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는 회사 영업비밀”…삼성 위해 발벗고 뛴 노동부
2013년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
‘위험의 외주화’가 빚은 참사
삼성, “공장 밖 유출 없었다” 주장
CCTV 영상 공개돼 ‘거짓’ 드러나
노동부, 특별감독 후 ‘보고서’ 작성
법원 제출명령에 삼성·정부 ‘모르쇠’
보고서 정보공개청구 소송 나서자
“삼성 이미지 저하”…정부가 ‘방패막이’
[한겨레] 임자운 | 등록 : 2018-01-06 10:09 | 수정 : 2018-01-06 14:19
이번 소송기 연재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삼성 직업병 문제에 관한 ‘정부의 책임’이다. 많은 피해자가 삼성만큼이나, 때로는 삼성보다 더, 정부를 원망한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그들의 분노와 원망이 절대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노동부가 2013년 삼성반도체 공장에 대해 작성한 ‘특별감독 보고서’와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라는 것이 있다. 정부가 처음으로 삼성반도체 공장의 관리 실태 전반을 점검한 결과인데, 그 공장에서 직업병 피해를 본 노동자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정부가 이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법원 판결을 통해 보고서들이 공개됐는데,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먼저 이 보고서들이 작성된 경위부터 살펴보자.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누출 사고가 발생해 만 34살 노동자가 사망하고 동료들이 상해를 입었다. 불산 공급 탱크 배관에 생긴 작은 균열이 사고의 최초 원인이었지만, 안전보건공단 보고서는 “공정이 가동되는 상태에서 밸브 보수가 실시된 점”을 더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불산이 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라인에 불산 공급을 계속하려다 피해가 커졌다는 얘기다. 보수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공정을 중단시켜야 했지만, 현장에 있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적절한 보호장구도 갖추지 못했고 그렇다고 현장을 떠나기도 어려웠다. 위험에 가장 가까이 있던 노동자들이 정작 그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어, 결국 사상자가 되었다. 가장 힘없는 노동자가 가장 큰 위험에 처하고 마는 ‘위험의 외주화’가 빚은 참변이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삼성전자는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삼성은 맹독성 화학물질이 누출된 사고를 계속 외부에 알리지 않다가, 노동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노동부에 신고했다. 대기 중 불산 노출을 우려하는 주민들에게, 삼성은 “불산 가스가 공장 밖으로 유출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했지만, 대형 송풍기를 이용해 불산 가스를 공장 밖으로 빼내는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경기도의회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리자 삼성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조사단의 현장 접근과 시료 채취를 거부하는가 하면, 조사단이 요구한 자료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조사를 거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국회의원과 함께 사고 현장을 방문한 외부 전문가가 불산 누출량을 추정하기 위해 주변 나뭇잎을 채취하자, 삼성 측은 “사유물 절취”를 주장하며 나뭇잎을 빼앗기도 했다.
보다 못한 고용노동부가 후속 조치에 나섰다. 먼저 사고가 발생한 화성공장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해 무려 200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해냈다. 노동부는 “총체적인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하며, 삼성전자의 모든 반도체 공장에 대한 ‘진단 명령’을 실시했다. 그에 따라 안전보건공단, 대한산업보건협회 등이 삼성전자 기흥, 온양, 화성, 탕정 공장에 들어가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진단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나는 삼성 직업병 관련 소송들을 대리하던 중 이 보고서들의 존재를 알게 됐고, 곧바로 모든 소송에서 이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했다. 만일 보고서를 통해 공장 내 화학물질 관리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면, 이는 곧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도 증거조사 필요성을 인정해 삼성전자,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등에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때부터 삼성과 정부가 벌이는 ‘막장 은폐 활극’이 벌어졌다.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은 일제히 보고서 제출을 거부했다. 주된 이유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법원에 좀 더 강제성 있는 증거조사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법원은 고용노동부에 보고서 제출을 ‘명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더 놀라운 태도를 보였다. 법원이 보고서 제출을 ‘요청’(문서송부촉탁)할 때는 “삼성의 영업비밀” 운운하며 직접 제출을 거부하더니, 법원이 보고서 제출을 ‘명령’(문서제출명령)하자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가 제출 여부와 범위를 판단할 사안”이라며 책임 회피에 나선 것이다.
