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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밤낮 일해도 150만원 짜리 파리목숨”

“밤낮 일해도 150만원 짜리 파리목숨”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①
[민중의소리] 정웅재 기자 | 발행 : 2016-08-22 09:19:02 | 수정 : 2016-08-22 09:19:02


▲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민중의소리


"열심히 일했을 뿐입니다. 19살 청년이 왜 죽어야 합니까?"

지난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점검을 하던 19살 김 군이 전동차에 치여 숨졌습니다. 김 군의 가방에선 컵라면과 숟가락이 나왔습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쫓기며 지낸 겁니다.

많은 사람이 사고가 일어난 구의역 9-5 승강장을 찾아 김 군을 추모했습니다. 추모 메시지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저녁에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이 모여, 김 군에게 책임을 돌렸던 서울메트로의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지하철 안전업무 외주화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관심과 연대의 마음이 모여 구의역은 해법을 찾아갔지만, 우리 주변엔 아직도 많은 '구의역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외주화돼 임금이 깎이고 복지가 후퇴한 중년의 톨게이트 요금소 노동자들, 회사에서 주는 알량한 1,1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 홀대받으며 일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람대접 받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 노동자들.

앞으로 몇 편에 걸쳐서 그들을 만나 나눈 이야기를 이 지면에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노동자가 자신이 흘린 땀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권리인데, 노동조합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지 않는 세상을 바라며 묻습니다.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사람은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 해고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인천톨게이트 요금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은 용역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고용승계가 되지 않아,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한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례(53), 김영미(50), 이미재(55) 씨. ⓒ민중의소리


김영미(50) 씨는 2000년 6월 한국도로공사에 기간제 노동자로 입사했다. 만 16년 동안 경인고속도로 인천톨게이트 요금소에서 통행료를 받는 일을 해왔다. 그런데 그는 지금 오랫동안 일해 온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월나들목에서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7.4km를 달려가자 인천톨게이트가 나왔다.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지 않고 우회전해서 한국도로공사 인천영업소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걸려 있는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최저임금 300원 오를 때 우리 임금은 100원 올랐고, 최저임금 450원 오를 때 우리 임금은 200원 올랐다.'

'밤낮으로 일해도 150만원짜리 파리목숨, 서러워서 못살겠다. 도로공사는 톨게이트 요금소 비정규직의 저임금 고용불안 해결하라!'

이 플래카드는 저임금과 고용불안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인천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직접 손으로 써 걸어놓은 것이다. 한낮의 열기가 뜨거웠던 7월 중순, 이곳에서 김영미 씨, 최상례(53) 씨, 이미재(55) 씨 등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만났다.


일은 더 시키고 급여는 삭감하고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고속도로 노선엔 341개의 영업소가 있다. 각 영업소에 소속돼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과거엔 한국도로공사 소속(기간제)이었다. 2009년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외주화가 추진되면서, 이들의 신분은 외주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전환된 것이다.

도로공사로부터 인천톨게이트 업무를 위탁받은 용역업체는 아이로드(I-road)란 회사였다. 이 회사의 대표는 도로공사에서 퇴직한 전직 임원이었다. 인천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톨게이트 업무를 위탁받은 수백여 개의 용역업체들의 대표는 대부분 도로공사 출신 임원들이었다.

도로공사 임원들이 퇴직하고 용역업체를 차려 수의계약 등의 방식으로 도로공사로부터 톨게이트 업무를 위탁받은 것으로, 용역이 도로공사 임직원 퇴직 후 생활 보장 수단으로 변질한 것이다. 지금이야 외주화, 간접고용 등의 문제가 많이 알려졌지만, 2009년 당시 톨게이트 요금소 노동자들은 외주화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외주화가 뭔지도 몰랐어요. 당시 노동조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도로공사도 요금소 업무 등을 외주화하면서 우리한테 일일이 설명해주면서 한 것도 아니고요."

한 달 뒤 급여명세서를 받고서야 노동자들은 외주화가 무엇인지 실감했다.

"도로공사에 직접고용 돼 있을 땐 150만 원 정도 받았는데, 용역회사 직원으로 신분이 바뀌고 첫 월급을 받았는데, 글쎄 120만원 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20~30만원씩 다운된거죠."

▲ 한국도로공사 간접고용으로 경인고속도로 인천톨게이트 요금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고용보장'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직접 써서 내걸었다. ⓒ민중의소리


임금만 깎인 게 아니라 복리후생도 줄어들었다.

"야간근무를 하면 빵과 우유를 줬었는데 그것도 없어졌어요. 체육행사비로 분기별로 5만원 나오던 것도 2만원으로 줄었죠. 1년에 2번 회식을 했었는데 그것도 안 하고, 심지어 사무실에서 마시던 믹스 커피도 개인 돈으로 사 먹으라고 하더라고요."

