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민중의소리] 김애화 칼럼니스트 | 발행 : 2020-02-03 12:20:00 | 수정 : 2020-02-03 12:20:00
유럽의회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비준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에 유럽경제공동체와 결별하게 되었다.
영국은 경제공동체의 잔류, 탈퇴 이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은 1973년 보수당의 주도로 EEC에 가입했다. 그리고 75년 EEC 잔류에 대한 국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노동당이 주도적으로 탈퇴 운동을 했다. 그러나 국민투표 결과, 잔류 찬성이 67% 표를 받았다. 2016년 국민투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노동당 다수는 EU 잔류를, 우익은 탈퇴에 투표했다. 언론도 나누어졌다. 언론 대부분이 75년에는 잔류를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분열되었다.
2016년 국민투표 이후 브렉시트 흐름은 더욱 강해졌으나, 영국 의회는 EU 탈퇴 협정법안, 이행법안 합의에 계속 실패했다. 2019년 12월 초기 총선에서, 보수당 당수 보리스 존슨은 영국을 유럽연합으로부터 탈퇴시킨다는 주요 공약을 내걸었다. 보수당은 그 실현을 위한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노동당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총 60석을 잃었고 득표율은 32.1%였다. 총선의 결과가 유럽의회의 비준으로 이어졌다. 영국 노동당의 실패는 계속되고 있다.
브렉시트 사건이 국제적 관심을 두는 것은 유럽 등 선진국이 공통으로 가진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화로 인해 물품, 금융, 각종 서비스 나아가 노동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진통이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포퓰리즘 정치의 강풍이 불고 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을 지지하면서 브렉시트를 만들어낸 지지자가 누구인지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EU 잔류 지지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들은 무지하고 비합리적이고 인종주의적이며, 포퓰리즘 정당에 휘둘린 반동적 성격을 가진 자들인가? 그들이 원하는 영국은 어떤 모습일까?
데이비드 굿하트는 2017년 출간된 저서,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The Road to Somewhere)’에서 독특한 관점으로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분석하며 옹호한다. 나아가 현 정부와 노동당 그리고 좌파 진영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저자는 현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적 관점에 따른 계급 분석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과 경제적 관계를 토대로 한 낡은 집단 구별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애니웨어/섬웨어로 구분하는 방식이 현실을 더욱 잘 반영한다.”
그간 문화와 정체성은 사회경제적 이슈에 밀려나 있었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던 기존 정치 질서에 문화와 정체성의 정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번지는 포퓰리즘 정치는 바로 이 점을 잘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니웨어와 섬웨어를 대표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 “애니웨어가 공유하는 가치는 급진적 개인주의(progressive individualism)이다. 이것은 성공한 개인의 세계관이다. 자율성과 이동성, 새로움이란 가치에 큰 무게를 둔다.” 반면 “섬웨어는 보수 성향이 짙고 본능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런 분석을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국이 두 집단으로 양분된다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 애니웨이는 20~25%, 섬웨어는 대략 절반, 나머지는 중간층이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부유층은 57%, 빈곤층은 36%, 중간층은 49%가 EU 잔류를 지지했다. 영국 국민 중 56%가 스스로 가지지 못한 자라고 답변하는데, 이중 절대다수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30~40년 전만 해도 섬웨어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집단이었고, 좌파정당의 지지자들이었다. 1997년까지 노동당 지지자 중 노동계층이 많았다. 그러나 2010년 선거 결과를 보면 노동당의 지지층은 노동계층이 중산층보다 적다. 이런 구성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국독립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이 2015년 총선거에서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해온 노동계층 표를 상당수 뺏어갔다. 보수당으로도 그 표가 갔다. 이것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저물고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처-레이건 시대만 해도, 우파는 경제영역에서의 자유주의를 좌파는 문화와 사회 영역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했다. 그러나 좌파도 경제적 영역의 자유주의, 세계화, EU 질서를 굳건히 옹호하고 있다. 노동당도 애니웨어가 주류가 되었다.
경제적 개방은 신산업 일자리가 생겨서 과거 공룡 기업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전통산업이 뿌리내린 지역에선 그런 일자리는 등장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세계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조업 일자리는 가난한 국가로 옮겨졌다. 자유주의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고학력, 전문직, 자유주의자 집단인 애니웨어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되었지만, 중하층 섬웨어의 존립은 위태로워졌다.
