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정희의 노예였다” 57년만에 드러난 끔찍한 진실
‘박정희판 군함도’ 파헤진 영화 <서산개척단> 기자간담회
[오마이뉴스] 김윤정 | 18.05.18 17:53 | 최종업데이트 : 18.05.18 17:53
묻혀 있던 독재 정권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57년간 은폐됐던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진실을 담은 영화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국가재건’이라는 미명 아래 기획한 간척사업에 강제 동원된 청년과 부녀자들의 이야기다.
18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서산개척단>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조훈 감독은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경제 개발 논리를 위해 시민들을 이용했지만, 정작 피해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인권 유린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끼며 살았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이 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대부분은 서산 개척단 피해자들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이조훈 감독은 “인터뷰를 이어붙이면서 피해자 스스로 역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담고 싶었다”고 했다.
6.25 전쟁에서 부모를 잃고 건달 생활을 하다 납치돼 서산개척단으로 끌려온 정영철 할아버지, 먹고 사는 게 힘들던 시절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온 하용복 할아버지는 무차별 폭력에 시달리며 삼킬 수도 없는 주먹밥과 간장만을 먹으며 맨몸으로 바다를 메웠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서산 개척단 노동자들을 ‘조폭, 깡패, 윤락녀’ 등으로 낙인찍었고, 언론은 서산 간척 사업을 ‘갱생의 낙원’, ‘인간재생공장’ 등으로 부르며 진실을 왜곡했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서산 개척단 출신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조차 수치스러워했다. 실제 건달이나 윤락여성 출신의 피해자들도 있었지만,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먹고살기 위해 거리를 떠돌며 살아야 했던 이들은 국가가 덧씌운 프레임에 “나는 이런 인권유린을 당해도 싸다”며 피해를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이조훈 감독은 어떻게, 50년 넘게 묻고 산 이야기들을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게 했을까? 이 감독은 “온전히 자신만의 힘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 이 감독이 서산개척단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서산 출신 대학 후배인 KBS <1박2일> 유일용 PD를 통해서였다. 유 PD는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 싶었지만, 예능 PD였던 데다 보수 정권 아래라 쉽지 않았다고. 때문에 독립영화감독인 이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한 것이다.
이 감독은 “유 PD를 통해 어르신들을 소개받고, 그분들을 통해 다시 또 많은 분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모두들 인터뷰를 거부했다고. 4년 넘게 꾸준히 찾아가는 이 감독의 끈기가 한 어르신의 마음을 열었고, 이후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등 어르신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료를 통해 피해 새로운 정보가 잇따라 드러나자 점점 더 영화 제작에 협조해주셨다”고 설명했다.
영화 <서산개척단>은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쥐며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지난 3월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재생공장의 비극-대한청소년개척단을 아십니까?’, 오마이뉴스의 ‘박정희판 군함도, 모월리의 진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독재정권이 찍어놓은 낙인에 수치심이 앞서 피해 사실을 주장하지 못했던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조훈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토 개간을 목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조금 ‘PL-480’을 받아 자신의 선거에 활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는데, “국제법상 원조금을 유용할 경우 공소시효 없이 회수할 수 있다더라”면서, “현재 국제변호사 등과 함께 대응 방법을 논의 중이다. 변호사 비용이 비싼데 영화의 수익금으로 계속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조훈 감독은 <그날, 바다>가 그랬고, <공범자들> <저수지 게임>이 그랬듯, <서산개척단>을 통해 여론이 만들어져 서산개척단 피해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미국의 ‘PL-480’ 지원 사업장이 140개인데, 그중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노동력이 착취된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면서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제보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또, 독재정권의 인권착취 사례를 정리해 근현대사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기 등 역사 바로잡기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이 감독은 “피해를 말하는 것조차 꺼리시던 어르신들이 지금은 직접 발로 뛰며 스스로를 대변하는 활동가가 되어 가고 있다”면서 자신도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출처 “나는 박정희의 노예였다” 57년만에 드러난 끔찍한 진실
‘박정희판 군함도’ 파헤진 영화 <서산개척단> 기자간담회
[오마이뉴스] 김윤정 | 18.05.18 17:53 | 최종업데이트 : 18.05.18 17:53
▲ 박정희 정권 시절 전국의 청년과 부녀자들을 납치하여 일을 시키고, 충격적인 인권유린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서산 개척단>이 24일 개봉을 앞두고 14일 오후 서산에서 처음으로 시사회를 한다. 시사회가 끝난 후 감독과 개척단원, 시민들의 ‘대화의 시간’도 이어질 예정이다. 영화 <서산개척단> 포스터. ⓒ(주)인디플러그
묻혀 있던 독재 정권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또 한 편의 영화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57년간 은폐됐던 ‘대한청소년개척단’의 진실을 담은 영화 <서산개척단>은 박정희 정권이 ‘국가재건’이라는 미명 아래 기획한 간척사업에 강제 동원된 청년과 부녀자들의 이야기다.
