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당신 ‘뒷조사 파일’이 있다면?
[캠페인] 국민사찰근절운동에 나서자 : 미국 FBI파일 공개청구운동 사례
[오마이뉴스] 글: 곽노현, 편집: 박혜경 | 17.10.22 18:11 | 최종 업데이트 17.10.22 18:11
미국에선 어떤 사람에 대해 진짜 알고 싶으면 그에 대해 FBI가 어떤 정보를 수집해서 뭐라고 적어놨는지 알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실은 FBI파일이 없으면 별거 아닌 사람이라는 뉘앙스마저 감지된다. 미국인에게도 FBI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사찰활동을 벌이는, 기분 찜찜한 국내정보기관이다. 특히 에드가 후버 국장 시절의 FBI는 악명 높았다. 매카시즘의 창궐에 이어 반전운동과 반체제운동, 흑인민권운동이 동시에 휩쓸고 갔던 1960~1970년대의 FBI는 진보진영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찰로 원성이 자자했다.
연방수사기관과 국내정보기관을 겸한 FBI는 엄청난 규모의 개인정보파일을 갖고 있다. 연구에 따라서는 미국인 셋 중 하나 꼴로 정보파일을 운용 중이라고 추정한다. 한 번이라도 체포 당한 사람이나 한 번이라도 채용된 사람(범죄이력조회)은 FBI에 지문이나 사진 기타 개인정보가 남기 때문이다.
FBI가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와 기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미국시민은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과 프라이버시법(Privacy Act)에 따라 개인정보공개를 신청하면 된다. 실제로 많은 미국시민들이 매년 FBI파일 공개를 신청한다. 2016년만 해도 FBI에는 총1만 5202건의 정보공개신청이 들어왔다. 참고로, CIA에도 총2547건의 정보공개신청이 제출됐다.
1970년대에 정보자유법과 프라이버시법이 세계 최초로 제정되자 미국의 진보진영은 이 법을 활용해서 본인과 소속단체에 대한 FBI파일의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보성향 개인과 단체의 '내놔라 내파일' 청구가 줄을 이었다.
대부분 복수의 비공개사유가 적용돼 서류의 대부분이 새까맣게 칠해진 채 극히 일부만 공개됐지만 최소한 관련 파일이 몇 쪽이고 그 중에서 몇 쪽이 지워진 채 공개됐는지 정도는 확인 가능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단체 책상의 서랍이 열려 있었던 배후에, 갑자기 연설, 강연요청이 취소되었던 배후에 FBI가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정보파일에 대해서는 사생활의 비밀보호 때문에 제3자의 신청은 받아주지 않는다. 프라이버시법에 따라 본인만이 공개신청을 할 수 있다. 그 대신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정보공개법에 따라 FBI에 정보공개를 신청할 수 있다.
본인에 대한 FBI파일 공개신청은 몹시 간단하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 있으면 된다. 다만 자기 정보를 달라는 것이므로 본인신분인증서를 제출해서 자기 신분을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공개대상정보는 구체적으로 기재할수록 바람직하다. 공개 여부 및 범위는 원칙적으로 20근무일 안에 결정된다.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온라인으로 알 수 있고 부분공개/비공개결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2016년 FBI는 1만 3758건의 공개신청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완전공개는 530건에 지나지 않았다. 부분공개(부분비공개)가 3722건으로 제일 많았고 전면비공개도 778건에 달했다. 전면비공개비율은 15% 남짓으로 연방기관 평균 8.6%의 2배에 가깝다. 한 단어만 공개해도 부분공개로 분류되기 때문에 부분공개도 비공개나 진배없이 내용이 보잘것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분공개나 비공개 시에는 검토 면수와 공개 면수를 비공개사유와 함께 신청인에게 알려줘야 한다. 검토면수와 공개면수의 차이만큼이 비공개결정이 난 파일의 분량이다. 한 문건의 부분공개 시에는 부분공개 파일의 단어 대비 공개비율을 공개하고 처리실적 통계를 잡을 때도 공개비율 대에 따라 상세통계를 내면 바람직하겠지만 미국의 정보공개통계도 거기까진 가지 못했다.
