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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 측정 결과는 영업비밀 아냐…공개하라” 판결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 측정 결과는 영업비밀 아냐…공개하라”
[경향신문] 유설희 기자 | 입력 : 2018.02.02 06:25:00 | 수정 : 2018.02.02 06:30:31


▲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숨진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지난해 11월 20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산업재해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고통노동부(?)가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국민의 알권리 등을 위해서는 사업장의 유해인자를 측정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해야 된다고 본 것이다.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가 공개되어야 함을 명확히 한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2일 대전고등법원과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희망법)에 따르면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허용석 부장판사)은 1일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 중 백혈병으로 사망한 이범우씨 유족이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중 노동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정보가 삼성전자의 경영·영업상 비밀이라고 보기 어렵고, 해당 정보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공개하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이범우씨(당시 46)는 2014년 8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으로 숨졌다. 이씨는 1986년 삼성반도체 부천공장에 입사한 뒤 1991년 온양공장으로 근무지를 옮겨 23년간 일했다. 이씨의 유족은 산업재해임을 입증하기 위해 이씨가 근무하던 기간 동안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를 신청했지만 노동부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기업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이씨의 유족은 2016년 노동부를 상대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며 이러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약화된다는 이유 등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이러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기재된 노동자 이름을 제외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1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작업장의 위험성을 확인하는 것은 사망한 이씨를 비롯해 해당 작업장의 전·현직 노동자들의 안전 및 보건권의 보장, 더 나아가 해당 작업장 인근 주민들의 생명·건강 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했다. 또한 “국민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은 자신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고, ‘법인 등의 경영·영업상 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노동부가 국민 알권리 보장을 위해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해야 함을 명확히 한 첫 판결인 만큼 노동부가 추후 어떤 판단을 할지 주목된다. 이번 판결로 노동부가 다른 반도체 사업장에 대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게 될 경우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의 산재 입증 책임이 비교적 줄어들 예정이다.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발암물질 등이 사용되는 사업장의 유해인자를 측정한 결과를 기재한 것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에게는 산재를 입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핵심자료이지만 노동부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보고서를 은폐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삼성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법원이 13차례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제출을 명령했지만 노동부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이 포함돼 있다”는 등의 이유로 보고서 제출을 거부해온 것이다.

지난해 10월 노동부는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1월 백혈병으로 숨진 김기철씨(당시 32)의 소송에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한 적이 있지만 핵심 내용(측정 대상 공정)을 삭제한 일부를 제출해 논란이 됐다. 이 같은 노동부의 보고서 제출 거부로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은 별도로 정보공개 청구소송을 제기해야만 했다.

삼성 직업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따르면 반올림에 백혈병·뇌종양 등에 걸렸다고 제보해온 피해자는 현재 360명이고, 사망자는 143명이다. 피해자 94명은 산재를 신청했지만 그 중 60명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김동현 희망법 변호사는 “공장 내부의 유해물질 노출 실태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는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지만 삼성전자와 노동부는 문서 제출을 거부하거나 알맹이 없는 문서를 제출해왔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노동자의 알권리와 건강권을 보장하지 않았던 정부와 삼성전자에 대한 법원의 엄중한 경고”라면서 “노동부는 이번 판결에서 인정한 공개 범위를 기준으로 작업환경측정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출처  [단독] “삼성 반도체 공장의 유해성 측정 결과는 영업비밀 아냐…공개하라”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