18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영화 <서산개척단>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조훈 감독은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의 경제 개발 논리를 위해 시민들을 이용했지만, 정작 피해당사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인권 유린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도 못하고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끼며 살았다”면서, “더 늦기 전에 이 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대부분은 서산 개척단 피해자들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이조훈 감독은 “인터뷰를 이어붙이면서 피해자 스스로 역사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담고 싶었다”고 했다.
6.25 전쟁에서 부모를 잃고 건달 생활을 하다 납치돼 서산개척단으로 끌려온 정영철 할아버지, 먹고 사는 게 힘들던 시절 일자리를 준다는 말에 속아 온 하용복 할아버지는 무차별 폭력에 시달리며 삼킬 수도 없는 주먹밥과 간장만을 먹으며 맨몸으로 바다를 메웠다.
▲ 여성들은 그들의 배우자가 되기 위해 납치됐다. 수놓는 학원에 데려다준다는 말에 속아 납치되어 관리자가 짝지어준 남자와 강제로 결혼해야 했던 윤기숙 할머니는 납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을 벌벌 떨었다. 서산개척단 사건을 ‘박정희판 군함도’, ‘박정희판 위안부 사건’이라 부르는 이유다.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주)인디플러그
▲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주)인디플러그
하지만 당시 정부는 서산 개척단 노동자들을 ‘조폭, 깡패, 윤락녀’ 등으로 낙인찍었고, 언론은 서산 간척 사업을 ‘갱생의 낙원’, ‘인간재생공장’ 등으로 부르며 진실을 왜곡했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서산 개척단 출신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조차 수치스러워했다. 실제 건달이나 윤락여성 출신의 피해자들도 있었지만, 전쟁통에 부모를 잃고, 먹고살기 위해 거리를 떠돌며 살아야 했던 이들은 국가가 덧씌운 프레임에 “나는 이런 인권유린을 당해도 싸다”며 피해를 이야기하지도 못했다.
이조훈 감독은 어떻게, 50년 넘게 묻고 산 이야기들을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게 했을까? 이 감독은 “온전히 자신만의 힘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 이 감독이 서산개척단 이야기를 들은 것은 서산 출신 대학 후배인 KBS <1박2일> 유일용 PD를 통해서였다. 유 PD는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고 싶었지만, 예능 PD였던 데다 보수 정권 아래라 쉽지 않았다고. 때문에 독립영화감독인 이 감독에게 영화화를 제안한 것이다.
이 감독은 “유 PD를 통해 어르신들을 소개받고, 그분들을 통해 다시 또 많은 분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모두들 인터뷰를 거부했다고. 4년 넘게 꾸준히 찾아가는 이 감독의 끈기가 한 어르신의 마음을 열었고, 이후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등 어르신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료를 통해 피해 새로운 정보가 잇따라 드러나자 점점 더 영화 제작에 협조해주셨다”고 설명했다.
▲ 영화 <서산개척단>의 한 장면. ⓒ(주)인디플러그
▲ 영화 <서산개척단>을 만든 이조훈 감독. ⓒ(주)인디플러스
영화 <서산개척단>은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쥐며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지난 3월 <그것이 알고 싶다> ‘인간재생공장의 비극-대한청소년개척단을 아십니까?’, 오마이뉴스의 ‘박정희판 군함도, 모월리의 진실’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독재정권이 찍어놓은 낙인에 수치심이 앞서 피해 사실을 주장하지 못했던 피해자들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조훈 감독은 취재 과정에서 당시 박정희 정부가 국토 개간을 목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원조금 ‘PL-480’을 받아 자신의 선거에 활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는데, “국제법상 원조금을 유용할 경우 공소시효 없이 회수할 수 있다더라”면서, “현재 국제변호사 등과 함께 대응 방법을 논의 중이다. 변호사 비용이 비싼데 영화의 수익금으로 계속 진행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조훈 감독은 <그날, 바다>가 그랬고, <공범자들> <저수지 게임>이 그랬듯, <서산개척단>을 통해 여론이 만들어져 서산개척단 피해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 감독은 “미국의 ‘PL-480’ 지원 사업장이 140개인데, 그중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노동력이 착취된 사례가 더 있을 것이라면서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제보가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또, 독재정권의 인권착취 사례를 정리해 근현대사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기 등 역사 바로잡기 운동도 진행하고 있다고. 이 감독은 “피해를 말하는 것조차 꺼리시던 어르신들이 지금은 직접 발로 뛰며 스스로를 대변하는 활동가가 되어 가고 있다”면서 자신도 그분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출처 “나는 박정희의 노예였다” 57년만에 드러난 끔찍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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