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연맹 학살 발굴현장서 ‘칼빈 총탄’ 나와
‘군경’에 의한 학살 뒷받침
[민중의소리] 구자환 기자 | 발행 : 2017-02-26 15:10:26 | 수정 : 2017-02-26 15:13:17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국민보도연맹 학살 유해가 발굴됐다.
67년 전 한국전쟁 초기 진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들과 국민보도연맹원들의 유해다. 긴 세월 파묻혀 있었지만 유해들은 참혹했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용산고개 학살지 발굴은 지난 24일부터 시작됐다. 26일에는 군경에 학살된 민간인들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팔다리뼈 등의 유해가 부식된 상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학살된 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안경과 단추, 버클, 고무줄 등의 유품도 함께 발굴됐다.
발굴현장에서는 45구경 탄두와 칼빈 총탄도 함께 발굴돼 가해자가 누구였는지 짐작케했다.
1950년 7월 중순, 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재소자들과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A,B,C 등급으로 나뉘어져 형무소와 진주경찰서 창고에 구금됐다가 용산고개로 끌려와 집단학살됐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산고개에서 700여 명의 민간인들이 차에 실려 와 5개 구덩이에서 학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형무소 재소자들과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로 인해 형무소가 가득 차고 경찰서에서도 더는 수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군경은 새벽에 이들을 새벽에 끌고 나와 진주시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 유족들의 이야기다.
한국전쟁 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박선주 단장은 “현재까지 드러난 유해는 최소 15여 명으로 추정된다”며, “드러난 유해 아래로 한 겹의 유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학살된 유해수는 발굴이 끝나야만 최소치를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단장은 “당시 GMC 군용트럭 1대에는 35~40여 명이 들어갈 공간이었다”며 “이 발굴지에 몇 대의 트럭이 왔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4번째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는데 용산고개에서는 2014년 1차 발굴을 한 바 있다.
유골과 유품이 나오는 용산고개 발굴지의 넓이는 가로 10m, 세로 2m다. 발굴된 유해의 정강이뼈 방향으로 볼 때 유해들은 한 방향으로 쓰러져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당시 지형으로 볼 때 군경은 근접 사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계신분이 우리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국가가 잘못했으면 나서서 공식사과를 하고 유해발굴을 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모른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동안 호미 등으로 진행했던 발굴작업은 유골이 드러나면서 대나무 칼과 붓을 이용한 세심한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애초 3월 1일 예정했던 발굴 결과 발표를 28일 오후 2시로 앞당겼다.
현장에는 경찰 대학교 학생을 포함한 시민 10여 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하정민(21), 송채은(21) 학생은 “계절 학기를 수강하면서 한국현대사의 그늘인 민간인학살 사건을 알게 됐다”며, “국가가 저지른 학살을 시민단체가 자비를 들여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국가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진주시 집현면에서도 민간인학살이 이루진 것으로 새롭게 나타났다. 봉강리 윤우범(88)씨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여름 집 뒷산에 50~55명의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당시 마을에 부역을 나갔다가 오후 3시께 뒷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죽어있는 사람들을 보았다며 그날 마을 주민들은 모두 부역을 나간 상태여서 총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이 지점에 시굴을 해 본 결과 유해가 나왔다”며, “트럭 1대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본 또 다른 주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출처 보도연맹 학살 발굴현장서 ‘칼빈 총탄’ 나와...‘군경’에 의한 학살 뒷받침
‘군경’에 의한 학살 뒷받침
[민중의소리] 구자환 기자 | 발행 : 2017-02-26 15:10:26 | 수정 : 2017-02-26 15:13:17
▲ 67년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유해들. ⓒ구자환 기자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국민보도연맹 학살 유해가 발굴됐다.
67년 전 한국전쟁 초기 진주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들과 국민보도연맹원들의 유해다. 긴 세월 파묻혀 있었지만 유해들은 참혹했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용산고개 학살지 발굴은 지난 24일부터 시작됐다. 26일에는 군경에 학살된 민간인들로 추정되는 두개골과 팔다리뼈 등의 유해가 부식된 상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학살된 이들의 것으로 보이는 안경과 단추, 버클, 고무줄 등의 유품도 함께 발굴됐다.
발굴현장에서는 45구경 탄두와 칼빈 총탄도 함께 발굴돼 가해자가 누구였는지 짐작케했다.
1950년 7월 중순, 진주형무소에 수감되었던 재소자들과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은 A,B,C 등급으로 나뉘어져 형무소와 진주경찰서 창고에 구금됐다가 용산고개로 끌려와 집단학살됐다.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산고개에서 700여 명의 민간인들이 차에 실려 와 5개 구덩이에서 학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형무소 재소자들과 예비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들로 인해 형무소가 가득 차고 경찰서에서도 더는 수용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군경은 새벽에 이들을 새벽에 끌고 나와 진주시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다는 것이 유족들의 이야기다.
▲ 유해발굴 현장. ⓒ구자환 기자
한국전쟁 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박선주 단장은 “현재까지 드러난 유해는 최소 15여 명으로 추정된다”며, “드러난 유해 아래로 한 겹의 유해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학살된 유해수는 발굴이 끝나야만 최소치를 추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단장은 “당시 GMC 군용트럭 1대에는 35~40여 명이 들어갈 공간이었다”며 “이 발굴지에 몇 대의 트럭이 왔는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4년부터 올해까지 4번째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는데 용산고개에서는 2014년 1차 발굴을 한 바 있다.
유골과 유품이 나오는 용산고개 발굴지의 넓이는 가로 10m, 세로 2m다. 발굴된 유해의 정강이뼈 방향으로 볼 때 유해들은 한 방향으로 쓰러져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당시 지형으로 볼 때 군경은 근접 사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계신분이 우리 아버지라고 생각하니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국가가 잘못했으면 나서서 공식사과를 하고 유해발굴을 해야 하는데도 여전히 모른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 동안 호미 등으로 진행했던 발굴작업은 유골이 드러나면서 대나무 칼과 붓을 이용한 세심한 수작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공동조사단은 애초 3월 1일 예정했던 발굴 결과 발표를 28일 오후 2시로 앞당겼다.
▲ 유해 발굴 현장. ⓒ구자환 기자
현장에는 경찰 대학교 학생을 포함한 시민 10여 명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하정민(21), 송채은(21) 학생은 “계절 학기를 수강하면서 한국현대사의 그늘인 민간인학살 사건을 알게 됐다”며, “국가가 저지른 학살을 시민단체가 자비를 들여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국가 권력이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벌어졌다”며,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진주시 집현면에서도 민간인학살이 이루진 것으로 새롭게 나타났다. 봉강리 윤우범(88)씨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여름 집 뒷산에 50~55명의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윤 씨는 당시 마을에 부역을 나갔다가 오후 3시께 뒷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죽어있는 사람들을 보았다며 그날 마을 주민들은 모두 부역을 나간 상태여서 총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강병현 진주유족회장은 “이 지점에 시굴을 해 본 결과 유해가 나왔다”며, “트럭 1대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본 또 다른 주민이 있었다”고 말했다.
▲ 유해 발굴현장. ⓒ구자환 기자
▲ 유해발굴 현장. ⓒ구자환 기자
출처 보도연맹 학살 발굴현장서 ‘칼빈 총탄’ 나와...‘군경’에 의한 학살 뒷받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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