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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2020년, 철거 지역엔 여전히 망루가 있다

2020년, 철거 지역엔 여전히 망루가 있다
1월 20일, 용산참사 11주기...2009년 용산을 기억한다
[민중의소리]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발행 : 2020-01-20 15:48:47 | 수정 : 2020-01-20 09:47:31


▲ 철거민들이 재개발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이다 화재가 나 사망자가 발생한 용산 국제빌딩 4구역 내 남일당 건물 주변을 경찰이 봉쇄하고 있다. 2009.01.20 ⓒ사진 = 뉴시스

새벽 4시 경, 경찰특공대가 남일당 건물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후 컨테이너 박스 두 개와 물대포 차량 네 대가 등장했다. 한 시간 뒤 도로 통행이 차단되더니 소방수와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가 남일당 건물을 향해 발사되었고, 경찰특공대를 가득 실은 컨테이너 박스가 크레인을 통해 5층 옥상으로 올려졌다. 컨테이너에서 내린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건물과 망루에 있는 사람들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는 영화가 아니다.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4구역 철거현장에서 발생한 실제상황이다. 진압과정에서 건물에 붙기 시작한 불은 하늘까지 치솟았고 망루가 무너졌다.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6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기록이 은폐되는 등 편파적으로 이뤄졌고, 모든 책임이 살아남은 철거민들에게 씌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당일을 ‘용산참사’라 부르고 기억하며 아직 싸우고 있다.


진실의 일부가 드러났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2020년, 용산참사로부터 11년이 지났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시간이 흘렀지만 용산참사 진실의 문은 여전히 다 열리지 않았다. 2018년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사건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김석기를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안전을 도외시한 채 조기·과잉진압을 강행했다는 점과 경찰이 사건 직후 900여명의 사이버수사대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직원을 동원해 댓글공작을 하고 언론사 간부들과 접촉하는 등 여론조작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와 더불어 용산참사를 덮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홍보 하라고 지시한 청와대 개입사실도 밝혀졌다.

그리고 2019년 5월,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 진압이 긴박한 필요성이 없었고 위험이 충분히 예견되었음에도 안전을 도외시하며 무리하게 강행되었다는 점과, 이후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진행된 강제부검에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더불어 재판 과정에서 무리한 살인진압에 책임있는 김석기 등 경찰 수뇌부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으며, 화재원인을 밝혀낼 수 있는 특공대의 망루 내부 촬영 원본 동영의 존재여부조차 확인하지 않는 등 부실수사를 했음도 밝혀냈다.

▲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의 용산참사 조사 결과가 발표된 5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피해자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용산 화재 참사의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김슬찬 기자

용산참사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진실의 일부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유가족과 생존자 그리고 용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서고 걷고 외치고 싸워서 만들어낸 결과다.

국가범죄에 관한 공소시효가 7년이라고 한다. 예견된 참사를 지시하여 철거민 다섯 명과 경찰특공대원 한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그 날에 멈춰 살아가게 만든, 그날의 진실을 감추려한 책임자들은 여전히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2020년, 철거 지역엔 여전히 망루가 있다

2020년, 서울 미아3구역 건물 옥상 위엔 망루가 세워져 있다. 용산참사로부터 11년이 지났지만 철거지역 주민들의 삶이 바뀌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풍경이다.

용산참사 11주기를 이틀 앞두고 미아3구역 현장에서 ‘용산참사 11주기 추모 및 철거민 투쟁대회’가 열렸다.

이날 대회에서 미아3구역 철거민은 “2009년 당시는 더 추웠으리라 생각된다. 2009년엔 용산에서 왜 사람이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지난 9월과 10월, 철거와 강제집행을 겪으며 삶의 터전에서 내몰렸다. 물러설 곳 없는 우리는 하늘로 망루로 올라야 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재개발·재건축 세입자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뉴스들이 나온다. 누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주변 골목들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밥을 먹고 쉼과 잠을 청했을 주택과 식당, 가게들이 있다. 2009년 용산도 그랬다. 골목골목 주택과 약국이 있었고, 153당구장과 무교동낙지집이 있었고, 복집과 레아호프가 있었다. 그 이웃들이 억울하다고 대화를 요구하며 망루에 올랐지만 만 하루도 되지 않아 경찰특공대가 진압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 철거 앞두고 있는 서울 미아3구역 재개발 현장에 세워진 망루. ⓒ기타

2009년 용산에서, 그리고 2019년 미아에서 이주대책 없이 진행되는 재개발로 인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사람들은 용역깡패의 폭력을 일상에서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그 폭력을 피하기 위해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미아3구역뿐만이 아니다. 서울 개포동, 자양동을 비롯해 남대문 양동 쪽방지역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인천, 부산 등 전국 각지의 철거민들이 자본의 탐욕으로 인해 자신의 터전에서 내몰릴 위기에 있다.

재개발·재건축은 무엇을 위해 진행되는가? 재개발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투자가 나온다. 검색 결과 곳곳에 시세 차익, 프리미엄과 같은 단어가 따라 붙는다. 가진 사람들의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재개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탐욕의 재개발은 동전의 앞 뒷 면이다. 우리가 있는 이 공간들은 이윤을 위한 탐욕이 수많은 이웃들의 삶을 집어 삼키고 만들어 놓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용산참사 11주기, 일부 진실이 밝혀진 지금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만드는 싸움에 주시하고 꾸준히 함께 해야 한다.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당시의 진압을 자신의 업적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김석기를 처벌해야 한다. 강제퇴거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고, 철거지역 주민들에 대한 제대로 된 이주대책이 마련된 뒤 개발이 시작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용산참사의 진상을 규명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재개발·재건축을 이야기하며 투자나 이윤을 언급하는 사람들에게, 재개발·재건축은 더 나은 주거 환경과 주민들의 삶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출처  [정성철 칼럼] 2020년, 철거 지역엔 여전히 망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