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보도 1년, 그리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 어디까지 규명됐나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7.10.14 11:21:00 | 수정 : 2017.10.14 11:22:17
2016년 10월 24일 저녁, 기자는 특집 편성된 JTBC 뉴스룸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국정농단의 결정적 증거를 담고 있는 태블릿PC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팩트’들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박근혜’ 주위를 떠돌던 의혹, 이른바 비선권력의 실존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근 9년간 추적해왔던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반가움과 동시에, 그 진실을 밝혀낸 것이 ‘기자’나 기자가 소속한 언론사가 아니었다는 데 대한 착잡함과 아쉬움 같은 것이다.
전날 국회에 출석한 박근혜는 국면전환용 개헌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효력은 채 하루를 가지 않았다. JTBC 보도 다음 날, 박근혜는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촛불시위와 탄핵, 그리고 대통령 선거.
그리 오래전 사건이 아니다. 불과 1년 전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특종을 오매불망 갈구한다. JTBC가 공개한 태블릿PC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 적어도 대한민국 언론사상으로는 나와본 적이 없는 수소 폭탄급 특종이다.
언론판 국공합작.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을 언론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 <박근혜, 무너지다>에서 쓴 표현이다. 7월 보도가 있었고, 박근혜 정권의 공격을 받은 조선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국감 직전인 9월 20일 <한겨레>의 최순실 보도가 있었다. 10월 국감은 최순실 국감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최순실이나 정유라의 이대 특혜, 승마 의혹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언론들의 ‘팀플레이’는 확실히 이례적이었다. 보수 매체가 밝힌 단서를 바탕으로 진보 매체가 뒤를 잇고, 여기에 종편방송들이 특종경쟁을 하며 주도권을 다투는 전에 없던 상황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역시 10월 24일 JTBC 태블릿 보도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가릴 것 없이 취재에 나선 분기점은 JTBC 태블릿 보도 전과 이후로 나뉜다.
사실 언론이 취재에 나선 것은 멀게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보수 정권의 후계주자로 박근혜가 유력하게 떠오르면서 언론사의 주변 취재가 서서히 시작됐다. 각자 ‘박근혜 배후조종 비선’을 추적하던 기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면서 정보교환의 장(場)이 이곳저곳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언론판 국공합작 네트워크’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교환의 장’의 중심엔 신사동 미승빌딩이 있었다. 딸 정유라 씨가 여전히 칩거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 빌딩이다. 탐사취재를 하는 기자들 대부분이 한두 차례 이상 이 빌딩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기자도 2009년부터 매년 이곳 주위를 배회하며 정윤회·최순실 부부와 관련한 정보를 수집했다. 2012년 대선은 2007년 경선 때보다 오히려 조용히 지나갔다. 월간지 <신동아>가 ‘Mr.Q’라는 별명을 붙여 ‘박근혜 비선 정윤회 미스터리’를 대선 직전 톱기사로 내보낸 정도다.
실제 공판기록을 보면 당시 캠프에 참여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캠프에서 최순실을 못 봤다”고 진술한다. 태블릿PC를 개통해 제공한 김한수 행정관은 9월 29일 증인신문에서 2003년 고등학교 동창인 이병헌(최순실의 조카)을 통해서 이춘상을 소개받아 “이 보좌관에게 싸이월드 사용법을 가르쳐줬고, 2007년 캠프 참여 권유는 사업상 이유로 거절했으며, 2012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최순실과 관련, 친구 병헌씨로부터 ‘박근혜 의원과 잘 아는 셋째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한다. 캠프 기간 그는 “다시 이춘상으로부터 ‘병헌이 이모’를 소개받았지만, 그가 최순실인지는 몰랐고, 이춘상이 사고로 죽었을 때 ‘병헌이 이모’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은 있다”고 주장했다. 김한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들어가 작년 11월까지 홍보수석실 뉴미디어 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캠프 관련 인사들은 당시 ‘실세인사’로 거론되던 사람들은 다른 인물들이라고 증언한다. 이른바 박근혜의 ‘그림자 실세’로 불리던 최외출 전 영남대 부총장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입성 1순위’로 거론되던 그는 웬일인지 정권 내내 영남대에 머무르다가 지난해 12월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른바 JTBC 태블릿PC는 내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이번에 주장하고 나온 신혜원 씨가 사무국장으로 있던 서강바른포럼·포럼 동서남북(속칭 에스뜨레뉴 불법 선거팀)을 이끌던 성기철 씨도 마찬가지다.(박스 참조) 박근혜는 그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다. 기자는 과거 ‘박근혜와 자신의 인연’을 과시하며 비공식 선거캠프를 꾸려 불법 선거운동을 한 성씨 사례를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다. (<주간경향> 1151호, 대선 사조직, 이번에도 ‘눈 가리고 아웅’? 기사 참조)
다시 1년 전 세상에 나온 ‘태블릿PC’로 돌아가 보자. 태블릿PC는 국정농단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서 박근혜 측 변호인단은 이 태블릿PC의 증거능력 내지는 진실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기존에 정윤회·최순실을 추적해온 탐사기자들의 느슨한 ‘언론판 국공합작 네트워크’에겐 JTBC 취재팀은 ‘외인부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설의 난무. 당시 돌던 설의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단적인 주장이 ‘태블릿PC 기획설’이다. 어떤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사전에 태블릿PC라는 증거물을 조작하거나 갖다 줬다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실체 추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JTBC가 나중에 밝힌 입수 경위에 따르면 태블릿PC를 입수한 날은 10월 18일이다. 그 전까지 언론들은 취재 경쟁 선두다툼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취재 경쟁을 이어갔다.
