. 우리는 아직도 얼마만 한 여성들이 끌려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계산했는가. 산출했는가. 몇 명을 나누기 얼마를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어요. 할 수 없는 거죠.
한국 정부가 그렇게 브리핑을 했더라고요. 자기들이 29명을 만났고 29명 중의 23명이 찬성을 했다. 가족들 포함해서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 재단을 출범할 정당성, 근거가 있다고 얘기를 해요. 가슴 아픈 게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를 어떻게 판가름하고 있는 것이냐. 정말 29명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저희는 한국의 피해자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를 했던 238분의 피해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하면 약 245명이에요. 그분들만의 피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추정치지만 약 20만 명. 그것도 사실은 정확한 수치가 아니에요. 아직도 진실이 드러난 숫자가 아니에요. 그 많은 여성의 절절한 호소, 한, 억울함 그 숫자는 왜 얘기를 하지 않느냐. 왜 29명 중에서 23명 그 숫자를 가지고 그렇게 선전을 하면서 이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분열을 시키고,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을 분열시키고, 과거에는 일본 정부가 피해자와 피해자를 아시아여성기금으로 분열을 시켰는데, 이제는 왜 한국 정부가 가해국인 일본 정부의 대리인이 되어서 일본 정부의 범죄를 은폐시켜주고, 일본 정부가 전쟁할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보통국가가 될 수 있도록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가. 도대체 무엇인가. 묻고 싶은 거죠. 한국 정부가 왜 그런지도 20대 국회가 시작하자마자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국민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립추진위원회도 그걸 물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분명히 국회가 있지만, 국회의 간섭이나 관여를 배제하기 위해서 이번에 세우는 재단에 형태가 민간 재단이거든요. 민간 설립추진위원회라고 만들어져서 여성가족부에 내에 신청하면 여성가족부는 인허를 해주겠다는 거죠. 모순입니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 합의를 하면서 한국 정부가 만드는 피해자를 지원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낸다고 돼 있어요. 그 합의도 위반하게 되는 것이죠. 이미 합의는 무효와 되고 있어요. 한국 정부 민간 재단 설립으로. 잘못됐다는 얘기죠. 그 출범하는 민간 재단 추진위원회 면면을 보면 위안부 문제를 위해서 피해자 곁에서 정말 활동해 왔던 활동가들, 연구자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볼 수가 없어요. 당연하죠. 그분들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위안부 문제를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자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므로 그 재단에 함께할 수 없는 것이죠.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반대한 명단들은 이미 정부가 알고 있죠. 배제될 수밖에 없죠. 거기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일본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한일 합의 자체도 어떻게 하면 일본 정부의 처신을 어떻게 하면 곤란하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고려됐다면 이 재단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고려됐구나. 똑같은 것이 고려됐다는 것을 저희도 추측할 수밖에 없고요.
2.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면에는 미국이 있다
정말 납득이 가지 않는데 일본 정부가 이렇게까지 막말을 하고 또 합의를 했다고 하면서도 계속 되는 망언이 이어지고 있다 아까 전에도 말하셨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가 계속해서 이런 상황에서까지 합의에 집착하고 이걸 스스로 이행하겠다고 계속 밀어붙이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복잡한 과거의 역사까지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군 성노예제도가 1945년 8월 15일 전쟁이 끝난 이후에 제대로 처벌되고 피해자들은 인권 회복조치를 받았더라면 지금 어쩌면 인터뷰할 일도 없었겠죠. 어쩌면 피해자들이 길거리에 설 일도 없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어요.
그 책임은 첫 번째로 쭉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전쟁을 멈추게 했던 미국의 연합국 나라들에 책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 생존해서 귀향할 수 있었던 여성들은 대부분 미국의 포로로 돼 있다가 돌아올 수 있었어요.
