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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다 나랏돈이고 10만 회원 돈인데, 그들 뱃속으로 들어갔다”

“다 나랏돈이고 10만 회원 돈인데, 그들 뱃속으로 들어갔다”
[토요판] 커버스토리/ 고엽제전우회의 ‘배신’
공공기관 협박 불법주택사업 등 연 1천억원대 매출
회원들 관제데모에 이용…간부들은 거액 뒷돈

[한겨레] 김현대 <한겨레21> 선임기자 | 등록 : 2019-03-23 12:05 | 수정 : 2019-03-23 14:21


▲ 2012년 4월 3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 앞에서 ‘천안함 46용사 추모 및 해적녀 해적기지, 종북좌파 척결대회’를 열고 있는 전우회 회원들(왼쪽)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전우회관 건물 입구. 그래픽 이정윤 기자, 사진 류우종 기자

“우리 모두 배신당했어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카페, “20년 이상, 알면서 속고 모르고 속았다”는 참담한 토로가 이어진다. 어느덧 칠십 줄로 들어선 이들의 가슴마다 울분과 회한이 가득하다. 보훈단체인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이하 전우회) 회원들이다. 일부는 서울의 구 단위 조직을 이끄는 핵심 지회장이다. 전우회는 광역 지방자치단체에 17개 지부를 두고 있고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에 지회를 두고 있다.

“우리 지회장들, 머슴도 그런 머슴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 관제데모 엄청 했지 않나. 2015년인가. 대법원 앞에서 종북세력 척결하라고 외치는데, 마침 장대비가 퍼부었다. 비 온다고 몸을 피했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우산도 못 쓰고 우의도 못 입게 한다. 사타구니 속까지 땀과 비로 다 젖는데, 부동자세로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중앙회 간부들은 쌍욕을 퍼붓는다. 똑바로 잘하지 못하겠느냐고. 우리가 도대체 몇살인가. 짐승보다 못하게 살아왔다.”(ㄱ 지회장)

―뭘 잘 못한다는 건가?

“병력 많이 동원 못 했다는 거다. 그게 가장 큰 잘못이다. 본부에서는 지회로 팩스 한장 달랑 보낸다. ‘모일 모시 모처로 50명 집결’하라는 식이다. 지상명령이다. 각 지회에선 20~50명씩 날이면 날마다 모아서 갔다. 밥도 먹이고 술도 먹여야 한다.”(ㄴ 지회장)

―밥값·술값은 어떻게 조달하나?

“지회장들이 알아서 먹여야지. 자치구에서 받는 보조금(연 1천만~2천만원)도 쓴다. 솔직히 집회 열심히 나가면 우리 회원들한테 복지혜택이라도 내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일전 땡푼 없더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받았다는 후원금도 누구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른다. 부끄럽지만 그렇게 피눈물 나게 살았다.”(ㄷ 지회장)

―집회에 사람 많이 동원 못 하면 어떻게 되나?

“무능한 지회장으로 찍힌다. 온갖 핍박을 당한다. 팩스 한장으로 해임명령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지금 이 자리의 저 지회장도 그렇게 당했다.”(ㄴ 지회장)

한 지회장 입에선 “전우회가 없어져야 한다”는 강성 발언이 나왔다. “1억도 아니고 10억도 아니고 간부들이 수백억을 해먹었을 텐데, 그런 조직이라면 없어져야 마땅하다. 이젠 고엽제 이름 내놓기가 창피하다. 고엽제 마크 달린 구급차도 안 탄다. 이형규 전 회장 등 3인방이 뒷돈 먹은 것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다 나랏돈이고 10만 회원 돈이잖나.”(ㄱ 지회장)

이들은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아직은 조심스러워했다. “전우회 비리를 바로잡으려고 싸운 적이 있다. 그때마다 처절하게 깨졌다. 저들은 권력과 돈과 주먹을 다 쥐었다. 다시 싸워봤자 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든다. 국가보훈처가 전우회 비리를 확고하게 정리해야 하는데 여전히 우물쭈물한다.”(ㄹ 지회장) ㄱ 지회장은 “뜻을 모으고 있고 조만간 얼굴 내놓고 공개적인 비리 척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설립, 회원 10만명 달해
지난해 이형규 회장 등 ‘3인방’ 구속
33억원 뇌물 받은 사실 드러나
각 지부 비리도 줄줄이 터져나와

