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들고 국가시설 지키는데 “단순 경비”라며 “자회사 가라”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직접 고용 약속했지만
공공기관들 인건비 부담 이유 등 직고용 무시
국가시설 정비, 특수경비, 소방 등 자회사 전환
정부는 기준도 못 세우고, 현장 갈등만 커져
공공서비스질 저하 넘어 국민 안전 위협 우려
[한겨레] 옥기원 기자 | 등록 : 2019-12-30 05:00 | 수정 : 2019-12-30 07:44
공공기관에서 특수경비·소방·보안 등 생명·안전 분야 일을 하는 1만여 명의 용역·파견 노동자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시행 과정에서 자회사로 갔거나 갈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관련 업무는 원칙적으로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으로, 정부의 정책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지속하는 ‘생명·안전직 외주화’가 공공서비스 질 저하를 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겨레>가 29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자회사 현황표’와 공공기관이 자체 작성한 ‘정규직 전환 계획표’, 노동조합 인터뷰 등을 취합해 분석한 결과, 공공기관 26곳이 용역과 파견 형태로 일하는 생명·안전 분야 노동자 6,4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로 보내기로 했다. 자회사로의 전환을 추진 중인 3,700여 명을 합하면 전체 규모는 모두 1만1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몸담는 자회사는 공공기관 전체 62곳(설립 예정 포함) 가운데 30여 곳이다.
자회사로 가는 생명·안전 노동자를 직군별로 나눠보면, 공항과 발전소 등 국가 중요시설에서 일하는 정비·시설직이 4,800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개인화기를 지급받는 특수경비직도 3,700여 명에 달했고, 공항보안검색 840여 명, 철도승무원 670여 명, 시스템보안관리직 400명, 승객수송직 300여 명, 소방(시설)직 240여 명 차례였다.
국가 중요시설인 울산항만을 지키는 특수경비 노동자 김정현 씨는 항만 방호를 위해 평소에는 가스총을 차고 근무하지만,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현역 군인과 같은 K2 소총과 함께 실탄을 지급받는다. 하지만 민간 용역회사 소속이던 김 씨는 올해 초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울산항만공사 직원이 되는 대신 새로 생긴 자회사 울산항만관리로 소속을 옮겼다. 항만공사 쪽은 김 씨 등 동료 특수경비직 77명의 업무가 생명·안전 관련 직무가 아니라 “단순 경비 업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청원경찰이던 경비 인력을 외주화해놓고, 이번엔 단순 업무라는 핑계로 자회사로 가라고 했다”며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국가시설 관리를 비용 문제를 들어 자회사로 운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의사)는 “항만과 항공의 특수경비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 확보와 원청의 지시·감독 상황이 빈번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직접 고용해 운영해야 할 주요 직군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 씨처럼 국가 중요시설을 지키는 특수경비직군이지만 자회사로 전환된 인원은 3,700여 명에 달한다. 단일 생명·안전직군 가운데 가장 많다. 특수경비는 공항, 항만, 발전소같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국가 중요시설에서 유사시 총기를 사용해 시설을 방호하는 일을 한다. 울산항만공사를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인천국제공항, 여수광양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발전 5사, 조폐공사 등 국가 중요시설로 지정된 사업장 대부분이 특수경비직을 자회사로 보냈다. 한국수자원공사만 204명의 특수경비직을 직접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들은 특수경비직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로 전환한 이유를 “전환 비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가정보원 지침상 중앙행정부처나 공공기관 등이 국가보안시설의 경비를 직접 고용할 경우 그들의 신분을 청원경찰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 특수경비직의 임금은 경찰공무원에 따르는 처우를 받는 청원경찰의 70% 수준이어서 직접 고용할 경우 30%포인트에 해당하는 인건비가 더 든다는 설명이다.
공항과 발전소, 전력, 수도, 난방시설 등을 정비하는 시설 노동자 4,800여 명도 자회사로 전환됐거나 전환될 예정이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는 항공 등화, 운항 통신 및 전력, 급유시설 등 항공기 운항과 직결된 시설·정비 노동자 1천여 명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로 보냈다. 지역난방공사의 경우 열 수송관 점검·정비 인력 150여 명의 정규직 전환을 명목으로 별도 자회사를 설립했다.
