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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방해 금지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창조적’ 무혐의 처분

‘취업방해 금지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창조적’ 무혐의 처분
검사 “‘통신’ 아닌 ‘말’로 노조가입 사실 알려 채용 막은 행위는 죄가 아냐”
[민중의소리] 이승훈 기자 | 발행 : 2019-12-06 19:17:26 | 수정 : 2019-12-06 19:17:26


▲ 지난 2017년 7월 17일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저지를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고공농성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 중단과 블랙리스트 철폐 촉구했다. ⓒ김철수 기자

누구든지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블랙리스트)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선 안 된다. 이는 근로기준법을 통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를 어기면 당연히 범죄다. 그런데, 최근 이와 관련해 황당한 검사의 처분이 있어 사건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하고 있다. ‘통신’을 통해 노동자의 노조가입 정보를 알리지 않고, 직접 만나 ‘말’로 전했기에 죄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6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따르면, 최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은 노조 측이 제기한 ‘삼성중공업 조선소 협력업체의 근기법·노조법 위반 고발사건’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노조 관계자는 “검사는 피해자의 노조가입 사실’을 알린 행위가 ‘통신’이나 ‘기호’의 형태가 아니라, 직접 만나 ‘말’로 전했기에 범죄가 아니라고 한다. 법조문을 이렇게 협소하고 이상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합격이 취소된 이유가 뭐죠?”
“전 회사에 있을 때 노조가입 했다며?”
“그걸 어떻게?”...“소장이 들었대”

사건의 시작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속노조 조합원인 김 모(30대) 씨는 지난해 4월 27일 삼성중공업 조선소 협력업체 A 기업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입사 서류를 제출했다. 3일 뒤인 4월 30일 A 기업 관계자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서류가 통과됐으니 체력측정을 받으러 오라”는 문자였다. 김 씨는 5월 2일 체력측정을 받았고, 합격통보를 받았다. 다음 날인 5월 3일 오전, 회사 관계자로부터 “안전교육을 받으러 오라”는 안내 문자도 받았다.

그런데 약 20여분 뒤, 다시 문자가 왔다. “체력측정 결과에 오류가 있었다”는 불합격 통보였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김 씨는 A 기업 채용 담당자인 총무차장을 찾아가 ‘채용을 취소한 이유’를 물었다. 총무차장은 “당신이 전 직장인 B 기업(삼성중공업 하청업체)에 있을 때 노조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우리 회사) 소장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원청인 삼성중공업으로부터 회사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채용을 취소했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당시 총무차장은 “소장이 B 기업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노조가입 사실을 알게 된 과정을 전했다.

며칠 뒤 김 씨는 총무차장에게 전화해 “노조에서 탈퇴하면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총무차장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 성인이니 알아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근로기준법 제40조(취업 방해의 금지)는 ‘누구든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하고 있다. 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부당노동행위) 2호는 ‘노동자가 어느 노조에 가입하지 아니할 것 또는 탈퇴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거나 특정한 노조의 조합원이 될 것을 고용조건으로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노조는 노조가입을 이유로 채용을 취소한 A 기업 총무차장과 사장이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에 고발했다. 김 씨 측은 채용 과정에서 있었던 대화내용과 문자메시지 등을 녹음파일로 제출했다.

하지만 검사는 그해 9월 28일 “피의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만한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불기소처분했다. 또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아 사건을 맡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도 그해 9월 20일 “검사의 수사지휘 등에 의거, 피의자 모두 취업방해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 조선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사진 ⓒ김철수 기자

검사의 처분이 이해가 안 갔던 노조는 ‘총무차장에게 김 씨의 노조가입 사실을 알린 A 기업 소장’에 대해서도 고발조치를 취했다. 노조 관계자는 “우린 당연히 취업취소 행위 당사자가 (불법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혐의가 없다니, 알려준 사람에 대해서도 고발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다시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총무차장은 최초 진술을 번복하고 자신에게 김 씨의 노조가입 사실을 알린 이가 소장이 아니라고 진술했다.

그런데도, 담당 검사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놨다.

올해 10월 21일, 담당 검사는 이번에도 같은 이유를 들며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불기소결정서’에서 검사는 피의자들을 무혐의 처분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근로기준법 제40조에 따라 처벌되는 행위는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 하에 이루어진 ‘비밀 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하는 행위’로 제한된다. 여기서 ‘통신’이라 함은 타인에게 우편, 전신, 전화, 전기통신 등 통신수단을 이용하여 주고받은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보다) 더 나아가 당사가 간의 직접 대화까지 ‘통신’에 해당한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총무차장은 진술을 번복한 사실은 있으나, 지인으로부터 고발인의 노조가입 사실을 직접 들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고, 고발인과의 전화통화에서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총무차장이 고발인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작성한 비밀 기호나 명부를 본 적 없다고 진술하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의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

법조문을 최대한 편협하게,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모든 피의자의 혐의를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관계자는 “이 얼마나 창조적인 해석인가”라며 혀를 찼다. 그는 “(이런 식이면) 노조가입 사실을 알려 취업을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전화나 우편을 사용하지 말고 직접 가서 그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며 “직접 가서 알려주는 것은 ‘통신’이 아니므로 아무리 취업을 방해해도 검찰은 죄를 묻지 않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법률원 탁선호 변호사는 “근로기준법 제40조의 입법 취지는 자유로운 근로계약 체결을 타인이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그런데 검사의 처분은 사건을) 불기소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40조 입법취지를 전혀 사용하지 아니하고, 통신비밀보호법의 그 통신 개념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무혐의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신비밀보호법과 근로기준법 제40조의 입법취지가 명백하게 다른데, 이렇게 갖다 쓰는 건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말도 어쨌든 미디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탁 변호사는 “종합적으로 보면, 검사는 충분히 근로기준법 제40조뿐만 아니라, 노조법 제81조 2항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판단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출처  [단독] ‘취업방해 금지법’ 위반 사건에 대한 검사의 ‘창조적’ 무혐의 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