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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오사카산 쥐새끼

‘한국인 징용’ 기업에 사업권 선물, “우리나라 대통령이라 보기 어렵죠”

‘한국인 징용’ 기업에 사업권 선물
“우리나라 대통령이라 보기 어렵죠”

위안부 소송에 한국 변호사 한명도 없던 시절
자괴감에 사재 털어 10여년간 관련 변호 맡아

미쓰비시 강제동원 소송 등 6건 동시에 진행
최근 ‘독도는 한국땅’ 일본 법령 발견 개가도

[한겨레] 권은중 기자 | 등록 : 20090122 18:11 | 수정 : 20090123 14:17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일 과거사 피해 소송 전문가 최봉태 변호사

▲ 최봉태 변호사는 한국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뿐 아니라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 대표와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자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이정아 기자

한-일전은, 법정에서도 벌어진다. 축구 한-일전이 벌어지면 한국인들의 응원 열기는 미친 듯이 치솟지만, 이 치열한 논리싸움의 현장에는 관중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최봉태(47) 변호사는 역사의 피해자면서도 일본의 가해를 잊고 사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일본이 저지른 범죄를 증명하는 싸움을 10년 넘게 벌여왔다. 거의 ‘일본 과거사 피해 소송 전문 변호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힘들게 거둬낸 성과들도 눈부시다. 올해 초 일본이 패전 뒤 전후 처리 과정에서 “울릉도와 독도와 제주도는 일본의 부속도서가 아니다”라고 1951년 공포한 법령 ‘정령 24호’를 공개 소송으로 밝혀낸 주역이 최 변호사다. 2005년에도 4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한-일 협정 합의문서 가운데 한국측 문서를 행정소송에서 이겨 공개하게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던 이들이 벌이고 있는 길고 긴 소송전도 그가 맡고 있다.

최 변호사와 일제 피해자들이 치열하게 싸움을 이어가는 반면 정부는 뜻밖의 결정으로 이들의 어깨를 처지게 만들고 있다. 최근 정부는 다목적 위성 아리랑3호의 발사체 제작업체로 미쓰비시중공업을 선정했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으로 성장한 기업에 우리 정부가 앞장서 혜택을 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돈을 벌기는커녕 자기 돈을 털어넣어 가며 일본 관련 소송에 매달려온 최 변호사를 대구 범어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 이번에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것으로 밝힌 일본 법령은 어떻게 찾을 수 있었습니까?
“제가 찾은 게 아니라 재일동포들이 찾은 겁니다. 1999년 일본에서 시작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이 계기였습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그동안 박정희 정권 때의 한-일협정으로 피해보상은 끝났다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먼저 2002년 10월 서울행정법원에 그 근거로 내세우는 한-일 협정의 일본 문서 내용을 공개하라고 정보공개소송을 건 거죠. 승소해서 2005년 문서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일본에는 2006년 12월 제소했고 일본 도쿄지방재판소가 2007년 12월 공개하지 않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외무성이 지난해부터 일부 사항은 먹칠로 지우고 공개했습니다. 그 먹칠한 부분의 내용을 일제 피해자와 일본 시민으로 구성된 ‘일-한 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밝혀낸 겁니다. 이 단체에서 일하는 재일동포 이양수씨의 공이 컸습니다.”

- 일본 외무성이 공개한 문서에 주목할 만한 다른 내용들이 또 있습니까?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공개한 문서 6만쪽 중에서 4분의 1 정도가 먹칠이 돼 있었습니다. 현재 먹칠한 부분도 공개하라고 추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인데 정작 재일동포들과 일본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최 변호사는 일본에서 패소한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을 2000년 한국으로 가져왔다. 일본에서 관련 소송은 졌지만 한국에서 다시 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법정에서도 1심은 지고 말았다. 일본 재판부와 똑같이 배상시효가 소멸됐다는 논리였다. 현재 부산고법에 2심 계류 중인 이 사건은 다음달 3일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 한국 재판에서도 배상시효가 발목을 잡고 있군요.
“전쟁범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효가 적용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재판부는 판례를 따른다며 민사재판 기준인 10년을 적용해서 미쓰비시중공업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소송인데 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는 헌법정신에 반하는 것입니다.”