특히 EU 회원국의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시장 개방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교육 기회, 공공주택 등에서 경쟁해야 하는 섬웨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브렉시트라는 충격적인 결정을 한 하나의 이유만 꼽으라면 전례 없을 정도로 늘어난 이민자이다.
현재 생산가능인구의 18%가 외국 태생이며, 지난 20년 동안 이주민과 소수인종 인구는 1,200만 명에 이르며 전체 인구의 20% 정도 된다. (영국인이 아닌 백인 인구까지 포함될 경우 그 비중은 25%에 이른다) 여기에 능력주의, 성취사회 가치가 더해지면서 영국 섬웨어는 자유주의 사회의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섬웨어 백인들은 역사상 최초로 그들이 소수인종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전망은 비관적이지 않다. 정치권과 사회가 브렉시트 투표를 통해서 잊힌 섬웨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덕분에 섬웨어의 요구가 서서히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반대로 자유주의를 널리 퍼뜨리는 핵심 구실을 한 베이비붐 세대의 힘은 소멸하고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는 베이비붐 세대 세계관으로, 베이비붐 세대들은 60년대의 자유주의 향유자들이며,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고등교육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유주의를 널리 퍼뜨리는 핵심 구실을 했다. 또한, 영국을 포함해 선진국 대부분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것도 안정과 질서를 강조하는 섬웨어 가치관 확대 가능성을 높인다. 이동성과 고등교육이 애니웨어적 진보 개인주의라는 가치를 강화되는데 이바지했다면, 고령화와 빈곤과 결합한 뿌리 애착은 섬웨어의 ‘온건한 포퓰리즘’이 태동하게 된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온건한 포퓰리즘’은 다음과 같다. 브렉시트의 지지자 대부분은 여전히 온건한 사회 민주적 경제와 예산 정책을 선호하며, 세계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다양성만큼이나 공동체 보호가 필요한 오늘날, 성 평등 같은 일부 세계관은 주류 상식으로 폭넓게 수용됐지만, 온건한 국가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진보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었고 그를 위해서 싸웠다. 그리고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화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유화, 세계화의 물결에 한국의 진보는 대응에 실패했다.
그리고 IMF 직격탄을 맞았다. 줄줄이 FTA가 체결되어 무관세, 저관세에 기반한 자유무역의 선봉 국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경해 열사와 허세욱 열사가 있었다. 이제는 세계화란 화두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 책은 진보적 자유주의자에게는 불편한 내용이 많다. 보수적 가치인 가족주의, 국가주의 등을 섬웨어의 가치로 일반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사회 문화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동일한 가치로 볼 수 있느냐는 점도 그렇다. 학문적 역사를 따지지 말고, 실존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의 정신인 다양성과 인권의 진전을 위해서도 경제적 자유주의 즉 하이퍼 자유주의는 유해하다.
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지만,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애니웨어와 섬웨어적 접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20 vs 80이라는 사회 구도에서 조금 더 내려가서 80을 나누어 중간층과 섬웨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층이동을 개인적 차원의 능력으로 환원시키는 사회가 바로 애니웨어적 사회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합리화하고 가난한 이에 대한 연민을 줄이는 작용을 하고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점점 애니웨어에 속하는 사람들은 경제를 넘어서 문화와 사회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다수는 주류 정치 현장에서 듣기 어려운 목소리가 되었다. 극우적 포퓰리즘에 동원되는 소리가 되었다. 민주당에는 선거 시기에만 한시적으로 들리고 보이는 소리가 되었다.
출처 [김애화 칼럼]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민중의소리] 김애화 칼럼니스트 | 발행 : 2020-02-03 12:20:00 | 수정 : 2020-02-03 12:20:00
유럽의회, 브렉시트 비준
유럽의회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비준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영국은 1973년 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지 47년 만에 유럽경제공동체와 결별하게 되었다.
