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휩쓴 ‘삼성의 반노동’, 법의 심판대에 직면했다
프랑스 파리법원 삼성전자 예비기소
초국적 기업 노동권 침해 책임 물어
국제 노동인권 단체 “올 것이 왔다”
국내서도 인권경영 의무화 움직임
[한겨레] 김완 옥기원 최성진 기자 | 등록 : 2019-07-03 18:38 | 수정 : 2019-07-03 18:41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글로벌 위기’가 닥쳤다. 프랑스 사법부가 아시아 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를 기소하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노동권 침해 논란을 빚어온 삼성의 전근대적 행태가 삼성의 경영 안정성을 해치는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파리 지방법원이 삼성전자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직접적 혐의는 소비자법에 따른 ‘기만적 상업행위’다. 삼성이 아시아 일부 공장에서 노동권을 침해하면서도 소비자한테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삼성전자가 본사가 있는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서, 그것도 아시아 공장에서 빚어진 노동권 침해 논란으로 기소된 근본적 배경에는 인권경영에 관한 프랑스 사회의 합의가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는 2017년 2월 유럽에서 최초로 ‘인권실천 점검의무’(Human Rights Due Diligence) 법을 만든 나라다. ‘프랑스 기업의 인권실천 책임법’(French Corporate Duty of Vigilance Law)이다. 특히 이 법은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일어난 노동권 침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해서 이뤄지는 초국적 기업의 활동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법에서는 고용인원 5천명을 넘는 대기업의 경우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물론 하청 노동자한테도 인권 및 환경 침해 여부가 있는지를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심각한 인권 및 환경 침해 연루 사실이 적발되면 노동조합과 협력해 대응방안을 수립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3천만유로(약 400억원)까지 징벌적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삼성의 프랑스 현지 고용 규모는 5천명 미만이어서 이번에 이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는 않았다. 프랑스 법원이 소비자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삼성을 기소한 배경에는 삼성의 글로벌 노동권 침해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프랑스 사회의 합의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을 법원에 고발한 프랑스 시민단체 ‘셰르파’와 ‘액션에이드 프랑스’ 등은 <한겨레>가 최근 보도한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를 인용해 “삼성의 아시아 노동자들이 월급 26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1600대의 휴대폰을 조립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프랑스 소비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삼성의 제품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법원의 기소가 삼성한테 위기의 신호라면, 그 징후가 나타나는 곳은 프랑스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핀란드 정부가 인권실천 점검의무 법안 추진을 공식 발표했다. 핀란드는 자국 기업은 물론 자국에 물품을 공급하는 기업 전체에 대해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역시 ‘강제노동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현대판 노예노동 방지법’을 도입했고,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등도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법제화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달부터 핀란드가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차원에서 이른바 ‘노동의 삼성화’ 현상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프랑스 법원의 이번 기소 결정과 관련해 삼성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인도네시아 노동단체 립스(LIPS)의 파흐미 소장은 “전세계 삼성 공장에서 노동착취와 노조탄압, 직업병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동안 삼성은 ‘이주노동자 가이드라인’과 ‘책임 있는 기업연합’(RBA) 행동 규범 등에 따라 현지 노동자 인권을 보호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제는 이런 약속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공장의 노동권 침해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했던 국제 환경노동단체 아이펜(IPEN)의 조 디간지 상임고문은 “프랑스 법원의 기소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미지와 삼성 공장 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오랜 격차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삼성은 한국에서도 검찰의 수사와 중요한 판결을 마주한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본사가 있는 국내에서도 기업의 인권경영 의무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과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이 참여하는 ‘기업인권네트워크’는 지난해 3월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인권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여기에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냈다. 인권기본계획은 정부 인권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담는 기본 틀이다.
정부도 인권단체 등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그해 8월에 나온 인권기본계획에 ‘기업과 인권’을 별도의 장으로 새로 마련했다. 정부는 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기업활동은 인권친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민간기업에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적용하는 방안은 여기에 담기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정부의 3차 인권기본계획에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는 포함돼 있지만, 민간기업은 여기서 빠졌다”며 “노동권 침해가 주로 나타나는 곳은 초국적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인 만큼 민간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도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말 법원에서 조사를 결정한 뒤 진행된 게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입장도 없다”고 말했다.
