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검찰총장 20년 지기의 무죄선고 전말
[경향신문] 탐사보도팀 강진구·박주연 기자 | 입력 : 2017.07.24 06:15:00 | 수정 : 2017.07.24 10:15:28
전직 검찰총장에게 전달해달라고 제3자가 건넨 수임료를 가로챈 혐의(사기)로 기소된 건설업자가 “검사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65)과 20년가량 알고 지낸 건설업자 박 모 씨(57)는 수임료 5,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고소돼 2015년 말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해 1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검찰의 수사와 공판 진행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다수 발견됐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국새 사기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대 국새(國璽·국가도장) 제작단장 민홍규 씨(62)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자 부인 김 모 씨(58)는 박 씨의 주선으로 그해 9월 15일 임 전 총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임 전 총장이 변호사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이 자리에는 박 씨와 공군 정보장교 출신 컨설턴트 ㄱ 씨(48)도 동행했다.
ㄱ 씨는 “임 변호사가 설명을 듣더니 ‘당신들 말이 맞으면 무죄’라고 했다”며 구체적인 선임 조건도 기억했다. 그는 “임 변호사가 ‘보통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은 선임계를 내거나 도장을 찍으면 1억인데, 내가 사건을 맡더라도 선임계는 낼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이 구속된 상황에서 다른 생계수단이 없던 김 씨에게 1억 원의 수임료는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김 씨 측은 이후 “박 씨와 조율을 거쳐 수임료 5,000만 원을 현금으로 전달했다”고 경향신문에 밝혔다. 수임료는 미리 찾은 5만 원권 뭉치를 헝겊 주머니에 넣은 후 보자기로 싸서 건넸다고 했다.
하지만 국새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민홍규 씨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3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후 남편 민씨가 만기출소하자 김 씨는 남편 등과 함께 2014년 10월 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실형은 살았지만 임 변호사가 나름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 김 씨 부부는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임 변호사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며 일행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박 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임 변호사는 “나한테 5,000만 원을 가져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박 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김 씨는 5,000만 원의 수임료를 돌려받기 위해 2015년 7월 박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박 씨는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줄곧 “김 씨 일행이 보자기에 싼 물건을 들고 와서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다가 곧바로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의 수임 건에 대해서는 “임 전 총장이 김 씨 일행 면담 후 따로 불러 ‘내가 이 사건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서 더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임 변호사가 ‘사건 수임은 어렵지만, 자문은 해줄 수 있다’고 해서 그 말만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이후 김 씨와 ㄱ씨가 찾아와 헝겊 주머니를 임 변호사에 전달해 달라고 한 건 맞지만 다음날 혼자 사무실을 찾아온 김씨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주머니를 다시 찾아갔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주머니 안에 돈이 들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ㄱ 씨는 박씨가 돈을 돌려주지 않은 증거로 “돈 전달 후 박 씨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라며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깨알같이 기록한 업무일지를 증거로 제출했다. 업무일지에는 참고인의 소환일시나 관련자들 진술 내용, 수사 쟁점 및 진척 정도 등 검찰 내부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 날짜별로 적혀 있다. ㄱ 씨는 “우리는 당연히 임 변호사가 박 씨를 통해 전달한 정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과 박 씨는 민홍규 씨 변호인이 전한 정보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 씨 변론을 맡은 김모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나는 (판검사를 지내지 않고 바로 개업한) 연수원 출신 변호사다. 민 씨 수첩에 적힌 검찰수사 정보는 내가 전혀 알 수 없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도 돈을 돌려줬다는 박 씨 진술은 ‘거짓’, 김 씨 진술은 ‘진실’ 반응이 나왔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최모 검사는 박씨가 돈을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최 검사는 박씨가 임 변호사에게 돈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없다고 봤다. 