비공개사유와 상관없이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이유로 신청을 전면 각하하거나 기각한 사례도 몹시 많다. 2016년의 경우 FBI는 '기록 없음'으로 5984건, 부적절한 신청으로 1458건, 신청철회로 101건, 수수료미납으로 621건, 중복신청으로 118건을 종결 처리했다. 정보공개신청결과로 '기록 없음'을 통보받는 것은 내 파일이 FBI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어서 나쁘지 않다.
정보자유법상 3개의 법적용제외사유와 9개의 비공개사유가 인정된다. 법적용제외 대상정보는 첫째, 당해 정보파일의 존부확인조차 법집행절차를 저해할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정보기록이다. 둘째, 형사절차에서 제보자(informant)의 신원이 드러날 우려가 있는 정보기록이다. 셋째, 그 존재 자체가 비밀로 지정돼 있는, 해외정보기관이나 방첩, 국제테러리즘 관련 FBI수사기록이다. 법적용제외사유가 인정되면 관련파일의 총 몇 면을 검토해서 몇 면을 공개하는지, 비공개사유는 어떤 것인지를 신청인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비공개사유는 모두 9개가 정해져 있다. 1호는 외교안보비밀, 2호는 내부인사규정과 실무정보, 3호는 타 법률에 비공개로 정한 사항, 4호는 영업비밀, 5호는 의사결정과정상의 조직내부소통문건, 6호는 개인의 사생활정보, 7호는 법집행기관의 기록정보, 8호는 금융기관규제감독정보, 9호는 지질학적 정보다.
이 중 7호는 하나의 큰 범주 아래 6가지 세부범주가 있다. 7a는 법집행절차 방해우려, 7b는 공정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우려, 7c는 제3자의 개인사생활정보 노출우려, 7d는 비밀원천의 신원노출우려, 7e는 수사기소기법 노출우려, 7f는 개인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 위험우려다. 연방기관 전체로 보면 제일 빈번하게 적용되는 비공개사유는 단연 6호(개인의 사생활정보, 29.90%)와 7c(제3자의 사생활정보, 27.87%), 7e호(수사기소기법, 23.64%)다.
FBI가 부분비공개나 전면비공개 결정을 내린 2016년 비공개사유를 살펴보면 1호 국가안보 관련 358건, 2호 내부인사 관련 117건, 3호 타 법률의 비공개정보 802건, 4호 영업비밀 관련 75건, 5호 조직내부소통 관련 218건, 6호 개인의 사생활정보 3498건, 7a 법집행방해우려 647건, 7b 공정재판 저해우려 13건, 7c 제3자 개인정보 노출우려 3463, 7d 비밀신원노출우려 1536건, 7e 수사기소기법 노출우려 2469건, 7f 개인생명안전 위험우려 51건, 8호 금융기관규제감독 관련 2건이었다.
사생활정보 관련과 7호 법집행관련 비공개, 그것도 7c(제3자개인정보), 7e(수사기소기법), 7d(비밀소스신원)사유 순으로 많았다. 1호 국가안보 관련 비공개사유가 많지 않은 건 그만큼 국가안보와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정보가 많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미국의 해외정보기관, CIA의 2016년 정보공개신청 처리실적(총 2208건)도 살펴 보면, 완전공개 247건, 부분공개/부분비공개 218건, 완전비공개 983건, 기록 없음 63건, 신청내용미상 178건, 부적절신청 392건 등이다.
CIA의 정보비공개사유는 3호 타 법률의 비공개사항이 1201건으로 제일 많고, 1호 국가외교안보비밀이 1142건으로 그 다음이다. 다음으로는 6호 개인사생활정보 59건, 5호 조직내부소통 관련 25건, 7c 제3자 개인정보 5건 순이었다. 여기서 타 법률이라 함은 대통령기록보호법, 군사기밀보호법일 가능성이 높다.