故 김용균 씨가 일했던 발전소 연료·환경설비 운전직 2,500여 명도 직접 고용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회사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발표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에서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별도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고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김용균 특조위’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취지로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직접 고용하라고 권고한 것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발전 5사는 발전소 내 초기 화재 진압과 구조 업무 등을 하는 소방시설직군 150여 명도 자회사로 강제 전환했다. 남부·남동·동서·서부발전 소방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말부터 자회사로 전환된 뒤 중부발전 소방직 20여 명은 1년 넘게 ‘생명·안전직 직고용’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다. 중부발전 소방직 김정주 씨는 “발전소 내 비상상황센터를 운영하고 외부 소방 지원까지 나가는데, 생명·안전직이 아니라는 논리로 자회사행과 퇴사 중 선택하라고 압박받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를 운용·정비하는 노동자 5,600여 명은 직접 고용은 물론 자회사 전환에서도 빠져 전환 제외 직군으로 분류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 5사의 경상정비직 3,600여 명과 한국수력원자력의 방사능 관리 860명을 포함한 원전 시설정비직 2천여 명이다.
생명·안전직 노동자의 대규모 자회사행은 “국민의 생명·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 고용이 원칙”이라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년 7월)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와도 방향이 다르다. 청와대 누리집의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항목을 보면 “상시 지속,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사용 사유 제한의 범위는 실태조사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규정”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용 사유 제한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 공공부문에 기준으로 제시하는 등의 작업을 하지 않아 현장의 혼란을 키웠다. 다만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2017년 9월 한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비정규직 사용 제한이 필요한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 등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받았으나,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는 이를 정책 시행 과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일자리위 관계자는 “당시 생명·안전직 구분이 중요한 화두여서 연구를 의뢰했고, 작성 과정에서 고용부 의견을 반영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생명·안전직의 범위와 직고용 결정은 기관이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이다. 보고서 내용은 알고 있지만, 수백 개 공공기관의 직군이나 직무 환경이 달라서 정부가 일괄적인 지침을 내리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아 의학·노동 전문가 7명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 필수서비스 기준과 유럽연합(EU)국가의 노동법 등을 검토해 비정규직 사용 제한이 필요한 15개 산업과 50여 개 직군을 생명·안전 업무로 분류했다. <한겨레>도 이 기준에 따라 자회사로 간 생명·안전직 1만1천여 명의 수를 도출했다.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다 보니 같은 일을 하는 생명·안전직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공공기관에 따라 달라진 사례들도 발견된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보안검색직과 활주로 조류퇴치직 1,930여 명을 주요 생명·안전직으로 판단해 직고용했는데,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이 두 직군 880여 명을 자회사로 보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 5사 등은 소방(시설)직을 자회사로 전환했지만, 가스공사는 소방직군을 직접 고용할 계획이다. 생명·안전직군이 다수 포함된 한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일자리위원회) 보고서 기준을 따르면 너무 많은 인원을 직고용해야 해 많은 전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원회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노무법인 참터의 유성규 노무사는 “구의역 김 군과 김용균 씨 등의 사고를 겪으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겼지만, 정책이 뒤따르지 않았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취지에 맞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만큼은 직고용하고, 이런 기조가 민간에 확산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총 들고 국가시설 지키는데 “단순 경비”라며 “자회사 가라”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직접 고용 약속했지만
공공기관들 인건비 부담 이유 등 직고용 무시
국가시설 정비, 특수경비, 소방 등 자회사 전환
정부는 기준도 못 세우고, 현장 갈등만 커져
공공서비스질 저하 넘어 국민 안전 위협 우려
[한겨레] 옥기원 기자 | 등록 : 2019-12-30 05:00 | 수정 : 2019-12-30 07:44
▲ 인천국제공항 기동타격대원(특수경비)들이 26일 오후 제1터미널에서 순찰하고 있다. 공항 특수경비직은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주요 생명안전직군임에도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이들 기동타격대원 200여 명을 자회사로 전환할 방침이어서 노동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공공기관에서 특수경비·소방·보안 등 생명·안전 분야 일을 하는 1만여 명의 용역·파견 노동자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시행 과정에서 자회사로 갔거나 갈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관련 업무는 원칙적으로 공공기관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어긴 것으로, 정부의 정책 관리·감독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기관에서 지속하는 ‘생명·안전직 외주화’가 공공서비스 질 저하를 넘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한겨레>가 29일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자회사 현황표’와 공공기관이 자체 작성한 ‘정규직 전환 계획표’, 노동조합 인터뷰 등을 취합해 분석한 결과, 공공기관 26곳이 용역과 파견 형태로 일하는 생명·안전 분야 노동자 6,400여 명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로 보내기로 했다. 자회사로의 전환을 추진 중인 3,700여 명을 합하면 전체 규모는 모두 1만1천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몸담는 자회사는 공공기관 전체 62곳(설립 예정 포함) 가운데 30여 곳이다.