JTBC가 태블릿을 입수하기 직전인 10월 중순, 경향신문이 최순실과 정유라 공동명의의 ‘더블루K’ 법인의 존재를 단독 보도하며 치고 나갔다. JTBC는 경향신문 인터넷판 기사를 보고 이 회사의 청담동 한국사무실을 찾는다. 문제의 태블릿PC가 책상 속 서랍에 놓여 있던 사무실에 경향·한겨레·JTBC 취재팀 중 누가 먼저 다녀갔는지에 대한 증언은 엇갈린다. 하지만 거의 몇십 분 내지는 길게 봐야 한두 시간 차이였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각사 취재 경위만 놓고 보면 태블릿PC를 취득한 언론사는 간발의 차로 달라질 수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복기해보면 18일 태블릿PC 입수 후 JTBC 보도는 여타 매체를 따돌리고 홀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10월 19일, JTBC는 최순실 씨의 최측근이라며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걸 봤다”는 고영태 씨의 증언을 보도한다. 상황을 잘 아는 누군가가 보도된 주장 이면에서 JTBC의 취재팀이 입수한 태블릿의 비밀을 푸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조작설 측의 대표적 의혹인 태블릿에 걸려 있는 ‘L’자 패턴의 암호를 어떻게 풀 수 있었는지, 검찰의 통신사 조회보다 하루 앞서 태블릿의 개설자 등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역시 태블릿PC 노출 이후 ‘서로를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최순실 측 인사들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
태블릿PC 보도 다음날, <주간경향>을 비롯한 <한겨레21>, <고발뉴스>, 그리고 정치권 한 변호사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의 원본 제공자로 알려진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방문했다. 이 일정은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 전 서로 협의해 결정한 것이었다. 오전 일찍 약속장소에서 만난 기자들 사이에서 핵심화제는 당연히 JTBC가 공개한 ‘폭탄’이 향후 정국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그 폭발성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날 인티뷰는 익명으로 회사별로 소화하기로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급진전하면서 사별로 실명 보도로 전환했다. <주간경향> 역시 김 전 편집국장 동의를 받아 실명보도했다.