최 검사는 임 변호사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고 공소장에 ‘피고인은 임 변호사에 수임료를 전달할 의사나 능력도 없었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박 씨는 “20년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시절 임 변호사를 술자리에서 처음 소개받았고 아내들도 만나면 서로 남편들 흉을 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박 씨는 “임 변호사가 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 딸 결혼식을 치를 때도 청첩장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율현의 강병국 변호사는 “박씨가 사건을 소개해주고 5,000만 원을 받았다면 당연히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의심해야 하는데, 임 전 총장에 대해 조사 없이 수사를 종결한 것은 정상적 수사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최 검사가 근무하는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연락했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 처리한 사건이니 그쪽에 물어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공판 과정 또한 석연치 않았다. 공판 수행을 담당한 김모 검사는 지난해 8월 24일 첫 증인신문에서 김 씨를 상대로 ‘5,00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아서 보관한 돈으로 수임료를 전달한 게 맞느냐’는 부분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ㄱ 씨를 상대로도 ‘직접 보자기를 풀어서 돈 액수를 확인해봤냐’고 파고들었다. 그는 또 5,000만 원의 자금 출처를 밝히겠다며 김 씨의 농협 계좌에 대한 금융거래 조회도 요청했다. 박씨가 “검사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남편의 중소기업 은행 계좌에서 김 씨의 계좌로 이체된 전표만 확인하면 게임 끝인데 그게 5년이 지나서 폐기돼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느닷없이 검사가 김 씨 계좌를 추적하자고 나온 거야. 변호사야 당연히 동의하지”
고소인을 대리한 판사 출신의 황종국 변호사(65)는 “피고인도 돈 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했는데, 변호사가 아닌 검사가 왜 계좌조회까지 신청하며 자금 출처를 쟁점으로 부각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김지용 공판2부장은 “무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김씨가 자금 출처 자료를 가져다줘야 하는데 전화도 안 받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씨의 설명은 다르다. 검찰이 2010년 국새 사기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미 계좌추적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죄가 선고되고 며칠 안 돼 김 검사가 조사할 게 있다고 해서 갔더니, 자기네가 (예전) 민홍규 씨 사건 때 9,100만 원의 행적을 조사한 게 있다고 하더라. 오해할 소지가 있으니 조회신청 했다고. 그래서 같이 웃었다.” 박 씨 설명대로라면 공판검사가 이미 계좌추적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금융거래정보 조회를 또다시 요청한 게 된다.
공판검사의 석연찮은 행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공소유지를 하려면 피고인 진술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검사는 박 씨를 상대로는 단 한마디도 신문하지 않았다. 대신 법원이 박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 한 달 반 전부터 고소인에 대한 무고와 위증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지용 부장검사는 “무죄 선고 전이라도 계좌추적을 통해 고소인의 법정 증언이 사실과 다른 사실이 확인되면 위증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확인 결과, 법원에 신청한 계좌조회 결과가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김 검사가 박 씨를 상대로 무고죄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은 것은 11월 8일이었다.
김 부장검사 말과 달리 계좌조회 결과가 나오기 1주일 전 무고·위증죄 수사에 착수했다. 김씨가 집에 보관 중인 돈으로 5,000만 원을 마련했거나, 5년 전 일이라 기억이 부정확할 가능성을 배제한 채 검사는 고의적 위증으로 판단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21일 박 씨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사는 결심공판에서 구형을 포기했고,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항소하지 않았다. 대신 고소인 김 씨를 상대로 무고 및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고소인과 피고인의 처지가 180도 뒤집힌 것이다.
10시간이 넘는 영장실질심사 끝에 무고나 고의적 위증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으로 영장은 기각됐다. 하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5월 26일 김 씨와 ㄱ 씨 등 2명을 무고 및 위증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고 지난 4일 첫 재판이 열렸다.
김 씨 측 대리인인 황 변호사는 “(판사와 변호사로서) 수십 년 간 공판을 경험했지만, 공소유지를 해야 할 검사가 일방적으로 피고인 편에서 공판을 진행하고 무죄 판결에도 항소를 포기한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또 다른 석연찮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법무법인 바른의 검사장 출신 한모 변호사가 박 씨에게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임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박 씨의 변론을 맡은 게 한OO 변호사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한 변호사는 임 변호사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 변호사는 “같은 법인의 변호사를 소개해줬을 뿐, 사건을 정식 수임한 것은 아니다. 수사과정에서 어떻게 진술하면 좋은지 조언을 해주고 공판이 열릴 때 방청석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증인신문 때) 검사가 막 달려드는 것 같지 않아서 후배들이 ‘사건을 잘 보고 있는 건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무고로 인지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후배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공판을 지휘한 김지용 부장검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후배였는데 사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한 변호사가 정식 선임도 하지 않은 박 씨 공판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을 단순한 ‘호의’로만 보기는 어렵다. 5,000만 원 규모 사기 사건에, 한 법무법인에서 9명의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도 석연찮다.