반면 야간에 두 시간 쉬던 걸 한 시간 반으로 줄이는 등 노동강도는 세졌다고 한다. 조직슬림화, 경영효율화 등을 목표로 한 외주화는 결국 힘 없는 노동자들에겐 노동조건의 후퇴였던 것이다.


10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 월급 140만원
정치인 출신 낙하산 사장 월급 1784만원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1.5평 남짓한 요금소에서 3교대 근무를 한다. 오전 6시 ~ 오후 2시/오후 2시 ~ 밤 10시/밤 10시 ~ 오전 6시. 이렇게 세 개 조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이틀은 오전 6시에 출근하고, 이틀은 오후 2시에 출근하고, 하루는 밤 10시에 출근하는 식이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2014년 11월, 1개월 동안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것에 따르면, 이들은 "여유인력이 없어 생리현상을 참으며 16시간씩 일할 때도 있었고, 퇴근 후 남아서 친절교육을 무급"으로 받기도 했다.

인천톨게이트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요금소가 여름엔 무척 더워요. 매연도 많고요. 그런데 여름에 에어컨 쓰는 것을 통제하려고, 어느 날 계량기를 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우리가 각자 쓴 전기량을 체크하라고 시키더라고요."

부당한 대우가 쌓인 곳에서 저항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인천톨게이트 노동자들은 2013년 7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행사한 것이다. 에어컨 전기 사용량 체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해 중단시켰다.

인천톨게이트 노동자들은 현재 시급 7,400원을 받고 있다. 인천톨게이트엔 모두 80여 명의 요금 수납원이 근무하는데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다수다. 이들이 받는 월급 실수령액은 130~140여만 원 수준이다.

이들이 땀을 흘려 한국도로공사는 전국 341개 영업소에서 2015년 3조6725억 원의 통행료 수입을 거뒀다. 경인고속도로의 경우 하루 평균 14만6천대의 차량이 이용해, 2015년 410억 원의 통행료 수입을 올렸다. 하루 평균 1억1200만 원꼴이다.

▲ 한국도로공사는 2015년 3조6725억 원의 통행료 수입을 올렸다. 톨게이트 요금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땀을 흘렸다. 그런데 요금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년 이상 근무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 ⓒ민중의소리


인천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올해 용역업체 아이로드와 임금협상에서 시급 880원 인상을 요구했다. 용역업체는 시급 200원 인상안을 고수했다. 시급 200원 인상은 노동자들이 흘린 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일까?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낸 김학송 씨다. 16,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그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했고, 이듬해 한국도로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ALIO)에 따르면, 김 사장은 지난해 기본급 1억1221만2천 원에 경영평가성과급 1억197만8천 원을 받아 총연봉이 2억1419만 원이었다. 한 달 월급으로 환산하면 1,784만9166원이다.

140만 원과 1,784만 원. 1.5평의 요금소에서 10년 이상 감정노동을 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려야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톨게이트 노동자들 월급에서는 매달 5만6000원이 식비로 공제된다.

"밥도 안 줘요. 한 끼에 3,500원씩 계산해서 월급에서 공제해요. 우린 굶어 죽게 생겼는데, 좀 같이 살자는데, 자기들만 너무 많이 가져가려고 하니까 화가 나죠."

인천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우리가 개인으로 있으면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얘기하면 들어주기도 한다"라며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든든한 울타리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용역업체가 아이로드에서 현장종합관리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요금소 노동자 정원이 83명에서 75명으로 감소됐고, 결국 지난 6월 1일부로 8명이 고용승계되지 않아 사실상 해고자 처지가 됐다. 노조 지부장, 부지부장, 사무장 등 노조 핵심 인원들이 살생부 명단에 올랐다.


"더 이상 자르지 말아주세요"

이들은 현재 한국도로공사 인천영업소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면서 농성을 하고 있다. 원청인 한국도로공사는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 이들이 자신들과 관계없는 용역업체 노동자들이라고 선을 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톨게이트노동조합 소속 요금소 노동자 570명은 2014년 2월 서울동부지법에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2015년 1월 고속도로 요금소 용역업체에 소속돼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한국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도로공사는 법원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항소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도로공사 사장님! 용역회사 사장님! 저희도 사람입니다. 사람은 효율만 따져서 필요없다고 버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더 이상 자르지 말아주세요. 저희 중엔 고연령자도 있어서 굳이 억지로 자르지 않아도 자연 감소합니다. 그리고 정당한 임금을 바랍니다.” 인천톨게이트 요금소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김영미 노조 부지부장 등과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해고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쓰인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김 부지부장은 “정말 해고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우리 조합원들 다 같은 마음예요”라고 말했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하이패스 도입 등으로 인력감축이 불가피한 면도 있다”면서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을 승계하도록 하는 등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출처  [당신의 노동은 안녕하십니까 ①] “밤낮 일해도 150만원 짜리 파리목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