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위에서 35년, 오늘도 덜컹이는 ‘혼밥’을 뜬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③철도 기관사의 4천원 도시락 밥상
귀를 찌르는 엔진·철길 소음…‘난청’ 시달리는 기관사들
화장실 못가는 6시간…마신 건 국 몇 모금, 커피 반잔뿐
기관사의 삶, 인내심과의 싸움 “화장실 안가려고 아침 거르기도”
[한겨레] 대구/김민제 기자 | 등록 : 2020-01-06 05:01 | 수정 : 2020-01-06 18:04
유흥문(60)은 30여년 동안 길 위에서 밥을 먹었다. 길을 나서면, 밥 동무는 없다. 시속 130㎞로 달리는 열차 맨 앞자리에 앉아 똑같은 간격으로 놓인 철길 아래 콘크리트 침목이 발밑으로 끝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는 끼니를 삼켜왔다. 철마와 철마가 지나치는 풍경이 유흥문의 밥 동무였고, 두 평(6.6㎡) 남짓한 열차 기관실 부기관사석 앞에 놓인 ‘열차자동정지장치’가 그의 밥상이었다. 열차자동정지장치는 감속과 정지 등 신호 상태를 기관차로 전달해주지만, 밥을 먹는 기관사에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디젤기관차가 선로 위에서 덜컹거릴 때마다 도시락을 손에 쥔 유흥문의 몸은 땅밑에서 올라오는 진동을 그대로 전달받아 대책 없이 흔들렸다.
지난 12월 29일 오전 9시. 수색역 서울기관차 차량기지에 출근한 유흥문은 승무준비실에 도착해 출근 기록을 남기는 ‘출무적확성 검사’를 하고 승무일지를 조회했다. 이날 유흥문이 운행할 부산행 무궁화호 1211호 열차는 오전 10시 34분 수색역 기지를 떠나 출발역인 서울역으로 이동한다. 승무일지에는 운행 예정 선로에 문제가 있는 곳은 없는지, 어디에서 서행운전을 해야 하는지 등이 적혀 있다. 승무일지를 출력해서 들고, 상황실로 이동해 상황실 팀장에게 선로 상황 브리핑을 들었다.
브리핑이 끝나자 유흥문은 구내식당에 들러 도시락을 주문했다. 30여년 전부터 익숙한 동선이다. 구내식당은 원래 배식형이지만, ‘장도’에 나서는 기관사들에겐 도시락을 싸준다. 일회용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국통에 담긴 4천원짜리 도시락을 받아든 유흥문이 1211호의 마스터키를 받아들고 기관차로 발길을 옮겼다. 새해를 사흘 앞둔 날이었다. 정년을 맞는 유흥문은 2020년이 끝나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내온 기관실을 떠난다. 기관실에서 도시락을 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2인1조로 열차를 나눠 운행하게 된 후배 기관사가 유흥문을 뒤따랐다.
기관실은 객실과 다르다. 객차들과 분리돼 있어 홀로 요동치다시피 덜컹댔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몸은 쉽게 충격에 흔들렸다. 곡선 주로에선 진폭이 더 커졌고, 좌우로 흔들리다 때론 위아래로 떠밀리기도 했다. 철길의 마찰음, 덜컹거리는 엔진의 소음, 무전을 타고 울리는 음성들이 운행 내내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귀마개 없인 이 기관실에 오를 수 없다. 대부분의 기관사는 청력이 손상돼 ‘소음성 난청’을 겪는다. 소음과 흔들림 속에서 두 기관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중력에 익숙해진 ‘우주인’처럼 훈련되어 그런 것인지, 운행에 불필요한 감각이 마모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관사는 운전하는 동안 무전을 들으면서 곧은 자세로 눈앞을 주시해야 한다. 주변 기관사나 근처 역에서 타전되는 온갖 무전의 소음 속에서도 유흥문은 필요한 정보만 잡아챘다. 오른손으로 열차 동력을 올리면, 왼손은 무전을 주고받고 제동을 하며 때때로 액셀도 당긴다. 디젤기관차 운행의 80%는 왼손의 몫이다. 전기기관차는 양손을 고루 써서 몬다. 발로 페달을 밟으면 열차 기적이 울린다. 이 자세는 열차가 달리는 내내 고정되어야 한다.