준설토사업, CCTV설치, 식음료 납품
쓰레기봉투 공급, 고속터미널 임대…
중견그룹 뺨치는 문어발식 사업
18개 사업에서 1118억원 매출



‘떡값’ 상납하는 비자금 통장

전우회의 역사는 1964년 베트남전 파병으로 시작된다. 미국이 정글 파괴를 위해서 뿌린 다이옥신계 제초제(고엽제)가 사람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치는 것으로 훗날 확인됐다. 32만명의 참전 병사 중 15만9천여명이 고엽제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1997년 12월 ‘월남참전고엽제후유의증전우회’를 사단법인으로 창립했으며, 2007년 국가유공자법과 고엽제후유의증환자지원법에 따른 보훈단체로 승격됐다. 이들은 등급에 따라 매달 보상금을 지원받고 의료·교육·취업 등에서 지원 혜택을 받는다.

전우회의 지회장과 회원들이 이렇게나마 삼삼오오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해 1월 전우회를 이끌던 핵심 간부들이 주택사업 비리로 구속된 사건이 촉발제가 됐다. 이형규 당시 회장, 김성욱 사무총장, 김복수 사업본부장이 33억원의 뒷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1997년 전우회 설립 때부터 지난해까지 사실상 종신 집권한 이 ‘3인방’은 1심에 이어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5~8년 형을 받았다. 핵심 3인방이 구속되면서 회원들의 입을 막던 침묵의 둑 또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전국 각 지부에서 묵은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전우회는 공중분해 위기를 맞고 있다. 3인방 체제의 공백을 메워야 할 핵심 시·도 지부장들도 손을 놓고 있다. 비리의 공범 아닌 이가 없다시피 하다. 박근규 서울지부장도 장례사업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봄 구속돼 1심에서 3년 형을 받았다.

전우회의 뒷돈을 관리하던 광주시지부의 비자금 통장도 최근 드러났다. (<한겨레21> 3월 18일 발행 ‘고엽제 전우회 비자금 계좌 나왔다’) 비자금 통장에선 중앙회 김성욱 전 사무총장한테 감사비와 떡값으로 100만~200만원씩 상납하던 비리의 꼬리표가 잡혔다. 뒷돈을 빼돌리기 위한 이중장부 작성과 비자금 통장 관리는 전우회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던 관행이었다.

▲ <한겨레21>이 확보한 고엽제전우회의 광주시지부 비자금 통장 사본. 김성욱 전 사무총장한테 보냈다는 메모가 보인다.

충북도지부에선 지난해 규산질 비료공장 운영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불거져 지부장이 물러났다. 대구에서는 달성지회장이 현 지부장의 총체적인 비리 의혹을 제기하면서 퇴진 요구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북도지부장은 수년 전 한 회원을 집단폭행해 집행유예 2년을 받은 ‘무자격자’다.

무엇보다 황규승 현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황 회장이 오랫동안 중앙회 부회장과 경기도지부장을 겸직하면서 주택사업과 골재 사업 비리 등에 깊이 관련돼 있다는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강 아무개 전 회장(현 경남도지부장)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이 가시지 않고 있다. 여러 회원은 “황 회장이 퇴진하고, 전우회 중앙회와 도지부의 불법 비자금 등에 대해 전면적인 수사를 벌일 것”을 요구한다. 대구·광주·전북 지부의 일부 회원은 황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서울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배상환 고엽제전우회적폐청산위원회 위원장은 “3인방과 핵심 지부장들이 20년 이상 자리를 지키면서 그들만의 강력한 종신제 비리 동맹을 구축했다”고 질타했다. “회원들을 관제 데모에 강제 동원한 종착역은 결국 연 1천억원대의 공공기관 수익사업, 곧 막대한 돈이었다. 회원들한테 한 푼도 나누지 않고 자신의 배만 불렀다. 공공기관 수의계약을 따낼 땐 깡패짓을 서슴지 않았고, 바른말 하는 회원들을 잔인하게 집단폭행했다.” 2017년 4월 만들어진 적폐청산위원회는 전우회의 ‘비리 청산’을 요구하며 내부고발을 이끌고 있다.


