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주인’(狗咬主人) 검찰을 어찌할 것인가
[한겨레] 김종구 편집인 | 등록 : 2019-09-25 18:14 | 수정 : 2019-09-25 19:22
토사구팽.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된 뒤 일부 보수언론에서 나온 말이다. “적폐청산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니 검찰이 토사구팽 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이야기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에는 검찰을 향해 “꼴좋다”는 비웃음도 담겨 있다. 이런 비아냥거림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일까. 검찰은 갑자기 구팽(狗烹) 대신 구교(狗咬), 즉 주인을 물어뜯는 개로 돌변했다.
최근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는 검찰 수사의 ‘기여’가 적지 않다. 여론의 흐름상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하지만,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와 고도의 언론 플레이가 없었다면 낙폭이 그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지금 대통령을 향해 묻고 있다. “이렇게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조국 장관을 계속 감싸고돌 건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지지율을 잠식하고, 대통령을 겁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찌 ‘구교주인’(狗咬主人)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검찰이 공격한 주인은 실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국민을 상대로 한 고도의 정치 행위다. 공직자 인선을 잘해 민심의 지지가 높아지든, 아니면 잘못된 선택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든, 그 과정은 대통령과 국민의 상호작용이다. 대통령의 인사가 못마땅해 심판을 해도 유권자가 할 몫이다. 그런데 검찰은 넘볼 수도, 넘봐서도 안 될 금단의 영역을 무도하게 침범했다.
검찰의 더욱 큰 죄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점이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도덕과 법률을 뒤섞고, 상식과 이성을 휘젓고, 결국 이 나라를 더 큰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윤리의 깃발이 만방에 휘날릴 것인가. 어림없다. 단지 ‘검찰은 참으로 무서운 조직이구나’ 하는 탄식만 진동할 뿐이다.
사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검찰을 ‘팽’하는 수준은 아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 법안도 공수처한테 검찰을 견제할 만한 충분한 위상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여당이 마련한 검찰개혁안은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거의 그대로 둔 채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을 일부 제한하는 선에서 그쳤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활용한 탓도 있고, 경찰의 인권의식이나 수사능력이 못 미더운 점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타협책이다.
하지만 통제받지 않는 검찰의 직접수사 폐해가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우리는 이번에 똑똑히 목도했다. 따라서 ‘검란’ 이전과 이후의 검찰개혁 방안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주인을 물어뜯은 개를 엄히 벌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삐를 죄어야 한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 등 더욱 강도 높은 방안이 뒤따라야 할 이유다. 문제는 이를 실행에 옮길 현실적 역량이 있는가다.
우선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나경원 토착왜구당 원내대표 자녀들의 특혜 의혹 수사는 왜 안 하느냐”는 등의 말의 위험성이다. 이런 말은 조국 장관 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레토릭’에 머물러야 한다. 나 원내대표뿐 아니라 황교안 대표의 병역면제 의혹 등도 샅샅이 수사해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런 식의 접근이야말로 검찰이 원하는 바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영영 검찰의 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지금 토착왜구당은 검찰 수사에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불은 강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타오르고 있다. 화마가 조만간 야당에 닥칠 것이 분명한데도 언제까지 박수만 치고 있을 것인가.
누구보다 각성하고 분발해야 할 쪽은 여권이다. ‘구교주인’의 상황이 온 것은 결국 주인의 잘못이다. 스스로 얕잡아 보이게 행동했고, 허술한 틈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여권이 보이는 태도도 실망스럽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검찰과 티격태격하는 일차원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검찰개혁을 법과 제도로 완성하는 것은 법무부가 아니라 국회며 결국 여당의 몫이다. 눈앞의 현안에 매몰되지 말고 검찰개혁을 정치권 공동의 사활이 걸린 의제로 끌어올릴 치밀한 전략, 정치적 발상의 전환, 우호적 여론의 확대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구교주인’은 앞으로 일상화될 것이다.