열차가 덜컹댈 때마다 기관실 바닥에 놓아둔 도시락에선 밥과 반찬 내음이 기름 냄새와 섞여 올라왔다. 끼니때를 넘기자 냄새는 더욱 코를 찔렀다. 열차가 세종시 조치원역에 다다른 낮 12시 50분, 그제야 고정된 자세를 풀고 동료에게 운전석을 맡긴 유흥문이 부기관사석에 자리를 잡았다. 1211호 열차는 이날 8량짜리 객차에 승객 640여 명을 싣고 서울역을 출발해 24개 역을 지나 부산역까지 5시간 53분 동안 내리 달린다. 두 기관사는 동대구역까지만 운전하지만, 이런 날 점심은 기관실에서 때워야 한다. 한 사람은 운전해야 하기에 두 기관사는 번갈아 밥을 먹는다.
부기관사석 앞에 놓인 1m 높이의 군청색 상자 위에 유흥문이 도시락을 펼쳤다. 달걀프라이를 얹은 흰쌀밥에 어묵볶음, 콩나물무침, 얼갈이배추 무침, 배추김치, 청포묵까지 다섯 가지 찬이 담겼다. 별난 것 없는 백반이지만, 기관실의 소란 속에서 먹는 데엔 기술이 필요하다. 밥을 떠넣기도 곤란할 정도로 출렁이는 열차와 소음에 멀미마저 날 듯했다. “먹는 게 장난이 아니야.” 김치 콩나물국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엔 나무젓가락을 쥔 채 유흥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유흥문은 미지근하게 식은 쌀밥에 목이 멜 때마다 곧 플라스틱 통에서 넘쳐 나올 듯한 국물을 능숙하게 후루룩 들이켰다. 오래 함께해온 열차와 한 몸인 듯, 열차의 리듬에 그는 익숙해 보였다.
유흥문은 1985년 철도청(현 철도공사)에 입사했다. 5년의 부기관사 업무를 거쳐 1991년 기관사가 됐다. 비둘기호와 무궁화호, 새마을호와 아이티엑스(ITX) 등의 열차를 모두 경험했는데도 29년 전 처음 열차를 몰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시커먼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였다.
“망우역을 출발해 수도권을 돌고 인천으로 가는데 멀진 않아도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복잡한 구간이거든요. 하도 긴장을 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쫙 나더라고….” 눈앞에 그날이 펼쳐지는 듯 유흥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이제는 기관차 유리창에 곰탕처럼 희뿌연 안개가 껴도 몸이 체득해버린 길”이라고 했다.
그 길처럼, 유흥문의 몸도 지상보다 열차 위의 삶에 익숙해져 있다. 밥 먹는 일만이 아니다. 기관사의 삶은 인내심과 싸움이다. 화장실 가는 일마저 통제해야 한다. 기관차엔 객차와 통하는 문이 없어서다. 열차가 움직이는 동안 화장실에 가는 건 불가능하다. 역에 정차할 때 다녀올 수 있지만, 기관차에서 내려 객차에 올라 화장실에 다녀오려면 어지간한 속도로는 어림도 없다. 몸이 날쌔고 경험이 많은 이들만 동료에게 잠시 일을 맡기고 화장실에 간다. 1인 승무가 일반화한 요즘에는 그것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대부분의 기관사는 가능한 한 음료를 마시지 않고 버틴다. 이날도 유흥문은 수색에서 동대구역까지 편도 6시간 달리는 동안 콩나물국 몇 모금과 아메리카노 커피 반 잔 외에 무엇도 마시지 못했다. 장거리 운행 전날엔 폭탄주 같은 과한 음주도 피하는 게 기관사들의 철칙이다. “장에 급변 사태가 오면 호흡법을 조절해서 버티기도 하고, 아예 아침을 거르고 오는 기관사도 있지요. 저마다 이런 일상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열차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을 제때 가기도 힘든 데다 들쭉날쭉한 근무 일정까지 더해지기에 위장질환을 달고 사는 기관사도 많다. 기관사의 근무 일정은 월 단위로 정해지는데 주간근무와 밤샘 근무가 섞여 있다. 유흥문은 지난 12월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기도 하고,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하기도 했다. 기관사석엔 졸음 방지를 위해 기관사가 2분마다 눌러야 하는 경보 스위치가 있다.