김복동 할머니 같은 경우에도 싱가포르에서 미군의 포로로 잡힙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사를 받아요. 아 이 여성 일본 여성이 아니었구나. 조선 여성이었고 이곳에 끌려와서 이런 일을 겪었구나. 조사를 받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여성이 버마에 있던 여성들은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고 필리핀에 있었던 여성들은 필리핀에 있던 미군 포로수용소에 태국에 있었던 여성들도 태국의 있던 미군 포로수용소에 오키나와에 있던 여성들도 오키나와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이 돼요. 그곳에서 심문을 받거나 수용이 돼요. 포로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얼굴 사진까지 다 찍어서 고향, 키, 눈의 색깔 등등 그 속에 보면 피해자들의 신상이 다 있어요. 그 신상들이 1945년 8월 15일 재판에 미군의 연합군의 어떤 포로로 있다가 귀향 된 이후에 혹은 귀향 되지 않았더라도 그 전쟁이 끝난 후에 다 공개가 됐더라면 지금 어떤 세상이 벌어졌을까요? 아마 상당 부분 지금 진실이 공개됐을 것이라고 봐요. 피해자의 이름도 확인이 됐을 것이고. 얼마나 많은 여성이 전쟁터에 버려져 있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어 돌아왔는가 혹은 현지에 남아서 버려졌는가 등의 진실이 규명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조사기록들은 은폐됐습니다. 1990년대까지 극비문서로 보관만 됐고, 그 이후에서야 극비문서에서 해제가 됐죠.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맥아더 사령관도 전쟁이 끝날 무렵에 일본군 ‘위안부’에 관련한 35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합니다. 그 속에는 그 전쟁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이 다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서도 1990년대까지는 은폐됩니다. 그 이후에 해제가 되죠.
전쟁이 끝난 후에 식민지 조선에서 끌려갔던 여성들 아주 열악한 나라였던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필리핀이나 대만이나 중국이나 인도네시아나 이런 곳에서 끌려갔던 여성들의 인권문제, 참혹한 현실은 미국의 국익 그것에는 오히려 걸림돌이었단 말이죠. 아무 의미가 없었단 의미죠.
특히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금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할 나라로 세우는 데 있어서 그 문제를 들춰내는 것은 오히려 방해 거리가 됐습니다. 그렇다 보니까 침묵한 거죠.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죠. 세균전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드러나고 있잖아요?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정의롭게 해결하지 않고 정치적인 담합으로 일본과 한국 정부 간에 협상으로 신속하게 재빨리 또 24일 발표에서 28일 합의가 발표되는 그 나흘 동안 후다닥 마치 쓰레기통에 집어넣듯이 그렇게 할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은 바로 양국 정부가 합의했던 뒤 배경에는 미국의 영향력,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 그 이후에 언론 보도라든가 그런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이 합의가 있고 나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미국의 시민단체들 혹은 유럽의 시민단체들 아시아의 시민단체들 해외 각지의 우리 동포들에게 요청했습니다. 이것에 대응해서 행동에 나서주십시오. 그래서 미국에 있는 한인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미국의 국무장관이라는 사람이 미국의 한인 단체들, 한인 동포들 위안부 문제로 행동하는 것 자제해야 한다. 이렇게 발언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일본이 역시 아베 정권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주는 의미 그 이유, 배경과 똑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죠. 그것이 합이 이후에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든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들 일본이 욱일기를 달고 잠수함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한국 해군과 잠수함 훈련을 한다든가 이런 여러 가지 모습들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나. 그 압박에 한국 정부도 손을 들었던 것이 아닌가.
박근혜가 집권 초기에 “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피해자와 국민이 납득할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아베 총리와 만날 수 없다”고 선언했던 그 원칙을 눈물을 머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박근혜가 그것을 뒤에 삭 감추고 일본 아베 총리와 그 웃음이 무슨 웃음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한반도의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았던가 하는 서글픈 생각들이 가져지는 거죠.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약한데 무력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그런 어떤 한반도를 둘러싼 배경이 해결될 때까지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회복할 길이라는 것은 뭘까?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있잖아요? 우린 결코 절망적이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꿈도 못 꿨던 일이잖아요? 지난 25년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이라는 활동과정 속에서 미국 정부가 도대체 위안부 문제가 뭐야? 뭐 길래 그렇게 방해가 되고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게 하였던 건 바로 국제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피해자와 저희가 국제사회를 훅 휘젓고 다니면서 미국의 의회 결의 채택으로 유럽 나라 의회 결의 채택으로 유엔에서 매번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고 1,200차가 넘도록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세계 각지에 평화비를 세우는 활동들이 굉장히 골치 아프게 만든 거죠.
