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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사법부 반성해야

“사법부서 제동 걸까봐 조용조용 찍었다네”
‘부러진 화살’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
‘석궁테러사건’ 재판 비판...친지에게 5억원 빌려 제작
안성기 사실상 무료 출연...“사법부가 반성 좀 하겠죠”

[한겨레] 송호진 기자 | 등록 : 20111225 20:01



“과연 말이지.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제 초청작으로) 선택할까?”

그는 기자가 펜을 한두 번쯤 만지작거리며 답을 궁리할 틈도 주지 않았다.

“절대. 시대가 어느 때인데, 100년 전에나 호소력 있을 이런 이야기를 세계인들에게 봐달라고 할 수 있겠나. 지금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웃기고 슬픈 일이죠.”

그 ‘서글픈 현실’에 대한 국내 관객 반응은 뜨거운 편이다. ‘블라인드 시사회’(어떤 영화인지 알려주지 않고 관람한 뒤 설문조사하는 것)에서 관객들의 만족도·추천도가 5점 만점에 4점대였다고 한다. 자신감을 얻어 개봉을 한달이나 앞두고 ‘관객 2만명 목표’ 시사회를 하고 있다. 입소문을 키워 저예산 영화의 홍보비용 한계를 극복하려는 뜻도 있다.

정지영(65) 감독이 13년 만에 연출한 신작 <부러진 화살>(내년 1월19일 개봉)은 사법부의 오만한 권력과 비상식을 향해 활을 겨눈 영화다. 2007년 교수 복직 항소심 담당 부장판사에 대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석궁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는 석궁을 몸에 쏘지 않았다는 김 교수의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조사 요구 등이 법정에서 어떻게 묵살되는지 보여준다.

22일 만난 정 감독은 “재작년 배우 문성근씨가 르포소설 ‘부러진 화살’을 권해 읽어본 뒤 ‘이건 영화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3년간 영화를 내놓지 않았으나, 한번도 영화를 내려놓은 적 없다”는 그가 준비하던 여러 작품들이 교착 상태에 있을 때, 이 실화와 만났다.


“피고인(김 교수)이 법정에서 법조항을 거론하며 판사랑 입씨름을 했다는 재판 상황 자체가 너무 재밌었죠. 실체에 다가서는 미스터리 형식도 있었고.”

그는 복역중이던 김 교수(올해 1월 4년 만기출소)를 면회도 하고, 캐릭터 구축을 위해 편지도 수차례 주고받았다. ‘김 교수 혼자 극을 어떻게 끌고 가나’란 고민은 김 교수를 변론한 박훈 변호사를 만나면서 사라졌다.

“재판 자료를 받으러 간 건데, 이 사람도 재밌더라고. 말끝마다 욕에, 술 먹으면 더하고. 아주 급진적인 친구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김 교수와 박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재밌겠다 생각한 거죠.”

과연 그렇다. “(사법부조차) 법을 안 지켜서 문제이지 법은 아름다운 것”이란 김 교수(안성기)와 “법은 쓰레기”란 박 변호사(박원상). 두 이질적인 캐릭터가 다투며 빚어내는 ‘앙상블’은 사회성 짙은 이 영화가 대중성까지 획득하도록 이끈다.

1년여간 시나리오를 쓴 감독은 친지한테서 순제작비 5억여원을 빌렸다. 그는 시나리오를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을 같이 한 배우 안성기에게 건넸다. 그는 ‘세가지’를 얘기했다.

“돈이 없다. 그래서 (교통비 수준 외엔) 출연료가 없다.” “이 작품이 정치·사회적으로 껄끄럽다.” “난 당신과 사회적으로 껄끄러운 내용이었던 <남부군> <하얀 전쟁>을 같이 해서 성공했다. 이 작품도 안성기가 하면 성공할 것 같다.”

다음날, 안성기는 “하겠다”고 연락했다. 정 감독은 “톱배우인 안성기가 주연으로 확정되면서, 다른 배우와 국내 최고 스태프 구성이 ‘쭉쭉쭉’ 풀렸다”고 했다. “과연 이 영화를 그들이 할 수 있을까 싶어 아예 대기업 투자자와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정 감독은 “제작비 여건 탓에 촬영 장소는 무료로 제공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찍었다”며 웃었다.

영화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이 판결에 대한) 사법부의 부끄러움은 영원할 것” 등의 대사를 통해 상식적인 주장을 외면하는 사법부를 날카롭게 겨냥한다.

“사법부가 국민한테서 권한을 위임받고도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오만함이 문제죠. 진정한 양심을 가진 판사라면, 이 영화를 보고 사법부의 지나친 권위의식, 부당한 권력이란 걸 알고도 스스로 용서하고 넘어가는 사법부의 오만에 대해 반성하리라 봅니다.”

그는 사법부 관계자들이 영화 제작에 간섭할까봐, “조용조용히 찍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 등도 마음속으로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지만, 그러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 내용이 공판기록에 뻔히 나오는 건데 문제 제기를 할까? 소송을 하면 당시의 (문제가 많았던) 재판을 다시 들춰내야 하는데 사법부가 그럴 수 있을까?”

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는 두 사람(김 교수·박 변호사)을 보면서, 관객들도 부당한 권력에 주눅 들지 않는 용기를 가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이 영화는 메시지의 묵직한 체중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과체중’을 막기 위해 곳곳에서 재기를 부린다. 예컨대 영화 막판 김 교수는 재소자들에게 체벌을 주는 교도관의 이름을 적으며 “우린 인권이 없습니까”라고 따진다. “이름을 적지 말라”는 교도관의 명찰엔 실제 인물의 이름을 살짝 비튼 이름이 적혀 있다. 전 국민이 아는 ‘그분’….

사진 아우라픽처스 제공


출처 : “사법부서 제동 걸까봐 조용조용 찍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