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하마’ 민자고속도로
비싼 요금 뒤의 '보이지 않는 손’
[경향신문] 박용필 기자 | 입력 : 2016-10-03 17:32:00 | 수정 : 2016-10-04 17:08:45
개천절이 낀 연휴, 멀리 나들이 다녀오셨나요? 고속도로가 막혀도 통행료는 꼬박꼬박 내셨을 겁니다. 특히 민자고속도로에서는 더 많이요. 민자고속도로 통행료는 왜 더 비쌀까요? 정부로부터 막대한 수익보전금을 받는데도 요금이 비싸야 할 이유는 뭘까요?
비싼 요금을 지적하는 뉴스들이 지속해서 나오는데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요금은 여전히 비싸고 막대한 보전금도 여전히 받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요? 생각할수록 좀 이상한 민자 도로, 차근차근 파헤쳐보았습니다.
민자 도로 통행료는 어느 정도나 비쌀까요? 도로공사 도로 요율과 비교해봤습니다. 조사한 10개 민자 도로 중 9개가 도로공사보다 비싸네요. 인천대교 구간은 3배 가까이 비쌉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인천공항고속도로도 각각 2.3배 2.2배 비쌉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는 82.1㎞에 10,100원인데, 도로공사 기준 요금으로 하면 해당 거리는 4,500원입니다. 도로공사 구간보다 저렴한 구간은 한곳입니다.
비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정부로부터 별도 보전금도 지원을 받습니다. 이른바 최소운영수익보장금(MRG, minimum revenue guarantee)인데요. 수요 예측치보다 실제 실적이 미달할 때 그 미달분을 보전해주는 겁니다. 9개 구간 중 1개 도로를 빼고는 모두 보전금을 받았네요. 민자 회사들은 17억부터 982억까지 보전금을 받았습니다. 지난 한 해에 만요. 인천공항고속도로는 2001년 개통 후부터 지난해까지 보전금으로 모두 1조2854억 원을 받았습니다.
손해가 얼마나 막심하기에 비싼 요금에도 매년 막대한 보전금을 받는 걸까요? 국토교통부와 민간사업자는 교통량 수요를 예측해 협약을 체결합니다. 이 예측치와 실제 교통량이 차이가 나면 정부가 보전하게끔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민자 도로 대부분이 예측치보다 실제 교통량이 적어 보전금을 받게 되는 것이죠. 즉 실제로 손해가 나서 보전해준다기보다는 예측했던 것보다 교통량이 적으니 정부가 돈을 대신 내주는 겁니다.
더 희한한 건 해마다 예측치와 실제 교통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아래는 주요 민자 도로 개통 이후 예측치 대비 실제 교통량 비율입니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매년 한결같이 실제 교통량이 예측치를 크게 밑돕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등 상당수는 예측치의 50% 안팎, 잘해야 60% 정도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매년 말이죠. 도대체 어떻게 예측하기에 해마다 이렇게 오차가 크게 날까요?
예측치는 언제마다 조사할까요? 상식대로라면 매년 갱신해야 하죠. 그러나 협약 체결 당시 사업 전체 기간인 30년간 예측치를 한 번에 결정합니다. 또 중간에 이를 바꿀 수도 없도록 협약을 체결합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사업자가 교통량 예측치를 산출해오면 타당성 검토를 거쳐 확정하고, 중간에 수정이나 갱신은 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이 얘기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도로에 30년 후 차가 얼마나 다닐지’를 ‘정부도 아닌 사업자’가 예측을 해서 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실제 교통량과 큰 차이가 나더라도 ‘바꿀 수 없게’ 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깁니다. 이를 기준으로 매년 막대한 수익보전까지 해주고요. 이런 계약, 이해가 되나요?
최소운영수익보장(MRG)이라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상식 밖입니다. 사업은 손해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게 상식이죠. 이해하기 힘든 수익보전 조건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국가재정 부담 해소를 위한 민자 사업이 오히려 해마다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주는 셈입니다. 시민 입장에서도 요금 부담만 늘었고요. 시민과 정부 모두에게 무익해 보이는 데 추진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 ‘손해 볼 일이 없는 사업권’을 따낸 민자 도로 사업자들은 예외겠죠.