철도노조의 설명을 보면, 철도공사 전체 상용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월 161시간가량(2018년 기준)이고 휴일 근무를 적극적으로 하면 190시간가량 일한다. 수면시간과 식사 시간이 모두 불규칙해지기에 십상이다. 이날도 유흥문은 오전 준비 뒤 오전 10시 34분~오후 3시 31분 편도 운행을 마치고 대구열차승무사업소 내 3평(9.9㎡) 정도 크기의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저녁 7시 37분 다시 열차에 올랐다. 밤 9시 32분 대전역에서 운행을 마친 뒤, 입석 승객이 되어 케이티엑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55분이었다. 그나마 정년을 앞두고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아 유흥문의 스케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이렇다.
유흥문이 철길에 남은 지난 35년 사이 ‘밤샘 근무가 잦다’며 철도를 떠난 동료가 많다. 불규칙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와 병이 기관사들을 철도에서 밀어낸 것이다. 그러나 정년을 앞두고도 유흥문은 여전히 디젤기관차 기관실을 깊이 사랑한다. “전동차는 컴컴한 지하에서 2~3분씩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데 기차는 쭉 내달려서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날씨, 햇볕, 계절에 따라서 풍경도 다르게 보이고. 그렇게 열차를 타다 보면 30년이 순간이지요.”
끼니도 마찬가지다. 백반 도시락이 일상이지만, 요령을 발휘해 지역별 ‘특식’을 먹을 때도 가끔 있다. 유흥문에겐 장항선 평택역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이 그런 곳이다. 그나마 면은 불어서 먹지 못하고, 볶음밥을 주문해 미리 받아뒀다가 끼니때가 되면 도시락처럼 꺼내 먹는다.
그런 한 줌의 낭만마저 이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선로 밖 풍경이 변하듯 한결같던 기관사의 도시락 밥상도 달라졌다. 2006년께부터 보편화한 케이티엑스 등 신형 전기기관차는 모두 1인 승무 체제다. 기관사 홀로 기관실을 지킨다. 1인 승무에 익숙한 젊은 기관사들은 혼자 기판을 보면서 한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김밥이나 햄버거를 사 들고 열차에 오른다. 홀로 운행하면서 도시락을 먹기도 힘들지만, 도시락 냄새가 싫다는 기관사들도 있다. 밥을 먹거나 졸음이 올 때 곁에서 말을 들어줄 동료도 없고, 음악이나 라디오조차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기관사들은 고독과 싸운다.
인생의 반 이상을 철길 위에서 디젤기관차를 몬 유흥문도 이런 변화를 피할 길은 없다. “전기기관차는 꼭 뱀 대가리처럼 움직이더라고요. 우리 열차(디젤기관차)에 정도 들었고, 나는 고속으로 다니는 걸 싫어해서….” 정년이 되어 철길을 떠나는 유흥문처럼 낡은 무궁화호 객차들도 수명이 다해 폐기되고, 철도공사는 ‘효율’과 ‘적자’를 이유로 벽지 노선들의 무궁화호 운행 횟수를 해마다 줄이고 있다.
유흥문 또한 별수 없이 젊은 기관사들처럼 김밥을 사 들고 이따금 ‘뱀 대가리’ 같은 신형 전기기관차에 오른다. “멀고도 먼 방랑길을 나 홀로 가야 하나.” 동료 없는 적막한 기관실에서 혼자 나직이 애창곡을 부른다.