영국은 경제공동체의 잔류, 탈퇴 이슈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영국은 1973년 보수당의 주도로 EEC에 가입했다. 그리고 75년 EEC 잔류에 대한 국민투표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노동당이 주도적으로 탈퇴 운동을 했다. 그러나 국민투표 결과, 잔류 찬성이 67% 표를 받았다. 2016년 국민투표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였다. 노동당 다수는 EU 잔류를, 우익은 탈퇴에 투표했다. 언론도 나누어졌다. 언론 대부분이 75년에는 잔류를 지지했으나, 이번에는 분열되었다.
2016년 국민투표 이후 브렉시트 흐름은 더욱 강해졌으나, 영국 의회는 EU 탈퇴 협정법안, 이행법안 합의에 계속 실패했다. 2019년 12월 초기 총선에서, 보수당 당수 보리스 존슨은 영국을 유럽연합으로부터 탈퇴시킨다는 주요 공약을 내걸었다. 보수당은 그 실현을 위한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노동당은 성적이 좋지 않았다. 총 60석을 잃었고 득표율은 32.1%였다. 총선의 결과가 유럽의회의 비준으로 이어졌다. 영국 노동당의 실패는 계속되고 있다.
▲ 영국이 현지시간 1월 31일 오후 11시 EU를 공식 탈퇴하면서 런던 의회광장에서 기념 집회가 열려 브렉시트 지지 여성이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브렉시트 사건이 국제적 관심을 두는 것은 유럽 등 선진국이 공통으로 가진 문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화로 인해 물품, 금융, 각종 서비스 나아가 노동시장의 개방으로 인한 진통이 지속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여 년 동안 포퓰리즘 정치의 강풍이 불고 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을 지지하면서 브렉시트를 만들어낸 지지자가 누구인지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EU 잔류 지지자들이 말하는 대로, 그들은 무지하고 비합리적이고 인종주의적이며, 포퓰리즘 정당에 휘둘린 반동적 성격을 가진 자들인가? 그들이 원하는 영국은 어떤 모습일까?
애니웨어(anywhere) vs 섬웨어(somewhere)
데이비드 굿하트는 2017년 출간된 저서,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The Road to Somewhere)’에서 독특한 관점으로 브렉시트 지지자들을 분석하며 옹호한다. 나아가 현 정부와 노동당 그리고 좌파 진영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저자는 현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제적 관점에 따른 계급 분석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과 경제적 관계를 토대로 한 낡은 집단 구별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애니웨어/섬웨어로 구분하는 방식이 현실을 더욱 잘 반영한다.”
그간 문화와 정체성은 사회경제적 이슈에 밀려나 있었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던 기존 정치 질서에 문화와 정체성의 정치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과 미국에서 번지는 포퓰리즘 정치는 바로 이 점을 잘 활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니웨어와 섬웨어를 대표하는 가치는 무엇이며 누구인가? “애니웨어가 공유하는 가치는 급진적 개인주의(progressive individualism)이다. 이것은 성공한 개인의 세계관이다. 자율성과 이동성, 새로움이란 가치에 큰 무게를 둔다.” 반면 “섬웨어는 보수 성향이 짙고 본능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런 분석을 자유주의 대 공동체주의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국이 두 집단으로 양분된다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 애니웨이는 20~25%, 섬웨어는 대략 절반, 나머지는 중간층이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부유층은 57%, 빈곤층은 36%, 중간층은 49%가 EU 잔류를 지지했다. 영국 국민 중 56%가 스스로 가지지 못한 자라고 답변하는데, 이중 절대다수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30~40년 전만 해도 섬웨어는 영국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집단이었고, 좌파정당의 지지자들이었다. 1997년까지 노동당 지지자 중 노동계층이 많았다. 그러나 2010년 선거 결과를 보면 노동당의 지지층은 노동계층이 중산층보다 적다. 이런 구성비는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국독립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이 2015년 총선거에서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해온 노동계층 표를 상당수 뺏어갔다. 보수당으로도 그 표가 갔다. 이것은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에서 사민주의가 저물고 있다는 징표를 보여주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대처-레이건 시대만 해도, 우파는 경제영역에서의 자유주의를 좌파는 문화와 사회 영역에서 자유주의를 신봉했다. 그러나 좌파도 경제적 영역의 자유주의, 세계화, EU 질서를 굳건히 옹호하고 있다. 노동당도 애니웨어가 주류가 되었다.
