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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기곗값보다 싼 청년노동자들의 목숨값

기곗값보다 싼 청년노동자들의 목숨값
청년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는 방법
[민중의소리] 김종민 전 청년전태일 대표 | 발행 : 2019-01-13 11:29:26 | 수정 : 2019-01-13 11:29:26


故 김용균 님의 죽음으로 다시 한번 우리 사회에서 일하다 죽는 청년 비정규직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경기도 화성에서 자동문을 설치하던 20대 청년노동자가 죽었고, 김천에서는 공기 유출 점검 중 사고로 또 한 명의 20대 청년노동자가 사망했다.

▲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4살 청년 비정규직 故 김용균 3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어머니 김미숙 씨가 피켓을 가슴에 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슬찬 기자


청년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사회

김용균이 속한 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연료운영팀은 모두 60명이다. 이 가운데 20대는 23명, 30대는 11명으로 20~30대 청년노동자가 57%를 차지한다. 서부발전에서는 “경력자보다 20대 신입 사원의 급여가 더 싸기 때문에 하청업체가 젊은 직원들을 많이 뽑았다”고 했다. 산업재해를 책임지고 싶지 않은 서부발전, 기업의 이윤을 위해 가장 위험한 업무인 낙탄 제거 작업을 재하청으로 맡긴 한국발전기술이 그 범인이다. 낙탄 제거라는 위험한 업무에 생애 첫 노동을 ‘떨이’로 팔았던 청년노동자가 죽었다.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상처를 입을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상처를 입을 뻔한 사람이 300명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산재는 우연이 아니며, 적어도 하나의 안전장치라도 제대로 설치돼 있으면 최소한 죽음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청년 비정규직 사망사고의 대표적 사건으로 구의역 9-4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사망한 김 군이 있다. 김 군은 열차 안쪽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지나가는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전에 지하철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사망한 사고 3건도 비슷한 사례이다. 스크린도어 수리를 열차가 지나다니는 낮에 하지 않았더라면? 최소한 2인 1조 규정을 지켜서 안에서 수리하던 김 군을 끌어당길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제주 실습생 이민호가 사망한 사건은 더군다나 가관이다. 이민호가 현장 실습으로 근무하던 제주라바를 생산하는 ‘제이크레이션’ 사장은 2018년 12월 18일 징역 3년 형을 구형받았다. 현장 실습을 나간 이민호를 죽인 프레스는 종종 고장을 일으키는 기계였다. 이 프레스를 운영하던 민호의 사수는 프레스의 위험성을 알고 먼저 퇴사를 했다. 모두가 이 프레스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장에게 고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했고, 결국 예견된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기계가 자주 이상 신호를 보낼 때 기계를 교체했으면 어땠을까? 2인 1조로 작업을 해서 한 사람이 깔렸을 때 누군가 밑에 있는 기계를 빠르게 해체했으면 어땠을까? 기계 자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비상 버튼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지금도 태안화력발전소의 1~8호기는 가동을 진행 중이다. 故 김용균은 컨베이어벨트에서 낙탄을 제거하기 위해 컨베이어벨트에 직접 들어가 일을 하다가 사망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지속해서 시설 개선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부발전은 이를 실시하지 않았다. 만약 일부 발전소처럼 9-10호기에 물청소 장비를 설치했다면 어땠을까? 혼자 근무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2인 1조 작업으로 근무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스친다.

▲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 김용균 씨 유가족,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 (유)가족, 제주 현장실습고등학생 故 이민호 군 유가족 등 산재 유가족, 재난·안전사고 피해 가족들이 국회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산업안전보건법, 살인기업 처벌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즉각 통과를 촉구했다. ⓒ김철수 기자


청년노동자 죽음 막는 대안들

국회가 처리한 ‘산안법’ 개정을 넘어 ‘기업살인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 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자들의 목숨값이 안전장비를 설치하는 비용보다 싼 것에 있다. 19살 실습생을 죽인 기업의 대표가 구형이 3년, 법인이 ‘벌금 2000만 원’ 구형이면, 한 사람의 목숨값이 최소한 기곗값보다 싸다는 것이다. 사람 목숨보다 벌금이 작으면 ‘제이크레이션’과 회사는 언제나 다시 나올 것이다. 한 사람의 목숨값이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정부는 서부발전에 있는 하청업체 업무를 모두 직영화하고 노동자들을 직고용해야 한다. 서부발전은 한국발전기술에 하청을 줬다. 한국발전기술은 낙탄을 처리하는 위험한 업무만 따로 재하청을 줬다. 원청 → 하청 → 재하청을 주면 중간 업체들이 먹는 중간이윤 때문에 인건비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원청 1억 → 하청 8,000만 원 → 재하청 6,000만 원으로 내려오는 구조에서는 언제나 인력 부족이 있을 수밖에 없고, 2인 1조 규정은 지키기 어렵게 된다. 인건비 부족을 메우려고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는 실습생을 대거 고용했고, 서부발전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은 2030대 청년들을 대거 고용했다. 외주화의 가장 밑바닥에는 청년노동자들이 있는 것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 군’의 동료들은 직영화한 이후에 사망사고가 없어진 것뿐만 아니라 노동 조건도 좋아졌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있어야 한다. 제주 실습생 이민호가 근무하던 ‘제이크레이션’에 노동조합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다. 적어도 위험한 기계가 확인되면 민호의 사수처럼 도망가기보다 그 기계를 바꾸기 위해 싸웠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 사회에서 잊힌 죽음들이 너무나 많다. 하루에 산재 사망 사고 7명, 이들 중 청년들의 사망사고가 점점 잦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죽음을 볼 때마다 하루빨리 노동조합 조직률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 죽음의 행렬을 막을 방법은 사실 누구나 알 수 있다. 다만 2019년 1월 한국 사회에서 현실화하지 않았고 그 과정이 어려울 뿐이다. 청년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하고, 그 억울한 죽음의 책임을 묻고, 끊임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다시는 일하다가 죽지 않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출처  [김종민의 청년전태일들] 기계값보다 싼 청년노동자들의 목숨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