자회사로 가는 생명·안전 노동자를 직군별로 나눠보면, 공항과 발전소 등 국가 중요시설에서 일하는 정비·시설직이 4,800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개인화기를 지급받는 특수경비직도 3,700여 명에 달했고, 공항보안검색 840여 명, 철도승무원 670여 명, 시스템보안관리직 400명, 승객수송직 300여 명, 소방(시설)직 240여 명 차례였다.
▲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총기 휴대하고 일하는데 생명·안전 업무 아니다?
국가 중요시설인 울산항만을 지키는 특수경비 노동자 김정현 씨는 항만 방호를 위해 평소에는 가스총을 차고 근무하지만,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현역 군인과 같은 K2 소총과 함께 실탄을 지급받는다. 하지만 민간 용역회사 소속이던 김 씨는 올해 초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울산항만공사 직원이 되는 대신 새로 생긴 자회사 울산항만관리로 소속을 옮겼다. 항만공사 쪽은 김 씨 등 동료 특수경비직 77명의 업무가 생명·안전 관련 직무가 아니라 “단순 경비 업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청원경찰이던 경비 인력을 외주화해놓고, 이번엔 단순 업무라는 핑계로 자회사로 가라고 했다”며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 국가시설 관리를 비용 문제를 들어 자회사로 운영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의사)는 “항만과 항공의 특수경비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 확보와 원청의 지시·감독 상황이 빈번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직접 고용해 운영해야 할 주요 직군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김 씨처럼 국가 중요시설을 지키는 특수경비직군이지만 자회사로 전환된 인원은 3,700여 명에 달한다. 단일 생명·안전직군 가운데 가장 많다. 특수경비는 공항, 항만, 발전소같이 대통령령이 정하는 국가 중요시설에서 유사시 총기를 사용해 시설을 방호하는 일을 한다. 울산항만공사를 비롯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한 인천국제공항, 여수광양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전력, 전력거래소, 발전 5사, 조폐공사 등 국가 중요시설로 지정된 사업장 대부분이 특수경비직을 자회사로 보냈다. 한국수자원공사만 204명의 특수경비직을 직접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들은 특수경비직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로 전환한 이유를 “전환 비용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가정보원 지침상 중앙행정부처나 공공기관 등이 국가보안시설의 경비를 직접 고용할 경우 그들의 신분을 청원경찰로 전환해야 한다. 민간 특수경비직의 임금은 경찰공무원에 따르는 처우를 받는 청원경찰의 70% 수준이어서 직접 고용할 경우 30%포인트에 해당하는 인건비가 더 든다는 설명이다.
▲ 공공운수노조 중부발전소방지회 노조원들이 ‘자회사 전환 반대·직고용 요구’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거리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중부발전소방지회 제공
공항·발전·전력 정비자회사…전환 예외 직군도
공항과 발전소, 전력, 수도, 난방시설 등을 정비하는 시설 노동자 4,800여 명도 자회사로 전환됐거나 전환될 예정이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는 항공 등화, 운항 통신 및 전력, 급유시설 등 항공기 운항과 직결된 시설·정비 노동자 1천여 명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로 보냈다. 지역난방공사의 경우 열 수송관 점검·정비 인력 150여 명의 정규직 전환을 명목으로 별도 자회사를 설립했다.