JTBC 보도 20여 일 뒤 <주간경향>은 ‘최순실·정윤회 비선 아직 10%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당시 아직 90%는 드러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유가 있다. 첫째는 박근혜 대북 비선이었다. 정윤회 씨, 그리고 ‘보좌관 4인방’과 관계를 맺고 있는 유럽코리아재단-김정남-장성택 비선조직은 당시까지 드러난 것이 거의 없었다. <주간경향>의 관련 보도 이후 이 이슈는 여전히 잠복하여 있는 상태다. 올해 10월, 김정남 피살 사건 재판이 시작되면서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 언론에서는 이 비선과 관련한 새로운 증언이 보도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는 잠잠하다. 이밖에도 최씨 일가와 특정 종교의 유착 관계 의혹이나 거의 수십 년간으로 추정되는 해외 은닉재산 등의 사람과 조직·돈 관계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이 해외 은닉 추정 재산과 관련해 안민석 의원 등 국회의원 130명은 지난 7월 27일 ‘최순실 불법 은닉재산 몰수 특별법’을 발의했다. 40년에 걸쳐 박근혜가 최태민 일가에 어떻게 포획되었는지와 관련해서도 설만 무성할 뿐 밝혀진 진실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 10월 8일, 전 박근혜 대선 캠프 근무자 신혜원 씨는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는 자기가 캠프에서 사용하던 태블릿PC”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시 말해, 대선 캠프에서 사용하던 태블릿PC가 최순실 것으로 조작되었다는 주장이다.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이 주장을 더 구체화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김한수 씨뿐 아니라 신혜원 씨에게 “신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와 JTBC 것은 다르며, 신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는 폐기했다”고 알린 김휘종 청와대 전 국정 홍보비서관실 행정관이 조작의 ‘스모킹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즉, 권력 찬탈을 노리던 홍석현 JTBC·중앙일보 회장과 아들 홍정도-손석희-(고영태)-김한수-김휘종이 태블릿PC와 아무 관련 없는 최순실을 엮어 사건을 조작해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휘종’이라는 스모킹건은 중요하다.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갈 때도 모습을 드러냈고, JTBC 보도 이후 왜 신속히 사과 기자회견을 했는지, 정호성 부속비서관은 왜 쉽게 태블릿PC의 문건은 자신이 보냈다고 인정했는지 의문을 풀 핵심인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휘종 행정관이 작전세력 일부라는 것을 모르는 박근혜 측이 넘어가 사태가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조작설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장의 근거는 검찰이 지난 9월 19일 재판에 제출한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다. 특별한 해석은 없이 주로 기술 분석에 집중된 이 보고서는 총 689쪽에 달한다. 그중 일부 자료를 근거로 제기된 의혹설이다. 하지만 신혜원 씨의 기자회견 직후 바로 논파된 주장도 있다. JTBC 보도에서 언급한 ‘드레스덴 연설 수정 파일’이 이 포렌식 보고서에 따르면 수정할 수 없는 gif 이미지 파일이며, 그것을 감추고 JTBC가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다. 신 씨 기자회견 뒤에 늘어선 조작설 측 인사들은 해당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튿날 JTBC 측이 “gif 이미지는 자동으로 생성된 미리 보기 파일이며 별도의 아래아한글 파일이 있다”고 밝힌 뒤 이 주장은 더는 하지 않고 있다.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조작설 측 토론회에서도 틀린 것으로 밝혀진 이 의혹에 대해서는 더는 거론하지 않으며 다른 의혹을 내놓고 있다.
<주간경향>이 이 포렌식 보고서에서 주목한 것은 정작 다른 부분이다.
‘잘 도착했어. 담 주 초에 이 팀하구 빨리해서 시삭해. 내가 얘기한 주묘한 사항 정리해서 빨리해’(오자 등을 포함 원문 그대로 표기, 이하 동일) 이 태블릿PC의 사용자가 2012년 7월 15일 오후 4시 56분에 발송한 것으로 되어 있는 카톡 문자다. 이날 오후 5시에는 ‘일장표 좀 멜로 보내라구 김팀 얘기해줘’, 다시 오후 7시 3분엔 ‘인터넷이 잘안되 거기서 어텋게 해봐’라는 문자를 보낸다. 수신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검은 이날과 2013년 7월 29일 독일 도착 국제전화 로밍 안내문자, 외교부 영사 콜센터 안내문자와 최순실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하는 것 등을 들어 이 태블릿의 주인이 최 씨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봐야 하는 것이 있다. 비록 비문이지만, 위의 메시지, 특히 첫째, 둘째 메시지를 보면 ‘태블릿PC 사용자’가 독일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선 캠프에 모종의 ‘지시’를 내리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10%도 드러나지 않았다’ 기사에서 <주간경향>은 정윤회, 최순실 씨의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출입국 기록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10년간 출입국 기록에서의 특징은 두 부부의 해외 출입국 일정 두세 군데를 빼고는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출입국 기록에는 2013년은 없다. 그렇다면 2012년은 어떨까. 당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12년 7월 14일에 출국해 29일까지 독일에 머무르다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역시 두 사람 모두다. 이들 부부가 독일에 2주 남짓 체류하며 무슨 일을 했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최순실은 재판에서 태블릿PC의 소유 관계를 부인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저 메시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는 것이 된다. 정윤회는 검찰에도 소환되지 않았고,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선택되지 않았다. 동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 정 씨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정윤회로 본다. 정윤회가 복수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의혹 검증팀을 총괄했던 정두언 전 의원이 JTBC 보도 사흘 뒤 경향신문에 한 발언이다. 정윤회가 비선을 지휘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정윤회가 빠지고 최순실 ‘단독비선’이 되면서 그 사달이 났고, ‘폭로’를 지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밀려난 정윤회가 치밀하게 계획해 벌이는 복수전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정 전 의원은 약 한 달 뒤 <주간경향>과 통화에서는 이 ‘복수전 설’을 철회한 바 있다)
정 씨와 최 씨를 추적한 일각에서는 박근혜를 보좌하는 데서 두 사람이 일정한 역할 분담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복이나 옷차림, 가정 살림 등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것이 최 씨며, 연설문 작성이나 기타 정치행사 등 업무는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정씨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2014년 3월 28일 하루 전에 작성된 드레스덴 선언을 ‘교열’한 것은 최씨가 아니라 정 씨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 주장은 다시 앞서 정두언 전 의원이 초기에 주장한 ‘복수전’ 설로 수렴된다. 사실상 조직 장악이나 운영능력이 없는 최 씨에게 자신이 비선 실세였던 당시 작업한 결과물을 ‘스모킹 건’으로 삼아 복수했다는 주장이다.
