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청와대는 ‘비선 놀이터’였다
전·현직 청 관계자들 ‘증언’
활개친 ‘그림자 실세’
허울뿐인 ‘공식 라인’
[경향신문] 이용욱 기자 | 입력 : 2016.11.12 06:00:01
‘박근혜 정부’ 청와대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증언들이 청와대 전·현직 관계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연설문을 첨삭하고 주요 국정현안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데서 보듯, 공식 시스템은 무너져내렸다는 것이다. 실제 수석과 비서관들은 정보가 없었으며, 회의 논의 방향과 반대로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관계자 ㄱ씨는 “수용소에 있다 온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만둔 것 같다”면서 “월급만 받았다”고 말했다.
특히 2014년 11월 말 ‘정윤회 문건’이 터졌을 때 ‘비선의 그림자’가 명확해졌다고 관계자들은 11일 밝혔다. 당시 각종 언론보도가 쏟아졌고, 홍보수석실 등 관련 부서는 매일 밤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대응 방향을 정한 사람은 당시 윤두현 홍보수석이 아니라,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었다. 안 비서관이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이어서 직제상 대책회의와 무관했지만, 안 비서관이 쓱 나타나서 홍보수석에게 한마디씩 하고 가야 가이드라인이 잡혔다고 한다. ㄱ씨는 “그때는 대통령이 세세한 것도 다 지시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닐 수 있겠다”고 했다.
관계자 ㄴ씨는 “내부에서도 모르게 무엇인가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보고서가 따로 있다는 말이 돌았다”면서 “신문에 나온 십상시는 아니더라도 3인방이 누군가와 만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근혜까지 나서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 “유언비어”라고 문건을 부인했지만, 내부 근무자들은 달리 느꼈던 것이다.
‘북한 체제 붕괴론’의 출처도 비선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근혜는 지난 8월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고위 인사들의 잇단 망명을 거론하면서 “심각한 균열 조짐”, “체제 동요 가능성” 등 북한 정권 붕괴를 공개 언급했다.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도 뜻밖의 강경 발언에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박근혜는 ‘체제 붕괴론을 뒷받침할 논리를 만들라’고 역으로 지시했고, 외교라인 관계자들은 이론을 만드느라 고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선이 나서는 것과 반대급부로 공식 조직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특히 정윤회 문건이 터지기 전에는 더 극심했다.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을 제외하곤 박근혜와 따로 만나거나, 통화할 만한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ㄱ씨는 “수석이나 비서관들이나 다 핫바지였다”며 “아무리 회의를 해도 하나 마나였다. (논의 방향이) 하루아침에 뒤집혔다”고 말했다. “공조직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외부의 누군가 도움으로 굴러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인사 등 정보 공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2월 27일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의 비서실장 임명 때다. 당시 한 언론에서 현명관 마사회장을 후임 실장으로 보도한 기사를 놓고 당일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촌극이 빚어졌다고 한다. 수석비서관들이 “현 회장이 맞느냐”고 당시 민경욱 대변인에게 물었고, 민 대변인도 “성도 모른다.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모른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계자 ㄷ씨는 “인사 발표를 할 때마다 ‘이건, 뭐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부 정보망을 돌려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다른 데서 작업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해외순방 일정도 마지막까지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실무진이 왜 늦어지는지를 물어볼 때마다 “위에서 하시는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출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근혜의 청와대는 ‘비선 놀이터’였다
전·현직 청 관계자들 ‘증언’
활개친 ‘그림자 실세’
허울뿐인 ‘공식 라인’
[경향신문] 이용욱 기자 | 입력 : 2016.11.12 06:00:01
‘박근혜 정부’ 청와대 시스템이 고장났다는 증언들이 청와대 전·현직 관계자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연설문을 첨삭하고 주요 국정현안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데서 보듯, 공식 시스템은 무너져내렸다는 것이다. 실제 수석과 비서관들은 정보가 없었으며, 회의 논의 방향과 반대로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관계자 ㄱ씨는 “수용소에 있다 온 것 같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만둔 것 같다”면서 “월급만 받았다”고 말했다.
비선이 주도한 현안 대응과 발언
특히 2014년 11월 말 ‘정윤회 문건’이 터졌을 때 ‘비선의 그림자’가 명확해졌다고 관계자들은 11일 밝혔다. 당시 각종 언론보도가 쏟아졌고, 홍보수석실 등 관련 부서는 매일 밤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대응 방향을 정한 사람은 당시 윤두현 홍보수석이 아니라,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인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었다. 안 비서관이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이어서 직제상 대책회의와 무관했지만, 안 비서관이 쓱 나타나서 홍보수석에게 한마디씩 하고 가야 가이드라인이 잡혔다고 한다. ㄱ씨는 “그때는 대통령이 세세한 것도 다 지시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닐 수 있겠다”고 했다.
관계자 ㄴ씨는 “내부에서도 모르게 무엇인가 결정되는 일이 많았다. 보고서가 따로 있다는 말이 돌았다”면서 “신문에 나온 십상시는 아니더라도 3인방이 누군가와 만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근혜까지 나서 “지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 “유언비어”라고 문건을 부인했지만, 내부 근무자들은 달리 느꼈던 것이다.
‘북한 체제 붕괴론’의 출처도 비선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근혜는 지난 8월 22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고위 인사들의 잇단 망명을 거론하면서 “심각한 균열 조짐”, “체제 동요 가능성” 등 북한 정권 붕괴를 공개 언급했다.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도 뜻밖의 강경 발언에 당황했다고 한다. 이후 박근혜는 ‘체제 붕괴론을 뒷받침할 논리를 만들라’고 역으로 지시했고, 외교라인 관계자들은 이론을 만드느라 고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력화된 공식 라인
비선이 나서는 것과 반대급부로 공식 조직은 잘 굴러가지 않았다.
특히 정윤회 문건이 터지기 전에는 더 극심했다. 당시 이정현 홍보수석을 제외하곤 박근혜와 따로 만나거나, 통화할 만한 수석이나 비서관들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ㄱ씨는 “수석이나 비서관들이나 다 핫바지였다”며 “아무리 회의를 해도 하나 마나였다. (논의 방향이) 하루아침에 뒤집혔다”고 말했다. “공조직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아서 외부의 누군가 도움으로 굴러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인사 등 정보 공유도 이뤄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2월 27일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의 비서실장 임명 때다. 당시 한 언론에서 현명관 마사회장을 후임 실장으로 보도한 기사를 놓고 당일 오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촌극이 빚어졌다고 한다. 수석비서관들이 “현 회장이 맞느냐”고 당시 민경욱 대변인에게 물었고, 민 대변인도 “성도 모른다.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모른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관계자 ㄷ씨는 “인사 발표를 할 때마다 ‘이건, 뭐지’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부 정보망을 돌려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다른 데서 작업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해외순방 일정도 마지막까지 결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실무진이 왜 늦어지는지를 물어볼 때마다 “위에서 하시는 일”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출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박근혜의 청와대는 ‘비선 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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