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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경고 무시한 케이블카 사업…설악산 산양이 사라진다

멸종 경고 무시한 케이블카 사업…설악산 산양이 사라진다
[경향신문] 김기범 기자 | 입력 : 2016.08.22 06:00:00 | 수정 : 2016.08.22 06:00:01



천연기념물 제217호이자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는 산양은 앞으로도 한반도에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환경부의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 산양은 향후 수십년 내에 ‘멸종한 종’이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환경단체, 전문가들, 국립공원 연구원, 지자체 등이 겨울철 폭설에 고립된 산양들을 구해가며 복원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기후변화와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가 산양들에게 부정적인 측면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생태원과 서울대, 영남대 연구진이 지난 1월 한국통합생물학회 학술전문지 ‘동물세포와 계통(Animal Cells and System)’에 게재한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한 멸종위기 한국 산양의 개체군 생존율’ 논문에 따르면 개체군 크기가 50개체 미만인 경우 100년 후 산양의 생존 확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악산을 제외한 국내 대부분 지역의 산양 개체군 크기가 50개체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설악산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산양이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월악산에는 생존 가능한 최소 개체군 기준인 50개체를 겨우 넘긴 60개체가 살고 있다. 인제군과 비무장지대에는 각각 90개체, 200여개체가 살고 있지만 이는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는 개체수를 모두 합한 수치이다.

그렇다면 비교적 개체수가 많은 덕에 유일한 희망이 된 설악산 산양들은 과연 멸종을 피할 수 있을까. 외부 개입만 없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시작된 개발 압력으로 인해 설악산 산양들에게도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강원 양양군이 신청하고, 환경부가 허가한 오색삭도(케이블카) 때문이다.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지난해 9월 케이블카 사업을 허용하면서 “케이블카 예정 지역은 산양의 주 서식지가 아니다” “케이블카 설치는 산양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변한 바 있다.

▲ 지난 5월 9일 녹색연합이 설악산 오색지구~끝청봉 구간에 설치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멸종위기 산양의 모습. 환경부 내부 자료와 환경단체 조사, 케이블카 추진 측인 양양군의 환경영향평가 조사는 모두 이 지역이 산양의 핵심 서식지임을 나타내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그러나 경향신문이 입수한 환경부 내부 자료와 국내외 생태 전문가들의 검토 의견, 케이블카 관련 연구자료 등을 종합한 결과 환경부의 주장은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의 ‘설악산국립공원 멸종위기 산양 개체군 크기와 서식지 이용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종복원기술원 연구진이 2010~2014년 무인카메라와 산양의 배설물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케이블카 예정 지역이 포함된 남설악 구역에서 확인된 산양의 수는 모두 36개체로 나타났다. 이는 설악산 전체 개체수(251개체)의 14.3%에 달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공개한 이 보고서는 2015년 10월 한국환경생태학회지에만 게재됐을 뿐 같은 해 9월 이뤄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의 설악산 케이블카 심의 과정에는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 10월에 발표된 내용이라면 9월에는 기초통계들이 완성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감안하면 환경부가 자신들 주장에 배치되는 내용이 담긴 내부 보고서를 묵살 내지 은폐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실시한 연구용역 역시 설악산이 남한의 산양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 산양의 핵심 서식지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상 이는 “케이블카 예정 지역은 산양 핵심 서식지가 아니다”라는 환경부의 주장을 전면 부정하는 내용이다. 녹색연합이 공개한 문화재청의 ‘설악산-금강산 세계유산 등재가능성 검토 및 추진 방향 도출 연구용역’ 보고서에는 “백두대간 산양 개체군의 39.9~60.3%가 서식하고 있는 설악산은 한반도 산양 개체군의 핵심 서식지라고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생물다양성의 가장 큰 위협은 서식지의 파괴 및 감소, 그로 인한 서식지의 단절과 단편화”라며 케이블카 등 야생동물 서식지 내에서 벌어지는 개발사업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 지난해 2월 23일 밤 경북 울진 지역에서 무인카메라에 포착된 산양. 녹색연합 제공


“케이블카 사업이 산양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환경부의 주장 역시 국내 동물생태학자들의 의견서와 해외 연구결과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내 동물행동생태학 전문가 7명이 최근 발표한 설악산 케이블카 관련 의견서에는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이전까지 없었던 인간의 활동이 발생하면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동물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 인공물 및 인간행위의 증가로 인한 경계행동과 스트레스 증가, 산양 및 다른 야생동물이 케이블카 주변 지역을 먹이를 찾기에 부적절한 곳으로 인식해 벌어지는 서식지 상실, 이에 따른 나머지 서식지의 과밀 현상이 장기적으로 개체군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2010년 실시한 ‘천연기념물 동물종 지정 재검토 및 효율적 관리방안 마련 용역’ 보고서도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설악산과 월악산 등 국립공원 내 계획되고 있는 케이블카 설치는 자연 훼손 및 인간의 과도한 간섭으로 인해 산양의 분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케이블카가 동물들의 생태계에 뚜렷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녹색연합이 공개한 폴란드 타트라 국립공원의 알프스산양 관련 연구자료들은 타트라산의 케이블카로 인해 알프스산양의 개체군이 26%가량 줄어들었으며, 동물들이 확인되는 지점과 인공시설의 이격거리가 3~4배가량 늘어났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배설물 분석을 통해 체내 호르몬 성분을 분석한 결과 알프스산양이 받는 스트레스 수준도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사업 타당성 신뢰도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 관련 서류를 조작한 혐의로 케이블카 추진 공무원들이 검찰에 기소당하고, 당초보다 사업비가 100억원 이상 증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로 인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사회적으로 이미 파탄이 났으며, 과학적으로 비상식적임이 증명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으로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백지화하고, 멸종위기의 산양들을 구할 수 있는 기회는 크게 두 번이 남아 있다. 하나는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양양군과 협의 중인 환경영향평가이다. 환경부가 양양군이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부동의 의견을 보내면 양양군은 원점에서 사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환경부가 부동의 의견을 보낼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다. 환경부는 최근 국제적 보호종인 두루미류와 서해를 오가는 철새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원 철원의 경원선 철도 복원, 전남 신안의 흑산공항 계획을 아무런 조건 없이 허용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또 한 번의 기회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천연기념물에 대한 심의다. 환경단체들이나 포유류 전문가들의 의견을 아예 무시해온 환경부와는 달리 문화재위는 오는 24일 환경단체들을 불러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문화재위원들의 손에 한반도 산양의 운명이 달려 있을 수도 있는 셈이다.

녹색연합 황인철 팀장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연구결과는 모두 하나같이 케이블카가 동물의 서식에 악영향을 가져올 것이라 말하고 있다”며 “상호연결된 생태계를 전체적 관점에서 볼 때 설악산 전체가 산양의 핵심 서식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설악산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이유도 설악산 생태계를 전체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며 “국립공원위원회의 잘못된 결정을 문화재위원회가 바로잡아 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처  멸종 경고 무시한 케이블카 사업…설악산 산양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