FBI는 1998년 1월부터 비밀 해제된 정보파일을 조금씩 인터넷에 올려 왔다. 현재 FBI는 Vault라 불리는 온라인정보공개도서관에 미국인들이 자주 공개신청을 하고 궁금증을 피력하는 유명 인사나 단체에 대한 6700개 정보파일을 공개 중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FBI가 온라인자료로 올렸다 슬그머니 내린 파일도 37개나 있다. 5천 쪽에 달한 월남전 포로 및 실종군인보고파일, 1942년부터 1958년까지 공산주의자의 할리우드 영화계 침투보고파일(2천 쪽), 넬슨 록펠러에 대한 1600쪽 정보파일, 작가 윌리엄 포크너, 조지 오웰, 토마스 만 정보파일 등이 사라졌다. 뉴욕주지사와 미국부통령까지 지낸 록펠러의 경우 대통령적합성에 대한 정보조사가 두 번 실시됐고 그밖에는 그에게 가해진 갖가지 위협 관련 정보 보고였다.
부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FBI는 급진적 인권변호사로 마틴 루터 킹 목사만큼이나 유명했던 윌리엄 쿤슬러에 대해 20년 넘게 전화를 도청하고 우편물을 뜯어보며 가옥을 감시했다. FBI가 그의 모든 연설과 강연을 녹음, 보관해 온 사실이 드러나서 사후에 영화를 만들던 가족들이 FBI가 고맙더라고 농반진반으로 인사할 정도였다.
지금도 구글 검색을 하면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파일, 가수 존 레논 파일, 소련의 망명작가 솔제니친 파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이클 잭슨도 10년 넘게 FBI의 사찰을 받았고 영화배우 헨리 포드도 376쪽의 7개 파일을 남겼다. 피카소에 대해서도 188쪽의 FBI파일이 남아 있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많은 전기 작가들이 정보자유법을 이용해서 이미 사망한 과거 유명인사들의 FBI파일을 공개하라고 신청한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스> 부고란에 소개되는 인물에 대해서 빠짐없이 정보공개청구권을 행사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부고란에 실릴 만한 인물이면 대단한 인물이라 좋은 착안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정보자유법-망자(FOIA, the Dead) 프로젝트를 2015년 11월부터 진행해온 파커 히긴스는 앞으로도 계속할 뜻이 확고하다. 책을 쓰면 흥미진진할, 새로 밝혀지는 사실이 많다는 것이다. 국가안보나 반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명인사에 대해서도 FBI파일이 공개되는 걸 보면, FBI도 불법사찰의 오지랖이 굉장히 넓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IT활동가이기도 한 히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타임스> 부고기사가 난 망인에 대해 FBI파일 공개신청을 자동화하는 봇을 만들었다. 하지만 FBI가 어떤 기관인가. 금년 3월 규정을 바꿔서 봇에 의한 자동신청을 금지하고 히긴스를 상습신청인 명단에 올려놓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히긴스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FBI에 본인파일 공개를 신청해서 확인했다!
FBI기록은 당연히 FBI의 관심을 끈 사찰대상인물의 행적과 성격을 FBI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평가한다. FBI사찰기록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서 공공기록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FBI기록이 반드시 정확할 리는 없다. 전기 작가들이나 언론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이다. FBI가 어떤 인물을 이러저러하게 평가했다는 것은 기록을 보면 확인 가능한 '사실'이지만 그 사람에 대한 진실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언론보도를 타면 FBI가 채색한 이미지가 '아니 땐 굴뚝의 연기'로 바뀐다. FBI의 부정적 묘사와 일방적 평가가 불가피하게 논쟁의 한 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국정원 정보파일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가 적용된다. 지난 10월 25일에 발표된 'MB국정원의 비판세력 제압활동' 문건에는 여야정치인과 교수 20명에 대한 국정원정보보고의 인물평이 나온다. 한결같이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된 일방적인 평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가가 본인의 반론기회도 없이 언론매체에 무차별 보도됐다. 당사자들로서는 불법사찰피해에 이어 2차 인권피해까지 입은 셈이다. 파일내용 보도에 기자와 작가가 신중과 균형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국가안보와 무관한 불법사찰파일의 삭제와 폐기를 불법청산과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미국의 국내정보기관 FBI에 해당하는 국내기관은 국정원(국내파트)이다. 불행하게도 국정원은 선거개입, 정치공작, 댓글사건, 블랙리스트, 간첩조작 등 불법업무 수행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그동안에는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국정원장 사퇴나 실무자 꼬리 자르기로 끝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 결과 못된 악습을 끊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정원장을 위시한 고위간부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는 불법사찰을 되풀이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엄격한 형사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국정원 같은 비밀조직에 대해서는 일단 불법비리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본보기로 처벌해야 그나마 법치기강이 선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는 물론 노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학계, (벤처)기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왔다. 정권안보를 위해 대통령과 정권에 위협적인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MB국정원은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바로 불법사찰을 개시하고 심리전을 전개했다. 각계각층의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들과 시민활동가들이 국정원의 불법사찰대상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국정원이 갖고 있는 사찰파일을 내놓으라고 법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다. 그런 취지의 사회운동도 없었다.