간부 상이5급 다수 “허위 가능성”

특히 3인방과 핵심 지부장 다수가 상이 등급 5급 이상이었다는 사실에 회원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전우회 전직 직원의 증언과 메모에 따르면, 3인방의 상이 등급은 각각 2급, 3급, 5급이었다. 서울과 대구·대전·경남 등의 핵심 지부장은 모두 5급이었다. 상이 5급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매달 162만3천원(60살 이상)의 보상금을 평생 지급받는다. 고엽제 후유증 환자 중 상이 5급 이상은 6639명으로 전체 9만2901명의 7.1%에 그친다.

간부들의 상이 등급 내용을 <한겨레>에 알린 전직 직원은 “이형규 전 회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간부는 등급을 받기 쉽다고 알려진 말초신경병”이라며 “보훈처와 보훈병원을 압박해 받아낸 허위 등급일 가능성이 높다”며 전면 재조사를 요구했다. 김성욱 전 사무총장과 정 아무개 대구지부장은 2011년과 2013년 국민훈장 목련장까지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우회는 웬만한 중견그룹 뺨치는 문어발식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가장 규모가 컸던 불법 주택사업을 빼고도, 연간 매출이 1천억원대를 넘어선다. 2017년 국가보훈처에는 18개 수익사업에서 1118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보고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도로공사, 국방부, 지방자치단체 등 돈 되는 사업 거리가 있는 모든 공공기관이 전우회의 ‘밥’이었다. 4대강을 낀 지자체에서 4대강 준설토를 받아 모래를 팔고, 도로공사에서 고속도로 시시티브이(CCTV) 설치사업을 따내고, 국방부에 식음료를 납품하고, 지자체에 종량제 쓰레기봉투와 하수처리시설을 공급한다. 보훈병원과 고속버스터미널의 가게를 임대받고, 장례사업을 벌이고, 주차장·청소·노점상단속 등의 지자체 용역사업도 벌인다.

공공기관 수의계약을 따내는 과정에서 전우회는 관련 법(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을 악용하고 치외법권을 누렸다. ‘국가보훈처의 승인을 받은 사업만 수행할 수 있다’, ‘해당 사업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 ‘회원 복지를 위해 수익금을 써야 한다’는 세 가지 대원칙을 깡그리 무시했다. 몇몇 사업을 들여다보자.

2003년 전우회가 주택사업에 뛰어들었다. 보훈처 승인은 아예 받지 않았다. 전우회의 이름만 빌렸을 뿐 전적으로 외부업체(대표 ㅎ 씨)가 직접 수행한 사업이었다. 전우회 계좌로 수익금이 1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불법이었다. 주택사업 실무를 맡았던 전우회 전 직원의 말이다.

“전우회는 정기적으로 18개 수익사업의 사업소장 회의를 연다. 그때마다 외부업체 대표 ㅎ 씨가 주택사업단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주택사업이 합법적인 전우회 사업이 아니라는 걸 실무자인 나조차 몰랐다. 정말 감쪽같이 속았다. 검찰 수사를 받고야 경기 파주와 운정지구, 위례지구, 오산세교, 평택에서 벌인 수천억원대 주택사업이 희대의 대형 사기극이었음을 알게 됐다. 3인방과 ㅎ 씨, 4명이 오롯이 수익을 챙겼다.”