출처 철길 위에서 35년, 오늘도 덜컹이는 ‘혼밥’을 뜬다
[2020 노동자의 밥상] ③철도 기관사의 4천원 도시락 밥상
귀를 찌르는 엔진·철길 소음…‘난청’ 시달리는 기관사들
화장실 못가는 6시간…마신 건 국 몇 모금, 커피 반잔뿐
기관사의 삶, 인내심과의 싸움 “화장실 안가려고 아침 거르기도”
[한겨레] 대구/김민제 기자 | 등록 : 2020-01-06 05:01 | 수정 : 2020-01-06 18:04
▲ 정년퇴임을 1년 앞둔 36년차 철도기관사 유흥문씨가 지난달 29일 오후 대전광역시 인근을 지나는 무궁화호 1211호 기관차 안에서 백반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대전/김명진 기자
유흥문(60)은 30여년 동안 길 위에서 밥을 먹었다. 길을 나서면, 밥 동무는 없다. 시속 130㎞로 달리는 열차 맨 앞자리에 앉아 똑같은 간격으로 놓인 철길 아래 콘크리트 침목이 발밑으로 끝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바라보며, 그는 끼니를 삼켜왔다. 철마와 철마가 지나치는 풍경이 유흥문의 밥 동무였고, 두 평(6.6㎡) 남짓한 열차 기관실 부기관사석 앞에 놓인 ‘열차자동정지장치’가 그의 밥상이었다. 열차자동정지장치는 감속과 정지 등 신호 상태를 기관차로 전달해주지만, 밥을 먹는 기관사에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디젤기관차가 선로 위에서 덜컹거릴 때마다 도시락을 손에 쥔 유흥문의 몸은 땅밑에서 올라오는 진동을 그대로 전달받아 대책 없이 흔들렸다.
지난 12월 29일 오전 9시. 수색역 서울기관차 차량기지에 출근한 유흥문은 승무준비실에 도착해 출근 기록을 남기는 ‘출무적확성 검사’를 하고 승무일지를 조회했다. 이날 유흥문이 운행할 부산행 무궁화호 1211호 열차는 오전 10시 34분 수색역 기지를 떠나 출발역인 서울역으로 이동한다. 승무일지에는 운행 예정 선로에 문제가 있는 곳은 없는지, 어디에서 서행운전을 해야 하는지 등이 적혀 있다. 승무일지를 출력해서 들고, 상황실로 이동해 상황실 팀장에게 선로 상황 브리핑을 들었다.
브리핑이 끝나자 유흥문은 구내식당에 들러 도시락을 주문했다. 30여년 전부터 익숙한 동선이다. 구내식당은 원래 배식형이지만, ‘장도’에 나서는 기관사들에겐 도시락을 싸준다. 일회용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국통에 담긴 4천원짜리 도시락을 받아든 유흥문이 1211호의 마스터키를 받아들고 기관차로 발길을 옮겼다. 새해를 사흘 앞둔 날이었다. 정년을 맞는 유흥문은 2020년이 끝나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내온 기관실을 떠난다. 기관실에서 도시락을 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2인1조로 열차를 나눠 운행하게 된 후배 기관사가 유흥문을 뒤따랐다.
▲ 야간에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기차를 위해 기관사들이 지난달 29일 밤 동대구역에서 교대를 하고 있다. 대구/김명진 기자
덜컹거리는 선로 위 도시락
기관실은 객실과 다르다. 객차들과 분리돼 있어 홀로 요동치다시피 덜컹댔다. 익숙하지 않은 이들의 몸은 쉽게 충격에 흔들렸다. 곡선 주로에선 진폭이 더 커졌고, 좌우로 흔들리다 때론 위아래로 떠밀리기도 했다. 철길의 마찰음, 덜컹거리는 엔진의 소음, 무전을 타고 울리는 음성들이 운행 내내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귀마개 없인 이 기관실에 오를 수 없다. 대부분의 기관사는 청력이 손상돼 ‘소음성 난청’을 겪는다. 소음과 흔들림 속에서 두 기관사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중력에 익숙해진 ‘우주인’처럼 훈련되어 그런 것인지, 운행에 불필요한 감각이 마모되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관사는 운전하는 동안 무전을 들으면서 곧은 자세로 눈앞을 주시해야 한다. 주변 기관사나 근처 역에서 타전되는 온갖 무전의 소음 속에서도 유흥문은 필요한 정보만 잡아챘다. 오른손으로 열차 동력을 올리면, 왼손은 무전을 주고받고 제동을 하며 때때로 액셀도 당긴다. 디젤기관차 운행의 80%는 왼손의 몫이다. 전기기관차는 양손을 고루 써서 몬다. 발로 페달을 밟으면 열차 기적이 울린다. 이 자세는 열차가 달리는 내내 고정되어야 한다.