- 헌법정신 어느 부분에 어긋나는 겁니까?
“우리 헌법 전문에 우리나라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밖으로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미쓰비시가 승소하는 것은 이런 헌법정신을 저버리고 전범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 일본에서 패소해 한국에서 다시 소송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 또 패소했으니 피해자들의 상심이 무척 크겠습니다.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양쪽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일본 정부한테는 승소하고, 기업한텐 패소했습니다. 그래서 고생고생해서 한국에도 관할권이 있다는 논리를 개발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소송을 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법원들은 일본 법원 판결을 그대로 따라가며 기업에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 변호사들조차 황당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해 국가에서조차 피해자에게 정의를 돌려주지 않는데 가해 국가에 그걸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 피해자들이 고령이어서 마음이 급할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진행된 재판에 46명이 참여하셨습니다. 한국 재판에서는 가장 건강한 분 6명이 원고로 참여했는데 벌써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 80살이 넘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집니다. 미쓰비시는 이걸 알고 시간 끌기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 어떤 식으로 시간을 끌고 있습니까?
“미쓰비시중공업 연락사무실이 부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에서 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니까 연락사무소를 없애고 한국미쓰비시중공업이란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법인이 다르다며 법원 서류 송달을 거부했습니다. 노골적인 재판 지연 작전입니다. 법정에서 한국인에게 사과하거나 과거를 청산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나라 우주과학 정책의 핵심 사업인 아리랑3호 발사체 업체를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이유로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결정했다. 지난 11일 아소 다로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뒤 이명박 대통령이 러시아 기업에서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바꾸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 아리랑3호 발사체를 미쓰비시가 맡게 된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
<요미우리>가 보도했던데, 만약 사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강제징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가혹한 노동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전범 회사에 한국의 미래 사업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죠. 우리 국민들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정치인들이 일제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의 상처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안부 할머니 등 일제 피해자들이 2003년에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운동까지 벌어졌던 겁니다.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제의 뒤를 이은 가해자인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한-일 협정으로 경제협력자금을 받아서 수익을 본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수록 일제 피해자를 배려해야 하는데 그 사람들 심정을 헤아리지조차 않습니다. 정리해야 할 것을 정리하지 못하고 책임지지 않으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의 공범이나 다름없는 자세입니다.”

최 변호사의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그에게는 일본정부보다 오히려 우리 정부가 더 넘기 힘든 벽처럼 보였다.

- 이런 한-일 문제 소송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1994년 일본 도쿄대에서 노동법을 공부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의 일제 피해자들이 본격적으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제기한 소송의 일본 법정에 가 봤더니 한국인 변호사는 한 명도 없고 일본 변호사들뿐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 뒤 1998년 징용 피해자 헌법소원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 대학 때 운동권이었나요?
“아닙니다. 고시생이었습니다. 제가 81학번인데요, 그때 학생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부채의식이 있었죠.”

- 지금은 도와주는 변호사들이 좀 늘었나요?
“이 소송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없는데다 일본을 왔다갔다 해야 하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대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시민단체 차원의 노력에도 힘을 쏟아왔다. 정부는 지난해 비로소 일제 강제동원 사망자 유족들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최 변호사는 이들에게 지급된 돈의 5%를 적립해 일제피해자공제조합을 만드는 일에 열심이다. 피해자들끼리 뭉쳐서 한-일 합병 100년을 맞는 2010년 전까지 뭔가를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다.

- 준비 중인 공제조합에선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요?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공제조합을 만들면 저보다 유능하고 똑똑한 변호사들도 고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0명만 참여하면 20억원 정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제 때 받지 못했던 미수금 소송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한-일 피해자 힘 합쳐야 일본 정부도 태도 변할것”

▲ 일 과거사 피해 소송 전문가 최봉태 변호사
최봉태 변호사는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소송은 일본인 전쟁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는 자국민 원폭피해자를 비롯한 전쟁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 피해자들의 연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이처럼 자국 전쟁피해자들에게 사과나 배상을 하지 않는 주요한 원인의 하나로 일본 ‘천황’을 꼽았다. 천황의 전쟁책임론에 대해 일본 내에서 언급조차 금기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피해자 배상이 논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원폭피해자들이다. 일본내 원폭피해자들은 미국과 일본 정부 어느 쪽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본인 전쟁피해자들은 태평양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했음에도 단지 국가가 지급하는 위로금만 받는 실정이다.

최 변호사는 “일본이 자신의 상처도 치료하지 못하는데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느냐”며 “한국 피해자들이 일본 피해자들과 연대해서 이런 문제를 지적해야만 일본 정부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도 원폭피해자들이 많은 만큼 일본 피해자들이 오히려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는 배상 문제를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결국 두 나라 피해자들 모두에게 배상이 돌아가게 되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출처 : ‘한국인 징용’ 기업에 사업권 선물, “우리나라 대통령이라 보기 어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