주택사업에서 단맛을 톡톡히 본 3인방은 2011년 4대강의 모래와 자갈을 선별해 판매하는 골재사업에 뛰어들었다. 2013년까지 경기 여주시, 충남 공주시, 전남 나주시, 경북 칠곡군으로부터 438만㎥의 준설토를 수의계약으로 사들였다. 매입대금만 240억원에 이르는 고수익 알짜 사업이었다. 이 또한 국가보훈처 승인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2014년 감사원 감사를 받고야 사후 승인을 받았다. 당시 준설토 사업 감사를 하다 퇴직한 전직 감사관은 “감사원과 보훈처가 전우회의 불법 사업 추진의 문제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사실상 사업 지속을 용인하는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자체적인 골재사업 역량이 있을 리가 없었다. 외부 전문업체에 ‘고엽제전우회’ 이름만 빌려주고 손쉽게 대가를 챙겼다. 전우회는 여주 남한강 사업 시작 4년 뒤인 2015년에 준설토 품질이 떨어진다는 억지를 부려 여주시로부터 최초 매입대금을 77억원이나 감액받는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공주시에서도 똑같은 수법으로 10억3천만원을 감액받았다. 김영자 여주시의원은 “전우회의 부당한 감액으로, 77억원의 여주시 손실이 초래됐다”고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한다. 전체 감액 대금 87억원이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갔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대목이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사업(수지 사업)은 국가보훈처 승인이라는 절차를 거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전우회가 직접 사업을 꾸릴 내부 역량은 없었다. 제3의 사업체인 충남 홍성의 ㅅ 사에 봉투 생산을 맡겼다. 최근 ㅅ 사가 파산 위기를 맞은 뒤로는 묵은 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전우회의 수지 사업 매출은 2017년 66억원이었다. 내부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수지사업소장을 맡은 ㅇ 씨가 20년간 자기 사업으로 운영했다. 최근 전우회 비리가 터지면서 영업이 큰 차질을 빚었고 사업소의 현금이 고갈됐다. 그러자 ㅇ 씨가 그간 막대한 뒷돈을 뜯어간 전우회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김성욱 전 사무총장 등한테 상납한 금액이 총 50억원대라는 소리가 들린다.”, “ㅇ 씨는 ㅅ 사 공장을 빌려 봉투를 생산했다. 그런데 ㅅ 사에 지급한 임차료가 지나쳤다. 임차료 중에서도 상당액이 김 전 사무총장 등한테 흘러가는 구조였다.”, “18개 수익사업의 연쇄 파산이 우려된다. 비리가 터지면서 공공기관 매출이 감소하고, 새로 수의계약을 따기도 어려워졌다.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 고엽제전우회의 전국 200여 지회에 배치된 환자 이송용 구급차. 관제데모 인력 동원 때 불법적으로 이용됐다. 강재훈 선임기자

공공기관과 수의계약 맺은 뒤 외부업체에 위탁 주고 뒷돈 챙겨
수의계약 안 해주면 찾아가 ‘행패’, “똥물 뿌리고 썩은 고등어 구워”

관제데모 앞장선 대가 비리 용인 “조윤선 전 장관과 전우회 각별
회관 건물 살 때 60억원 보조금, 청 행정관도 수시로 사무실 방문”

피우진 체제 보훈처, ‘비리 척결’ 내세우면서도 힘있게 추진 못해
“수익사업 폐지, 보훈단체 통폐합 등 근본적인 개혁 나서야 할 때”



“깡패짓 사업, 배워도 못되게 배웠다”

보훈단체 수익사업의 원조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다. 자신들이 사업을 하지 않고 제3의 사업체 사업장을 빌리는 수법은 상이군경회와 전우회가 판박이다. 상이군경회는 2017년 71개 사업소에서 1803억원의 수익사업 매출을 올린 것으로 국가보훈처에 보고됐다. 상이군경회 관계자는 전우회의 수익사업 행태를 대놓고 깎아내렸다.

따라 배워도 아주 못되게 배웠다. 도둑놈 행패를 부린다. 닥치는 대로 막 주워 먹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고엽제가 가장 열심히 관제 데모에 나섰다. 상이군경회만 해도 이젠 회원들을 억지로 동원하기 쉽지 않다. 그 빈틈을 고엽제가 파고들었다.

