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의 폭로, 불법과 의정활동 사이···촉발된 쟁점 넷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 | 입력 : 2018-09-30 16:47:00 | 수정 : 2018-09-30 17:54:36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인가 행정정보 취득 및 무단 유출 논란을 둘러싼 여야정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기획재정부의 선제 고발과 심 의원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 심 의원의 추가 폭로와 맞고발, 여당 의원들의 심 의원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와 기재부의 추가고발, 청와대의 해명브리핑 등의 사건들이 이어졌다.
여야정 모두 양보없는 팽팽한 주장으로 맞서 정국은 강대강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정보공개 운동을 오래 해온 활동가들은 대체로 심 의원 측의 행위와 국가기밀이라는 규정 양측 다 비판한다. 심 의원의 비인가 정보 취득을 둘러싼 논쟁을 논점별로 정리했다.
기재부는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위반으로 심 의원과 보좌진을 고발한 상태다. 비정상적 경로로 비인가 정보를 열람 및 다운로드해간 햄위가 전자정부법 위반, 이 자료를 분석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공론화했다는 것이 정보통신방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입장이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기에 접근가능한 자료를 열람 및 취득했다면 법 위반인가. 이것이 첫번째 쟁점이다. 기재부와 심 의원실에 따르면 심 의실 보좌진은 이달 5~12일 사이 기재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재정분석시스템(OLAP)에 접속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에게도 접근 권한이 없었던 비공개 자료를 수십만 건 다운로드했다. 청와대 및 주요기관,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 37곳의 업무추진비 내역이 심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포함돼 있다고 기재부는 보고 있다.
심 의원실은 재정분석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해 백스페이스 키를 두번 눌렀더니 비인가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창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비인가 자료에 접근하려면 5단계 이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로그인 및 열람신청 등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보안상 허점을 뚫은 우회로로 자료에 접근했다는 것은 ‘해킹’에 해당한다. 단순히 백스페이스키를 연달아 두 번 누르는 것으로 해킹이 된 까닭은 재정분석시스템 사이트에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안을 미리 교란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백스페이스키를 두 번 눌렀다고 비인가 정보가 열리는 일 뿐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해서 백스페이스키를 연달아 두 번 누르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기재부는 이 점에서 심 의원실이 보안허점을 알고 고의로 해킹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이트 보안부실 정보를 제공해준 공모자도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심 의원 보좌진이 해킹툴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심 의원은 정상적 접근 과정에서 우연히 백스페이스키를 눌렀는데 자료가 열려 다운로드했다고 주장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전자정부법 위반 등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에 국회법(128조), 국회증언감정법(제4조) 등에 따라 자료제출요구 권한을 갖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다.
전 소장은 “국회의원이든 일반시민이든 정보를 요청하면 국가기관은 반드시 이를 검토한 후 공개, 부분공개 혹은 비공개결정 처분을 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비공개처분 후에도 이의심판,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의 절차를 거쳐 법원의 공개하라는 판결이 난 후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의 19대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는 이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 국회가 비공개 결정한 정보를 행정소송을 통해 받아낸 것이다.
전 소장은 “심 의원의 경우 ‘국가기관 판단’이라는 절차가 생략돼 있다”며 “심 의원의 경우 전자정부법 위반과 공공기록물법상 기록물 무단 유출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절차 위반이라는 점에서 심 의원이 제3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연히 정보에 접근했다 하더라도 위법 소지가 있다는 말이 된다.