일본 정부를 골치 아프게 만들고 박근혜가 하물며 위안부 문제를 이 정부의 중요 정책으로 외교정책으로 내걸 수밖에 없게 만든 배경은 우리 운동의 영향력이었다. 즉 앞으로도 그 산을 넘을 수 있는 건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목소리, 우리들의 포기하지 않는 행동, 국제연대 그것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희망을 절대로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3.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는 정부의 폭력적 행태
29명 중에 23명이 찬성했다는 얘기도 납득하기가 어려운데 그 만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그럼요. 어떤 할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외교부가 전화해서 집으로 온다고 해서 난 오는 거 싫다. 왜 오려고 그러냐고 했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할머니 돈을 적게 받을까 봐 그래요?'라고 물었다는 거예요. 저는 정부답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지난 합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범국민적으로 반박이 있고 하니까 공격이 있고 하니까 저는 지금 정부가 합리적인 판단을 상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귀향이라는 영화를 얘기하자면 사실은 귀향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 350만을 넘었다고 그래요. 그런 어떤 바람이라고 그럴까요? 그 바람도 지난 12월 28일 합의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합의는 잘못됐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정부가 그렇게 강행을 하면서 피해자들을 폭력적으로 만나는 행위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렇게 하는 행위가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는 것은 한국 정부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대리인 하나 없이,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사람들 없이 만났다는 것도 의문이고요. 무엇을 이야기했는가. 무엇을 전달했는가. 한국 정부는 진실을 전달했어야 하죠.
그러나 여전히 지난 합의에 대해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것은 할머니들에게 진실을 알 수 있는 길을 막게 하지 않았느냐 생각이 들고요. 저희도 한국 정부처럼 일일이 “할머니 한국 정부를 만나면 그렇게 대답하세요”라고 말할 수 없어요. 얼마나 폭력적인 겁니까? 그럴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지만, 확인할 수 없지만 저는 이 시점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설사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가 그렇게 설명해서 그래 한국 정부가 설명한 것대로 해결이라면 나는 지지하고 싶어 얘기했더라면 오히려 그렇게 행동했던 한국 정부를 비난해야지 피해자들에게 "왜 동의를 했어요?"라고 비난의 여론을 향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폭력적인 사회라고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그런 부탁은 드리고 싶어요. 어떤 일이 이뤄지든 간에. 피해자들의 행동에는 우리는 보호해야 하고 또 피해자들의 인권이 회복되는 그 날까지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돌보는 행동은 멈춰서는 안 된다. 할머니들이 한국 사회에서 그런 아픔을 겪고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의미에서라도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자세를 새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저희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가족들을 보면서 느끼고 이미 배우고 있잖아요? 우리는 피해자들을 향해서 손가락질해서도 안 되고 심지어 그 아픔을 팔아서 심지어 돈을 벌었느냐. 이런 짓거리를. 저는 이런 짓거리를 일본 우익들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똑같다고 생각해요. 일본 우익들이 할머니들이 배상을 요구하는 것을 매춘 값을 요구하는 것이냐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죠. 일본을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늘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배우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얘기하고 싶어요.
4.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이 함께 만드는 정의기억재단
윤미향 대표나 할머니들이 우리나라 극우세력들뿐만이 아니라 일본 극우세력들에게도 위협을 당하신 사례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극우들에 위협을 당한 건 과거에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극우라고 해야 할지 보수라고 해야 할지 위안부 문제에서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아요. 극우와 보수가.
위안부 문제는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들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심지어는 새마을운동하시는 분들도 또 전직 군인 출신들도 경찰 출신들도 할머니들의 그 아픔은 우리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가지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위안부 문제만큼은 그런 색깔과 인종, 성별 모든 것을 넘나들면서 함께 할 수 있었죠. 심지어 구 한나라당 의원들도 수요집회에 참석해서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또 할머니들을 위해서 뭔가 지원 정책을 펴기도 했고, 그런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지난해 12월 28일 그 이후로 선이 분명해져서 그 이후로는 인터넷에 윤미향 치면 굉장히 험악한 말들도 돌아다니고 있고 제 개인 인생사뿐만 아니라 제 개인 아무 관련 없는 제 가족들의 인생사까지도 공개되면서 저에 대한 공격으로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공격으로 그것이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고 정권을 반대하는 그런 목소리의 대표적인 것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 그게 좀 달라진 것이죠.