故 김용균 씨가 일했던 발전소 연료·환경설비 운전직 2,500여 명도 직접 고용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자회사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발표한 ‘발전산업 안전강화 방안’에서 연료·환경설비 운전 분야는 별도의 공공기관을 만들어 고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김용균 특조위’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취지로 연료·환경설비 운전 업무를 직접 고용하라고 권고한 것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발전 5사는 발전소 내 초기 화재 진압과 구조 업무 등을 하는 소방시설직군 150여 명도 자회사로 강제 전환했다. 남부·남동·동서·서부발전 소방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말부터 자회사로 전환된 뒤 중부발전 소방직 20여 명은 1년 넘게 ‘생명·안전직 직고용’을 요구하며 거리 선전전을 하고 있다. 중부발전 소방직 김정주 씨는 “발전소 내 비상상황센터를 운영하고 외부 소방 지원까지 나가는데, 생명·안전직이 아니라는 논리로 자회사행과 퇴사 중 선택하라고 압박받고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를 운용·정비하는 노동자 5,600여 명은 직접 고용은 물론 자회사 전환에서도 빠져 전환 제외 직군으로 분류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 5사의 경상정비직 3,600여 명과 한국수력원자력의 방사능 관리 860명을 포함한 원전 시설정비직 2천여 명이다.
▲ ‘비정규직 이제 그만!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쓴 손팻말을 든 채 사진을 찍었던 故 김용균 씨의 생전 모습을 따라 만든 조형물 뒤로 지난 10일 오후 태안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생명·안전직 기준 없어…‘위험의 외주화’는 현재진행형
생명·안전직 노동자의 대규모 자회사행은 “국민의 생명·안전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 고용이 원칙”이라는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년 7월)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와도 방향이 다르다. 청와대 누리집의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 항목을 보면 “상시 지속, 생명·안전 관련 업무는 정규직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사용 사유 제한의 범위는 실태조사 등을 통해 합리적으로 규정”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사용 사유 제한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 공공부문에 기준으로 제시하는 등의 작업을 하지 않아 현장의 혼란을 키웠다. 다만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가 2017년 9월 한림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비정규직 사용 제한이 필요한 생명·안전 업무의 범위 등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받았으나, 고용노동부 등 관련 부처는 이를 정책 시행 과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일자리위 관계자는 “당시 생명·안전직 구분이 중요한 화두여서 연구를 의뢰했고, 작성 과정에서 고용부 의견을 반영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생명·안전직의 범위와 직고용 결정은 기관이 협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이다. 보고서 내용은 알고 있지만, 수백 개 공공기관의 직군이나 직무 환경이 달라서 정부가 일괄적인 지침을 내리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 보고서는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가 연구책임을 맡아 의학·노동 전문가 7명과 함께 국제노동기구(ILO) 필수서비스 기준과 유럽연합(EU)국가의 노동법 등을 검토해 비정규직 사용 제한이 필요한 15개 산업과 50여 개 직군을 생명·안전 업무로 분류했다. <한겨레>도 이 기준에 따라 자회사로 간 생명·안전직 1만1천여 명의 수를 도출했다.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다 보니 같은 일을 하는 생명·안전직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공공기관에 따라 달라진 사례들도 발견된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보안검색직과 활주로 조류퇴치직 1,930여 명을 주요 생명·안전직으로 판단해 직고용했는데, 한국공항공사의 경우 이 두 직군 880여 명을 자회사로 보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 5사 등은 소방(시설)직을 자회사로 전환했지만, 가스공사는 소방직군을 직접 고용할 계획이다. 생명·안전직군이 다수 포함된 한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일자리위원회) 보고서 기준을 따르면 너무 많은 인원을 직고용해야 해 많은 전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일자리위원회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노무법인 참터의 유성규 노무사는 “구의역 김 군과 김용균 씨 등의 사고를 겪으며 위험의 외주화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생겼지만, 정책이 뒤따르지 않았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취지에 맞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업무를 하는 노동자만큼은 직고용하고, 이런 기조가 민간에 확산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총 들고 국가시설 지키는데 “단순 경비”라며 “자회사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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