심 의원은 불법성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기재부가 보안부실 책임을 심 의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좀 더 사안이 복잡하다. 사실이 아낸 내용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처음에 우연히 정보를 취득한 것도 문제지만 심 의원이 이 우회로를 알고 수 차례 반복적으로 정보를 유출해갔다는 점에서 범죄 혐의의 소지가 짙다는 것이 기재부 측의 주장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문제는 더 복잡하다. 공교롭게도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검사 명단을 공개(삼성X파일 사건)했다 유죄에 의원직 상실형까지 받았던 판결의 죄목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었다. 노 전 의원은 삼성 간부의 대화를 제3자가 불법녹취한 파일을 제보로 받아 이 명단을 알아내 공개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서 “‘허락없이 엿들었다’는 것이 통비법의 핵심”이라고 설명하며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예를 들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는 2013년 MBC 간부들이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모의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최 기자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전화로 통화를 했는데 최 이사장이 실수로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실을 방문한 MBC 이사진들과의 대화가 들려오자 최 기자는 녹음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보도였다. 최 기자도 정수장학회로부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됐고 법원은 선고유예로 판결을 했다. 무죄는 아니지만 선고는 2년 간 미룬다는 것이다. 형사처벌할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등에 선고유예 판결을 한다
박 교수는 “보수적인 당이든 인기가 없는 당이든 국회의원이 행정기관의 예산남용을 감시하는 것은 공익적인 일”이라며 “예산진행 정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통신비밀보호법과는 다른 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비밀 보호에서 가장 엄중한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인 만큼 다른 법도 위와 같이 국민의 알 권리 입장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진한 소장은 노회찬 전 의원과 최성진 기자의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전 소장은 “최성진 기자의 경우 법리적으로 위법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강행하고 자신이 법리적 책임을 진 것”이라며 “‘알 권리’나 ‘공익적 목적’이 실정법과 충돌할 경우 이런 게 책임지는 방식이다. 에드워드 스노든(미국 국가안보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 도감청 폭로자)이나 줄리언 어산지(위키리스크 창립자) 역시 실정법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 의원이 공익적 가치를 위해 자료를 열람하고 공개했으면, 실정법으로 유죄이지만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공익적 가치를 위해 공개한다고 해야 하지 실정법상 무죄나 합법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노 전 의원의 경우 뇌물을 받은 검사 명단을 보도자료와 블로그를 통해서 공개했다. 법원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보도자료 배포에만 인정하고 블로그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노 전 의원도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등을 활용해 공표했으나, 법원이 석연치 않게 면책특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 통신비밀보호법 적용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 소장은 시민사회에서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오래 해 왔다. 전 소장은 “국가기관의 정보 가운데에는 정말 공개되면 안 되는 것도 있다”며 “알권리 및 정보공개에서 ‘국가기관의 판단’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기관이 어떤 정보에 ‘비공개판단’을 많이 하는지를 보고 이를 두고 폐쇄적이라고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차별적 폭로가 곧 알 권리를 증진시키는 일에 해당하지 않으며 절차적 중요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당정청은 심 의원의 행위를 국가기밀 불법탈취로 보고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심 의원의 행위는)‘국가기밀 불법탈취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심 의원을 통비법 위반으로 재차 고발한 것도 통비법 유출한 자료가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유출된 자료는 업무 추진비와 행사비, 여비, 기관·관서 운영경비 집행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가 유출된 기관도 기재부, 국세청 등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기관 뿐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국무총리실, 법무부, 헌법재판소·대법원,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 37곳에 달했다.