한 변호사가 박 씨 사건에 관심을 끌게 된 경위를 둘러싼 설명도 엇갈린다. 박 씨는 “사기죄로 기소된 후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 한 변호사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수사과정에서 아는 분 소개로 사건에 관심을 끌게 됐다. 소개해준 사람이 임 (전)총장님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전 총장은 “내가 민홍규 씨를 위해 자문을 해준다고 말한 적이 없고, 일전 한 푼 받은 적도 없다”며 “자기들끼리 무슨 장난을 쳤는지 모르지만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건”이라고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고소인 측 황 변호사는 “불과 5,000만 원 규모의 사기 사건에 검찰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은폐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 아니었겠느냐”며 “모종의 손길이 뒤에서 작용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단독] 전직 검찰총장 20년 지기의 무죄선고 전말
[경향신문] 탐사보도팀 강진구·박주연 기자 | 입력 : 2017.07.24 06:15:00 | 수정 : 2017.07.24 10:15:28
▲ 2010년 9월 국새 사기 사건으로 구속됐던 민홍규 씨 부인이 지인과 함께 임채진 전 검찰총장 사무실을 찾아가 사건을 설명하면서 작성한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업무일지의 한 페이지. 김영민 기자
전직 검찰총장에게 전달해달라고 제3자가 건넨 수임료를 가로챈 혐의(사기)로 기소된 건설업자가 “검사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고 밝혀 논란이 예상된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65)과 20년가량 알고 지낸 건설업자 박 모 씨(57)는 수임료 5,000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고소돼 2015년 말 재판에 넘겨졌으나 지난해 1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검찰의 수사와 공판 진행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다수 발견됐다.
사건의 발단은 2010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국새 사기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대 국새(國璽·국가도장) 제작단장 민홍규 씨(62)가 사기 혐의로 구속되자 부인 김 모 씨(58)는 박 씨의 주선으로 그해 9월 15일 임 전 총장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임 전 총장이 변호사로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이 자리에는 박 씨와 공군 정보장교 출신 컨설턴트 ㄱ 씨(48)도 동행했다.
ㄱ 씨는 “임 변호사가 설명을 듣더니 ‘당신들 말이 맞으면 무죄’라고 했다”며 구체적인 선임 조건도 기억했다. 그는 “임 변호사가 ‘보통 대법관이나 검찰총장 출신은 선임계를 내거나 도장을 찍으면 1억인데, 내가 사건을 맡더라도 선임계는 낼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 2010년 9월 15일 민홍규 씨의 부인과 함께 임채진 전 총장을 찾아가 사건 수임을 의뢰한 공군 정보장교 출신 ㄱ씨가 당일 업무일지에 기록한 내용. 임 전 총장이 이 사건을 맡더라도 선임계를 내지 못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김영민 기자
하지만 남편이 구속된 상황에서 다른 생계수단이 없던 김 씨에게 1억 원의 수임료는 부담스러운 액수였다. 김 씨 측은 이후 “박 씨와 조율을 거쳐 수임료 5,000만 원을 현금으로 전달했다”고 경향신문에 밝혔다. 수임료는 미리 찾은 5만 원권 뭉치를 헝겊 주머니에 넣은 후 보자기로 싸서 건넸다고 했다.