열차가 덜컹댈 때마다 기관실 바닥에 놓아둔 도시락에선 밥과 반찬 내음이 기름 냄새와 섞여 올라왔다. 끼니때를 넘기자 냄새는 더욱 코를 찔렀다. 열차가 세종시 조치원역에 다다른 낮 12시 50분, 그제야 고정된 자세를 풀고 동료에게 운전석을 맡긴 유흥문이 부기관사석에 자리를 잡았다. 1211호 열차는 이날 8량짜리 객차에 승객 640여 명을 싣고 서울역을 출발해 24개 역을 지나 부산역까지 5시간 53분 동안 내리 달린다. 두 기관사는 동대구역까지만 운전하지만, 이런 날 점심은 기관실에서 때워야 한다. 한 사람은 운전해야 하기에 두 기관사는 번갈아 밥을 먹는다.
부기관사석 앞에 놓인 1m 높이의 군청색 상자 위에 유흥문이 도시락을 펼쳤다. 달걀프라이를 얹은 흰쌀밥에 어묵볶음, 콩나물무침, 얼갈이배추 무침, 배추김치, 청포묵까지 다섯 가지 찬이 담겼다. 별난 것 없는 백반이지만, 기관실의 소란 속에서 먹는 데엔 기술이 필요하다. 밥을 떠넣기도 곤란할 정도로 출렁이는 열차와 소음에 멀미마저 날 듯했다. “먹는 게 장난이 아니야.” 김치 콩나물국이 담긴 플라스틱 통을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엔 나무젓가락을 쥔 채 유흥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유흥문은 미지근하게 식은 쌀밥에 목이 멜 때마다 곧 플라스틱 통에서 넘쳐 나올 듯한 국물을 능숙하게 후루룩 들이켰다. 오래 함께해온 열차와 한 몸인 듯, 열차의 리듬에 그는 익숙해 보였다.
▲ 열차 기관사의 밥상. 달걀프라이를 얹은 흰쌀밥에 어묵볶음, 콩나물무침, 얼갈이배추무침, 배추김치, 청포묵까지 다섯 가지 찬이 담겼다. 김명진 기자
몸이 체득해버린 길, 몸이 체득한 노동
유흥문은 1985년 철도청(현 철도공사)에 입사했다. 5년의 부기관사 업무를 거쳐 1991년 기관사가 됐다. 비둘기호와 무궁화호, 새마을호와 아이티엑스(ITX) 등의 열차를 모두 경험했는데도 29년 전 처음 열차를 몰았을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시커먼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였다.
“망우역을 출발해 수도권을 돌고 인천으로 가는데 멀진 않아도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복잡한 구간이거든요. 하도 긴장을 해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땀이 쫙 나더라고….” 눈앞에 그날이 펼쳐지는 듯 유흥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이제는 기관차 유리창에 곰탕처럼 희뿌연 안개가 껴도 몸이 체득해버린 길”이라고 했다.
그 길처럼, 유흥문의 몸도 지상보다 열차 위의 삶에 익숙해져 있다. 밥 먹는 일만이 아니다. 기관사의 삶은 인내심과 싸움이다. 화장실 가는 일마저 통제해야 한다. 기관차엔 객차와 통하는 문이 없어서다. 열차가 움직이는 동안 화장실에 가는 건 불가능하다. 역에 정차할 때 다녀올 수 있지만, 기관차에서 내려 객차에 올라 화장실에 다녀오려면 어지간한 속도로는 어림도 없다. 몸이 날쌔고 경험이 많은 이들만 동료에게 잠시 일을 맡기고 화장실에 간다. 1인 승무가 일반화한 요즘에는 그것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대부분의 기관사는 가능한 한 음료를 마시지 않고 버틴다. 이날도 유흥문은 수색에서 동대구역까지 편도 6시간 달리는 동안 콩나물국 몇 모금과 아메리카노 커피 반 잔 외에 무엇도 마시지 못했다. 장거리 운행 전날엔 폭탄주 같은 과한 음주도 피하는 게 기관사들의 철칙이다. “장에 급변 사태가 오면 호흡법을 조절해서 버티기도 하고, 아예 아침을 거르고 오는 기관사도 있지요. 저마다 이런 일상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흔들리는 열차에서 밥을 먹고 화장실을 제때 가기도 힘든 데다 들쭉날쭉한 근무 일정까지 더해지기에 위장질환을 달고 사는 기관사도 많다. 기관사의 근무 일정은 월 단위로 정해지는데 주간근무와 밤샘 근무가 섞여 있다. 유흥문은 지난 12월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하기도 하고,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하기도 했다. 기관사석엔 졸음 방지를 위해 기관사가 2분마다 눌러야 하는 경보 스위치가 있다.