기재부는 자료가 제3자에게 누출될 경우, 통일·외교·치안 활동 관련 정보 노출과 국가안보전략이 유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주요 고위직 인사의 일정·동선, 식자재 제공과 시설관리 등 거래업체 정보 노출로 신변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근거가 사실이 아니고 행정부의 비밀주의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정보 유출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국가기밀 탈취’라는 당·청의 규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 변호사는 “ 일부 정보는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업무추진비 등은 공개해도 되는 부분이다. 비인가 자료 전체를 국가기밀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청와대가 반박하더라도 논리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한 야당 의원실 소속 보좌관은 “유출된 내용으로 정부 요인의 동선을 재구성할 수 있지만 언론공개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이며 몇달 전 동선”이라며 “정부의 고소고발은 이해가 가지만 국가기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자한당은 심 의원의 행위를 정상적 의정활동이며, 기재부의 고발과 검찰수사는 야당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김성태 자한당 원내대표는 29일 페이스북에서 “심 의원이 찾은 자료는 야당이 합법적으로 확보한 정보와 자료이기에 우리는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국회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청와대 예산정보를 감시하기 위해 재정분석시스템에 접속했으며 자료를 열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승수 변호사는 “심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행정부를 감시하기 위해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다가 백스페이스키를 두 번 눌렀더니 비인가 정보가 열람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재부에 전화를 걸어서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묻는 것”이라고 심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 변호사는 “자료를 활용하려면 그 자료를 입수하는 경위도 일정 정도 사회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청구와 내부고발에 많이 의존한다”며 “‘알 권리’를 위해 활동해 온 시민단체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방식이고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진한 소장은 “청와대 식자재 정보 등은 테러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심 의원이 의원 자격으로 자료요청을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비공개될 만한 열람 정보 내용에 공익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며, 재정분석시스템의 오류를 알고도 방치하고 자료열람에 이용한 것은 오히려 심 의원 측의 ‘편의주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확한 사실이나 경위 등에 대한 확인 없이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집행 내역을 공개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다”며 “불법적인 자료의 외부 유출과 공개가 반복되어 심 의원을 사법기관에 추가 고발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지난 18일 청와대 지출내역에‘단란주점’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2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해외순방 시 수행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쓰고 한방병원에서 쓴 것으로 거짓 기재한 사실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심 의원이 ‘단란주점’이라 지목한 서울 무교동 청계천 인근 ‘텍사스 바’는 점심에는 커피와 간단한 점심메뉴를 팔고, 저녁에는 맥주와 칵테일 등을 파는 곳이다. 여성접객원을 불러 룸 접대를 하는 업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인도 출장시 한방병원을 사용했다는 내용은 카드사의 코드 분류체계 오류 등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측의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허위사실 유포를 차단하기 위해서 잘못된 팩트에는 재빨리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이어 청와대도 고발에 나설 방침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8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불법적으로 취득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무차별 폭로를 진행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하며 법적 대응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한당은 “야당탄압”이라며 지난 26일 서초동 중앙지검과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했다.
반면 유출 자료를 국가기밀로 규정하고 법원의 영장발부와 검찰의 압수수색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의당 소속의 박원석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심재철 의원 측의 정보해석은 자의적이며 선정적인 왜곡이 많다. 그러나 나는 정부여당이 업무추진비 공개와 같은 사안에서 과거 정권들의 비밀주의 유산과 과감하게 결별하는 방식으로 이 사안을 다루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업무추진비 일반은 기밀도 비밀도 아닌 일반 행정정보이며 공개돼야 한다”며 “선정적인 문제제기가 나오면 청와대 대변인이나 총무비서관이 이를 구구하게 해명하고 SNS에 퍼나르는식의 대응 말고 이 시점에 선제적으로 지난 1년 6개월간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일부 안보등의 사안을 제외하고 정부 공개양식에 맞춰 공개하고, 앞으로도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정기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각 부처에도 이런 기준을 제시해 적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그런 것이 이른바 촛불정부 다운 것이고 이명박근혜와 차별화된 도덕성이며, 심재철의 좀스러운 정치행위에 대한 가장 통렬한 반박”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심재철의 폭로, 불법과 의정활동 사이···촉발된 쟁점 넷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 | 입력 : 2018-09-30 16:47:00 | 수정 : 2018-09-30 17:54:36
▲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26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본인의 국회사무실 압수수색 등 현정부 규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9.26./연합뉴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비인가 행정정보 취득 및 무단 유출 논란을 둘러싼 여야정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기획재정부의 선제 고발과 심 의원의 청와대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 심 의원의 추가 폭로와 맞고발, 여당 의원들의 심 의원 국회 윤리위원회 제소와 기재부의 추가고발, 청와대의 해명브리핑 등의 사건들이 이어졌다.
여야정 모두 양보없는 팽팽한 주장으로 맞서 정국은 강대강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정보공개 운동을 오래 해온 활동가들은 대체로 심 의원 측의 행위와 국가기밀이라는 규정 양측 다 비판한다. 심 의원의 비인가 정보 취득을 둘러싼 논쟁을 논점별로 정리했다.