하지만 국새 사기사건으로 구속된 민홍규 씨는 이들의 기대와 달리 3년의 실형을 받았다. 이후 남편 민씨가 만기출소하자 김 씨는 남편 등과 함께 2014년 10월 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실형은 살았지만 임 변호사가 나름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 김 씨 부부는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임 변호사 반응은 의외였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며 일행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박 씨와 통화를 시도했다. 임 변호사는 “나한테 5,000만 원을 가져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박 씨는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김 씨는 5,000만 원의 수임료를 돌려받기 위해 2015년 7월 박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박 씨는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줄곧 “김 씨 일행이 보자기에 싼 물건을 들고 와서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다가 곧바로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임 변호사의 수임 건에 대해서는 “임 전 총장이 김 씨 일행 면담 후 따로 불러 ‘내가 이 사건을 맡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해서 더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임 변호사가 ‘사건 수임은 어렵지만, 자문은 해줄 수 있다’고 해서 그 말만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 씨는 이후 김 씨와 ㄱ씨가 찾아와 헝겊 주머니를 임 변호사에 전달해 달라고 한 건 맞지만 다음날 혼자 사무실을 찾아온 김씨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주머니를 다시 찾아갔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주머니 안에 돈이 들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20년 지기 사업가 박 모 씨에게 수임료 5,000만 원을 전달한 후 ㄱ씨가 박 씨로부터 전해 들은 검찰수사 정보를 업무일지에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용 중 일부. 참고인 3명의 소환일시가 적혀 있다. 김영민 기자
그러자 ㄱ 씨는 박씨가 돈을 돌려주지 않은 증거로 “돈 전달 후 박 씨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이라며 검찰 수사 진행 상황을 깨알같이 기록한 업무일지를 증거로 제출했다. 업무일지에는 참고인의 소환일시나 관련자들 진술 내용, 수사 쟁점 및 진척 정도 등 검찰 내부관계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내용이 날짜별로 적혀 있다. ㄱ 씨는 “우리는 당연히 임 변호사가 박 씨를 통해 전달한 정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과 박 씨는 민홍규 씨 변호인이 전한 정보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 씨 변론을 맡은 김모 변호사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나는 (판검사를 지내지 않고 바로 개업한) 연수원 출신 변호사다. 민 씨 수첩에 적힌 검찰수사 정보는 내가 전혀 알 수 없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결과도 돈을 돌려줬다는 박 씨 진술은 ‘거짓’, 김 씨 진술은 ‘진실’ 반응이 나왔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의 최모 검사는 박씨가 돈을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다만 최 검사는 박씨가 임 변호사에게 돈을 전달했을 가능성도 없다고 봤다. 최 검사는 임 변호사에 대해 아무런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고 공소장에 ‘피고인은 임 변호사에 수임료를 전달할 의사나 능력도 없었다’고 기재했다.
그러나 박 씨는 “20년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시절 임 변호사를 술자리에서 처음 소개받았고 아내들도 만나면 서로 남편들 흉을 볼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했다. 박 씨는 “임 변호사가 총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 딸 결혼식을 치를 때도 청첩장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율현의 강병국 변호사는 “박씨가 사건을 소개해주고 5,000만 원을 받았다면 당연히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의심해야 하는데, 임 전 총장에 대해 조사 없이 수사를 종결한 것은 정상적 수사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최 검사가 근무하는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연락했지만 “서울중앙지검에서 처리한 사건이니 그쪽에 물어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공판 과정 또한 석연치 않았다. 공판 수행을 담당한 김모 검사는 지난해 8월 24일 첫 증인신문에서 김 씨를 상대로 ‘5,000만 원을 현금으로 찾아서 보관한 돈으로 수임료를 전달한 게 맞느냐’는 부분을 집요하게 캐물었다. ㄱ 씨를 상대로도 ‘직접 보자기를 풀어서 돈 액수를 확인해봤냐’고 파고들었다. 그는 또 5,000만 원의 자금 출처를 밝히겠다며 김 씨의 농협 계좌에 대한 금융거래 조회도 요청했다. 박씨가 “검사 덕분에 무죄가 나왔다”고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남편의 중소기업 은행 계좌에서 김 씨의 계좌로 이체된 전표만 확인하면 게임 끝인데 그게 5년이 지나서 폐기돼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느닷없이 검사가 김 씨 계좌를 추적하자고 나온 거야. 변호사야 당연히 동의하지”
고소인을 대리한 판사 출신의 황종국 변호사(65)는 “피고인도 돈 받은 사실 자체는 인정했는데, 변호사가 아닌 검사가 왜 계좌조회까지 신청하며 자금 출처를 쟁점으로 부각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김지용 공판2부장은 “무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김씨가 자금 출처 자료를 가져다줘야 하는데 전화도 안 받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박 씨의 설명은 다르다. 검찰이 2010년 국새 사기사건을 수사하면서 이미 계좌추적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죄가 선고되고 며칠 안 돼 김 검사가 조사할 게 있다고 해서 갔더니, 자기네가 (예전) 민홍규 씨 사건 때 9,100만 원의 행적을 조사한 게 있다고 하더라. 오해할 소지가 있으니 조회신청 했다고. 그래서 같이 웃었다.” 박 씨 설명대로라면 공판검사가 이미 계좌추적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금융거래정보 조회를 또다시 요청한 게 된다.
