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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어이, 이것 좀 치워” 농협물류 화물차 기사 임씨가 겪은 수모와 갑질

“어이, 이것 좀 치워” 농협물류 화물차 기사 임씨가 겪은 수모와 갑질
노조탈퇴 거부하자, 계약 해지당한 농협물류 화물트럭 기사들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04-24 19:21:53 | 수정 : 2019-04-24 19:21:53


▲ 2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광장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2019.04.24. ⓒ뉴시스

“인간적으로 너무 하잖아요.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아버지 제삿날만이라도 시간을 좀 달라는 건데, 그걸 못해주겠다니. 너무한다고 항의라도 하면, 다음날 보복배차를 보내고. 그래서 우리도 참다못해 노조에 가입한 거예요.”

농협물류에서 8.5톤 화물트럭을 몬 지 올해로 8년 됐다는 임 모(60대) 씨. 24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특수고용노동자 노조 할 권리 보장 촉구 기자회견’에서 만난 그는 그동안 농협 농식품 물류센터 직원으로부터 받았던 각종 수모와 갑질을 토로했다.

온갖 수모를 다 참아왔던 그였지만, 아버지 제사만큼은 한으로 남았다.

“5월에 아버지 제사가 있다는 거, 그 사람들도 다 알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밤에 지내던 제사를 낮에 지내는 식으로, 어떻게든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 해는 아예 아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 제사만큼은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는데…”


임 기사와 동료들이 겪었던 수모

임 씨는 원래 프로골퍼였다. 골프장에서도 일하고, 레슨도 하면서 소소하게 먹고 살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골프장 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고, 부업이 필요했다. 밤에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인으로부터 지금의 일을 소개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1억이 훌쩍 넘는 화물트럭을 할부로 구입하고 수 년 동안 몰다보니 생업이 됐다. 최근엔 할부금도 모두 갚았다고 했다. 하지만 워낙 운행이 많다보니, 찍힌 운행거리가 70만km을 넘어섰다. 1~2년 뒤엔 다시 차량을 바꿔야 한다며, 걱정을 표했다.

그런데 차량을 교체해야 하고, 고액의 할부금을 내느라 허덕이는 것보다 더욱 그를 힘겹게 하는 게 있었다. 바로 인격을 무시하는 농협물류 배차 담당자들의 ‘갑질’이었다.

임 씨에 따르면, 한참 나이가 어려보이는 직원이 “어이 임 기사, 이것 좀 치워봐”라는 식의 지시를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고 한다. 또 자신이 전화를 건 시간에 다른 동료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며 휴대전화 검사를 하고, 수많은 직원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호통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수술부위 통증으로 일을 쉬는 날엔 해고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다고 그는 전했다.

또 그는 “배차담당 직원에게 밉보이기라도 했다간, 보복배차를 당하기 일쑤”라고 한탄했다. 평소 300km 가량 운행했다면, 밉보인 다음 날엔 평소보다 훨씬 먼 곳으로 배차를 받고 500km를 달려야만 하는 식이었다. 운송거리가 200km 늘었다고 해서 임금이 오르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배차 담당자들의 갑질은 비단 그에게만 국한되는 일은 아니었다. 한 화물트럭 기사는 보복배차를 감당할 수 없어 “어렵다”고 말하자, 농협물류 담당자에게서 “그럼 차 빼”라는 답을 들어야만 했다. 불만이면 그만두라는 말이었다. 화물트럭 기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시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농협물류 안성센터 화물트럭 기사들이 지난 3월 대거 노조에 가입한 이유였다. “이런 식으론 일을 할 수 없다”며 전체 인원 120명 중 80명가량이 몰래 노조에 가입했다고 한다.

▲ 농협 측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날, 이같은 확약서에 서명할 것을 노조에 강요했다. ⓒ화물연대 관계자


“노조 가입하자, 담당자 태도가 달라졌다”

“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들은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배차를 담당하는 농협 직원이 제게 하는 말이, 여기 왔으면 다른 사람(화물트럭 기사)들과 어울리지 말고, 모임 같은 거 하지 말고, 일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라. 그런 말을 했어요. 처음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죠.”

임 씨 등 동료 화물트럭 기사들에 따르면, 120명의 기사 중 80명이 노조에 가입한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자, 그날부로 배차 담당자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들은 “기사님, ○○ 해주실 수 있을까요?”라며, 갑자기 공손한 태도로 자신들을 대하는 배차 담당자의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고 말했다. 또 회사로부터 ‘5% 임금을 인상하고, 기사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답변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잠시나마, 기사들은 현장이 “나아지는 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합의한 대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러 간 날, 노조 대표자는 사측으로부터 처음 보는 확약서를 받았다. 계약서를 쓰고 싶으면, ‘노조를 탈퇴하고, 운송거부 및 단체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는 확약서였다. 농협 측은 “3월31일까지 확약서와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회사와 맺은 계약이 종료할 것”이라고 기사들에게 통보했다.

노조 조합원 전원은 이 확약서 서명을 거부했고, 농협물류는 정말로 화물연대 조합원 전원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화물트럭 기사들은 이같은 사측의 조치가 부당하다며 거리로 나섰다. 계약이 해지됐으니, 파업을 원치 않더라도 파업을 하는 게 된 셈이다.

▲ 폭력사태 ⓒ화물연대 조합원 영상 갈무리


벼랑 끝으로 몰리는 화물트럭 기사들

화물트럭 기사들이 저항하자, 농협물류는 안성 물류센터를 폐쇄하고, 물량을 평택 등으로 빼갔다.

경찰은 농협물류의 조치에 항의하는 화물트럭 기사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한 트럭기사는 농성 텐트와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에 목이 졸리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트럭기사는 분신 시도를 하려고 했으나, 동료 기사들이 제지해 사고를 막았다.

지난 22일에는 농협물류가 물량을 빼돌린 평택센터에서 비조합원 차량들과 실랑이가 붙어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노조에 따르면, 당시 노조 조합원 4명은 비조합원 차량이 많이 서 있는 곳에서 파업에 함께 해 달라 호소하는 선전전을 진행했다고 한다. 선전전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중, 비조합원 20여명이 방송차량 문을 열고 욕설과 폭행을 했고, 이 과정을 촬영하던 조합원 한 명이 방송차에서 끌려나와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이 현장으로 달려갔고, 폭행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다시 양측 간 시비가 붙어 쌍방 폭행사태가 발생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 관계자는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비조합원을 폭행했다며 일부 사실을 누락해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청와대 앞 기자회견은 민주노총 특수고용대책회의와 전국농민총연맹,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기자회견엔 천춘배 화물연대본부 부본부장과 화물연대 서경지부 농협물류분회 조합원들이 참석해 그간 농협물류 측으로부터 당한 수모와 농성 과정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의 파업은 이날로 24일째에 접어들었다.


출처  “어이, 이것 좀 치워” 농협물류 화물차 기사 임씨가 겪은 수모와 갑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