▲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 이상훈 선임기자
① 자료 취득은 불법인가?(1) - 전자정부법 위반의 경우
기재부는 정보통신망법 및 전자정부법 위반으로 심 의원과 보좌진을 고발한 상태다. 비정상적 경로로 비인가 정보를 열람 및 다운로드해간 햄위가 전자정부법 위반, 이 자료를 분석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공론화했다는 것이 정보통신방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입장이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했기에 접근가능한 자료를 열람 및 취득했다면 법 위반인가. 이것이 첫번째 쟁점이다. 기재부와 심 의원실에 따르면 심 의실 보좌진은 이달 5~12일 사이 기재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하는 재정분석시스템(OLAP)에 접속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의원에게도 접근 권한이 없었던 비공개 자료를 수십만 건 다운로드했다. 청와대 및 주요기관,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 37곳의 업무추진비 내역이 심 의원이 확보한 자료에 포함돼 있다고 기재부는 보고 있다.
심 의원실은 재정분석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해 백스페이스 키를 두번 눌렀더니 비인가 자료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창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비인가 자료에 접근하려면 5단계 이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로그인 및 열람신청 등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보안상 허점을 뚫은 우회로로 자료에 접근했다는 것은 ‘해킹’에 해당한다. 단순히 백스페이스키를 연달아 두 번 누르는 것으로 해킹이 된 까닭은 재정분석시스템 사이트에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안을 미리 교란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백스페이스키를 두 번 눌렀다고 비인가 정보가 열리는 일 뿐만 아니라, 사이트에 접속해서 백스페이스키를 연달아 두 번 누르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기재부는 이 점에서 심 의원실이 보안허점을 알고 고의로 해킹했으며, 이 과정에서 사이트 보안부실 정보를 제공해준 공모자도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심 의원 보좌진이 해킹툴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심 의원은 정상적 접근 과정에서 우연히 백스페이스키를 눌렀는데 자료가 열려 다운로드했다고 주장했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전자정부법 위반 등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에 국회법(128조), 국회증언감정법(제4조) 등에 따라 자료제출요구 권한을 갖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다.
전 소장은 “국회의원이든 일반시민이든 정보를 요청하면 국가기관은 반드시 이를 검토한 후 공개, 부분공개 혹은 비공개결정 처분을 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비공개처분 후에도 이의심판,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의 절차를 거쳐 법원의 공개하라는 판결이 난 후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참여연대의 19대 국회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는 이 절차를 거쳐 이뤄졌다. 국회가 비공개 결정한 정보를 행정소송을 통해 받아낸 것이다.
전 소장은 “심 의원의 경우 ‘국가기관 판단’이라는 절차가 생략돼 있다”며 “심 의원의 경우 전자정부법 위반과 공공기록물법상 기록물 무단 유출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절차 위반이라는 점에서 심 의원이 제3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연히 정보에 접근했다 하더라도 위법 소지가 있다는 말이 된다.
심 의원은 불법성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기재부가 보안부실 책임을 심 의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좀 더 사안이 복잡하다. 사실이 아낸 내용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다. 처음에 우연히 정보를 취득한 것도 문제지만 심 의원이 이 우회로를 알고 수 차례 반복적으로 정보를 유출해갔다는 점에서 범죄 혐의의 소지가 짙다는 것이 기재부 측의 주장이다.
