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경제성장이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입니다”

“경제성장이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입니다”
“국제적 호황과 국민의 경제발전 열망, 높은 교육열 등
국내외 요인이 어우러진 합작품”
근현대사 연구 권위자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현대사 이야기’ 20권 5년 만에 완간

[한겨레] 이재성 기자 | 등록 : 2020-01-03 05:00 | 수정 : 2020-01-04 11:31


▲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요즘 우리 사회가 근현대사의 중요성을 경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효 기자

최근 20권으로 완간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제8권은 ‘경제 성장: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이라는 다소 공세적인 부제를 달고 있다. 박정희의 장기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의 경제 성장 공로만은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권위자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무슨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서 교수는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국내 요인과 국제적인 조건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면서 이 주제로만 거의 20분 가까이 열변을 이어갔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8~20권
서중석, 김덕련 지음/오월의봄·각 권 1만5500원

“독일은 1945년 이후, 일본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룹니다. 대만은 60년대 초반부터 8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하고, 프랑스 등 서유럽도, 프랑코 독재 치하의 스페인조차 60년대부터 경제가 성장합니다. 세계 경제가 좋았던 시기죠. 유가가 배럴당 2달러 이하로 아주 낮았거든요.”

세계 경제 호황은 1973년 오일 쇼크 이전까지 이어졌다. 일단 국제적 조건이 좋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다음은 국내 요인. “(4·19 이후 수립된) 장면 정부 모토가 경제제일주의였어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박정희가 그대로 이어받았죠. 그때 우리 국민의 경제발전 열망이 엄청났어요. 교육열은 물론 높았죠. 이승만 때 초등학교 진학률이 이미 90% 넘었어요. 대만보다도 높았죠. 이게 경제발전의 기본이거든요. 그런데 이승만 정부가 선거에만 매달리느라 경제발전에 실패한 거죠.

국내 요인도 이미 충분히 성숙해 있었다는 얘기다. 중남미와 다르게 토지(농지)개혁에 성공해 (노동력의 원천인) 인구 이동의 제약이 없었던 점도 중요한 성공 배경이다. 그리고 오일 쇼크 이후 선진국 경제가 휘청거릴 때 우리는 되레 기회를 잡았다. 유가 폭등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산유국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면서 중동 건설 특수가 생겼는데, 이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졌다. “공사기한에 맞춰 순식간에 만들어주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때 건설부 장관이 (나중에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였어요. 김재규가 큰 공을 세웠죠. 그런데 김재규는 ‘내가 한 게 아니다. 기업인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해요. 실제로 정주영 같은 사람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죠. 박정희하고 별 상관이 없어요.”

중화학 공업 투자도 중동 특수 덕분에 가능했다고 서 교수는 말했다. 그전에는 정부가 특혜를 준다고 해도 나서는 기업이 없었는데, 중동 건설 붐으로 자본을 축적한 뒤에는 재벌들이 너도나도 뛰어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경제는 박정희’라는 등식이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서 교수의 구두 논증은 쉼 없이 이어졌다. 긴급조치 9호라는 폭압 속에서 치러진 78년 12·12 총선에서 야당의 승리, 유신 체제 몰락을 가져온 부마항쟁이 밤이면 민중항쟁의 성격을 띠었던 점 등 박정희 정부의 경제 실정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이 즐비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의 경우 (연방경제장관과 수상을 지낸)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역할이 크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공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대만도 장개석(장제스)이나 그 아들인 장경국(장징궈)의 공이라고 하지 않죠. 오히려 독재자들이라 비판합니다. 프랑코는 스페인에서 (말하길 꺼리는) 금기 인물이고요. 박정희가 열심히 안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국내외 조건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박정희 혼자 이뤄낸 게 아니라는 겁니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는 현대사 공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한때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이 과연 역사적 사실이 맞는지 되짚어 봐야 할 것들이 여전히 많다. 올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부마민주항쟁만 해도 국민이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이유는 당시 유신체제의 철저한 보도통제 탓이다. 계엄선포를 하고 나서야 신문에 보도됐다. 또 박정희 정권은 북한의 남침 야욕을 강조하는 총력안보운동과 반공운동을 동시에 펼쳤는데, 박정희가 외신기자들을 만나서는 ‘북한이 과연 쳐들어오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서 교수가 박정희 연설집에서 확인한 장면이다. 전쟁 가능성이 작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국내 통치용으로 북의 위협을 과장한 것이다. 국내에선 북한의 남침 준비 증거로 땅굴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일본 기자를 만나서는 땅굴이 전면전 수단은 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얘기를 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3월 나온 제1권 ‘해방과 분단, 친일파: 현대사의 환희와 교차로’를 시작으로 완간까지 거의 5년이 걸린 이 시리즈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박정희다. 제5권 ‘제2공화국과 5·16쿠데타: 미국은 왜 쿠데타를 눈감았나’부터 제15권 ‘유신 체제 붕괴: 김재규는 배신자인가’까지, 전체 20권 가운데 무려 16권이 박정희 시대를 다룬다. 8·15광복 이후 1987년까지 42년 가운데 18년을 집권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한편으론 서 교수가 그동안 해방 직후와 이승만 시대에 관해 책을 많이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조봉암과 1950년대>,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등이 그것이다. 서 교수로선 그동안 늘 부채로 남았던 ‘박정희 시대와 거짓말’에 관한 기록을 일반인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정리했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에 나온 시리즈 마지막 세 권은 6월 항쟁을 다룬다. 18권 <6월항쟁의 배경: 개헌투쟁과 전두환의 반격>, 19권 <6월항쟁의 전개: 현대사를 바꾼 최대 동시다발 시위>, 20권 <도도한 민주화 물결: 전두환·노태우의 항복 선언, 그 후> 등이다. 문답 형식으로 이뤄져 있어 부담 없이 술술 읽히는 게 장점이다. 사진과 신문기사 등을 풍부하게 곁들여 사실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맥락을 잡아준다.

근현대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과 열기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 친일파(매국노)의 시각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뉴라이트(토착왜구)가 등장하고 활개를 치기 시작했죠. 나는 역사 전쟁이 싫지만, 한편으론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현대사만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스승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민주주의 교과서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경제성장이 박정희 공로? 위험한 착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