'열려라 국정원, 내놔라 내 파일' 캠페인은 이런 권리구제와 사회운동의 공백을 겨냥해서 출범한다.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우리 국민은 누구든지 본인에 대한 국정원 정보파일의 존부확인과 공개신청, 수정과 삭제, 폐기신청을 할 수 있다. 국정원을 상대로 진행할 '내놔라 내파일 캠페인'은 민주화와 인권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알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해서, 정권안보목적으로 자행된 불법사찰 사실을 최대한 확인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불법사찰파일의 삭제와 폐기는 물론 확인된 불법사찰에 대한 국가손해배상을 청구함으로써 불법사찰과 인권침해, 부당정치개입의 오랜 국정원 적폐를 청산하고 국정원 개혁에 시민동력을 보태고자 한다. 불법사찰대상이 되었다고 의심하는 능동적인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적극적 동참을 촉구한다.
출처 국정원에 당신 '뒷조사 파일'이 있다면?
[캠페인] 국민사찰근절운동에 나서자 : 미국 FBI파일 공개청구운동 사례
[오마이뉴스] 글: 곽노현, 편집: 박혜경 | 17.10.22 18:11 | 최종 업데이트 17.10.22 18:11
▲ 국정원은 지금까지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는 물론 노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학계, (벤처)기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왔다. ⓒ sxc
미국에선 어떤 사람에 대해 진짜 알고 싶으면 그에 대해 FBI가 어떤 정보를 수집해서 뭐라고 적어놨는지 알아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실은 FBI파일이 없으면 별거 아닌 사람이라는 뉘앙스마저 감지된다. 미국인에게도 FBI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사찰활동을 벌이는, 기분 찜찜한 국내정보기관이다. 특히 에드가 후버 국장 시절의 FBI는 악명 높았다. 매카시즘의 창궐에 이어 반전운동과 반체제운동, 흑인민권운동이 동시에 휩쓸고 갔던 1960~1970년대의 FBI는 진보진영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찰로 원성이 자자했다.
미국인들의 ‘내놔라 FBI파일’ 정보공개청구
연방수사기관과 국내정보기관을 겸한 FBI는 엄청난 규모의 개인정보파일을 갖고 있다. 연구에 따라서는 미국인 셋 중 하나 꼴로 정보파일을 운용 중이라고 추정한다. 한 번이라도 체포 당한 사람이나 한 번이라도 채용된 사람(범죄이력조회)은 FBI에 지문이나 사진 기타 개인정보가 남기 때문이다.
FBI가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와 기록을 갖고 있는지 궁금한 미국시민은 정보자유법(Freedom of Information Act)과 프라이버시법(Privacy Act)에 따라 개인정보공개를 신청하면 된다. 실제로 많은 미국시민들이 매년 FBI파일 공개를 신청한다. 2016년만 해도 FBI에는 총1만 5202건의 정보공개신청이 들어왔다. 참고로, CIA에도 총2547건의 정보공개신청이 제출됐다.
1970년대에 정보자유법과 프라이버시법이 세계 최초로 제정되자 미국의 진보진영은 이 법을 활용해서 본인과 소속단체에 대한 FBI파일의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보성향 개인과 단체의 '내놔라 내파일' 청구가 줄을 이었다.
대부분 복수의 비공개사유가 적용돼 서류의 대부분이 새까맣게 칠해진 채 극히 일부만 공개됐지만 최소한 관련 파일이 몇 쪽이고 그 중에서 몇 쪽이 지워진 채 공개됐는지 정도는 확인 가능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단체 책상의 서랍이 열려 있었던 배후에, 갑자기 연설, 강연요청이 취소되었던 배후에 FBI가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정보파일에 대해서는 사생활의 비밀보호 때문에 제3자의 신청은 받아주지 않는다. 프라이버시법에 따라 본인만이 공개신청을 할 수 있다. 그 대신 사망한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정보공개법에 따라 FBI에 정보공개를 신청할 수 있다.