이쯤 되면 ‘신도 부러워할 계약’을 따낸 민자 도로 사업자들의 정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개 구간의 민자고속도로의 출자자들을 확인해봤습니다. 우면산 터널 사업과 지하철 9호선 등에서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MKIF(맥쿼리 인프라펀드)’가 우선 곳곳에서 눈에 띄네요. 그런데 더 눈에 띄는 건 11개 구간 중 7개 구간에 공적기금이나 공기업이 출자자로 참여했다는 겁니다. 이 중 3곳은 공공기관 지분이 절반을 넘습니다. 심지어 전액을 출자한 구간도 있습니다. 민간 출자자 중에도 대주주가 예금보험공사나 국민연금공단 같은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인 우리은행이나 국민은행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민간이 자본을 대고 운영하는 ‘민자 고속도로’인 줄 알았는데 상당수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자본을 댔네요.
이런 구조라면 ‘민자 도로’ 중 상당수는 사실상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이 소유한 도로입니다. 같은 공기업인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공공 고속도로와 본질에서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도로공사 운영 도로는 요금도 싸고 수익보전도 안 하죠. 그런데 왜 사실상 공기업 소유의 무늬만 ‘민자 도로’에는 세금으로 수익 보전까지 해줘야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민자 도로 사업은 1994년 만들어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시작됐습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당시 도로공사가 건설할 예정이었던 인천공항고속도로가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 민자로 전환됐습니다. 이후 다른 민자고속도로 사업들이 잇따라 추진됐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공기업이나 공적 기금의 민자사업 출자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적 자본도 투자할 수 있는 것이고, 수익을 올리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수익이 세금인 경우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현재 구조에서는 ‘고가의 요금’과 ‘국민의 세금에서 지급한 수익보전금’ 중 상당액이 공기업과 공적 기금에 흘러들어 갑니다. ‘민간 자본 수익 보장’이라는 취지의 ‘막대한 세금’을 사실은 공공기관이 가져가는 셈이죠. 편법 논란이 나올 만한 대목입니다.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은 법령이 정한 방법과 범위 내에서 국회에서 의결된 만큼만 세금을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결국, 공기업 재정에다 공무원들의 연금은 물론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에까지 막대한 세금이 편법으로 투입된다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보전금’과 ‘공공기관’이 두 가지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또 알아봤습니다. 앞서 보셨던 민자 도로 구간별 수익보전액입니다. 다시 봐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큰돈입니다. 출자자 현황과 비교해봤습니다. 그런데 신대구부산고속도로(대구-부산)와 같이 공공기관의 지분 참여가 높은 곳들은 대개 수익보전액이 수백억대에 달합니다. 반면 제2서해안 고속도로(평택-시흥) 등 진짜 ‘민간 지분’만 참여한 구간은 많아 봤자 십수억, 또는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정부로부터 받는 보전 금액 차이가 나는 이유는 구간별로 협약 당시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공공 지분이 많은 도로의 경우 수요예측치의 일정 부분까지를 보전해주는 MRG(최소운영수입보장)가 규정돼 있습니다. 반면 민간 기업·자본이 지분을 가진 구간에는 MRG 조건이 없습니다. 공공 지분이 많은 구간은 막대한 수익보전금을 지원하고 정작 민간 지분의 진짜 ‘민자’ 도로에는 수익보전금이 지원되지 않는 겁니다. 이걸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국토부는 “민자 도로는 사업 기간(30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만큼 MRG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초기 개통 구간에는 적용했다. 2009년 이를 폐지한 이후 개통 구간에는 MRG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민자사업은 건설 비용 등을 민간자본이 대는 대신 일정 기간 운영해 수익을 가져갑니다. 이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합니다. 사업 기간이 끝나면 다시 국가에 반환하는 기부-체납 형식의 사업인데 운영 기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그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보전금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이 사실일까요? 일단 MRG는 국토부 말대로 2009년 폐지됐습니다. 그러나 공공지분이 참여한 민자 구간에는 여전히 거액의 보전금이 지급되고 있습니다. 폐지 이전에 협약이 체결됐기 때문입니다. 국토부는 “계약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계약 수정이나 갱신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MRG 조건 없이는 사업 기간 내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국토부 해명도 정말인지 따져봐야겠죠? 전현희 의원실과 함께 국토부로부터 입수한 ‘보전금 내용’과 ‘통행료 수입’ 등 수입 내용과 ‘총 도로 건설비’, ‘연간 도로 운용 관리비’ 등 지출 내용을 비교·추정해봤습니다.