일본 우익들은 늘 상 공격의 대상이 되어 왔죠. 일본 우익들은 지금 집회를 하는 현장을 보면 피켓에 제 얼굴이 붙여져서 하는 모습도 발견이 됐고 뭐 그렇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바른길을 가고 있으므로 또 모르겠습니다. 누가 들으면 자만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스스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 공격을 받는 것 혹은 인권 침해를 그분들에게 받는 것 그것은 내가 잘못 사는 건 아니구나. 내가 잘살고 있나 보다 라는 평가를 하는 기준이 되고 있구나. 참 웃기죠? 참 안타깝죠? 슬프죠?
공격을 받는 것이 내가 잘못 사는 것이 아니라는 평가를 스스로 내린다고 하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아픈 사회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저는 공격받는 것 괜찮습니다. 일본 우익들에게도 공격받는 것 괜찮은데, 설사 한국의 보수층 우익들로부터 지금 지난 12월 28일 후로 공격받는 것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피해자들은 공격받아서는 안 되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지금도 일본 우익들한테 공격을 받고 있고, 저희가 할머니들과 함께 일본에 가서 집회하고 그럴 때 늘 그 옆에는 일본의 우익들 공격이 있었어요. 불행하게도 할머니들은 일제 강점기 시기 일본말을 직접 배우신 분들이세요. 우리말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건 뭘 의미하냐면 일본 우익들이 일본말로 직접 가해를 해대는 망언들 예를 들면 너희들은 강제가 아니야. 너희들은 창녀였을 뿐이야. 너희들은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할 수가 없어. 너희들은 매춘해놓고 매춘 값을 요구하는 것이야? 심지어 너희는 장군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았잖아. 이런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그 이야기들을 직접 그 말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억양, 강조하는 것 그것이 할머니들 가슴에 그대로 쏟아진다는 얘기거든요. 그대로 지금도 피해를 받고 있다는 것이죠.
상상하면 참 눈물 나는 일이죠. 아무도 정부가 있어도 국제기구가 있어도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피해를 보고 있는 현실이 보호해줄 수 없다는 것 그분들이 길거리에 서서 우리의 인권을 회복시켜 달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게 오늘의 인권의 현주소다. 우리가 무엇에 귀 기울여야 하고 무엇을 들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우리가 행동해야 하는 것을 판가름해주는 척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픈 현실이죠.
국민 모금으로 진행하는 재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재단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왜 재단을 준비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우리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너무 힘이 나요. 할머니가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하면서 고사리손으로 저금통을 가지고 오고 자기들이 아나바다 장터를 해서 모금을 해오는 걸 보면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고 느낍니다.
‘마리몬드’라고 있어요. 할머니들의 그림, 작품을 꽃이라든가 이미지를 상품으로 만들고 팔아서 일반 시민들이 그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할머니들을 기억하게 하고, 할머니들의 역사를 해결하는데 동참하게 하는데도 굉장히 기특한 기업입니다. 그 기업의 직원들이 대부분 20대 청년들, 30대예요. 더 중요한 것은 주 고객이 중학생, 고등학생이에요. 소녀상 배지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하고요.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어서 판매하기도 하고요. 티셔츠, 가방 굉장히 다양한 상품들이 있는데 주 고객들이 중고등학생들인데 마리몬드의 소녀상 배지를 판매해서 수익금이 정의기억재단에 기부가 됐는데 그것만 2억2천만 원이 넘어요. 참여한 사람이 2만 명이 넘습니다.
두 평화비 작자 소녀상 작가가 작은 소녀상을 만들어서 인터넷에서 판매를 통해서 수익금 전액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셨는데요. 거기에 참여한 사람이 2만 명이 넘어요. 저희 지난 25년 동안 ‘위안부’ 문제를 가지고 모금을 참 많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동참한 적이 없어요.
