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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 순식간에 200명이 달려왔다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 순식간에 200명이 달려왔다
노조파괴’ 갑을오토텍, 공장엔 하루 세 번 싸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6-07-30 16:54:16 | 수정 : 2016-07-31 16:12:47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공장 농성을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29일 새벽 2시경, 캄캄한 공장 안 기계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철야농성 중인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조합원들은 기계 아래에서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공장 중앙현관 복도에도 조합원들은 은박을 돌돌 말아 베개 삼고, 은박깔개 한 장 위에 누워 있었다. 공장 입구에는 커다란 선풍기 날개가 백색소음을 내며 돌고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서는 한여름에도 한기가 올라왔다. 조합원들이 잠들어 있는 현관 입구에 누웠다. 밤새 오돌오돌 추위에 떨며 깨기를 반복했다.

오전 6시 30분, 불편한 잠자리에도 불구하고 410여 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기상했다. 이들은 차량 공조시스템 및 에어컨 부품 등을 제작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이다. 짧게는 9개월, 길게는 31년 경력의 노동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새벽 2시까지 해야만 하는 일은 ‘보초’ 서기였다. 관리직 직원들을 감시해야만 하는 업무다.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사측 관리자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노사의 팽팽한 대립 현장
“노조파괴 그만두십시오!” vs “말만 하면 노조파괴입니까”

“삑!(호루라기 소리) 2층입니다!”

오후 2시 50분경, 건물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 있던 조합원이 외쳤다. 수십 명이 뛰어오는 소리가 위아래 층에서 우르르 들려왔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조합원들은 입구를 촘촘히 막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았다. 노조 간부들 7~8명은 지회장을 중심으로 그 앞에 섰다. 노조 측의 준비가 무섭게 관리직 직원들 150여 명이 4층 계단에서 우르르 내려왔다. 임원 및 팀장급 이상 관리직을 선두로 바둑판처럼 노조 앞에 자리를 잡았다. 관리직 직원들 10여 명은 셀카봉 핸드폰을 들고 조합원들의 동태를 모두 채증 했다. 노조 조합원들 또한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사 측과 노동자 측은 불과 50cm 간격을 두고 늘어섰다.

이어 노조 지회장과 사 측 이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재헌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은 “회사는 노조파괴 중단하라”고 요구했고, 정민수 갑을오토텍 이사는 “말만 하면 노조파괴냐?”라며 대꾸했다. 마이크에서 울리는 양측의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10여 분, 한참 발언을 이어가던 정 이사가 마이크를 내려놓더니, 관리직 직원 하나가 “올라가겠습니다”라고 외쳤다. 150여 명의 관리직 직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우르르 4층 사무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모든 관리직 직원들이 계단을 오르자, 한 조합원이 “상황해제 됐습니다”라며 아래층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숨이 막힐 듯 얼어붙었던 공기가 녹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낮 동안에는 불시에 두어 번, 그리고 새벽 12시와 1시경에 이런 대치상황이 연출됐다.

전선배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교선부장은 “저들이 정말 회사를 생각하고 제품생산이 급급했으면 얼마든지 밀고 들어왔지만,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며 “이전에도 그랬듯이 5분~10분 대치상황을 만들고, 계속된 도발을 통해 작은 건수를 구해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폭행 등의 혐의를 물어 고소·고발하기 십상이다”라며 “도발에 넘어가면, 법정 소송싸움 등으로 이어져 조합원들은 지치고 와해하기 쉽다”고 말했다.

대립상황이 끝나고 계단에 걸터앉은 박종석(54) 조합원은 “한 끼 걸러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하루에 많이 잠들어봐야 세 시간이다”라며 “스트레스 때문인지 눈을 감으면 작년에 회사가 노조파괴를 위해 뽑은 용역 깡패들에게 피 터지던 조합원들이 떠오르고, 악몽도 꾼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못 버티고 밀리면 죽는다는 생각뿐이다”라며 “29년, 청춘을 다 바치고 애정을 다해 이 공장에서 일해 왔다. 죽어도 여기서 뼈를 묻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사측 관리자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대치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노조의 쟁의행위는 적법하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는 지난 8일부터 사 측의 불법 대체생산 및 불법 대체인력 현장투입 중단을 요구하며 전면파업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사 측은 노조의 쟁의행위가 “회사 운영의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노조의 파업이 적법하다고 보고 이를 기각했지만, 회사는 불법 대체인력투입 및 대체생산을 지속해서 행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특전사·경찰 출신의 신입사원을 채용해 노조를 파괴하려 했던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이사는 지난 15일 1심 법원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런데도 사 측은 내달 1일 오후 1시 140여 명의 경비용역을 배치하겠다고 아산경찰서에 신고했다.

현재 회사는 노동자들이 부당함을 느끼고 파업을 해도 불법 대체인력을 투입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사 측의 이런 노조와해 작전에 맞서 조합원들은 인원을 나누고, 차량 출입문과 출하장 그리고 1층·2층에 있는 작업현장 입구를 지켰다. 나머지 인원들은 건물 외부로 순찰을 나가기도 했다. 사 측이 노조의 힘을 와해시키기 위해 투입하는 대체인력과 대체생산을 막기 위해서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대체인력 관리직 직원들 때문에 조합원들의 얼굴엔 늘 긴장이 서려 있었다. 조합원들은 팀별로 2시간씩 교대근무를 서며 짬짬이 부족한 수면을 채웠다.