▲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상훈 선임기자
② 자료 취득은 불법인가?(2) -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의 경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문제는 더 복잡하다. 공교롭게도 노회찬 전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검사 명단을 공개(삼성X파일 사건)했다 유죄에 의원직 상실형까지 받았던 판결의 죄목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었다. 노 전 의원은 삼성 간부의 대화를 제3자가 불법녹취한 파일을 제보로 받아 이 명단을 알아내 공개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지난 26일 페이스북에서 “‘허락없이 엿들었다’는 것이 통비법의 핵심”이라고 설명하며 한겨레 최성진 기자의 예를 들었다. 한겨레 최성진 기자는 2013년 MBC 간부들이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모의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최 기자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전화로 통화를 했는데 최 이사장이 실수로 전화를 끊지 않은 상태에서 사무실을 방문한 MBC 이사진들과의 대화가 들려오자 최 기자는 녹음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보도였다. 최 기자도 정수장학회로부터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됐고 법원은 선고유예로 판결을 했다. 무죄는 아니지만 선고는 2년 간 미룬다는 것이다. 형사처벌할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등에 선고유예 판결을 한다
박 교수는 “보수적인 당이든 인기가 없는 당이든 국회의원이 행정기관의 예산남용을 감시하는 것은 공익적인 일”이라며 “예산진행 정보에 대해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통신비밀보호법과는 다른 법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비밀 보호에서 가장 엄중한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인 만큼 다른 법도 위와 같이 국민의 알 권리 입장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진한 소장은 노회찬 전 의원과 최성진 기자의 사건과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전 소장은 “최성진 기자의 경우 법리적으로 위법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알 권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해 강행하고 자신이 법리적 책임을 진 것”이라며 “‘알 권리’나 ‘공익적 목적’이 실정법과 충돌할 경우 이런 게 책임지는 방식이다. 에드워드 스노든(미국 국가안보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 도감청 폭로자)이나 줄리언 어산지(위키리스크 창립자) 역시 실정법 무죄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 의원이 공익적 가치를 위해 자료를 열람하고 공개했으면, 실정법으로 유죄이지만 (공익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공익적 가치를 위해 공개한다고 해야 하지 실정법상 무죄나 합법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노 전 의원의 경우 뇌물을 받은 검사 명단을 보도자료와 블로그를 통해서 공개했다. 법원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보도자료 배포에만 인정하고 블로그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노 전 의원도 공익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따라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등을 활용해 공표했으나, 법원이 석연치 않게 면책특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 통신비밀보호법 적용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 소장은 시민사회에서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오래 해 왔다. 전 소장은 “국가기관의 정보 가운데에는 정말 공개되면 안 되는 것도 있다”며 “알권리 및 정보공개에서 ‘국가기관의 판단’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기관이 어떤 정보에 ‘비공개판단’을 많이 하는지를 보고 이를 두고 폐쇄적이라고 비판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무차별적 폭로가 곧 알 권리를 증진시키는 일에 해당하지 않으며 절차적 중요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 하승수 변호사·비례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 /우철훈 선임기자
③ 공개한 내용이 국가기밀에 해당하나?
당정청은 심 의원의 행위를 국가기밀 불법탈취로 보고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심 의원의 행위는)‘국가기밀 불법탈취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가 심 의원을 통비법 위반으로 재차 고발한 것도 통비법 유출한 자료가 국가기밀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유출된 자료는 업무 추진비와 행사비, 여비, 기관·관서 운영경비 집행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가 유출된 기관도 기재부, 국세청 등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기관 뿐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국무총리실, 법무부, 헌법재판소·대법원,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 37곳에 달했다.
기재부는 자료가 제3자에게 누출될 경우, 통일·외교·치안 활동 관련 정보 노출과 국가안보전략이 유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주요 고위직 인사의 일정·동선, 식자재 제공과 시설관리 등 거래업체 정보 노출로 신변안전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근거가 사실이 아니고 행정부의 비밀주의를 강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전 공동운영위원장·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정보 유출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지만 ‘국가기밀 탈취’라는 당·청의 규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하 변호사는 “ 일부 정보는 국가기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업무추진비 등은 공개해도 되는 부분이다. 비인가 자료 전체를 국가기밀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청와대가 반박하더라도 논리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한 야당 의원실 소속 보좌관은 “유출된 내용으로 정부 요인의 동선을 재구성할 수 있지만 언론공개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이며 몇달 전 동선”이라며 “정부의 고소고발은 이해가 가지만 국가기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왼쪽)이 2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④ 정상적인 의정활동인가?
