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았던 ‘GM 철수설’···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나 [경향신문] 곽희양 기자 | 입력 : 2018-02-15 10:29:01
제너럴 모터스(GM)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5월 말까지 완전히 폐쇄한다고 밝혔습니다. 2012년 11월 GM이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크루즈’의 차세대 모델을 군산공장이 아닌 해외공장에서 생산키로 하면서 ‘철수설’이 고개를 들었는데요. 이후 5년 넘게 ‘철수설’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GM이 한국 철수를 빌미로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고, 한국지엠에 대해 지원을 놓고 부실기업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준중형차 크루즈, 다목적차량(MPV) 올란도를 생산하던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가동률은 최근 3년간 약 20%로 높진 않습니다. 하지만 하청업체 직원 등 군산지역 경제는 풍랑에 휩싸이게 됐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자리와 지역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 방안을 GM 측과 지속 협의해 나가겠다” 밝혔습니다. 한국지엠에 그간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또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 한국지엠 제공
2013년 2월
“5년간 8조 원 투자”
팀 리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과 한국지엠 세르지오 호샤 사장은 2013년 2월 한국지엠이 향후 5년간 8조 원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리 사장은 “한국지엠은 글로벌 제품 개발과 생산을 포함한 핵심역량을 배가하기 위해 향후 5년간 약 8조 원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 GM사의 댄 에커슨 회장이 2013년 5월 8일(현지시각) 박근혜를 만나 향후 5년간 한국에 8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약속대로 이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엔저 현상과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해 논란이 됐습니다.
에커슨 회장은 박근혜가 “GM 회장에게 북한 문제 때문에 철수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자리에 오신 것을 보니 철수가 아니라 투자를 더 확대할 것이라고 봐도 되겠는가”라고 묻자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절대로 한국시장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두 가지 문제란 엔저 현상과 상여금을 포함하는 통상임금 문제였습니다.
GM이 유럽 시장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 판매되는 쉐보레 차량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지엠은 생산량 감소에 따른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이 예측됐습니다.
GM은 2016년부터 유럽 대중차 시장에서 평판이 좋은 ‘오펠’과 ‘복스홀’ 브랜드를 중심으로 사업 부문을 개편하고 쉐보레는 주력 브랜드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유럽지역 브랜드 강화 전략’을 2013년 12월 5일 발표했습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이번 조치로 한국에선 10만대 가량의 생산량 감소가 예상된다”며 “2년 동안 순차적으로 생산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같은 결정은 유럽 쉐보레 판매법인이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하는 데다 반전 가능성이 작기 때문으로 풀이됐습니다.
이번 조치로 ‘GM 한국 철수설’이 다시 나왔습니다. 2012년 11월 GM이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생산하는 ‘크루즈’의 차세대 모델을 군산공장이 아닌 해외공장에서 개발·생산키로 하면서 철수설이 제기됐었습니다.
WSJ “GM, 한국 생산량 20% 줄이고 일부 호주 수출”···한국지엠 “확정 내용 아니다”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3년 12월 9일 GM이 2016년까지 한국지엠 생산량을 약 20% 감축하고 한국 생산물량 일부를 호주에 수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높은 임금과 호주 달러화 강세 등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현지 소화 물량을 한국에서 생산된 차량으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죠. 한국지엠 측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공식 부인했습니다. GM이 한국 시장을 정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철수설이 또다시 제기되자 이를 ‘물타기’ 하려는 여론 떠보기라는 분석마저 나왔습니다.