경제적 개방은 신산업 일자리가 생겨서 과거 공룡 기업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서 추진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전통산업이 뿌리내린 지역에선 그런 일자리는 등장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세계화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제조업 일자리는 가난한 국가로 옮겨졌다. 자유주의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고학력, 전문직, 자유주의자 집단인 애니웨어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되었지만, 중하층 섬웨어의 존립은 위태로워졌다.
▲ 데이비드 굿하트의 2017년 저서,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The Road to Somewhere)’ ⓒ자료사진
특히 EU 회원국의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시장 개방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교육 기회, 공공주택 등에서 경쟁해야 하는 섬웨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브렉시트라는 충격적인 결정을 한 하나의 이유만 꼽으라면 전례 없을 정도로 늘어난 이민자이다.
현재 생산가능인구의 18%가 외국 태생이며, 지난 20년 동안 이주민과 소수인종 인구는 1,200만 명에 이르며 전체 인구의 20% 정도 된다. (영국인이 아닌 백인 인구까지 포함될 경우 그 비중은 25%에 이른다) 여기에 능력주의, 성취사회 가치가 더해지면서 영국 섬웨어는 자유주의 사회의 열등한 존재가 되었다. 섬웨어 백인들은 역사상 최초로 그들이 소수인종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의 전망은 비관적이지 않다. 정치권과 사회가 브렉시트 투표를 통해서 잊힌 섬웨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덕분에 섬웨어의 요구가 서서히 반영되고 있다고 본다. 반대로 자유주의를 널리 퍼뜨리는 핵심 구실을 한 베이비붐 세대의 힘은 소멸하고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는 베이비붐 세대 세계관으로, 베이비붐 세대들은 60년대의 자유주의 향유자들이며, 확산에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고등교육은 베이비붐 세대의 자유주의를 널리 퍼뜨리는 핵심 구실을 했다. 또한, 영국을 포함해 선진국 대부분이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것도 안정과 질서를 강조하는 섬웨어 가치관 확대 가능성을 높인다. 이동성과 고등교육이 애니웨어적 진보 개인주의라는 가치를 강화되는데 이바지했다면, 고령화와 빈곤과 결합한 뿌리 애착은 섬웨어의 ‘온건한 포퓰리즘’이 태동하게 된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온건한 포퓰리즘’은 다음과 같다. 브렉시트의 지지자 대부분은 여전히 온건한 사회 민주적 경제와 예산 정책을 선호하며, 세계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다양성만큼이나 공동체 보호가 필요한 오늘날, 성 평등 같은 일부 세계관은 주류 상식으로 폭넓게 수용됐지만, 온건한 국가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애니웨어와 섬웨어
한국의 진보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한목소리를 내었고 그를 위해서 싸웠다. 그리고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화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유화, 세계화의 물결에 한국의 진보는 대응에 실패했다.
그리고 IMF 직격탄을 맞았다. 줄줄이 FTA가 체결되어 무관세, 저관세에 기반한 자유무역의 선봉 국가가 되었다. 이 과정에 세계화에 반대하는 이경해 열사와 허세욱 열사가 있었다. 이제는 세계화란 화두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이 책은 진보적 자유주의자에게는 불편한 내용이 많다. 보수적 가치인 가족주의, 국가주의 등을 섬웨어의 가치로 일반화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 사회 문화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동일한 가치로 볼 수 있느냐는 점도 그렇다. 학문적 역사를 따지지 말고, 실존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의 정신인 다양성과 인권의 진전을 위해서도 경제적 자유주의 즉 하이퍼 자유주의는 유해하다.
책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힘들지만,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애니웨어와 섬웨어적 접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20 vs 80이라는 사회 구도에서 조금 더 내려가서 80을 나누어 중간층과 섬웨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층이동을 개인적 차원의 능력으로 환원시키는 사회가 바로 애니웨어적 사회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합리화하고 가난한 이에 대한 연민을 줄이는 작용을 하고 있다.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점점 애니웨어에 속하는 사람들은 경제를 넘어서 문화와 사회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다수는 주류 정치 현장에서 듣기 어려운 목소리가 되었다. 극우적 포퓰리즘에 동원되는 소리가 되었다. 민주당에는 선거 시기에만 한시적으로 들리고 보이는 소리가 되었다.
출처 [김애화 칼럼]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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