‘도둑놈 행패’로 공공기관 수의계약을 따낸 전우회 주역들을 만났다. 공공기관이 수의계약을 쉽게 해주지 않을 때 완력으로 나선 4명의 ‘주연배우’들이다. 이들은 해당 기관을 찾아가 옷을 벗은 채 칼을 휘두르고, 사방으로 똥물을 뿌리고, 자동차 밑으로 발을 집어넣어 자해하는 등 막무가내 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썩은 고등어를 구우면 냄새가 정말 고약해 참을 수가 없다. 공공기관 직원들이 질려서라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ㅇ 씨)고 한다. 다른 ㅇ 씨는 “(3인방한테) 속았다”고 한탄했다. “주택사업 할 때 파주시청에서 발가벗고 칼을 들었다. 4대강 준설토 사업 때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수의계약을 다 받아냈다. 3인방이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전우회에서 마음이 완전히 떠났다. 일한 놈 따로 있고 먹는 놈 따로 있었다. 회원들을 관제 데모에 동원하고 자신들 뱃속만 불렀다.” ㄱ 씨와 또 다른 ㅇ 씨도 “이제 고엽제 쪽 쳐다보기도 싫다”고 말했다.

법 위의 폭력은 전우회원들을 길들이는 무기이기도 했다. 3인방에게 대들거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회원들에겐 잔인한 집단폭력을 서슴지 않았다. 태권도 9단이라는 전북도지부장 이 아무개 씨는 2008년 새벽 전우회원 18명과 구급차 3대에 나눠 타고 전남 곡성으로 출동했다. 모텔에서 잠자던 회원 ㅇ 씨를 깨워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12주의 상해를 입혔다. 회원 ㅇ 씨는 독단적인 중앙회 운영의 문제점을 제기하던 입바른 회원이었다. 당시 집단폭행에 가담한 도지부장 이 씨는 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배상환 적폐청산위원장은 “전우회가 검찰·경찰과 가깝고 법에도 밝아 불법을 밥 먹듯 저지르고도 처벌을 잘 피해 나갔다”며 “섣불리 비리를 건드렸다가는 거꾸로 약점이 잡혀 감옥에 들어가기 일쑤”라고 말했다. 배 위원장 자신도 3인방과 몸으로 맞서다 두차례 구속을 당했다.

배 위원장은 “전우회의 힘의 원천은 잘못 꿰인 관제 데모였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와의 관제 데모 결탁 정황은 2017년 초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처음 언급했다. 2014년 6월 당시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전우회를 동원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판결’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도록 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전우회 직원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조윤선 전 장관과 전우회는 각별한 사이였다. 2015년 전우회의 서초동 회관 건물 매입 때도 정부 보조금 60억원을 받도록 도움을 주었다. 전우회에선 그해 총회에 조 전 장관을 특별히 모셔 감사패를 증정했다. 정무수석 때는 그 아래 허 아무개 행정관이 수시로 전우회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관제 데모가 많을 때는 한 달에 네댓차례 오기도 했다. 회장, 사무총장과도 자주 조찬 모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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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보훈처 실망감 커져”

많은 전우회원은 박승춘 체제의 국가보훈처를 전우회 비리의 ‘공범’으로 지목한다. 박 전 처장은 이명박 때인 2011년 2월부터 박근혜가 탄핵당하여 쫒겨나던 2017년 5월까지 무려 6년 3개월 동안 보훈처장을 역임하며 국가보훈처와 보훈 정책을 좌지우지했다. “박 전 처장이 전우회를 관제 데모에 앞세우고 그 대가로 수익사업 비리를 용인해준 든든한 권력 배후였다”는 것이 회원들의 주장이다.

피우진 처장 체제의 보훈처는 과거 유산을 뿌리 뽑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수익사업 비리를 막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고 있다. △수익사업 승인의 유효기간(3년) 신설 △보훈단체에 적용되는 투명한 재무회계 기준 마련 △사업 정지와 과태료 등 실효성 있는 처벌 규정 마련 등을 약속하고 보훈단체 관련 5개 법 개정에 나섰다. 하지만 보수 정치권과 보훈단체의 반발에 밀려 힘있게 대책을 추진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독자적으로 비상대책위와 개혁추진위를 꾸린 특수임무유공자회, 상이군경회도 내부 개혁의 시동을 걸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수익사업 전면 철폐, 회장 직선제 도입, 보훈단체의 통폐합과 같은 굵직한 개혁방안을 내놓는다. 개혁 요구가 높은 만큼 “과거 사람들에게 포위된 피우진 체제”에 대한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보훈처가 더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근본적이고 과단성 있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다 나랏돈이고 10만 회원 돈인데, 그들 뱃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