2014년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삼성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법원은 총 14번에 걸쳐 이 보고서의 제출을 요청했지만, 이 가운데 13차례나 삼성과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딱 한 번 ‘아산공장 진단 보고서’가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의해 제출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중요 내용이 전부 감추어진 반쪽짜리 보고서였다. 당시 천안지청은 “삼성의 의견을 들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가리고 제출한다”고 했다. 그렇게 감추어진 내용은 사업장 내 ‘재해 발생’, ‘안전검사 실시’, ‘작업환경 측정’, ‘근로자 건강관리’, ‘보호구 지급 및 착용 상태’의 현황과 문제점 등으로, 상식적으로 영업비밀이 될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삼성은 그저 감추고픈 모든 정보에 대해 “영업비밀” 딱지를 붙였고, 고용노동부는 그 정보들을 모두 은폐하고 있었다.
그렇게 법원에 제출된 ‘아산공장 진단 보고서’는 심지어 그 내용이 삼성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법원이 천안지청에 보고서 제출을 요청하자, 천안지청은 삼성으로 하여금 ‘보고서에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을 직접 삭제해 달라’고 했는데, 이때 삼성은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고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종의 피감기관이었던 삼성이 그 감독 결과를 직접 수정한 셈이다. 천안지청은 그렇게 조작된 보고서를 법원은 물론 국회에까지 제출했다. 2016년 국정감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참여연대는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고용노동부 장관을 문서변조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보고서를 직접 수정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실무자의 착오”일 뿐이었다며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혹은 삼성을 상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자가 직업병 관련 소송(산재소송)에서 이기려면 스스로 직업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그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회사와 정부에 의해 은폐될 때, 그 자료의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렵사리 법원으로부터 문서제출명령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들도 산재소송 절차를 통해서는 끝내 확보할 수 없었다. 보고서 공개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따로 제기해야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역시 피할 수는 없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 도움을 청하자, 서선영·김동현 변호사가 흔쾌히 나서주었다. 서울대 로스쿨 내 소모임인 ‘산소통’(산업재해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학생들의 모임) 학생들도 소송 준비를 도왔다.
우리는 먼저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과 그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 등으로 공동 청구인단을 꾸렸다. 2015년 4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화성공장) 특별감독 보고서’와 ‘(기흥 및 화성 공장)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예상대로 고용노동부는 보고서 전부에 대한 “비공개”를 결정했고, 우리는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는 소송에서 보고서가 작성된 경위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강조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하여 고용노동부가 특별감독과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이므로, 기본적으로 회사의 영업비밀이 될 수 없는 자료라고 했다. 또한, 공장의 전·현직 노동자 및 그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명·건강과 관련된 자료이므로 공개될 필요가 크다고 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보고서 전체가 회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보고서의 일부 내용도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공개되면 그에 부담을 느낀 회사들이 향후 노동부의 감독 업무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고,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기업 이미지가 저하되고 국제적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아닌 삼성전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았다. 재판 때마다 삼성전자 직원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방청석에서 재판 과정을 메모했고 법정 밖에서 고용노동부 측과 무언가를 상의했다.
한편 우리가 “산재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 보고서는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고용노동부는 “산재소송에서 필요한 정보라면 해당 소송 절차를 통해 취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어이가 없었다. 산재소송에서 법원이 보고서 제출을 거듭 요청했을 때 고용노동부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응했던가. 심지어 법원의 제출 명령도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거부하지 않았던가.
2017년 3월, 수원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특별감독 보고서’는 ‘감독반 이름’ 정도만 제외하고 대부분 공개하되,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는 ‘진단 총평’ 부분만을 공개하라고 했다.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공개하라는 판결이었지만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공개 범위가 너무 협소했기에, 우리는 항소했다.