본인에 대한 FBI파일 공개신청은 몹시 간단하다.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만 있으면 된다. 다만 자기 정보를 달라는 것이므로 본인신분인증서를 제출해서 자기 신분을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 공개대상정보는 구체적으로 기재할수록 바람직하다. 공개 여부 및 범위는 원칙적으로 20근무일 안에 결정된다. 진행상황에 대해서는 온라인으로 알 수 있고 부분공개/비공개결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FBI에 대한 ‘내놔라 내파일’ 처리내역
2016년 FBI는 1만 3758건의 공개신청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완전공개는 530건에 지나지 않았다. 부분공개(부분비공개)가 3722건으로 제일 많았고 전면비공개도 778건에 달했다. 전면비공개비율은 15% 남짓으로 연방기관 평균 8.6%의 2배에 가깝다. 한 단어만 공개해도 부분공개로 분류되기 때문에 부분공개도 비공개나 진배없이 내용이 보잘것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분공개나 비공개 시에는 검토 면수와 공개 면수를 비공개사유와 함께 신청인에게 알려줘야 한다. 검토면수와 공개면수의 차이만큼이 비공개결정이 난 파일의 분량이다. 한 문건의 부분공개 시에는 부분공개 파일의 단어 대비 공개비율을 공개하고 처리실적 통계를 잡을 때도 공개비율 대에 따라 상세통계를 내면 바람직하겠지만 미국의 정보공개통계도 거기까진 가지 못했다.
비공개사유와 상관없이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이유로 신청을 전면 각하하거나 기각한 사례도 몹시 많다. 2016년의 경우 FBI는 '기록 없음'으로 5984건, 부적절한 신청으로 1458건, 신청철회로 101건, 수수료미납으로 621건, 중복신청으로 118건을 종결 처리했다. 정보공개신청결과로 '기록 없음'을 통보받는 것은 내 파일이 FBI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어서 나쁘지 않다.
미국의 정보자유법제외사유와 비공개사유
정보자유법상 3개의 법적용제외사유와 9개의 비공개사유가 인정된다. 법적용제외 대상정보는 첫째, 당해 정보파일의 존부확인조차 법집행절차를 저해할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정보기록이다. 둘째, 형사절차에서 제보자(informant)의 신원이 드러날 우려가 있는 정보기록이다. 셋째, 그 존재 자체가 비밀로 지정돼 있는, 해외정보기관이나 방첩, 국제테러리즘 관련 FBI수사기록이다. 법적용제외사유가 인정되면 관련파일의 총 몇 면을 검토해서 몇 면을 공개하는지, 비공개사유는 어떤 것인지를 신청인에게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
비공개사유는 모두 9개가 정해져 있다. 1호는 외교안보비밀, 2호는 내부인사규정과 실무정보, 3호는 타 법률에 비공개로 정한 사항, 4호는 영업비밀, 5호는 의사결정과정상의 조직내부소통문건, 6호는 개인의 사생활정보, 7호는 법집행기관의 기록정보, 8호는 금융기관규제감독정보, 9호는 지질학적 정보다.
이 중 7호는 하나의 큰 범주 아래 6가지 세부범주가 있다. 7a는 법집행절차 방해우려, 7b는 공정재판을 받을 권리 침해우려, 7c는 제3자의 개인사생활정보 노출우려, 7d는 비밀원천의 신원노출우려, 7e는 수사기소기법 노출우려, 7f는 개인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 위험우려다. 연방기관 전체로 보면 제일 빈번하게 적용되는 비공개사유는 단연 6호(개인의 사생활정보, 29.90%)와 7c(제3자의 사생활정보, 27.87%), 7e호(수사기소기법, 23.64%)다.
FBI의 비공개사유는?
FBI가 부분비공개나 전면비공개 결정을 내린 2016년 비공개사유를 살펴보면 1호 국가안보 관련 358건, 2호 내부인사 관련 117건, 3호 타 법률의 비공개정보 802건, 4호 영업비밀 관련 75건, 5호 조직내부소통 관련 218건, 6호 개인의 사생활정보 3498건, 7a 법집행방해우려 647건, 7b 공정재판 저해우려 13건, 7c 제3자 개인정보 노출우려 3463, 7d 비밀신원노출우려 1536건, 7e 수사기소기법 노출우려 2469건, 7f 개인생명안전 위험우려 51건, 8호 금융기관규제감독 관련 2건이었다.