먼저 수입은 크게 ‘통행료 수입’ 등 실제 수입과 MRG로 구성됩니다. 이 둘을 합치면 지금까지의 수입이 대충 나오겠죠, 투자비용은 초기 도로 건설 총 건설비용과 매년 인건비·보수비 등 연간 운용비용 총액을 합하면 대충 추산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현재 수입·비용을 토대로 미래 수입·비용 역시 단순하게는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간별 협약 조건에 따라 사업 종료 시까지의 총수입과 총비용을 계산해 과연 손해가 날지, 이익이 날지를 가늠해봤습니다. 참고로 기재부 관계자는 이런 추정 방식에 대해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분석 결과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사업 종료 시까지 5조 원 넘는 수입을 거둘 것으로 나왔습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대구-부산)는 4조 원, 천안논산고속도로는 총수입이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그럼 비용은 얼마가 들어갈까요? 사업종료 시까지 각각 2조2142억(인천공항고속도), 2조6060억(신대구부산고속도로), 1조8494억(천안논산고속도로)이 들어갈 거로 추정됐습니다.
결국, 세 구간 모두 1조에서 2조 이상의 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추정치가 나왔습니다.
물론 단순 추정이다 보니 화폐의 시간가치, 즉 시간에 따른 화폐가치의 감소율까지 계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기건설비를 제외한 비용은 수입과 같은 시점에 발생하기 때문에 시차가 없습니다. 1조 원대의 초기건설비용에만 총수입 대비 15년의 시차(총수입은 30년에 걸친 수익의 총합이므로)가 발생하기 때문에 오차는 있겠지만, 추세를 바꿀 정도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이 추정치에는 사업비 대출 이자도 당연히 빠져있습니다. 출자자가 자본을 어떻게 마련하든지 그건 해당 출자자가 책임질 몫이니까요.
이 분석을 두고 국토부 관계자는 “재무제표상 총수익과 총비용이 같은 수준이 되도록 협약이 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조 원의 이익이 남을 것이란 추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추정 방식에 “‘큰 오류나 누락’이 있느냐,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민자사업 법인에 물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MRG가 정말 투자금 회수에 불가피했다면 왜 폐지를 했는지’, ‘투자금 회수에 불가피하다는 MRG를 폐지한 이후에도 민간기업들이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MRG가 폐지되기 전에는 공공 기관 등이 적극 출자를 하다가 폐지가 된 이후에는 출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만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전현희 더민주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자고속도로 사업의 비상식적인 진행 과정들을 보면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의도를 가지고 민자 도로 지분투자에 뛰어들었고, 담당 부처는 불평등 협약을 용인해 국민 돈으로 그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고 볼 소지가 충분하다.”, “거대 SOC 사업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자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특혜에 가까운 협약 조건을 보장한 것으로 의심되고, 이후 ‘세금으로 공적기금을 메우’거나, ‘편법으로 공기업의 만성 적자를 해소하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전 의원은 “결국 민자 고속도로 사업은 ‘무리한 SOC 투자를 위해 등장한 편법’이며 지금은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이 세금을 편취하는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이 같은 이유로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막대한 보전금과 고가의 요금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재부나 국토부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출처 [기타뉴스] ‘세금 하마’ 민자고속도로…비싼 요금 뒤의 '보이지 않는 손’
비싼 요금 뒤의 '보이지 않는 손’
[경향신문] 박용필 기자 | 입력 : 2016-10-03 17:32:00 | 수정 : 2016-10-04 17:08:45
개천절이 낀 연휴, 멀리 나들이 다녀오셨나요? 고속도로가 막혀도 통행료는 꼬박꼬박 내셨을 겁니다. 특히 민자고속도로에서는 더 많이요. 민자고속도로 통행료는 왜 더 비쌀까요? 정부로부터 막대한 수익보전금을 받는데도 요금이 비싸야 할 이유는 뭘까요?
비싼 요금을 지적하는 뉴스들이 지속해서 나오는데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요금은 여전히 비싸고 막대한 보전금도 여전히 받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바뀌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꼭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일까요? 생각할수록 좀 이상한 민자 도로, 차근차근 파헤쳐보았습니다.