공판검사의 석연찮은 행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공소유지를 하려면 피고인 진술의 허점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검사는 박 씨를 상대로는 단 한마디도 신문하지 않았다. 대신 법원이 박 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기 한 달 반 전부터 고소인에 대한 무고와 위증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지용 부장검사는 “무죄 선고 전이라도 계좌추적을 통해 고소인의 법정 증언이 사실과 다른 사실이 확인되면 위증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확인 결과, 법원에 신청한 계좌조회 결과가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 15일, 김 검사가 박 씨를 상대로 무고죄 피해자 진술조서를 받은 것은 11월 8일이었다.
김 부장검사 말과 달리 계좌조회 결과가 나오기 1주일 전 무고·위증죄 수사에 착수했다. 김씨가 집에 보관 중인 돈으로 5,000만 원을 마련했거나, 5년 전 일이라 기억이 부정확할 가능성을 배제한 채 검사는 고의적 위증으로 판단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21일 박 씨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사는 결심공판에서 구형을 포기했고, 무죄가 선고됐음에도 항소하지 않았다. 대신 고소인 김 씨를 상대로 무고 및 위증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고소인과 피고인의 처지가 180도 뒤집힌 것이다.
10시간이 넘는 영장실질심사 끝에 무고나 고의적 위증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으로 영장은 기각됐다. 하지만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5월 26일 김 씨와 ㄱ 씨 등 2명을 무고 및 위증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고 지난 4일 첫 재판이 열렸다.
김 씨 측 대리인인 황 변호사는 “(판사와 변호사로서) 수십 년 간 공판을 경험했지만, 공소유지를 해야 할 검사가 일방적으로 피고인 편에서 공판을 진행하고 무죄 판결에도 항소를 포기한 경우는 처음 봤다”고 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또 다른 석연찮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법무법인 바른의 검사장 출신 한모 변호사가 박 씨에게 도움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임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박 씨의 변론을 맡은 게 한OO 변호사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한 변호사는 임 변호사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검사장으로 승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 변호사는 “같은 법인의 변호사를 소개해줬을 뿐, 사건을 정식 수임한 것은 아니다. 수사과정에서 어떻게 진술하면 좋은지 조언을 해주고 공판이 열릴 때 방청석에 앉아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증인신문 때) 검사가 막 달려드는 것 같지 않아서 후배들이 ‘사건을 잘 보고 있는 건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무고로 인지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후배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공판을 지휘한 김지용 부장검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고 보니 내 후배였는데 사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한 변호사가 정식 선임도 하지 않은 박 씨 공판에 빠짐없이 참석한 것을 단순한 ‘호의’로만 보기는 어렵다. 5,000만 원 규모 사기 사건에, 한 법무법인에서 9명의 변호사가 대리인으로 이름을 올린 것도 석연찮다.
한 변호사가 박 씨 사건에 관심을 끌게 된 경위를 둘러싼 설명도 엇갈린다. 박 씨는 “사기죄로 기소된 후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우연히 한 변호사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변호사는 “수사과정에서 아는 분 소개로 사건에 관심을 끌게 됐다. 소개해준 사람이 임 (전)총장님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임 전 총장은 “내가 민홍규 씨를 위해 자문을 해준다고 말한 적이 없고, 일전 한 푼 받은 적도 없다”며 “자기들끼리 무슨 장난을 쳤는지 모르지만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건”이라고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고소인 측 황 변호사는 “불과 5,000만 원 규모의 사기 사건에 검찰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은폐해야 할 무언가가 있기 때문 아니었겠느냐”며 “모종의 손길이 뒤에서 작용하지 않으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단독] 전직 검찰총장 20년 지기의 무죄선고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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