한국지엠이 쉐보레 브랜드 차량을 생산 중인 군산공장이 줄고 있기 때문에 향후 가동계획을 어떻게 할지 노조 측과 협의를 했습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GM이 2015년까지 유럽에서 쉐보레 브랜드를 단계적으로 철수하기로 하면서 한국지엠으로까지 파장이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실제로 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물량의 비중이 높은 군산공장은 지엠 본사의 주문 감소로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가동률이 6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한국지엠이 2015년 6월 군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198명 전원에게 해고를 통보해 놓고 일주일 뒤 비정규직을 채용공고를 다시 냈습니다.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는 “현장을 더 값싸고 자유롭게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민주노총은 “GM 자본은 한국에서 다양한 방식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용하며 노동자들 사이에 차별을 두고 있다”면서 “1차 하청, 2차 하청 노동자뿐만 아니라, 직업훈련생, 산업실습생(대학 실습), 해외연수생까지 활용하며 노동력 유연화를 극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GM이 언제든지 공장에서 손을 털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죠.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설이 다시 나왔습니다. 한국지엠은 최근 3년간 2조 원 규모의 누적 순손실을 기록 중이었고요. GM은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15년간 경영권을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2017년이 마지막 해였습니다. 산업은행의 한국지엠 매각 등에 대한 거부권이 2017년 10월에 종료되는 것도 철수설이 나오는 근거였습니다.
당시 GM은 인도 등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지엠은 현재도 카마로와 임팔라 등은 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면서 “적자가 계속 나는 계열사를 붙들고 있느니 차라리 철수한 뒤 수입차 딜러로 차를 파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GM 본사가 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철수설에 한국지엠 고위 관계자는 “단지 추측에 불과하다”면서 “GM은 한국에서 영속적으로 사업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지난 7월 스테판 자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의 발언도 언급했는데요. 자코비 사장은 당시 “한국지엠이 GM 내 생산, 디자인, 엔지니어링 허브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GM은 한국 시장 수익성 향상에 집중하고 앞으로도 사업 파트너와 협력해 회사 경쟁력과 수익성을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었습니다.
GM 산하 오펠을 인수한 푸조시트로엥그룹(PSA)이 유럽내 오펠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한국지엠으로부터 수입하던 물량을 유럽공장에서 직접 생산키로 했습니다. 이럴 경우 한국지엠 생산 물량이 크게 줄어들게 돼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PSA는 2020년까지 공장 가동률을 100%까지 높이기 위해 생산 물량을 한국에서 유럽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한국지엠은 창원공장에서 오펠칼(스파크 유럽명), 부평공장에서 모카(트랙스)를 생산해 유럽에 수출했습니다. 2016년의 경우 전체 13만대를 생산했죠. 자동차 업계에서는 오펠에 수출하던 물량이 없어질 경우 한국지엠의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지난 8일부터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판매 부진이 원인이었습니다. 군산공장은 2017년 ‘올란도’ 및 ‘올뉴 크루즈’의 내수와 수출 판매가 줄면서 월평균 6~10일 정도만 조업을 이어왔습니다. 1차 협력업체 35곳과 2차 협력업체 100곳 등도 위험에 처하게 됐습니다.
지난 11일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GM 본사가 요구한 한국지엠에 대한 재정 지원 방안을 놓고 경제부처들이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지엠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2조5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요. 여기에는 유럽지역으로의 반제품 수출 중단 여파가 컸습니다. 그런데도 GM 본사는 한국지엠에 생산량을 추가로 배정하지 않고 수수방관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이 같은 요구를 거절할 경우 GM이 한국에서 철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철수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실정입니다. 실제 GM은 2014년 호주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GM홀덴 공장을 폐쇄하고 호주에서 철수한 바 있습니다.
정부에 “한국 사업 철수”를 무기로 대규모 재정 지원을 요청한 미국 GM 본사의 투자계획안에도 ‘군산공장 살리기’는 아예 빠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GM이 이달 말 신차 물량을 부평·창원 공장에 각 1개씩 배정하는 방안을 수립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이는 폐쇄할 군산공장을 필두로 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한국지엠을 살리려면 정리해고가 필요하다며, 한국 정부의 추가 자금지원과 노조의 동의를 받아내는 병행술을 노골적으로 구사하는 것인데요. GM은 최악의 시나리오인 한국지엠 ‘완전 철수’ 가능성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한국 측과 줄다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