자한당은 심 의원의 행위를 정상적 의정활동이며, 기재부의 고발과 검찰수사는 야당탄압이라고 맞서고 있다. 김성태 자한당 원내대표는 29일 페이스북에서 “심 의원이 찾은 자료는 야당이 합법적으로 확보한 정보와 자료이기에 우리는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국회의 책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청와대 예산정보를 감시하기 위해 재정분석시스템에 접속했으며 자료를 열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승수 변호사는 “심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행정부를 감시하기 위해 사이트에서 자료를 찾다가 백스페이스키를 두 번 눌렀더니 비인가 정보가 열람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재부에 전화를 걸어서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묻는 것”이라고 심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하 변호사는 “자료를 활용하려면 그 자료를 입수하는 경위도 일정 정도 사회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은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청구와 내부고발에 많이 의존한다”며 “‘알 권리’를 위해 활동해 온 시민단체들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방식이고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방식“이라고 말했다.
전진한 소장은 “청와대 식자재 정보 등은 테러에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심 의원이 의원 자격으로 자료요청을 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비공개될 만한 열람 정보 내용에 공익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부족하며, 재정분석시스템의 오류를 알고도 방치하고 자료열람에 이용한 것은 오히려 심 의원 측의 ‘편의주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가장 왼쪽)·진보정의당 수석부대표 시절/김영민 기자
⑤ 허위사실 유포, 적절한 대응인가?
김용진 기재부 2차관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정확한 사실이나 경위 등에 대한 확인 없이 대통령비서실의 예산집행 내역을 공개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일이 있었다”며 “불법적인 자료의 외부 유출과 공개가 반복되어 심 의원을 사법기관에 추가 고발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지난 18일 청와대 지출내역에‘단란주점’이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21일에는 문재인 대통령 해외순방 시 수행원들이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쓰고 한방병원에서 쓴 것으로 거짓 기재한 사실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심 의원이 ‘단란주점’이라 지목한 서울 무교동 청계천 인근 ‘텍사스 바’는 점심에는 커피와 간단한 점심메뉴를 팔고, 저녁에는 맥주와 칵테일 등을 파는 곳이다. 여성접객원을 불러 룸 접대를 하는 업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인도 출장시 한방병원을 사용했다는 내용은 카드사의 코드 분류체계 오류 등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 측의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허위사실 유포를 차단하기 위해서 잘못된 팩트에는 재빨리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이어 청와대도 고발에 나설 방침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8일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불법적으로 취득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무차별 폭로를 진행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하며 법적 대응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한당은 “야당탄압”이라며 지난 26일 서초동 중앙지검과 대검찰청을 항의방문했다.
반면 유출 자료를 국가기밀로 규정하고 법원의 영장발부와 검찰의 압수수색이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정의당 소속의 박원석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심재철 의원 측의 정보해석은 자의적이며 선정적인 왜곡이 많다. 그러나 나는 정부여당이 업무추진비 공개와 같은 사안에서 과거 정권들의 비밀주의 유산과 과감하게 결별하는 방식으로 이 사안을 다루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업무추진비 일반은 기밀도 비밀도 아닌 일반 행정정보이며 공개돼야 한다”며 “선정적인 문제제기가 나오면 청와대 대변인이나 총무비서관이 이를 구구하게 해명하고 SNS에 퍼나르는식의 대응 말고 이 시점에 선제적으로 지난 1년 6개월간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일부 안보등의 사안을 제외하고 정부 공개양식에 맞춰 공개하고, 앞으로도 청와대 홈페이지 등에 정기적으로 공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각 부처에도 이런 기준을 제시해 적용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그런 것이 이른바 촛불정부 다운 것이고 이명박근혜와 차별화된 도덕성이며, 심재철의 좀스러운 정치행위에 대한 가장 통렬한 반박”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심재철의 폭로, 불법과 의정활동 사이···촉발된 쟁점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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