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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공사로 ‘용산의 상징’ 파헤친 국방부

불법 공사로 ‘용산의 상징’ 파헤친 국방부
영내 체육시설 만든다며 구청 인가 없이 야산 깎아
풍수학상 ‘용의 머리’ 해당… 용산구 녹지구상과도 배치

[경향신문] 고영득·정희완 기자 | 입력 : 2019.04.15 06:00:02 | 수정 : 2019.04.15 06:01:01


▲ 국방부가 영내 체육시설 공사 현장에 세운 입간판에 착공 시점이 용산구가 행정절차에 돌입하기 이틀 전인 3월 20일로 기재돼 있다(왼쪽 사진). 14일 무궁화 동산으로 불리는 야산이 국방부의 공사로 거의 깎여 평평해졌고, 땅 고르기 작업이 완료된 곳에는 건축 자재들이 놓여 있다. 정희완 기자

국방부가 관할 용산구청의 허가도 받지 않고 불법으로 체육시설 조성 공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사 구역은 용산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곳인 데다, 멀쩡한 녹지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구청의 녹지 축 구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14일 국방부와 서울 용산구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 3월 20일 영내에 풋살장과 테니스장, 라커룸 조성 공사를 시작했다. 국방부는 직원들의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해 예산 8억1000만원을 들여 이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방부 영내는 국유지이지만 도시계획시설(공공청사)로 분류돼 있어 시설을 신축하려면 용산구의 인가가 필요하다. 국방부는 3월 6일 테니스장 등을 조성하는 내용의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용산구에 신청했고, 용산구는 3월 22일부터 열람공고 및 관계부서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국방부는 용산구가 행정절차에 들어가기 이틀 전부터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아직도 용산구의 인가 여부는 결정 나지 않았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치단체장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벌이는 행위는 불법이다. 실시계획 변경 인가를 받지 않고 사업을 진행하면 구청장이 인가 취소 및 공사 중지를 명할 수 있다. 시공업체는 이미 야산을 깎아 땅 고르기를 마쳤고, 현장엔 건축자재들이 널브러져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사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일부 공사를 한 것은 사실”이라며 “폐건물 등 불필요한 시설물을 정리하고 안전상 필요한 조처를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용산구 측은 현장을 직접 확인한 후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공사 부지는 풍수적으로 ‘용의 머리’로 알려져 있다. 용산 지명이 ‘용’에서 유래하고, 용산의 지기(地氣)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부 반대로 과거에도 개발을 못 한 곳으로 전해진다. 2004년엔 용산의 명맥을 잇는다며 이곳에 흙을 더 쌓아 올리고 무궁화를 심어 ‘무궁화동산’으로도 불린다. 이런 이유로 국방부 내부에서조차 이번 공사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녹지구역을 테니스장 등으로 활용하려는 국방부 구상은 도시공원을 보호하면서 시내 곳곳에 나무를 심어 미세먼지를 잡고 도심 열섬현상도 막겠다는 서울시 정책에 역행하는 조치다. 주한미군 부지를 생태공원(용산공원)으로 조성해 남산~용산공원~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 축을 만들겠다는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구상과도 어긋난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장은 “한번 훼손하면 복원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드는 만큼 용산의 상징성을 고려해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사안”이라며 “일단 공사를 중단하고 폭넓은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단독]불법 공사로 ‘용산의 상징’ 파헤친 국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