도공 구간보다 최대 2.8배 비싸
민자 도로 통행료는 어느 정도나 비쌀까요? 도로공사 도로 요율과 비교해봤습니다. 조사한 10개 민자 도로 중 9개가 도로공사보다 비싸네요. 인천대교 구간은 3배 가까이 비쌉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와 인천공항고속도로도 각각 2.3배 2.2배 비쌉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는 82.1㎞에 10,100원인데, 도로공사 기준 요금으로 하면 해당 거리는 4,500원입니다. 도로공사 구간보다 저렴한 구간은 한곳입니다.
▲ 구간별 요금 및 도공 요율/ 국토부 자료/ 정동영 의원실 제공
민자 구간 손해보전금 한해 최대 982억
비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정부로부터 별도 보전금도 지원을 받습니다. 이른바 최소운영수익보장금(MRG, minimum revenue guarantee)인데요. 수요 예측치보다 실제 실적이 미달할 때 그 미달분을 보전해주는 겁니다. 9개 구간 중 1개 도로를 빼고는 모두 보전금을 받았네요. 민자 회사들은 17억부터 982억까지 보전금을 받았습니다. 지난 한 해에 만요. 인천공항고속도로는 2001년 개통 후부터 지난해까지 보전금으로 모두 1조2854억 원을 받았습니다.
▲ 구간별 MRG(최소운영수익보전금) 지급 내역/국토부 / 전현희 의원실 제공
한결같은 ‘장미빛’ 예측
손해가 얼마나 막심하기에 비싼 요금에도 매년 막대한 보전금을 받는 걸까요? 국토교통부와 민간사업자는 교통량 수요를 예측해 협약을 체결합니다. 이 예측치와 실제 교통량이 차이가 나면 정부가 보전하게끔 계약을 합니다. 그리고 민자 도로 대부분이 예측치보다 실제 교통량이 적어 보전금을 받게 되는 것이죠. 즉 실제로 손해가 나서 보전해준다기보다는 예측했던 것보다 교통량이 적으니 정부가 돈을 대신 내주는 겁니다.
더 희한한 건 해마다 예측치와 실제 교통량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아래는 주요 민자 도로 개통 이후 예측치 대비 실제 교통량 비율입니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매년 한결같이 실제 교통량이 예측치를 크게 밑돕니다. 인천공항 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등 상당수는 예측치의 50% 안팎, 잘해야 60% 정도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매년 말이죠. 도대체 어떻게 예측하기에 해마다 이렇게 오차가 크게 날까요?
▲ 예측치 대비 실적 비율/ 국토부 / 전현희 의원실 제공
생기지도 않은 도로의 ‘30년 후’ 예측
예측치는 언제마다 조사할까요? 상식대로라면 매년 갱신해야 하죠. 그러나 협약 체결 당시 사업 전체 기간인 30년간 예측치를 한 번에 결정합니다. 또 중간에 이를 바꿀 수도 없도록 협약을 체결합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사업자가 교통량 예측치를 산출해오면 타당성 검토를 거쳐 확정하고, 중간에 수정이나 갱신은 하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이 얘기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도로에 30년 후 차가 얼마나 다닐지’를 ‘정부도 아닌 사업자’가 예측을 해서 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실제 교통량과 큰 차이가 나더라도 ‘바꿀 수 없게’ 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깁니다. 이를 기준으로 매년 막대한 수익보전까지 해주고요. 이런 계약, 이해가 되나요?
최소운영수익보장(MRG)이라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상식 밖입니다. 사업은 손해와 실패의 위험을 감수하는 게 상식이죠. 이해하기 힘든 수익보전 조건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국가재정 부담 해소를 위한 민자 사업이 오히려 해마다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주는 셈입니다. 시민 입장에서도 요금 부담만 늘었고요. 시민과 정부 모두에게 무익해 보이는 데 추진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아 ‘손해 볼 일이 없는 사업권’을 따낸 민자 도로 사업자들은 예외겠죠.
▲ 고속도로 통행료 인하를 요구하며 통행료로 수표를 건네는 시민
무늬만 ‘민자도로’?