비선 실세로 한 몸처럼 움직이던 두 사람이 갈라선 것은 두 사람의 이혼 전후로 추정된다. 등기부 등본 등에 따르면 최씨가 자신의 이름을 최서원으로 개명한 것은 2014년 2월 13일이다. 법원에 이혼조정신청을 낸 건 그해 3월이고, 이 조정이 성립된 것은 5월이다. 공교롭게도 독일 드레스덴 선언이 발표된 날은 3월 28일이다. 이혼 전 비선 실세로 정씨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거의 마지막 작품이었을 것이다.
검찰의 ‘2016년 10월 25일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가 재판에 공개된 것은 올해 9월 19일이다. 2016년 10월 24일, JTBC가 공개한 태블릿PC 안의 문서나 전체 사진은 현재까지 다 공개되지 않았다. 국정농단의 진실 역시 다 드러나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의 채 절반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출처 태블릿PC 보도 1년, 그리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의 진실, 어디까지 규명됐나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 | 입력 : 2017.10.14 11:21:00 | 수정 : 2017.10.14 11:22:17
▲ 10월 10일 박근혜(유신폐계)가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으로 호송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16년 10월 24일 저녁, 기자는 특집 편성된 JTBC 뉴스룸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국정농단의 결정적 증거를 담고 있는 태블릿PC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모든 ‘팩트’들은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박근혜’ 주위를 떠돌던 의혹, 이른바 비선권력의 실존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근 9년간 추적해왔던 ‘진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반가움과 동시에, 그 진실을 밝혀낸 것이 ‘기자’나 기자가 소속한 언론사가 아니었다는 데 대한 착잡함과 아쉬움 같은 것이다.
전날 국회에 출석한 박근혜는 국면전환용 개헌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 효력은 채 하루를 가지 않았다. JTBC 보도 다음 날, 박근혜는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그 후 많은 일이 있었다. 촛불시위와 탄핵, 그리고 대통령 선거.
그리 오래전 사건이 아니다. 불과 1년 전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특종을 오매불망 갈구한다. JTBC가 공개한 태블릿PC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까지 적어도 대한민국 언론사상으로는 나와본 적이 없는 수소 폭탄급 특종이다.
국정농단 밝혀낸 언론판 ‘국공합작’
언론판 국공합작.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을 언론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책 <박근혜, 무너지다>에서 쓴 표현이다. 7월 보도가 있었고, 박근혜 정권의 공격을 받은 조선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국감 직전인 9월 20일 <한겨레>의 최순실 보도가 있었다. 10월 국감은 최순실 국감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필사적으로 최순실이나 정유라의 이대 특혜, 승마 의혹이 번지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언론들의 ‘팀플레이’는 확실히 이례적이었다. 보수 매체가 밝힌 단서를 바탕으로 진보 매체가 뒤를 잇고, 여기에 종편방송들이 특종경쟁을 하며 주도권을 다투는 전에 없던 상황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역시 10월 24일 JTBC 태블릿 보도다.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가릴 것 없이 취재에 나선 분기점은 JTBC 태블릿 보도 전과 이후로 나뉜다.