회사의 명으로 노조와 대립 중인 200여 명이 넘는 관리직 직원들은 공장건물 4층에서 근무를 섰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처 2년도 안 된 신입사원들이다. 면접 당시, ‘기본업무 외 새벽 12시부터 7시경까지 공장 생산 업무를 보는 3조 근무를 설 수 있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관리직’ 채용에 응했다.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이 비어있다. ⓒ정병혁 기자

매 순간 가장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솔선수범을 보여야 할 사람은 노조 간부들이었다. 김우태(50)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대의원 또한 회사와의 대립각 속에서 가장 앞에 서서 상대편을 넌지시 응시하고 있었다.

김우태 대의원은 앞선 기사에서 소개된 편지의 (“용역에 맞던 아빠 모습에...” 갑을오토텍 노조원 딸의 편지 [전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딸이 “아빠가 ‘딸들이 이런 환경에서 일하게 될까 봐 그게 싫어서 이렇게 싸우는 거’라고 했던 얘기가 생각나서 혼자 삭힐 수밖에 없었다”며 울먹이는 편지 영상을 봤다고 했다. 그리고 말을 잠시 잇지 못했다.

김 대의원에게는 네 명의 딸이 있었다. 그중 편지를 보내온 딸은 첫째로 현재 대학교 유아교육과 2학년 과정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둘째, 초등학교 5학년인 셋째, 네 살 막둥이가 있었다. 그는 막둥이와의 영상통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우리 막내딸(4)은 화상통화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딸에게 화상으로 전화를 걸면 핸드폰에 뽀뽀해준다”며 “딸과 이렇게 통화를 하고 나면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모두 녹아내리는 느낌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 대의원은 “새벽에 이런 대치상황이 종료되면 피곤한 상태로 눕는데, 종종 잠을 못 잔다. 그럴 때 특히 가족들 한 명 한 명 얼굴을 떠오른다”며 “가족들 덕분에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 김우태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대의원의 첫째 딸의 솜씨로 가족들이 다함께 "아빠! 힘내"라는 응원 메시지를 담아 아버지 김우태 대의원에게 전달했다. ⓒ김우태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대의원 제공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신영애(59·여) 조합원 또한 가족들에게 하루걸러 전화가 온다. 그녀는 아들이 전화가 오면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리하지 말고 건강 주의하세요”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럼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안심시킨다고 했다.

신 조합원은 94년도에 입사해 올해로 22년 동안 직원들과 회사 경영진에게 밥을 해주던 식당 아주머니다. 그녀는 “97~98년도 파업을 하면 최루탄을 터뜨리던 시절에도 회사는 직원들에게 밥만큼은 챙겨줬다”며 “하지만 이번 갑을오토텍 회사는 밥부터 끊었다”고 강조했다.

신 조합원은 “나는 원래 노동조합에만 가입해 있었지, 22년 동안 노조활동을 해온 것은 아니다”라며 “그런데 작년 야근을 하고 집에 가서 쉬고 있는데, 회사가 고용한 덩치들에 조합원들이 맞고 피를 흘리는 사진들이 카톡방에 줄줄이 올라오더라. 여자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다음날부터 노조활동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갑을오토텍 공장의 직원들은 약 30년 동안 5개의 회사를 경험했다. 98년까지는 ‘만도기계’ 직원들이었다. 그리고 IMF가 터지면서 공장은 ‘UBS’ 스위스 투기자본에, ‘CVC’ 투기자본에 넘겨졌고, 다시 ‘모딘코리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갑을상사그룹’이 2009년에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 또한 ‘갑을오토텍’으로 바뀐 것이다.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이런 회사가 있다는 게 정말 황당하다”며 혀를 찼다.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 안에 금속노조 조합원 가족들의 짐이 쌓여 있다. ⓒ정병혁 기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

회사는 군 출신 등의 용역경비를 고용해 ‘8월 1일 오후 1시’에 또다시 경비용역배치를 예고했다. 집단민원현장이기에 아산경찰서는 허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아산경찰서 관계자는 “최대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검토를 하고 있다”며 “법률적 부분을 검토한 뒤 불허할지, 허가 또는 조건부 허가를 내릴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우태 대의원은 “만약 1일 용역들이 회사로 들어온다면, 작년 피가 낭자한 폭행이 있었던 극한상황을 맛본 조합원들은 격앙될 수 있다”며 “저들도 그렇고, 막다른 상황이 닥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폭행사태를 우려했다.

김 대의원은 “이 싸움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우리 삶의 일터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라며 “많은 조합원이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재헌 지회장은 “사주가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우리는 이곳 공장에서 많은 것을 양보했고, 경영진들의 배임 행위와 같은 불법행위들을 바로 잡으며,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왔다”며 “경영자 한 사람이 개인 잇속을 위해 700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게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의 가족들은 28일에 이어 29일도 충남지방경찰청을 찾아 백운집 충남청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가족들은 아산경찰서 앞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도청과 시청 그리고 서울에 있는 갑을오토텍 본사 등을 찾아다니며 “용역경비배치 허가를 불허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점거 농성 중인 금속노조원들이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금속노조 가족대책위원회가 율동을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단행된 26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 갑을오토텍 공장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출처  [르포]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 순식간에 200명이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