이쯤 되면 ‘신도 부러워할 계약’을 따낸 민자 도로 사업자들의 정체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개 구간의 민자고속도로의 출자자들을 확인해봤습니다. 우면산 터널 사업과 지하철 9호선 등에서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MKIF(맥쿼리 인프라펀드)’가 우선 곳곳에서 눈에 띄네요. 그런데 더 눈에 띄는 건 11개 구간 중 7개 구간에 공적기금이나 공기업이 출자자로 참여했다는 겁니다. 이 중 3곳은 공공기관 지분이 절반을 넘습니다. 심지어 전액을 출자한 구간도 있습니다. 민간 출자자 중에도 대주주가 예금보험공사나 국민연금공단 같은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인 우리은행이나 국민은행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민간이 자본을 대고 운영하는 ‘민자 고속도로’인 줄 알았는데 상당수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자본을 댔네요.
▲ 구간별 출자자 현황/ 국토부 / 전현희 의원실 제공
세금 편취?
이런 구조라면 ‘민자 도로’ 중 상당수는 사실상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이 소유한 도로입니다. 같은 공기업인 도로공사가 운영하는 공공 고속도로와 본질에서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도로공사 운영 도로는 요금도 싸고 수익보전도 안 하죠. 그런데 왜 사실상 공기업 소유의 무늬만 ‘민자 도로’에는 세금으로 수익 보전까지 해줘야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민자 도로 사업은 1994년 만들어진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에 따라 시작됐습니다. 기재부에 따르면 당시 도로공사가 건설할 예정이었던 인천공항고속도로가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 민자로 전환됐습니다. 이후 다른 민자고속도로 사업들이 잇따라 추진됐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공기업이나 공적 기금의 민자사업 출자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적 자본도 투자할 수 있는 것이고, 수익을 올리면 좋은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 수익이 세금인 경우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현재 구조에서는 ‘고가의 요금’과 ‘국민의 세금에서 지급한 수익보전금’ 중 상당액이 공기업과 공적 기금에 흘러들어 갑니다. ‘민간 자본 수익 보장’이라는 취지의 ‘막대한 세금’을 사실은 공공기관이 가져가는 셈이죠. 편법 논란이 나올 만한 대목입니다.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은 법령이 정한 방법과 범위 내에서 국회에서 의결된 만큼만 세금을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결국, 공기업 재정에다 공무원들의 연금은 물론 사립학교 교직원 연금에까지 막대한 세금이 편법으로 투입된다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짜고 친 고스톱?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보전금’과 ‘공공기관’이 두 가지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또 알아봤습니다. 앞서 보셨던 민자 도로 구간별 수익보전액입니다. 다시 봐도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큰돈입니다. 출자자 현황과 비교해봤습니다. 그런데 신대구부산고속도로(대구-부산)와 같이 공공기관의 지분 참여가 높은 곳들은 대개 수익보전액이 수백억대에 달합니다. 반면 제2서해안 고속도로(평택-시흥) 등 진짜 ‘민간 지분’만 참여한 구간은 많아 봤자 십수억, 또는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 출자자 현황 대비 MRG지원액
정부로부터 받는 보전 금액 차이가 나는 이유는 구간별로 협약 당시 조건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공공 지분이 많은 도로의 경우 수요예측치의 일정 부분까지를 보전해주는 MRG(최소운영수입보장)가 규정돼 있습니다. 반면 민간 기업·자본이 지분을 가진 구간에는 MRG 조건이 없습니다. 공공 지분이 많은 구간은 막대한 수익보전금을 지원하고 정작 민간 지분의 진짜 ‘민자’ 도로에는 수익보전금이 지원되지 않는 겁니다. 이걸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 구간별 협약 기준 및 출자자 현황
국토부는 “민자 도로는 사업 기간(30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만큼 MRG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초기 개통 구간에는 적용했다. 2009년 이를 폐지한 이후 개통 구간에는 MRG를 설정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습니다. 민자사업은 건설 비용 등을 민간자본이 대는 대신 일정 기간 운영해 수익을 가져갑니다. 이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합니다. 사업 기간이 끝나면 다시 국가에 반환하는 기부-체납 형식의 사업인데 운영 기간이 정해져 있는 만큼 그 안에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보전금 지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말이 사실일까요? 일단 MRG는 국토부 말대로 2009년 폐지됐습니다. 그러나 공공지분이 참여한 민자 구간에는 여전히 거액의 보전금이 지급되고 있습니다. 폐지 이전에 협약이 체결됐기 때문입니다. 국토부는 “계약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계약 수정이나 갱신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결국 1~2조원이 남는 사업?