▲ JTBC 뉴스룸의 2016년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 JTBC캡쳐
실제 공판기록을 보면 당시 캠프에 참여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캠프에서 최순실을 못 봤다”고 진술한다. 태블릿PC를 개통해 제공한 김한수 행정관은 9월 29일 증인신문에서 2003년 고등학교 동창인 이병헌(최순실의 조카)을 통해서 이춘상을 소개받아 “이 보좌관에게 싸이월드 사용법을 가르쳐줬고, 2007년 캠프 참여 권유는 사업상 이유로 거절했으며, 2012년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최순실과 관련, 친구 병헌씨로부터 ‘박근혜 의원과 잘 아는 셋째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한다. 캠프 기간 그는 “다시 이춘상으로부터 ‘병헌이 이모’를 소개받았지만, 그가 최순실인지는 몰랐고, 이춘상이 사고로 죽었을 때 ‘병헌이 이모’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은 있다”고 주장했다. 김한수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에 들어가 작년 11월까지 홍보수석실 뉴미디어 정책비서관실 행정관을 역임했다.
캠프 관련 인사들은 당시 ‘실세인사’로 거론되던 사람들은 다른 인물들이라고 증언한다. 이른바 박근혜의 ‘그림자 실세’로 불리던 최외출 전 영남대 부총장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입성 1순위’로 거론되던 그는 웬일인지 정권 내내 영남대에 머무르다가 지난해 12월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른바 JTBC 태블릿PC는 내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이번에 주장하고 나온 신혜원 씨가 사무국장으로 있던 서강바른포럼·포럼 동서남북(속칭 에스뜨레뉴 불법 선거팀)을 이끌던 성기철 씨도 마찬가지다.(박스 참조) 박근혜는 그의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다. 기자는 과거 ‘박근혜와 자신의 인연’을 과시하며 비공식 선거캠프를 꾸려 불법 선거운동을 한 성씨 사례를 취재해 보도한 적이 있다. (<주간경향> 1151호, 대선 사조직, 이번에도 ‘눈 가리고 아웅’? 기사 참조)
다시 1년 전 세상에 나온 ‘태블릿PC’로 돌아가 보자. 태블릿PC는 국정농단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서 박근혜 측 변호인단은 이 태블릿PC의 증거능력 내지는 진실성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기존에 정윤회·최순실을 추적해온 탐사기자들의 느슨한 ‘언론판 국공합작 네트워크’에겐 JTBC 취재팀은 ‘외인부대’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설의 난무. 당시 돌던 설의 일부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단적인 주장이 ‘태블릿PC 기획설’이다. 어떤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사전에 태블릿PC라는 증거물을 조작하거나 갖다 줬다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실체 추적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JTBC가 나중에 밝힌 입수 경위에 따르면 태블릿PC를 입수한 날은 10월 18일이다. 그 전까지 언론들은 취재 경쟁 선두다툼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취재 경쟁을 이어갔다.
JTBC가 태블릿을 입수하기 직전인 10월 중순, 경향신문이 최순실과 정유라 공동명의의 ‘더블루K’ 법인의 존재를 단독 보도하며 치고 나갔다. JTBC는 경향신문 인터넷판 기사를 보고 이 회사의 청담동 한국사무실을 찾는다. 문제의 태블릿PC가 책상 속 서랍에 놓여 있던 사무실에 경향·한겨레·JTBC 취재팀 중 누가 먼저 다녀갔는지에 대한 증언은 엇갈린다. 하지만 거의 몇십 분 내지는 길게 봐야 한두 시간 차이였다.
태블릿 조작설, 끈질기게 계속되는 이유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각사 취재 경위만 놓고 보면 태블릿PC를 취득한 언론사는 간발의 차로 달라질 수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복기해보면 18일 태블릿PC 입수 후 JTBC 보도는 여타 매체를 따돌리고 홀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10월 19일, JTBC는 최순실 씨의 최측근이라며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걸 봤다”는 고영태 씨의 증언을 보도한다. 상황을 잘 아는 누군가가 보도된 주장 이면에서 JTBC의 취재팀이 입수한 태블릿의 비밀을 푸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조작설 측의 대표적 의혹인 태블릿에 걸려 있는 ‘L’자 패턴의 암호를 어떻게 풀 수 있었는지, 검찰의 통신사 조회보다 하루 앞서 태블릿의 개설자 등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것 역시 태블릿PC 노출 이후 ‘서로를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최순실 측 인사들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
태블릿PC 보도 다음날, <주간경향>을 비롯한 <한겨레21>, <고발뉴스>, 그리고 정치권 한 변호사는 이른바 최태민 보고서의 원본 제공자로 알려진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방문했다. 이 일정은 태블릿PC 보도가 나오기 전 서로 협의해 결정한 것이었다. 오전 일찍 약속장소에서 만난 기자들 사이에서 핵심화제는 당연히 JTBC가 공개한 ‘폭탄’이 향후 정국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였다. 그 폭발성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날 인티뷰는 익명으로 회사별로 소화하기로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급진전하면서 사별로 실명 보도로 전환했다. <주간경향> 역시 김 전 편집국장 동의를 받아 실명보도했다.