사생활정보 관련과 7호 법집행관련 비공개, 그것도 7c(제3자개인정보), 7e(수사기소기법), 7d(비밀소스신원)사유 순으로 많았다. 1호 국가안보 관련 비공개사유가 많지 않은 건 그만큼 국가안보와 직접적으로는 무관한 정보가 많다는 반증으로도 볼 수 있다.
얘기가 나온 김에 미국의 해외정보기관, CIA의 2016년 정보공개신청 처리실적(총 2208건)도 살펴 보면, 완전공개 247건, 부분공개/부분비공개 218건, 완전비공개 983건, 기록 없음 63건, 신청내용미상 178건, 부적절신청 392건 등이다.
CIA의 정보비공개사유는 3호 타 법률의 비공개사항이 1201건으로 제일 많고, 1호 국가외교안보비밀이 1142건으로 그 다음이다. 다음으로는 6호 개인사생활정보 59건, 5호 조직내부소통 관련 25건, 7c 제3자 개인정보 5건 순이었다. 여기서 타 법률이라 함은 대통령기록보호법, 군사기밀보호법일 가능성이 높다.
유명인사의 이면이 궁금하면 FBI공개파일을 보라
FBI는 1998년 1월부터 비밀 해제된 정보파일을 조금씩 인터넷에 올려 왔다. 현재 FBI는 Vault라 불리는 온라인정보공개도서관에 미국인들이 자주 공개신청을 하고 궁금증을 피력하는 유명 인사나 단체에 대한 6700개 정보파일을 공개 중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FBI가 온라인자료로 올렸다 슬그머니 내린 파일도 37개나 있다. 5천 쪽에 달한 월남전 포로 및 실종군인보고파일, 1942년부터 1958년까지 공산주의자의 할리우드 영화계 침투보고파일(2천 쪽), 넬슨 록펠러에 대한 1600쪽 정보파일, 작가 윌리엄 포크너, 조지 오웰, 토마스 만 정보파일 등이 사라졌다. 뉴욕주지사와 미국부통령까지 지낸 록펠러의 경우 대통령적합성에 대한 정보조사가 두 번 실시됐고 그밖에는 그에게 가해진 갖가지 위협 관련 정보 보고였다.
부분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FBI는 급진적 인권변호사로 마틴 루터 킹 목사만큼이나 유명했던 윌리엄 쿤슬러에 대해 20년 넘게 전화를 도청하고 우편물을 뜯어보며 가옥을 감시했다. FBI가 그의 모든 연설과 강연을 녹음, 보관해 온 사실이 드러나서 사후에 영화를 만들던 가족들이 FBI가 고맙더라고 농반진반으로 인사할 정도였다.
지금도 구글 검색을 하면 전설적인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파일, 가수 존 레논 파일, 소련의 망명작가 솔제니친 파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이클 잭슨도 10년 넘게 FBI의 사찰을 받았고 영화배우 헨리 포드도 376쪽의 7개 파일을 남겼다. 피카소에 대해서도 188쪽의 FBI파일이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 부고기사 인물을 무조건 공개 청구하기도
지금도 미국에서는 많은 전기 작가들이 정보자유법을 이용해서 이미 사망한 과거 유명인사들의 FBI파일을 공개하라고 신청한다. 최근에는 <뉴욕타임스> 부고란에 소개되는 인물에 대해서 빠짐없이 정보공개청구권을 행사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뉴욕타임스> 부고란에 실릴 만한 인물이면 대단한 인물이라 좋은 착안이 아닐 수 없다.