2017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이 나왔다. 1심 판결과 달리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 대해서도 ‘감독반 이름’, ‘설비 이름’ 등 극히 일부 내용만 제외하고 대부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대상 보고서들이 “근로자 및 지역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내지 건강과 관련된 정보”로서 “삼성전자 재해 근로자, 지역주민, 직업병 예방 시민운동가인 원고들은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이익을 가진다”고 봤다. 또한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삼성전자의 영업상 비밀에 대한 이익을 앞선다”고 했다. 아울러 대상 보고서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지적하며 “원칙적으로 영업상 비밀과 관련 있는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하거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비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삼성전자의 이익에 비하여 근로자 또는 지역주민의 건강·안전의 도모라는 공익이 더 크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판결에 승복했고, 판결 선고 한 달 뒤에 총 1000페이지에 가까운 문서들을 보내 왔다. 그렇게 우리가 이 보고서를 통해 얻고자 했던 모든 정보들이 공개됐다. 특히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직업병 피해 제보가 접수된 ‘기흥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는 그 공장에서 확인된 매우 구체적이고 심각한 문제점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적어본다. 삼성전자가 그토록 감추고자 했던 “영업비밀”이란 이런 것이었다.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이 보고서에 대한 증거조사를 처음 요청한 때가 2014년 5월이었으니, 피해 가족들이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하는 데 3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계속 보고서 제출을 거부해 소송이 지연되던 중 세상을 떠난 피해자도 있다. 이제라도 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지난 잘못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지금도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는 800일을 훌쩍 넘긴 반올림 농성장이 있다. 삼성과 정부로부터 마땅히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출처 “보고서는 회사 영업비밀”…삼성 위해 발벗고 뛴 노동부
2013년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
‘위험의 외주화’가 빚은 참사
삼성, “공장 밖 유출 없었다” 주장
CCTV 영상 공개돼 ‘거짓’ 드러나
노동부, 특별감독 후 ‘보고서’ 작성
법원 제출명령에 삼성·정부 ‘모르쇠’
보고서 정보공개청구 소송 나서자
“삼성 이미지 저하”…정부가 ‘방패막이’
[한겨레] 임자운 | 등록 : 2018-01-06 10:09 | 수정 : 2018-01-06 14:19
▲ 2013년 5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불산누출 사고가 발생한 삼성전자 화성공장을 찾아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화성/사진공동취재단
이번 소송기 연재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삼성 직업병 문제에 관한 ‘정부의 책임’이다. 많은 피해자가 삼성만큼이나, 때로는 삼성보다 더, 정부를 원망한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그들의 분노와 원망이 절대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노동부가 2013년 삼성반도체 공장에 대해 작성한 ‘특별감독 보고서’와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라는 것이 있다. 정부가 처음으로 삼성반도체 공장의 관리 실태 전반을 점검한 결과인데, 그 공장에서 직업병 피해를 본 노동자들은 그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정부가 이를 은폐했기 때문이다. 최근에서야 법원 판결을 통해 보고서들이 공개됐는데,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우리 모두 알아야 한다.
2013년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
먼저 이 보고서들이 작성된 경위부터 살펴보자. 2013년 1월, 삼성전자 화성공장에서 불산누출 사고가 발생해 만 34살 노동자가 사망하고 동료들이 상해를 입었다. 불산 공급 탱크 배관에 생긴 작은 균열이 사고의 최초 원인이었지만, 안전보건공단 보고서는 “공정이 가동되는 상태에서 밸브 보수가 실시된 점”을 더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불산이 누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생산라인에 불산 공급을 계속하려다 피해가 커졌다는 얘기다. 보수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공정을 중단시켜야 했지만, 현장에 있던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그러한 권한이 있을 리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적절한 보호장구도 갖추지 못했고 그렇다고 현장을 떠나기도 어려웠다. 위험에 가장 가까이 있던 노동자들이 정작 그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어, 결국 사상자가 되었다. 가장 힘없는 노동자가 가장 큰 위험에 처하고 마는 ‘위험의 외주화’가 빚은 참변이었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삼성전자는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삼성은 맹독성 화학물질이 누출된 사고를 계속 외부에 알리지 않다가, 노동자가 사망하고 나서야 노동부에 신고했다. 대기 중 불산 노출을 우려하는 주민들에게, 삼성은 “불산 가스가 공장 밖으로 유출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고 했지만, 대형 송풍기를 이용해 불산 가스를 공장 밖으로 빼내는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이 또한 거짓으로 드러났다. 경기도의회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리자 삼성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조사단의 현장 접근과 시료 채취를 거부하는가 하면, 조사단이 요구한 자료도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사실상 조사를 거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국회의원과 함께 사고 현장을 방문한 외부 전문가가 불산 누출량을 추정하기 위해 주변 나뭇잎을 채취하자, 삼성 측은 “사유물 절취”를 주장하며 나뭇잎을 빼앗기도 했다.