▲ 경기 과천시 주암동 서울경마공원에서 2013년 7월 19일 <한겨레>가 최초로 포착한 정윤회와 최순실 당시 부부. 이 사진 전엔 두 사람과 관련해서는 정씨가 입법보좌원 시절 국회에 낸 본인의 흑백 명함판 사진이 전부였다. 이날 붉은 폴로셔츠, 하얀 바지를 입은 최씨의 차림새는 나중에 비선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국정농단 의혹이 본격화될 때까지 알려진 최순실 사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 한겨레 제공
JTBC 보도 20여 일 뒤 <주간경향>은 ‘최순실·정윤회 비선 아직 10%도 드러나지 않았다’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당시 아직 90%는 드러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이유가 있다. 첫째는 박근혜 대북 비선이었다. 정윤회 씨, 그리고 ‘보좌관 4인방’과 관계를 맺고 있는 유럽코리아재단-김정남-장성택 비선조직은 당시까지 드러난 것이 거의 없었다. <주간경향>의 관련 보도 이후 이 이슈는 여전히 잠복하여 있는 상태다. 올해 10월, 김정남 피살 사건 재판이 시작되면서 일본이나 대만 등 외국 언론에서는 이 비선과 관련한 새로운 증언이 보도되고 있지만, 아직 국내는 잠잠하다. 이밖에도 최씨 일가와 특정 종교의 유착 관계 의혹이나 거의 수십 년간으로 추정되는 해외 은닉재산 등의 사람과 조직·돈 관계에 대해서도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이 해외 은닉 추정 재산과 관련해 안민석 의원 등 국회의원 130명은 지난 7월 27일 ‘최순실 불법 은닉재산 몰수 특별법’을 발의했다. 40년에 걸쳐 박근혜가 최태민 일가에 어떻게 포획되었는지와 관련해서도 설만 무성할 뿐 밝혀진 진실은 그리 많지 않다.
올해 10월 8일, 전 박근혜 대선 캠프 근무자 신혜원 씨는 “JTBC가 보도한 태블릿PC는 자기가 캠프에서 사용하던 태블릿PC”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다시 말해, 대선 캠프에서 사용하던 태블릿PC가 최순실 것으로 조작되었다는 주장이다.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이 주장을 더 구체화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김한수 씨뿐 아니라 신혜원 씨에게 “신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와 JTBC 것은 다르며, 신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는 폐기했다”고 알린 김휘종 청와대 전 국정 홍보비서관실 행정관이 조작의 ‘스모킹건’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즉, 권력 찬탈을 노리던 홍석현 JTBC·중앙일보 회장과 아들 홍정도-손석희-(고영태)-김한수-김휘종이 태블릿PC와 아무 관련 없는 최순실을 엮어 사건을 조작해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휘종’이라는 스모킹건은 중요하다. 박근혜가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갈 때도 모습을 드러냈고, JTBC 보도 이후 왜 신속히 사과 기자회견을 했는지, 정호성 부속비서관은 왜 쉽게 태블릿PC의 문건은 자신이 보냈다고 인정했는지 의문을 풀 핵심인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휘종 행정관이 작전세력 일부라는 것을 모르는 박근혜 측이 넘어가 사태가 벌어졌다는 주장이다. 조작설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검찰 포렌식 보고서가 담은 ‘증거’들
주장의 근거는 검찰이 지난 9월 19일 재판에 제출한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다. 특별한 해석은 없이 주로 기술 분석에 집중된 이 보고서는 총 689쪽에 달한다. 그중 일부 자료를 근거로 제기된 의혹설이다. 하지만 신혜원 씨의 기자회견 직후 바로 논파된 주장도 있다. JTBC 보도에서 언급한 ‘드레스덴 연설 수정 파일’이 이 포렌식 보고서에 따르면 수정할 수 없는 gif 이미지 파일이며, 그것을 감추고 JTBC가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이다. 신 씨 기자회견 뒤에 늘어선 조작설 측 인사들은 해당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튿날 JTBC 측이 “gif 이미지는 자동으로 생성된 미리 보기 파일이며 별도의 아래아한글 파일이 있다”고 밝힌 뒤 이 주장은 더는 하지 않고 있다.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조작설 측 토론회에서도 틀린 것으로 밝혀진 이 의혹에 대해서는 더는 거론하지 않으며 다른 의혹을 내놓고 있다.
