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제로’까지 최소 60년…탈원전, 정말 과속일까요?
탈원전 논란, 이것이 팩트다 ① 탈원전 정책 ‘속도전’ 논쟁
‘설계수명 이전 폐로’ 밝힌 적 없어
감축 시점도 빨라야 5년 뒤 시작
‘공론화위원회’ 오늘 공식 출범
원전 비중 20년뒤 절반 감축
이 기간 재생에너지로 대체
[한겨레] 김성환 기자 | 등록 : 2017-07-23 13:09 | 수정 : 2017-07-23 21:57
‘2025년부터 전력수급 안정성 우려’, ‘속도 내는 탈원전 “그러다 탈나요”’, ‘탈원전 과속, 누굴 위한 것인가’….
정부가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의 공사 영구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화 절차를 시작한 뒤, 일부 언론에서 쏟아낸 기사·사설 등의 제목이다.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신규 원전의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다. 또 ‘속도전’ 정책으로 전력수급이 우려된다는 걱정도 섞여 있다.
맞는 지적일까? 우선 에너지 정책의 집행 과정을 조금만 살펴봐도, 이런 주장은 ‘탈원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원전 논의는 “핵발전소를 일시적으로 줄이겠다”가 아닌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다. ‘단계적 감축’의 출발점도 빨라야 5년 뒤다.
정부가 내놓은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영구중단 등 ‘공약’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핵발전소가 모두 사라지는 이른바 ‘원전 제로(zero)’ 시기는 현재 운영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신한울 2호기의 수명이 끝나는 62년 뒤에나 가능하다. 정부가 “설계수명을 줄여서라도 핵발전소의 영구중지를 앞당기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세운 ‘7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천지 1·2호기에 이어 신규 핵발전소가 더 필요하다며 반영한 핵발전소 2기(2026~2027년 착공 예정)를 실제로 만든다면, 탈원전 시점은 80년 뒤에나 가능하다. ‘속도전’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까마득한 시간이다.
단계적 폐지의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계가 우려하는 것처럼 일시적인 ‘전력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에너지 정책 구조상 전력거래소가 집계한 2015년 기준 전체 발전량 가운데 31.5%를 차지하는 핵발전소의 비중이 갑자기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업운전 중인 핵발전소 24기의 전체 설비용량(약 23GW) 가운데 절반이 줄어드는 데까지 드는 기간은 20년이다.
줄어드는 만큼 다른 에너지원을 적절하게 채워야 한다. 실현 가능성 유무를 떠나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가 2년마다 전문가를 모아서 전력 사용량을 예측하고 신규 발전소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가늠하는 15년 치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5년마다 20년 치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내놓는다. 혼란이 오길 바라기에는 에너지 정책의 논의 구조가 너무 촘촘하다.
앞선 탈핵 국가에 견줘도 한국 사회의 속도가 빠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비핵화 중립국’을 선언한 오스트리아는 1972년 완공을 눈앞에 둔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의 폐쇄를 ‘국민투표’를 통해 6년 만에 결정했다. 최초의 핵발전소가 문을 닫으면서 건설을 계획하던 나머지 5기도 취소했다.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독일은 사민당(SPD)-녹색당 연립정권 출범으로 탈핵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게 2000년이다. 애초 ‘원전 제로’ 시점을 2033년으로 잡았던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고 그 시점을 2022년으로 11년 앞당겼다.
대만은 국민당과 민진당의 잦은 정권교체로 15년 동안 룽먼 핵발전소 4호기 운영에 대한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2015년 민진당이 탈핵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21일 “지금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만으로도 원전은 2079년까지 가동된다. 앞으로 60여 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한 바 있다.
공론화에 나서려면 우선 탈원전에 대한 제대로 된 속도감부터 익히는 게 필요한 이유다.
출처 ‘원전 제로’까지 최소 60년…탈원전, 정말 과속일까요?
탈원전 논란, 이것이 팩트다 ① 탈원전 정책 ‘속도전’ 논쟁
‘설계수명 이전 폐로’ 밝힌 적 없어
감축 시점도 빨라야 5년 뒤 시작
‘공론화위원회’ 오늘 공식 출범
원전 비중 20년뒤 절반 감축
이 기간 재생에너지로 대체
[한겨레] 김성환 기자 | 등록 : 2017-07-23 13:09 | 수정 : 2017-07-23 21:57
▲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의 신고리 3·4호기(왼쪽)와 5·6호기 건설 현장의 모습. 연합뉴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4일 공식 출범한다. 공론화위의 설계에 따라 구성되는 시민배심원단은 공사의 영구중단 여부를 10월 말까지 결정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탈원전’을 둘러싼 진실 공방도 뜨겁다. 그러나 오해를 바탕으로 한 정보에서부터 의도적인 ‘가짜뉴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한겨레>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대표적인 주장과 보도에 대한 ‘팩트 체크’에 나선다.
