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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삼성 협력사들은 왜 ‘이재용 석방’을 탄원했을까?

삼성 협력사들은 왜 ‘이재용 석방’을 탄원했을까?
갑과 을의 잔인한 관계
[민중의소리] 이완배 기자 | 발행 : 2017-12-05 04:50:59 | 수정 : 2017-12-05 04:50:59


‘협성회’라는 조직이 있다.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협력사들의 협의회다. 이 협성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석방을 위한 탄원서 제출을 결정한 모양이다. 지난달부터 각 회원사별로 서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삼성 협력사들의 ‘이재용 구하기’ 작업 중 압권은 협성회가 “탄원서 서명은 강제사항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는 대목이다. 설혹 정말로 강제가 아니고 자율이었다 해도 삼성 협력사 중 그 서명에 동참하지 않는 간 큰 회사는 단 한 곳도 나올 수 없다는 건 상식이다.

이들이 생존권은 그야말로 삼성전자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탄원서의 절박함을 충분히 짐작한다.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건 이재용의 석방이 아니라 탄원서에 자신들의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벌과 하청업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슬픈 갑을관계의 현실이다.


한 협성회 회원사가 당했던 수모와 눈물

협성회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일화가 있다. 지난해 5월 <뉴스타파>에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자. 2014년 9월 협성회가 회의를 열었다. 이곳에서 협성회 회장단은 “삼성이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200억을 지원해 달라고 우리에게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단 여기서부터 이상하다. 삼성전자는 매출 240조 원에 영업이익 54조를 버는 회사다. 그런 삼성전자가 협력업체에게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게 정상인가? 협력업체들이 삼성전자에게 “우리가 어려우니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정상 아닌가?

▲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재용이 서울 서초구 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200억 원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은 당연히 납품 단가를 후려치겠다는 통보였다. 당연히 협성회원들은 난리가 났고, 모임은 삼성 성토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회의 장소에 삼성전자 임원이 들어서자 협성회원들은 모두 입을 닫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고 한다.

협성회에는 27년 동안 삼성에 납품을 해 온 태정산업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당시 이 회사는 법정관리 상태로 큰 위기에 빠졌다. 이 회사 권광남 회장은 도저히 납품 단가를 더 내릴 수 없었기에 삼성전자 상무한테 문자를 보냈다. 다음이 그 문자 내용이다.

“태정산업 권광남입니다. 직접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옳으나 이렇게 글월로 올리는 것 이해바랍니다. 저는 올해 법정관리에 들어가 이제 인가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법원판사님께 통제를 받다보니 삼성의 협조사항에 대책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상무님 올해는 제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거의 없습니다. 우선 회생인가를 받고 내년에는 삼성의 도움이 되는 협력업체로 거듭 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스런 마음 그지없습니다. 너그럽게 용서 바랍니다.”

이 절절한 문자에는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삼성의 임원은 이 문자를 씹었다. 이듬해인 2015년 태정산업은 협성회에서 제명됐다. 태정산업이 삼성전자에 납품하던 물량은 전년대비 65% 수준으로 폭락했다.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이런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이라고 불러야 마땅한가, 동네 양아치라고 불러야 마땅한가? 이런 행태가 깡패들이 구역 관리하면서 관리비 안 내는 포장마차 주인을 두들겨 패고 쫓아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악랄한 갑을관계는 경제를 좀먹는다

그런 협성회가 이번에 탄원서를 내면서 “절대로 강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제가 아니면 자율이라는 이야기인데 그 말을 누가 믿겠나? 탄원서에 서명을 안 하면 그 업체가 내년에 겪을 처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삼성은 그걸 자율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일반적으로는 그것을 강요, 혹은 깡패짓이라고 부른다.

이 문제가 정말 슬픈 이유는 협력업체들의 처지가 안타깝기 때문만은 아니다. 재벌과 협력업체의 이런 잔인한 갑을관계는 한국 경제를 좀먹는다.

2009년 ‘홀드업(hold up)’ 현상에 대한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올리버 윌리엄슨(Oliver Williamson)은 기업 간 발생하는 종속 문제를 통렬히 짚어낸 학자다. 홀드업은 우리말로 하면 “꼼짝 마!” 혹은 “손들어!” 쯤 되는 표현이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을 때 적극적인 쪽이 더 불리해져서 상대방에게 인질로 붙잡히는 상황을 뜻한다. 재벌과 협력업체의 관계가 그렇다. 협력업체가 재벌들에게 너무 종속돼 꼼짝도 못하는 인질이 된 상황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청년 로버트는 린다라는 여성을 사랑했다. 로버트가 린다를 따라다니며 “내 사랑을 받아주세요”라고 청했더니 린다는 “나를 사랑한다면 삭발을 하고 머리에 ‘린다만을 사랑해’라는 문신을 새겨주세요”라고 요청했다. 로버트는 린다를 너무 사랑했기에 이 무리한 요청을 기꺼이 들어줬다.