▲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JTBC 태블릿PC의 진실> 토론회 참석자들이 ‘L’자 패턴 암호를 JTBC 측에서 어떻게 풀 수 있었나 의문을 제기하며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하고 있다. / 정용인 기자
<주간경향>이 이 포렌식 보고서에서 주목한 것은 정작 다른 부분이다.
‘잘 도착했어. 담 주 초에 이 팀하구 빨리해서 시삭해. 내가 얘기한 주묘한 사항 정리해서 빨리해’(오자 등을 포함 원문 그대로 표기, 이하 동일) 이 태블릿PC의 사용자가 2012년 7월 15일 오후 4시 56분에 발송한 것으로 되어 있는 카톡 문자다. 이날 오후 5시에는 ‘일장표 좀 멜로 보내라구 김팀 얘기해줘’, 다시 오후 7시 3분엔 ‘인터넷이 잘안되 거기서 어텋게 해봐’라는 문자를 보낸다. 수신자는 확인되지 않는다. 특검은 이날과 2013년 7월 29일 독일 도착 국제전화 로밍 안내문자, 외교부 영사 콜센터 안내문자와 최순실의 출입국 기록이 일치하는 것 등을 들어 이 태블릿의 주인이 최 씨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봐야 하는 것이 있다. 비록 비문이지만, 위의 메시지, 특히 첫째, 둘째 메시지를 보면 ‘태블릿PC 사용자’가 독일에서 한국의 박근혜 대선 캠프에 모종의 ‘지시’를 내리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10%도 드러나지 않았다’ 기사에서 <주간경향>은 정윤회, 최순실 씨의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출입국 기록을 입수해 단독 보도했다. 10년간 출입국 기록에서의 특징은 두 부부의 해외 출입국 일정 두세 군데를 빼고는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독일 동행한 정윤회의 역할은
<주간경향>이 입수한 출입국 기록에는 2013년은 없다. 그렇다면 2012년은 어떨까. 당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12년 7월 14일에 출국해 29일까지 독일에 머무르다 귀국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역시 두 사람 모두다. 이들 부부가 독일에 2주 남짓 체류하며 무슨 일을 했는지 현재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최순실은 재판에서 태블릿PC의 소유 관계를 부인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저 메시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는 것이 된다. 정윤회는 검찰에도 소환되지 않았고,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선택되지 않았다. 동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남편 정 씨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지휘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정윤회로 본다. 정윤회가 복수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의혹 검증팀을 총괄했던 정두언 전 의원이 JTBC 보도 사흘 뒤 경향신문에 한 발언이다. 정윤회가 비선을 지휘할 때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정윤회가 빠지고 최순실 ‘단독비선’이 되면서 그 사달이 났고, ‘폭로’를 지휘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밀려난 정윤회가 치밀하게 계획해 벌이는 복수전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정 전 의원은 약 한 달 뒤 <주간경향>과 통화에서는 이 ‘복수전 설’을 철회한 바 있다)
정 씨와 최 씨를 추적한 일각에서는 박근혜를 보좌하는 데서 두 사람이 일정한 역할 분담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한복이나 옷차림, 가정 살림 등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것이 최 씨며, 연설문 작성이나 기타 정치행사 등 업무는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정씨가 담당했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2014년 3월 28일 하루 전에 작성된 드레스덴 선언을 ‘교열’한 것은 최씨가 아니라 정 씨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 주장은 다시 앞서 정두언 전 의원이 초기에 주장한 ‘복수전’ 설로 수렴된다. 사실상 조직 장악이나 운영능력이 없는 최 씨에게 자신이 비선 실세였던 당시 작업한 결과물을 ‘스모킹 건’으로 삼아 복수했다는 주장이다.