“탈원전” 하면 원전이 곧 사라지는 건가요?
‘2025년부터 전력수급 안정성 우려’, ‘속도 내는 탈원전 “그러다 탈나요”’, ‘탈원전 과속, 누굴 위한 것인가’….
정부가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의 공사 영구중단 여부에 대한 공론화 절차를 시작한 뒤, 일부 언론에서 쏟아낸 기사·사설 등의 제목이다.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신규 원전의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이 너무 빠르다는 지적이다. 또 ‘속도전’ 정책으로 전력수급이 우려된다는 걱정도 섞여 있다.
맞는 지적일까? 우선 에너지 정책의 집행 과정을 조금만 살펴봐도, 이런 주장은 ‘탈원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탈원전 논의는 “핵발전소를 일시적으로 줄이겠다”가 아닌 “단계적으로 줄여나가겠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다. ‘단계적 감축’의 출발점도 빨라야 5년 뒤다.
핵발전소는 짧은 기간 안에 짓거나 없애기 어렵다. 우선 땅을 정한 뒤 완공까지 천연가스(LNG) 복합발전소(2~3년) 나 석탄화력발전소(5~6년)보다 훨씬 긴 10년이 걸린다. 핵발전소의 설계수명은 30~40년이다. 최근 건설한 신고리 3호기는 60년이나 된다. 설계수명을 채우지 않는다면 경제적 손해가 크다. 결국 ‘친원전’이든 ‘탈원전’이든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더라도 신속하게 반영될 수 없는 구조다.
정부가 내놓은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영구중단 등 ‘공약’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핵발전소가 모두 사라지는 이른바 ‘원전 제로(zero)’ 시기는 현재 운영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신한울 2호기의 수명이 끝나는 62년 뒤에나 가능하다. 정부가 “설계수명을 줄여서라도 핵발전소의 영구중지를 앞당기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박근혜 정부에서 세운 ‘7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천지 1·2호기에 이어 신규 핵발전소가 더 필요하다며 반영한 핵발전소 2기(2026~2027년 착공 예정)를 실제로 만든다면, 탈원전 시점은 80년 뒤에나 가능하다. ‘속도전’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까마득한 시간이다.
단계적 폐지의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자력계가 우려하는 것처럼 일시적인 ‘전력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다.
에너지 정책 구조상 전력거래소가 집계한 2015년 기준 전체 발전량 가운데 31.5%를 차지하는 핵발전소의 비중이 갑자기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상업운전 중인 핵발전소 24기의 전체 설비용량(약 23GW) 가운데 절반이 줄어드는 데까지 드는 기간은 20년이다.
줄어드는 만큼 다른 에너지원을 적절하게 채워야 한다. 실현 가능성 유무를 떠나 정부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가 2년마다 전문가를 모아서 전력 사용량을 예측하고 신규 발전소가 얼마나 더 필요한지를 가늠하는 15년 치의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5년마다 20년 치의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내놓는다. 혼란이 오길 바라기에는 에너지 정책의 논의 구조가 너무 촘촘하다.
앞선 탈핵 국가에 견줘도 한국 사회의 속도가 빠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비핵화 중립국’을 선언한 오스트리아는 1972년 완공을 눈앞에 둔 츠벤텐도르프 핵발전소의 폐쇄를 ‘국민투표’를 통해 6년 만에 결정했다. 최초의 핵발전소가 문을 닫으면서 건설을 계획하던 나머지 5기도 취소했다.
1986년 옛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독일은 사민당(SPD)-녹색당 연립정권 출범으로 탈핵 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게 2000년이다. 애초 ‘원전 제로’ 시점을 2033년으로 잡았던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고 그 시점을 2022년으로 11년 앞당겼다.
대만은 국민당과 민진당의 잦은 정권교체로 15년 동안 룽먼 핵발전소 4호기 운영에 대한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2015년 민진당이 탈핵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 21일 “지금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만으로도 원전은 2079년까지 가동된다. 앞으로 60여 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한 바 있다.
공론화에 나서려면 우선 탈원전에 대한 제대로 된 속도감부터 익히는 게 필요한 이유다.
출처 ‘원전 제로’까지 최소 60년…탈원전, 정말 과속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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