12월 28일 합의가 우리를 반성하게 하여 준거죠. 그게 이 모금에서 이뤄졌다고 보는데요. 청소년들의 모금도 참 가슴 아팠지만, 청소노동자들 수요시위에서 전달식을 갖고 참 가슴이 아팠어요. 이 땅의 노동자들의 현실이 얼마나 가슴 아픕니까? 특히 요즘 들어서서 노동자들의 삶이 고공 저 높은 곳에 올라서서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생명을 걸고 다리 위에서 농성할 수밖에 없고, 굴뚝 위에서 올라가서 농성할 수밖에 없고, 된서리 맞으며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추위를 맞이하며 그렇게 설 수밖에 없잖아요. 그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청소하면서 온갖 설움 다 받아가면서 그 모은 급여 그 노동자들의 급여가 얼마나 됩니까? 그분들이 모금해서 전달해 주셨습니다. 할아버지 노동자 아저씨 노동자들 이런 소중한 뜻, 정의기억재단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러움이 가진 분들, 아픔을 가진 분들이 지난 12월 28일 합의로 보고 저 아픈 위안부 할머니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동안 할머니들이 많은 역사 속에서 아픔을 겪었던 미군 기지촌 피해 여성들과 함께 손을 잡고 세월호에서 아픔을 겪었던 그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고 굴뚝 위에서 농성하던 사람들에게 힘내라 손을 내밀었어요. 해고 노동자들 빨간 조끼를 입고 수요 시위에 온 노동자들을 향해서 “이 할매 나비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운다. 노동자들도 힘내라.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쨍하고 해 뜰 날 있다”고 하시면서 노동자들 앞에서 힘을 주기 위해서 대중가요까지 부르시면서 그렇게 웃음을 주려고 했던 할머니들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인 군인들에게 성폭력 피해를 보았던 그 여성들에게도 “한국 국민으로서 죄송합니다”라고 역사의 아픔에 역사의 폭력에 손을 내밀었던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참 가슴 아프죠. 왜 그분들이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할 수밖에 없는가. 당연히 지난 역사의 혜택을 받고 살았던 그자들이 있는데 그자들이 반성하고 사죄하고 그 아픔을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 사죄 메시지를 베트남의 피해자들에게 할 수밖에 없는가. 그런 절규를 해왔던 것이죠.
지난 12월 28일 합의가 한국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할머니들의 아픔을 다시 돌아보게 하였고, 손잡게 하였고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저희가 참 힘이 있었던 건 세월호 가족들이 “정대협 여러분 어떻게 견디셨어요? 할머니들 어떻게 견디셨어요? 그 어떻게 온갖 음해를 받으면서도 어떻게 지금까지 할 수 있었어요? 저희가 한국 사회에서 그런 아픔을 겪다 보니까. 그런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이제야 할머니들이 보였어요”라는 이야기를 전해오셨거든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그래, 우리 참 잘살았구나. 포기하지 않았던 것, 주저하지 않았던 것 참 잘했구나. 그런 어떤 자부감, 긍지감 또 그러면서도 한국사회를 향해서도 그래 우리가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바로 정의기억재단이 그 희망을 평화로 만들어가는 도정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10만이 넘게 참여한 그 기부자들, 후원자들, 후원 회원들이 우리의 뜻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힘차게 나갈 수 있다. 아직은 사실 시작이에요. 이제 10억 원이 넘었거든요. 저희는 무궁무진 희망을 더 뿌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억, 천억 혹은 그보다 더한 그런 것을 통해서 앞으로 혹시 알아요? 정의기억재단이 우리 사회 아픈 곳곳에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고 치유가 돼서 정말 그들이 말하는 치유와 화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모범사례로 보여줄 날이, 미래 세대들에게 장학금도 해서 전쟁 때문에 혹은 가난이라는 것 때문에 공부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정의기억재단에 아직도 참여하고 있지 못하고 계신 분들 더 늦기 전에 이 기회를 잡으셔서 이 멋진 훌륭한 역사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출처 [정혜림의 대화] 윤미향 정대협 대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후, 정부의 폭력적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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