보다 못한 고용노동부가 후속 조치에 나섰다. 먼저 사고가 발생한 화성공장에 대해 ‘특별감독’을 실시해 무려 200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를 적발해냈다. 노동부는 “총체적인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고 발표하며, 삼성전자의 모든 반도체 공장에 대한 ‘진단 명령’을 실시했다. 그에 따라 안전보건공단, 대한산업보건협회 등이 삼성전자 기흥, 온양, 화성, 탕정 공장에 들어가 안전보건 관리 실태를 진단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나는 삼성 직업병 관련 소송들을 대리하던 중 이 보고서들의 존재를 알게 됐고, 곧바로 모든 소송에서 이에 대한 증거조사를 신청했다. 만일 보고서를 통해 공장 내 화학물질 관리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면, 이는 곧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도 증거조사 필요성을 인정해 삼성전자,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등에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때부터 삼성과 정부가 벌이는 ‘막장 은폐 활극’이 벌어졌다.
삼성과 노동부의 보고서 은폐·조작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은 일제히 보고서 제출을 거부했다. 주된 이유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법원에 좀 더 강제성 있는 증거조사를 요청했고, 그에 따라 법원은 고용노동부에 보고서 제출을 ‘명령’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더 놀라운 태도를 보였다. 법원이 보고서 제출을 ‘요청’(문서송부촉탁)할 때는 “삼성의 영업비밀” 운운하며 직접 제출을 거부하더니, 법원이 보고서 제출을 ‘명령’(문서제출명령)하자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가 제출 여부와 범위를 판단할 사안”이라며 책임 회피에 나선 것이다.
2014년 5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삼성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법원은 총 14번에 걸쳐 이 보고서의 제출을 요청했지만, 이 가운데 13차례나 삼성과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딱 한 번 ‘아산공장 진단 보고서’가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의해 제출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중요 내용이 전부 감추어진 반쪽짜리 보고서였다. 당시 천안지청은 “삼성의 의견을 들어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가리고 제출한다”고 했다. 그렇게 감추어진 내용은 사업장 내 ‘재해 발생’, ‘안전검사 실시’, ‘작업환경 측정’, ‘근로자 건강관리’, ‘보호구 지급 및 착용 상태’의 현황과 문제점 등으로, 상식적으로 영업비밀이 될 수 없는 정보들이었다. 삼성은 그저 감추고픈 모든 정보에 대해 “영업비밀” 딱지를 붙였고, 고용노동부는 그 정보들을 모두 은폐하고 있었다.
그렇게 법원에 제출된 ‘아산공장 진단 보고서’는 심지어 그 내용이 삼성에 의해 ‘조작’된 것이었다. 법원이 천안지청에 보고서 제출을 요청하자, 천안지청은 삼성으로 하여금 ‘보고서에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부분을 직접 삭제해 달라’고 했는데, 이때 삼성은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삭제했을 뿐 아니라 고치기까지 했던 것이다. 일종의 피감기관이었던 삼성이 그 감독 결과를 직접 수정한 셈이다. 천안지청은 그렇게 조작된 보고서를 법원은 물론 국회에까지 제출했다. 2016년 국정감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이 확인되자,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 참여연대는 삼성전자 대표이사와 고용노동부 장관을 문서변조죄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삼성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보고서를 직접 수정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실무자의 착오”일 뿐이었다며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역시 이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혹은 삼성을 상대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 한국환경회의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013년 5월 7일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앞에서 화성공장 불산누출 사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재발 방지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지금의 화학물질관리법)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
노동자가 직업병 관련 소송(산재소송)에서 이기려면 스스로 직업병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그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회사와 정부에 의해 은폐될 때, 그 자료의 제출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렵사리 법원으로부터 문서제출명령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 보고서들도 산재소송 절차를 통해서는 끝내 확보할 수 없었다. 보고서 공개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따로 제기해야 했다. 끝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었지만, 역시 피할 수는 없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에 도움을 청하자, 서선영·김동현 변호사가 흔쾌히 나서주었다. 서울대 로스쿨 내 소모임인 ‘산소통’(산업재해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학생들의 모임) 학생들도 소송 준비를 도왔다.