‘MRG 조건 없이는 사업 기간 내 투자금 회수가 어렵다’는 국토부 해명도 정말인지 따져봐야겠죠? 전현희 의원실과 함께 국토부로부터 입수한 ‘보전금 내용’과 ‘통행료 수입’ 등 수입 내용과 ‘총 도로 건설비’, ‘연간 도로 운용 관리비’ 등 지출 내용을 비교·추정해봤습니다.
먼저 수입은 크게 ‘통행료 수입’ 등 실제 수입과 MRG로 구성됩니다. 이 둘을 합치면 지금까지의 수입이 대충 나오겠죠, 투자비용은 초기 도로 건설 총 건설비용과 매년 인건비·보수비 등 연간 운용비용 총액을 합하면 대충 추산이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현재 수입·비용을 토대로 미래 수입·비용 역시 단순하게는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구간별 협약 조건에 따라 사업 종료 시까지의 총수입과 총비용을 계산해 과연 손해가 날지, 이익이 날지를 가늠해봤습니다. 참고로 기재부 관계자는 이런 추정 방식에 대해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 구간 별 예상 손익 추정치/ 전현희 의원실과 공동 작업
분석 결과 인천공항고속도로는 사업 종료 시까지 5조 원 넘는 수입을 거둘 것으로 나왔습니다. 신대구부산고속도로(대구-부산)는 4조 원, 천안논산고속도로는 총수입이 3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그럼 비용은 얼마가 들어갈까요? 사업종료 시까지 각각 2조2142억(인천공항고속도), 2조6060억(신대구부산고속도로), 1조8494억(천안논산고속도로)이 들어갈 거로 추정됐습니다.
결국, 세 구간 모두 1조에서 2조 이상의 이익을 거두게 될 것이라는 추정치가 나왔습니다.
물론 단순 추정이다 보니 화폐의 시간가치, 즉 시간에 따른 화폐가치의 감소율까지 계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기건설비를 제외한 비용은 수입과 같은 시점에 발생하기 때문에 시차가 없습니다. 1조 원대의 초기건설비용에만 총수입 대비 15년의 시차(총수입은 30년에 걸친 수익의 총합이므로)가 발생하기 때문에 오차는 있겠지만, 추세를 바꿀 정도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 이 추정치에는 사업비 대출 이자도 당연히 빠져있습니다. 출자자가 자본을 어떻게 마련하든지 그건 해당 출자자가 책임질 몫이니까요.
이 분석을 두고 국토부 관계자는 “재무제표상 총수익과 총비용이 같은 수준이 되도록 협약이 체결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수조 원의 이익이 남을 것이란 추정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추정 방식에 “‘큰 오류나 누락’이 있느냐, 있다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민자사업 법인에 물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MRG가 정말 투자금 회수에 불가피했다면 왜 폐지를 했는지’, ‘투자금 회수에 불가피하다는 MRG를 폐지한 이후에도 민간기업들이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MRG가 폐지되기 전에는 공공 기관 등이 적극 출자를 하다가 폐지가 된 이후에는 출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만한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 신대구부산고속도로
전현희 더민주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민자고속도로 사업의 비상식적인 진행 과정들을 보면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의도를 가지고 민자 도로 지분투자에 뛰어들었고, 담당 부처는 불평등 협약을 용인해 국민 돈으로 그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고 볼 소지가 충분하다.”, “거대 SOC 사업에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자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특혜에 가까운 협약 조건을 보장한 것으로 의심되고, 이후 ‘세금으로 공적기금을 메우’거나, ‘편법으로 공기업의 만성 적자를 해소하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합니다.
전 의원은 “결국 민자 고속도로 사업은 ‘무리한 SOC 투자를 위해 등장한 편법’이며 지금은 공기업이나 공적기금이 세금을 편취하는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이 같은 이유로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도 막대한 보전금과 고가의 요금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재부나 국토부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출처 [기타뉴스] ‘세금 하마’ 민자고속도로…비싼 요금 뒤의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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