철도노조의 설명을 보면, 철도공사 전체 상용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월 161시간가량(2018년 기준)이고 휴일 근무를 적극적으로 하면 190시간가량 일한다. 수면시간과 식사 시간이 모두 불규칙해지기에 십상이다. 이날도 유흥문은 오전 준비 뒤 오전 10시 34분~오후 3시 31분 편도 운행을 마치고 대구열차승무사업소 내 3평(9.9㎡) 정도 크기의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저녁 7시 37분 다시 열차에 올랐다. 밤 9시 32분 대전역에서 운행을 마친 뒤, 입석 승객이 되어 케이티엑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0시 55분이었다. 그나마 정년을 앞두고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아 유흥문의 스케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이렇다.
▲ 철도기관사 유흥문씨가 지난달 29일 밤 무궁화호를 운전하며 충북 옥천 인근을 지나고 있다. 옥천/김명진 기자
35년 지켜온 철길…바뀌어가는 철길
유흥문이 철길에 남은 지난 35년 사이 ‘밤샘 근무가 잦다’며 철도를 떠난 동료가 많다. 불규칙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와 병이 기관사들을 철도에서 밀어낸 것이다. 그러나 정년을 앞두고도 유흥문은 여전히 디젤기관차 기관실을 깊이 사랑한다. “전동차는 컴컴한 지하에서 2~3분씩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데 기차는 쭉 내달려서 여유가 있어서 좋아요. 날씨, 햇볕, 계절에 따라서 풍경도 다르게 보이고. 그렇게 열차를 타다 보면 30년이 순간이지요.”
끼니도 마찬가지다. 백반 도시락이 일상이지만, 요령을 발휘해 지역별 ‘특식’을 먹을 때도 가끔 있다. 유흥문에겐 장항선 평택역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이 그런 곳이다. 그나마 면은 불어서 먹지 못하고, 볶음밥을 주문해 미리 받아뒀다가 끼니때가 되면 도시락처럼 꺼내 먹는다.
그런 한 줌의 낭만마저 이젠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선로 밖 풍경이 변하듯 한결같던 기관사의 도시락 밥상도 달라졌다. 2006년께부터 보편화한 케이티엑스 등 신형 전기기관차는 모두 1인 승무 체제다. 기관사 홀로 기관실을 지킨다. 1인 승무에 익숙한 젊은 기관사들은 혼자 기판을 보면서 한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김밥이나 햄버거를 사 들고 열차에 오른다. 홀로 운행하면서 도시락을 먹기도 힘들지만, 도시락 냄새가 싫다는 기관사들도 있다. 밥을 먹거나 졸음이 올 때 곁에서 말을 들어줄 동료도 없고, 음악이나 라디오조차 들을 수 없는 곳에서 기관사들은 고독과 싸운다.
인생의 반 이상을 철길 위에서 디젤기관차를 몬 유흥문도 이런 변화를 피할 길은 없다. “전기기관차는 꼭 뱀 대가리처럼 움직이더라고요. 우리 열차(디젤기관차)에 정도 들었고, 나는 고속으로 다니는 걸 싫어해서….” 정년이 되어 철길을 떠나는 유흥문처럼 낡은 무궁화호 객차들도 수명이 다해 폐기되고, 철도공사는 ‘효율’과 ‘적자’를 이유로 벽지 노선들의 무궁화호 운행 횟수를 해마다 줄이고 있다.
유흥문 또한 별수 없이 젊은 기관사들처럼 김밥을 사 들고 이따금 ‘뱀 대가리’ 같은 신형 전기기관차에 오른다. “멀고도 먼 방랑길을 나 홀로 가야 하나.” 동료 없는 적막한 기관실에서 혼자 나직이 애창곡을 부른다.
출처 철길 위에서 35년, 오늘도 덜컹이는 ‘혼밥’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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