우리는 먼저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과 그 공장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 등으로 공동 청구인단을 꾸렸다. 2015년 4월,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화성공장) 특별감독 보고서’와 ‘(기흥 및 화성 공장)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예상대로 고용노동부는 보고서 전부에 대한 “비공개”를 결정했고, 우리는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는 소송에서 보고서가 작성된 경위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강조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에 대하여 고용노동부가 특별감독과 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이므로, 기본적으로 회사의 영업비밀이 될 수 없는 자료라고 했다. 또한, 공장의 전·현직 노동자 및 그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생명·건강과 관련된 자료이므로 공개될 필요가 크다고 했다.
반면 고용노동부는 “보고서 전체가 회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며 보고서의 일부 내용도 공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공개되면 그에 부담을 느낀 회사들이 향후 노동부의 감독 업무에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고, “보고서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기업 이미지가 저하되고 국제적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아닌 삼성전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 같았다. 재판 때마다 삼성전자 직원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방청석에서 재판 과정을 메모했고 법정 밖에서 고용노동부 측과 무언가를 상의했다.
한편 우리가 “산재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직업병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이 보고서는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자, 고용노동부는 “산재소송에서 필요한 정보라면 해당 소송 절차를 통해 취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어이가 없었다. 산재소송에서 법원이 보고서 제출을 거듭 요청했을 때 고용노동부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응했던가. 심지어 법원의 제출 명령도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거부하지 않았던가.
▲ 안전보건공단이 2013년 5월 작성한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종합진단보고서.
서울고등법원 “보고서를 공개하라”
2017년 3월, 수원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특별감독 보고서’는 ‘감독반 이름’ 정도만 제외하고 대부분 공개하되,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는 ‘진단 총평’ 부분만을 공개하라고 했다. 보고서의 상당 부분을 공개하라는 판결이었지만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 공개 범위가 너무 협소했기에, 우리는 항소했다.
2017년 10월, 서울고등법원의 2심 판결이 나왔다. 1심 판결과 달리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 대해서도 ‘감독반 이름’, ‘설비 이름’ 등 극히 일부 내용만 제외하고 대부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대상 보고서들이 “근로자 및 지역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내지 건강과 관련된 정보”로서 “삼성전자 재해 근로자, 지역주민, 직업병 예방 시민운동가인 원고들은 그 구체적인 내용에 관하여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이익을 가진다”고 봤다. 또한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는 삼성전자의 영업상 비밀에 대한 이익을 앞선다”고 했다. 아울러 대상 보고서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지적하며 “원칙적으로 영업상 비밀과 관련 있는 정보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하거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를 비공개함으로써 보호되는 삼성전자의 이익에 비하여 근로자 또는 지역주민의 건강·안전의 도모라는 공익이 더 크다”고 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판결에 승복했고, 판결 선고 한 달 뒤에 총 1000페이지에 가까운 문서들을 보내 왔다. 그렇게 우리가 이 보고서를 통해 얻고자 했던 모든 정보들이 공개됐다. 특히 지금까지 가장 많은 직업병 피해 제보가 접수된 ‘기흥공장’에 대한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에는 그 공장에서 확인된 매우 구체적이고 심각한 문제점들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적어본다. 삼성전자가 그토록 감추고자 했던 “영업비밀”이란 이런 것이었다.
“작업자가 발암물질인 비소에 노출될 수 있는 공정에 그러한 경고 표시가 없음”, “화학물질 관리 내용을 관찰해보면 상당한 문제점이 전반적으로 관찰됨. 이러한 문제점이 최근 수년 동안 수차례 지적되었음에도 충분히 개선되지 않고 있음”, “화재 폭발 누출 관리에 상당한 결함이 있으며, 상당한 크기의 사고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의 유해 위험성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가 낮음. 실질적인 교육이 미흡했던 것으로 사료됨”, “외부점검, 안전진단을 통하여 문제점을 발굴하겠다는 자세보다는 문제가 없다고 하거나 문제점 축소를 지향하는 왜곡된 문화가 상당히 강함”,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 지적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이 보고서에 대한 증거조사를 처음 요청한 때가 2014년 5월이었으니, 피해 가족들이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하는 데 3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계속 보고서 제출을 거부해 소송이 지연되던 중 세상을 떠난 피해자도 있다. 이제라도 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지난 잘못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 지금도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는 800일을 훌쩍 넘긴 반올림 농성장이 있다. 삼성과 정부로부터 마땅히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출처 “보고서는 회사 영업비밀”…삼성 위해 발벗고 뛴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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