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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해고통지서와 1억원 소송 폭탄

해고통지서와 1억원 소송 폭탄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②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발행 : 2016-08-25 11:20:55 | 수정 : 2016-08-25 11:20:55


▲ 킨텍스에서 주차업무를 하다 해고된 정정미(50) 씨(왼쪽)가 3일 오전 임창열 킨텍스 사장 면담을 요청하다 직원들에게 제지를 당하자 사장실 앞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저희 억울하게 해고당했습니다"

#8월 3일 오전의 장면.

킨텍스 해고 노동자 정정미(50) 씨가 상복을 입고 킨텍스 사장실 앞에 주저앉았다.

"저희 억울하게 해고당했습니다. 임창열 사장님 만날 겁니다."

그는 임창열 사장을 만나 묻고 싶었다. 바쁠 때는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킨텍스에서 주차요금 정산 업무를 성실하게 해왔는데, 왜 해고돼야 하는지 얘기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임창열 사장을 만날 수 없었다. 킨텍스 직원들이 사장실 앞에서 막아섰기 때문이다. 정규직인 그들 중 누군가가 정정미 씨를 향해 외쳤다.

"남의 회사에 들어와서 이러지 말고 나가세요."

킨텍스 측은 정정미 씨 등을 내쫓아 달라고 경찰을 불렀다.

"퇴거 불응 및 업무 방해 혐의로 검거합니다."

경찰은 저항하는 정정미 씨의 사지를 들어 연행했다. 그는 끌려나가며 오열했다.

"저희 억울합니다. 저희 억울하게 해고당했습니다."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정정미 씨와 이수완(55) 씨 등은 킨텍스에서 주차요금 정산 업무를 해왔다. 킨텍스에서 일했지만 그들의 소속은 킨텍스가 아닌 용역업체였다. 킨텍스는 주차, 안내, 보안, 환경미화 등의 업무를 아웃소싱해 용역업체에 맡겼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로 217-60번지. 12만평 부지에 1,2전시장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킨텍스에선 230여 명의 비정규직과 100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글로벌 탑 10(Global Top 10) 전시컨벤션 센터로 도약을 꿈꾸고 있는 킨텍스의 성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만든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 깨끗한 전시장을 위해 노력하고 고객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킨텍스에서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2014년 킨텍스는 비정규직은 쏙 빼고, 정규직끼리만 4억 원의 성과급을 나눠 가졌다.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고용노동부가 정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르면, 용역노동자들에게도 기본급의 400% 범위 내에서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지키지 않으니 정부 지침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킨텍스 전시장 전경 ⓒ뉴시스

킨텍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함을 상징하는 건, 바로 그들의 점심이었다. 2년 전 '민중의소리'는 킨텍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점심식사 메뉴를 단독 보도했다. 그때 킨텍스가 비정규직 직원들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제공한 점심 식사 메뉴는 공기밥, 김치, 삶은 계란이 전부였다. 단가 1100원짜리 점심. 이게 복지라니, 슬퍼도 정말 슬픈 코메디가 따로 없다.

경기도와 고양시,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5,534억 원을 출자해 2005년 개장한 킨텍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들이 힘들게 일하고 받았던 월급은 110여만 원 수준.

"야간 근무 등을 하는 보안팀이 130만 원 정도 받았고, 미화팀은 90~110만 원, 주차팀은 120만 원 정도 받았어요. 연장근로, 야간근로에 대한 수당은 없는 경우가 많았고, 주말에 특근을 해도 수당은 없고, 대휴(대체휴일)을 쓰도록 했어요. 30대의 정규직 사원이 50대 용역노동자에게 욕설을 하고 소리 지르는 일도 많았고요."

보안팀에서 일하는 차동수 씨의 설명이다.


"비정규직 쥐어짜고 사장 업무추진비 펑펑"

정규직 인력의 두 배나 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이들을 차별한 킨텍스는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다. 전직 정부기관 고위직들이 사장과 부사장 등 임원으로 앉아서 연봉 1~2억 원을 챙겼다. 1,100원 짜리 알량한 점심을 먹으면서 월급 100여만 원 밖에 못 받은 비정규직의 임금은 동결하면서, 자신들은 성과급을 나눠가졌고,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업무 추진비는 편법으로 보전했다.

킨텍스는 2009년 업무추진비 절감 노력의 일환으로 대표이사는 매월 250만 원에서 150만 원으로, 임원은 매월 15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업무추진비를 삭감했다. 2년 뒤인 2011년, 킨텍스는 조직활성화비를 신설해 대표이사에게는 앞서 삭감된 업무추진비 만큼인 매월 100만 원, 임원들에게는 매월 50만 원을 집행했다. 업무추진비를 편법으로 보전한 것이다.