홀드업 상황은 여기서 시작된다. 린다는 자신을 위해 삭발도 하고 문신도 새긴 로버트에게 보다 살가워졌을까?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슨의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로버트는 린다만을 위한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다. 문제는 이 투자가 오로지 린다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삭발을 하고 머리에 ‘린다만을 사랑해’라고 새긴 이 투자는 린다 외에 세상 그 어떤 여성도 감동시키지 못한다.

이렇게 린다만을 위한 투자를 마치면 린다는 로버트와의 관계에서 압도적 ‘갑’의 위치에 오른다. 린다가 아무리 로버트를 학대해도 로버트는 다른 여자를 선택할 수 없다. 세상에 머리에 문신으로 ‘린다만을 사랑해’라고 새긴 남자를 사랑할 여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로버트가 린다 외에 어떤 여자도 못 만날 지경이 되자 린다는 그때부터 로버트를 훨씬 더 막 대했다. 이것이 바로 윌리엄슨이 말하는 “꼼짝 마” 상태, 즉 홀드업 상태다.

우리나라 재벌과 협력사의 관계가 이렇다. 삼성전자 협력사들은 오로지 삼성전자에만 납품을 한다. 생산라인 자체가 삼성이 요구하는 대로 짜여 있다. 삼성에 납품하다가 수가 틀려서 LG에 납품하는 이런 일은 절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면 수십억 원을 들여 생산 라인 자체를 LG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협력사들이 생산라인을 삼성 입맛에 맞추는 순간, 이들은 절대 삼성을 벗어날 수 없다. 삼성이 어떤 요구를 해도 협력사들은 다 받아들여야 한다. 로버트가 린다에 종속된 상황이 재연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원가 9000원에 제품을 만들어서 1만 원에 납품을 하던 협력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가 기술 혁신을 통해 원가를 5000원으로 낮췄다. 이러면 협력사의 이익은 1000원에서 5000원으로 늘어날까? 이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귀신같이 사실을 알아낸 재벌은 재깍 협력사에게 다가와 “원가 줄였다면서? 납품 단가도 6000원으로 줄여야지?”라고 강요한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이미 홀드업 상태에 놓인 협력사에게는 대안이 없다. 시키는 대로 납품 단가를 낮추고 기술혁신의 과실을 고스란히 재벌에게 이전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어떤 협력사들이 기술 혁신에 나서겠나? 혁신으로 벌어들이는 이익을 재벌이 족족 채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당연히 협력사들은 기술 혁신보다 재벌과의 유착에 더 집중한다. 갑을 관계가 한국 경제의 창의성과 효율성을 좀 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해는 노동자에게 돌아온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삼성이 협력사들에게 ‘도움’을 구걸해 5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남기는 동안 1차, 2차, 3차 협력사들은 등골이 휜다. 등골이 휘니 당연히 노동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노동자들의 안전도 경시한다.

지난해 초 인천에 있는 한 핸드폰 부품 가공업체에서 28세의 청년 노동자가 안전장비도 없이 메틸알코올을 다루다가 시력을 잃었다. 꽃다운 나이에 시력을 잃은 청년 노동자의 직장은 삼성전자의 3차 협력사였다.

그로부터 한 달 전 삼성전자에 휴대폰 부품을 납품하던 부천의 한 협력업체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다. 20대 파견노동자 4명이 메틸알코올에 중독돼서 3명이 실명 위기에 빠진 것이다. <민중의소리> 취재 결과 당시 노동자들에게는 보안경, 보호장갑, 방진마스크 등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삼성은 위험을 외주화했다. 삼성에 ‘홀드업’ 된 협력사들은 그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았다. 그리고 협력사들은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실명을 당한 20대 노동자들은 하루에 12시간 씩 일했고, 작업량이 많을 때는 한 달에 하루밖에 쉬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게 다 3차 협력업체의 책임인가? 홀드업을 이용해 협력업체들에게 위험을 떠맡기고 도의적 책무마저 회피하는 않은 삼성의 책임은 아닌가?

협성회가 이재용 석방을 탄원했다는 소식,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 어처구니없는 쇼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재벌과 협력사들의 압도적 갑을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런 심각한 경제적 비효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재용에 대한 2심 재판 결과가 중요하다. 상식이 있다면 협성회의 탄원서는 진심이 아니라 인질극의 결과라는 사실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이 때문에라도 이재용에 대한 단죄를 더 강화해서 재벌들의 갑질에 준엄한 경고를 내려야 한다.

이재용의 재판은 단지 개인에 대한 단죄가 아니다. 그 재판은 재벌들의 갑질 문화에 대한 준엄한 경고여야 하고, 한국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소중한 첫걸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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