비선 실세로 한 몸처럼 움직이던 두 사람이 갈라선 것은 두 사람의 이혼 전후로 추정된다. 등기부 등본 등에 따르면 최씨가 자신의 이름을 최서원으로 개명한 것은 2014년 2월 13일이다. 법원에 이혼조정신청을 낸 건 그해 3월이고, 이 조정이 성립된 것은 5월이다. 공교롭게도 독일 드레스덴 선언이 발표된 날은 3월 28일이다. 이혼 전 비선 실세로 정씨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가정한다면 거의 마지막 작품이었을 것이다.
검찰의 ‘2016년 10월 25일 태블릿PC 포렌식 보고서’가 재판에 공개된 것은 올해 9월 19일이다. 2016년 10월 24일, JTBC가 공개한 태블릿PC 안의 문서나 전체 사진은 현재까지 다 공개되지 않았다. 국정농단의 진실 역시 다 드러나지 않았다. 어쩌면 진실의 채 절반도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태블릿PC는 내것” 주장 신혜원씨, 불법선거운동으로 벌금형
“지난해 10월 24일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를 접했을 때부터 저는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공개된 전화번호 목록, 카카오톡, 메일로 다운받았다는 ‘SNS팀 운영방안’ 등의 문서로 볼 때, 제가 속한 대선 SNS팀에서 사용한 태블릿PC로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0월 8일 기자회견에 나선 신혜원 씨의 주장이다. 그는 일부러 뒤늦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지난 9월 19일 공개된 포렌식 보고서 등을 보고 확신이 들어 기자회견에 나서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 씨는 자신이 “서강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강포럼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중 이춘상 보좌관의 요청으로 2012년 10월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서강포럼’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의도적이었을까. 정확한 그녀의 직책은 서강바른포럼 사무국장이었다. <주간경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사조직 서강바른포럼 및 포럼 동서남북의 ‘불법 선거운동’을 취재해 보도했었다.
공판기록 등에 따르면 이른바 ‘V2012 실행계획’에 따라 여의도 에스트레뉴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겨 만들어진 비밀 선거캠프였다. V는 박근혜 후보를 지칭하는 ‘V선배’의 약칭이었다. 에스트레뉴 빌딩에는 이들 비밀캠프 이외에도 빨간 운동화 등 청년조직,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위원장 사무실 등 선거 막판에는 10여 개가 넘는 선거운동용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신씨가 고 이춘상 보좌관의 발탁으로 당시 여의도 대하빌딩 2층에 있던 공식 선본에서 10월부터 일했던 것은 맞다. 고 이 보좌관은 공식·비공식 선거운동조직 지휘 전체를 총괄했고, 상황에 따라 인원을 이리저리로 배치했다.
재판에서는 신 씨가 불법 선거조직에서 비교적 일찍 옮긴 점 등이 참작되어 1심에서 징역 4개월, 상급심에서 벌금 500만 원 형에 처했다.
▲ 10월 8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신혜원씨(가운데)가 “지난해 10월 24일 JTBC가 최순실의 것이라고 공개한 태블릿PC는 자신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유튜브 캡쳐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 씨는 자신이 “서강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강포럼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중 이춘상 보좌관의 요청으로 2012년 10월 박근혜 대선 캠프에 합류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서강포럼’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의도적이었을까. 정확한 그녀의 직책은 서강바른포럼 사무국장이었다. <주간경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사조직 서강바른포럼 및 포럼 동서남북의 ‘불법 선거운동’을 취재해 보도했었다.
공판기록 등에 따르면 이른바 ‘V2012 실행계획’에 따라 여의도 에스트레뉴 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겨 만들어진 비밀 선거캠프였다. V는 박근혜 후보를 지칭하는 ‘V선배’의 약칭이었다. 에스트레뉴 빌딩에는 이들 비밀캠프 이외에도 빨간 운동화 등 청년조직,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위원장 사무실 등 선거 막판에는 10여 개가 넘는 선거운동용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신씨가 고 이춘상 보좌관의 발탁으로 당시 여의도 대하빌딩 2층에 있던 공식 선본에서 10월부터 일했던 것은 맞다. 고 이 보좌관은 공식·비공식 선거운동조직 지휘 전체를 총괄했고, 상황에 따라 인원을 이리저리로 배치했다.
재판에서는 신 씨가 불법 선거조직에서 비교적 일찍 옮긴 점 등이 참작되어 1심에서 징역 4개월, 상급심에서 벌금 500만 원 형에 처했다.
출처 태블릿PC 보도 1년, 그리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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