출처 [김종구 칼럼] ‘구교주인’ 검찰을 어찌할 것인가
[한겨레] 김종구 편집인 | 등록 : 2019-09-25 18:14 | 수정 : 2019-09-25 19:22
토사구팽.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이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지정된 뒤 일부 보수언론에서 나온 말이다. “적폐청산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되니 검찰이 토사구팽 당할 처지에 놓였다”는 이야기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에는 검찰을 향해 “꼴좋다”는 비웃음도 담겨 있다. 이런 비아냥거림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일까. 검찰은 갑자기 구팽(狗烹) 대신 구교(狗咬), 즉 주인을 물어뜯는 개로 돌변했다.
최근의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는 검찰 수사의 ‘기여’가 적지 않다. 여론의 흐름상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은 대통령의 지지율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하지만,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와 고도의 언론 플레이가 없었다면 낙폭이 그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지금 대통령을 향해 묻고 있다. “이렇게 지지율이 떨어지는데도 조국 장관을 계속 감싸고돌 건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하고, 지지율을 잠식하고, 대통령을 겁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찌 ‘구교주인’(狗咬主人)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
▲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공격한 주인은 실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는 국민을 상대로 한 고도의 정치 행위다. 공직자 인선을 잘해 민심의 지지가 높아지든, 아니면 잘못된 선택으로 민심이 등을 돌리든, 그 과정은 대통령과 국민의 상호작용이다. 대통령의 인사가 못마땅해 심판을 해도 유권자가 할 몫이다. 그런데 검찰은 넘볼 수도, 넘봐서도 안 될 금단의 영역을 무도하게 침범했다.
검찰의 더욱 큰 죄는 모든 것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점이다. 정치와 사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도덕과 법률을 뒤섞고, 상식과 이성을 휘젓고, 결국 이 나라를 더 큰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이번 검찰 수사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윤리의 깃발이 만방에 휘날릴 것인가. 어림없다. 단지 ‘검찰은 참으로 무서운 조직이구나’ 하는 탄식만 진동할 뿐이다.
사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검찰을 ‘팽’하는 수준은 아니다.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 법안도 공수처한테 검찰을 견제할 만한 충분한 위상과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여당이 마련한 검찰개혁안은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거의 그대로 둔 채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을 일부 제한하는 선에서 그쳤다. 적폐청산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권을 활용한 탓도 있고, 경찰의 인권의식이나 수사능력이 못 미더운 점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타협책이다.
하지만 통제받지 않는 검찰의 직접수사 폐해가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를 우리는 이번에 똑똑히 목도했다. 따라서 ‘검란’ 이전과 이후의 검찰개혁 방안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주인을 물어뜯은 개를 엄히 벌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삐를 죄어야 한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 폐지 등 더욱 강도 높은 방안이 뒤따라야 할 이유다. 문제는 이를 실행에 옮길 현실적 역량이 있는가다.
우선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나경원 토착왜구당 원내대표 자녀들의 특혜 의혹 수사는 왜 안 하느냐”는 등의 말의 위험성이다. 이런 말은 조국 장관 수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레토릭’에 머물러야 한다. 나 원내대표뿐 아니라 황교안 대표의 병역면제 의혹 등도 샅샅이 수사해서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이런 식의 접근이야말로 검찰이 원하는 바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영영 검찰의 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지금 토착왜구당은 검찰 수사에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할 처지가 아니다. 불은 강 건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서 타오르고 있다. 화마가 조만간 야당에 닥칠 것이 분명한데도 언제까지 박수만 치고 있을 것인가.
누구보다 각성하고 분발해야 할 쪽은 여권이다. ‘구교주인’의 상황이 온 것은 결국 주인의 잘못이다. 스스로 얕잡아 보이게 행동했고, 허술한 틈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여권이 보이는 태도도 실망스럽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검찰과 티격태격하는 일차원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검찰개혁을 법과 제도로 완성하는 것은 법무부가 아니라 국회며 결국 여당의 몫이다. 눈앞의 현안에 매몰되지 말고 검찰개혁을 정치권 공동의 사활이 걸린 의제로 끌어올릴 치밀한 전략, 정치적 발상의 전환, 우호적 여론의 확대 방안을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구교주인’은 앞으로 일상화될 것이다.
출처 [김종구 칼럼] ‘구교주인’ 검찰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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