감사원이 2011년부터 2014년 5월까지 조직활성화비 집행실태를 확인한 결과, 임원들이 사용처를 기재하지 않고 업무추진비처럼 사용해 총 4,100만 원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킨텍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 킨텍스 앞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공공비정규직노조 킨텍스분회 조합원들. 왼쪽부터 차동수 사무장, 이대희 분회장, 해고자 정정미, 이수완 씨. ⓒ민중의소리


"사람 대접을 받고 싶었다"

차별과 무시 등 설움을 겪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람대접을 받고 싶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1차 시도는 무산됐다. 회사 측이 노조 결성 움직임을 먼저 감지해, 노조 결성에 적극적이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뿔뿔이 흩어놓았던 것이다. 포기하지 않은 노동자들은 2013년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킨텍스분회를 결성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힘이 없지만, 뭉쳐서 외치면 힘이 생긴다.

"노동조합 만들고 1,100원짜리 밥부터 개선했어요. 임금도 올렸고요. 그래도 그 수준이란 게, 너무 과한 저임금에서 조금 나은 저임금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예요. 그리고 연차를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서 킨텍스 건립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연차 휴가를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러나 하청업체를 상대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킨텍스-하청업체-비정규직 노동자로 이어지는 간접고용 구조에서 '실질적 사용자'는 킨텍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용관계의 정점에 있는 킨텍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문제에 인색했다.

"킨텍스는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사업장이에요. 하청업체 수익률이 1.8~3% 수준밖에 안 됐어요. 하청업체에서 가져가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우리도 아니까, 2014년 6월 이후 임금인상 요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해고자들에게 소송 폭탄"

킨텍스는 최근 (주)케이서비스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용역업체에 위탁했던 주차업무와 안내업무를 자회사가 회수해서 수행하고 있다. 킨텍스가 자본금 3억원 원을 출자(킨텍스 지분 100%)한 이 회사는 신규채용 절차를 갖고 직원을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용역업체에 근무하던 직원 중 정정미, 이수완 씨 등 3명이 채용에서 배제됐다. 그동안 성실하게 일해 왔는데 졸지에 해고자 신세가 된 것이다.

킨텍스는 6월 말 용역업체와의 계약이 정상적으로 종료됐고, 자회사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신규채용을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상시적인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년 또는 3년마다 고용관계가 종료되거나, 이번에 혹시 해고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며 일해야 한다면, 이건 정상이 아니다.

우리는 자본의 탐욕이 나은 이런 '비정상적 고용'이 우리 사회의 주된 고용관계로 자리잡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더구나 자회사 설립의 목적은 "고용안정", "서비스 마인드 개선" 등이었다. 고용안정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한다면서 정작 일하던 사람들의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모순은 무엇이란 말인가?

정정미, 이수완 씨 등 해고자 3명은 물러나지 않고 싸우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 7월 초부터 킨텍스 앞에 텐트를 치고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임창열 킨텍스 사장에게 "제발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데, 임 사장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 경기도지사를 지냈던 임창열 킨텍스 사장. 그는 해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접근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뉴시스


"내 평온한 생활을 방해하지 말라"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호소하는 노동자들에게 임창열 사장이 준 것은 '소송 폭탄'이다. 임창열 사장과 킨텍스는 해고자 3명과 노조원 등 총 10명을 대상으로 법원에 '접근금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법원에 제출한 신청서의 일부 내용은 아래와 같다.

"피신청인들은 신청인들의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또 신청인 임창열에게 접근하거나 그 평온한 생활 및 업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임창열 사장과 킨텍스는 해고자 등이 임 사장에게 접근 시 1회 당 50만원, 킨텍스의 업무를 방해할 시 1회당 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만약,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해고자들에겐 엄청난 타격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아무것도 못하도록 손발을 묶는 것이다.

"예산을 절감하고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겠다면서 자회사로 전환했는데, 예산을 절감하면서 어떻게 서비스를 개선합니까? 킨텍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대화가 원만하게 이뤄져서 하루빨리 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해고노동자 이수완 씨의 말이다.

임창열 사장은 올해 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전시장 건립으로 제2의 도약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맞은편엔 '킨텍스 3전시장 건립에는 4932억 원 투입! 연봉 2천만 원 비정규직 3명은 해고!'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결려 있다.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였다. 임창열 사장이 진정 킨텍스를 아시아 최고의 컨벤션센터로 만들고 싶다면, 귀를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킨텍스 관계자는 해고 노동자들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상황을 잘 모른다. 자회사에 문의해 봐라"라고 자회사로 공을 떠넘겼다.


출처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②] 해고통지서와 1억원 소송 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