출처 세계 휩쓴 ‘삼성의 반노동’, 법의 심판대에 직면했다
프랑스 파리법원 삼성전자 예비기소
초국적 기업 노동권 침해 책임 물어
국제 노동인권 단체 “올 것이 왔다”
국내서도 인권경영 의무화 움직임
[한겨레] 김완 옥기원 최성진 기자 | 등록 : 2019-07-03 18:38 | 수정 : 2019-07-03 18:41
▲ 프랑스 파리 중심가인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삼성전자 체험관에 이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프랑스에서 지난 1년 사이 브랜드자산가치와 소비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연합뉴스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글로벌 위기’가 닥쳤다. 프랑스 사법부가 아시아 노동자에 대한 노동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삼성전자를 기소하면서, 세계 여러 곳에서 노동권 침해 논란을 빚어온 삼성의 전근대적 행태가 삼성의 경영 안정성을 해치는 위협 요인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파리 지방법원이 삼성전자를 기소하면서 적용한 직접적 혐의는 소비자법에 따른 ‘기만적 상업행위’다. 삼성이 아시아 일부 공장에서 노동권을 침해하면서도 소비자한테는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삼성전자가 본사가 있는 한국도 아닌 프랑스에서, 그것도 아시아 공장에서 빚어진 노동권 침해 논란으로 기소된 근본적 배경에는 인권경영에 관한 프랑스 사회의 합의가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는 2017년 2월 유럽에서 최초로 ‘인권실천 점검의무’(Human Rights Due Diligence) 법을 만든 나라다. ‘프랑스 기업의 인권실천 책임법’(French Corporate Duty of Vigilance Law)이다. 특히 이 법은 프랑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일어난 노동권 침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해서 이뤄지는 초국적 기업의 활동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법에서는 고용인원 5천명을 넘는 대기업의 경우 직접 고용한 노동자는 물론 하청 노동자한테도 인권 및 환경 침해 여부가 있는지를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만약 심각한 인권 및 환경 침해 연루 사실이 적발되면 노동조합과 협력해 대응방안을 수립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면 최대 3천만유로(약 400억원)까지 징벌적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삼성의 프랑스 현지 고용 규모는 5천명 미만이어서 이번에 이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는 않았다. 프랑스 법원이 소비자법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삼성을 기소한 배경에는 삼성의 글로벌 노동권 침해를 더는 묵과할 수 없다는 프랑스 사회의 합의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을 법원에 고발한 프랑스 시민단체 ‘셰르파’와 ‘액션에이드 프랑스’ 등은 <한겨레>가 최근 보도한 ‘글로벌 삼성, 지속 불가능 보고서’를 인용해 “삼성의 아시아 노동자들이 월급 26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1600대의 휴대폰을 조립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프랑스 소비자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삼성의 제품을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법원의 기소가 삼성한테 위기의 신호라면, 그 징후가 나타나는 곳은 프랑스만이 아니다. 지난 6월 핀란드 정부가 인권실천 점검의무 법안 추진을 공식 발표했다. 핀란드는 자국 기업은 물론 자국에 물품을 공급하는 기업 전체에 대해 인권침해 여부를 확인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역시 ‘강제노동 금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현대판 노예노동 방지법’을 도입했고, 네덜란드·독일·덴마크 등도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법제화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달부터 핀란드가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흐름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차원에서 이른바 ‘노동의 삼성화’ 현상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프랑스 법원의 이번 기소 결정과 관련해 삼성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인도네시아 노동단체 립스(LIPS)의 파흐미 소장은 “전세계 삼성 공장에서 노동착취와 노조탄압, 직업병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동안 삼성은 ‘이주노동자 가이드라인’과 ‘책임 있는 기업연합’(RBA) 행동 규범 등에 따라 현지 노동자 인권을 보호한다고 주장해왔다. 문제는 이런 약속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 공장의 노동권 침해에 대한 보고서를 발행했던 국제 환경노동단체 아이펜(IPEN)의 조 디간지 상임고문은 “프랑스 법원의 기소는 글로벌 기업 삼성의 이미지와 삼성 공장 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오랜 격차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삼성은 한국에서도 검찰의 수사와 중요한 판결을 마주한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 본사가 있는 국내에서도 기업의 인권경영 의무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희망법)과 공익법센터 어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이 참여하는 ‘기업인권네트워크’는 지난해 3월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인권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여기에 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정부에 냈다. 인권기본계획은 정부 인권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담는 기본 틀이다.
정부도 인권단체 등의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그해 8월에 나온 인권기본계획에 ‘기업과 인권’을 별도의 장으로 새로 마련했다. 정부는 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기업활동은 인권친화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민간기업에 인권실천 점검의무를 적용하는 방안은 여기에 담기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은 “정부의 3차 인권기본계획에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는 포함돼 있지만, 민간기업은 여기서 빠졌다”며 “노동권 침해가 주로 나타나는 곳은 초국적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인 만큼 민간기업의 인권실천 점검의무도 법제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말 법원에서 조사를 결정한 뒤 진행된 게 없다. 따라서 이에 대한 입장도 없다”고 말했다.
출처 세계 휩쓴 ‘삼성의 반노동’, 법의 심판대에 직면했다
'세상에 이럴수가 > 정치·사회·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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