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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독일 노조방해 망신에도… 전 세계 공장서 ‘무노조 공법’

삼성, 독일 노조방해 망신에도… 전 세계 공장서 ‘무노조 공법’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 ③무노조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서도 ‘무노조 원칙’
문제사원 색출하고, 소셜미디어까지 통제
하청에도 무노조…어용노조 만들기도
독일·헝가리·타이·말레이서 노조파괴
무노조는 ‘저임금 유지’ 핵심 전략

[한겨레]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옥기원 김완 이재연 기자 | 등록 : 2019-06-25 04:59 | 수정 : 2019-06-25 09:55


▲ <한겨레>가 지난 4월부터 삼성전자 아시아 주요 생산 공장의 노동조합 활동 자유 실태를 조사했다. 사진은 베트남 박닌공장 전경. 조소영 <한겨레티브이> 피디

“문제사원(MJ) 일거수일투족 감시”, “노조 설립 시 주동자 해고, ‘어용노조’ 만들어 세 확산 방지”, “가정사(이혼), 금전 문제 등 모든 방법 동원해 목표 달성”

삼성이 작성한 ‘노사관리 기본지침’(1989)과 ‘에스(S)그룹 노사전략’(2012) ‘조직 안정화 방안’(2014) 문건 등에서 드러난 노조 파괴 전략의 일부다. 삼성은 한국에서 사찰과 미행, 폭행, 협박, 해고 등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무노조 경영’이란 원칙을 지켜왔다. 국외 공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삼성의 노조 파괴 행태는 이 기업이 진출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흔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끊임없이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 4월부터 삼성전자 국외 공장에 노동조합 설립 및 활동의 자유, 곧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지 실태를 취재했다.


문제사원 색출, 소셜미디어까지 통제

삼성은 나라 밖에서도 노동자들의 집단행동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달 중순 베트남 박닌 삼성전자 공장 앞에서 <한겨레>와 만난 노동자들은 “인사부가 소셜미디어(SNS)까지 통제한다. 관리자에게 불려가 왜 회사에 관한 비판 글을 올렸냐고 혼난 직원도 있다. 회사 비판 글이 올라오면 바로 (관리자에게) 보고할 것을 교육받는다”고 말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집단행동을 하면 보복이 잇따랐다. 한 베트남 노동문제 전문가는 지난 2014년 박닌 공장 생산라인 한 팀(약 4명)이 관리자에게 높은 노동강도에 대해 항의했다가 순차적으로 해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처음엔 징계에 그쳤으나 “다시는 항의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해고로 이어졌다고 이 전문가는 증언했다.

노조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문제사원’을 색출해 징계하는 수법도 국내와 마찬가지였다. 인도 노이다 공장에서 14년간 일했던 찬데르 와티(41)는 <한겨레>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노조 결성을 추진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동료로부터 ‘내일 파업하고 공장 밖에서 시위할 것’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이 문자를 다른 동료에게 전달했는데 관리자가 노조 ‘리더’냐고 추궁하더니 사표를 쓰라고 했다. 억울하다고 해명했지만 결국에는 잘렸다. 2011년 2월 9일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와티는 삼성을 상대로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 중이다.

▲ 인도네시아 금속노동자연맹 소속 노조원들이 2012년 12월 삼성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자카르타 중심가에 있는 대통령궁까지 행진하고 있다. 에카 니크마툴후다 프리랜서 사진기자 제공


베트남에선 ‘공산당=노조’

삼성전자 베트남 박닌과 타이응우옌 공장은 사실상 무노조 사업장이나 다름없었다. 노조를 표방하는 단체는 있지만, 노동자보다는 회사와 더 협력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노동법상 노동자들은 유일한 노조인 베트남노동총연맹(VGCL) 소속 노조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삼성 노조는 이 연맹 소속이다. 베트남노동총연맹 위원장은 공산당 중앙위원이 맡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어 베트남의 노조는 사실상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익명을 요구한 베트남 노동단체 관계자는 “삼성은 어용노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복수노조가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편다. 삼성이 공산당과 관계를 잘 유지하면 노조 목소리를 통제할 수 있다. 사실상 무노조 상황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하청에도 ‘무노조’ 원칙 강요

삼성의 무노조 원칙은 하청 사업장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삼성 하청 사업장 17곳(전체 80여곳 추정)이 2012년 전후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금속노동자연맹(FSPMI)에 가입했지만, 삼성의 압력으로 모두 와해됐다.

노조 설립과 파괴 과정을 지켜본 이스마일 금속노동자연맹 교육조직국장은 “삼성은 하청 사장들에게 공문을 보내 노조원을 해고하고 노조를 없애라고 요구했다. 이후 물량을 끊거나 삼성이 공급한 기계를 회수하는 방법으로 보복했다”고 말했다.

삼성 관리자가 직접 하청 노조원을 찾아가 돈을 건네며 노조 탈퇴를 종용한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업장은 노조 결성 1~2년 안에 노조를 없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청이 끊겨 사업을 접어야 했다. 현재 금속노동자연맹 소속 삼성 하청 노조는 한 곳도 남아 있지 않다.

노조 설립 방해와 와해 행위는 전 세계 대다수 나라에서 노동법 위반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중 하나인 결사의 자유 협약에도 위배된다. 삼성은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현지 사업장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타이, 헝가리, 말레이…독일선 제소당해

삼성 국외 공장의 노조 파괴 역사는 짧지 않다.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1995년 삼성전자 독일지사 종업원평의회 결성 방해 사건이다. 독일 산별노조인 상업은행보험노조 발표를 보면, 독일 지사에서 노사협의체 격인 종업원평의회를 만든다는 소식에 한국 본사 노아무개 부사장이 독일 지사에 “평의회가 설립되면 지사를 폐쇄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보냈다. 평의회 설립을 주도한 노동자 5명이 해고됐다. 하지만 삼성은 독일 노동재판소에 제소당했고, “평의회 구성을 보장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도 삼성은 계속 무노조 경영을 밀어붙였다.

말레이시아 전기산업노조가 1999년 6월 삼성전자 노조 설립을 선언하자 한국인 관리자들은 노조원들에게 탈퇴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말레이시아 노동조합청이 삼성전자는 전자산업에 속하므로 삼성전자 노조는 전기산업노조에 가입할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을 내면서 노조 설립 시도가 허무하게 무산됐다. 노조는 삼성이 정부를 압박해 유리한 결론을 얻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타이 삼성전기에서도 2005년 분사 과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을 시도했지만, 삼성은 대표자 7명을 해고하는 방법으로 노조 활동을 무력화했다. 헝가리 삼성전자 공장에서도 1990년대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을 꾸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삼성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무노조는 ‘저임금 유지’ 핵심 전략

삼성은 왜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무노조 원칙을 고수할까? 전문가들은 무노조 경영이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전략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인도네시아 노동단체 립스(LIPS)의 파흐미 소장은 “삼성이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임금과 복지, 노동시간, 생산목표 모두를 직접 통제하기 위해서다. 노조가 없다면 아무리 열악해도 노동자가 집단으로 항의할 방법이 없다. 회사의 비리, 산재 사망 문제가 공개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시아 지역의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이윤을 극대화했다”고 지적했다.

장대업 서강대 국제한국학과 교수는 “삼성의 구조를 뜯어보면 본사-한국공장-국외공장-국외하청이라는 단계별 층위가 존재한다. 초일류 삼성은 아래 단계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만약 노조가 생겨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세진다면 지금의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노조 경영은 삼성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출처  삼성, 독일 노조방해 망신에도… 전 세계 공장서 ‘무노조 공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