이른바 '정보자유법-망자(FOIA, the Dead) 프로젝트를 2015년 11월부터 진행해온 파커 히긴스는 앞으로도 계속할 뜻이 확고하다. 책을 쓰면 흥미진진할, 새로 밝혀지는 사실이 많다는 것이다. 국가안보나 반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명인사에 대해서도 FBI파일이 공개되는 걸 보면, FBI도 불법사찰의 오지랖이 굉장히 넓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IT활동가이기도 한 히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타임스> 부고기사가 난 망인에 대해 FBI파일 공개신청을 자동화하는 봇을 만들었다. 하지만 FBI가 어떤 기관인가. 금년 3월 규정을 바꿔서 봇에 의한 자동신청을 금지하고 히긴스를 상습신청인 명단에 올려놓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히긴스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FBI에 본인파일 공개를 신청해서 확인했다!
정보기관 파일내용을 언론이 앵무새처럼 옮기면 곤란하다
FBI기록은 당연히 FBI의 관심을 끈 사찰대상인물의 행적과 성격을 FBI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평가한다. FBI사찰기록은 사람이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서 공공기록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FBI기록이 반드시 정확할 리는 없다. 전기 작가들이나 언론이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이다. FBI가 어떤 인물을 이러저러하게 평가했다는 것은 기록을 보면 확인 가능한 '사실'이지만 그 사람에 대한 진실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언론보도를 타면 FBI가 채색한 이미지가 '아니 땐 굴뚝의 연기'로 바뀐다. FBI의 부정적 묘사와 일방적 평가가 불가피하게 논쟁의 한 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국정원 정보파일에 대해서도 똑같은 얘기가 적용된다. 지난 10월 25일에 발표된 'MB국정원의 비판세력 제압활동' 문건에는 여야정치인과 교수 20명에 대한 국정원정보보고의 인물평이 나온다. 한결같이 부정적 이미지로 덧칠된 일방적인 평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평가가 본인의 반론기회도 없이 언론매체에 무차별 보도됐다. 당사자들로서는 불법사찰피해에 이어 2차 인권피해까지 입은 셈이다. 파일내용 보도에 기자와 작가가 신중과 균형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국가안보와 무관한 불법사찰파일의 삭제와 폐기를 불법청산과 인권보장의 관점에서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열어라 국정원,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이 출범한다
▲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 기자회견 예고 ⓒ 내놔라내파일시민행동
미국의 국내정보기관 FBI에 해당하는 국내기관은 국정원(국내파트)이다. 불행하게도 국정원은 선거개입, 정치공작, 댓글사건, 블랙리스트, 간첩조작 등 불법업무 수행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그동안에는 아무리 불법을 저질러도 국정원장 사퇴나 실무자 꼬리 자르기로 끝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게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했다. 그 결과 못된 악습을 끊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정원장을 위시한 고위간부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시는 불법사찰을 되풀이할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엄격한 형사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국정원 같은 비밀조직에 대해서는 일단 불법비리가 드러나면 가차없이 본보기로 처벌해야 그나마 법치기강이 선다.
국정원은 지금까지 정치권과 재계, 언론계는 물론 노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학계, (벤처)기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갖가지 정보를 수집해 왔다. 정권안보를 위해 대통령과 정권에 위협적인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MB국정원은 여야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면 바로 불법사찰을 개시하고 심리전을 전개했다. 각계각층의 수많은 오피니언 리더들과 시민활동가들이 국정원의 불법사찰대상이 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국정원이 갖고 있는 사찰파일을 내놓으라고 법적으로 요구하진 않았다. 그런 취지의 사회운동도 없었다.
'열려라 국정원, 내놔라 내 파일' 캠페인은 이런 권리구제와 사회운동의 공백을 겨냥해서 출범한다.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우리 국민은 누구든지 본인에 대한 국정원 정보파일의 존부확인과 공개신청, 수정과 삭제, 폐기신청을 할 수 있다. 국정원을 상대로 진행할 '내놔라 내파일 캠페인'은 민주화와 인권투쟁의 결과로 쟁취한 알권리와 정보인권을 행사해서, 정권안보목적으로 자행된 불법사찰 사실을 최대한 확인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불법사찰파일의 삭제와 폐기는 물론 확인된 불법사찰에 대한 국가손해배상을 청구함으로써 불법사찰과 인권침해, 부당정치개입의 오랜 국정원 적폐를 청산하고 국정원 개혁에 시민동력을 보태고자 한다. 불법사찰대상이 되었다고 의심하는 능동적인 시민들과 활동가들의 적극적 동참을 촉구한다.
출처 국정원에 당신 '뒷조사 파일'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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