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는 같은 직원으로 대하기 싫은가 봅니다”
부산교통공사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임금차별 해도 좋으니 직접고용 해달라”
[오마이뉴스] 육근성 | 20.02.12 08:12 | 최종 업데이트 : 20.02.13 10:06
밤 10시. 그제야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다. 얼른 눈을 붙여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다음 날 아침 6시. 다시 청소작업에 투입된 그녀. 오후 3시가 돼서야 퇴근 준비를 한다. 하루 18시간 일을 한 셈이다.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다. 동료 한 명이 휴가를 가면 이런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대체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터는 부산지하철 역사다.
그녀는 주 6일 매일 두 끼를 휴게실에서 해결한다. 하지만 싱크대조차 없다. 조리도구는 전기밥솥 하나가 전부다. 그녀와 동료들이 모은 돈으로 산 것이다. 빨간 플라스틱 용기에 쌀을 담아 화장실로 간다. 걸레 빠는 곳에서 쌀을 씻는다. 회사가 주는 식비는 용역업체마다 다르지만 대개 월 1,000원~1만 원. 한 끼에 20원~200원인 셈이다. 이마저도 회사와 싸워서 얻어낸 결과다.
그녀에게 여름은 잔혹한 계절이다. 하루 2~3만 보 이상 움직여야 하는 노동. 땀으로 범벅되기 일쑤지만 씻을 곳이 없다. 세면이라도 하려면 정규직 역무원의 침실로 가야 한다. 이럴 때면 비참한 생각이 든다. 휴식 시간엔 부채질하느라 팔이 아플 정도다. 그녀는 부산교통공사(이하 공사)의 용역회사 비정규직 여성 청소노동자다.
그녀가 속한 회사는 공사의 11개 청소용역업체 중 하나. 지하철 개통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수의 계약으로 청소용역을 맡아온 업체다.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공사는 용역업체에 떠밀고, 용역업체는 원청인 공사의 책임으로 돌린다. 업체의 갑질뿐 아니라 성차별도 문제다. 이들 용역업체의 거반은 보훈처에 등록된 관변단체들이다.
“일, 물론 고되지요. 하지만 용역업체의 갑질이 더 힘들어요. 업체가 심어놓은 분임장과 반장은 노동자를 감시하고 노조 가입을 막아요. 노조에 가입하면 왕따당하거나 먼 곳으로 인사이동 시켜 출퇴근조차 힘들게 해요. 반장급들은 거의 다 남자들이에요. 이들은 청소도 안 해요. 남자들도 계단 닦고 그래야 청소노동자 아닙니까?”
부산지하철노동조합 황귀순 서비스지부장의 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실사용자와의 직접 대면을 요구해 왔다. 용역업체에 의해 가로막힌 노동환경 개선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고 상식적이다. ‘사용자가 우리를 직접 관리해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다. 하지만 공사는 또다시 ‘간접 대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새로운 용역 자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공사의 결정이다.
결국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에 들어갔다. 벌써 두 달째다. 용역업체라는 ‘방패막이’를 끝내 놓지 않겠다는 공사에 맞서기 위해서다. 이에 공사 측은 ‘새 용역회사의 운영은 과거와는 다를 것이며 노동 복지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공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들의 직접고용 요구는 용역업체에 의한 노동착취의 경험에 터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에 근거한 농성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사가 밝힌 직접고용 반대 이유는 비용과 합리성, 두 단어로 요약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이 증가할 것이며 청소 분야는 용역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게 공사 측 해명이다. 하지만 이 해명의 행간에서 실사용자의 속내가 읽힌다. 용역회사는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장치이고, 청소 노동은 ‘직접고용 부적합’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직업이란 말인가.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이 오히려 비용 절감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고용이 이뤄진다면 연간 100억 원에 달하는 용역업체의 관리비, 부가세, 이윤 등이 절약된다는 게 이러한 주장의 근거다. 노조는 이 중 일부를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용역업체의 이윤만 해도 연 32억 원입니다. 청소노동자가 1,000명이니까 이 돈이면 1인당 300만 원에 달합니다. 이 중 일부라도 노동 복지에 쓴다면 청소노동자 처우 문제는 해결됩니다.”
황귀순 서비스지부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실 고용주인 공사는 왜 용역 자회사 설립을 고집할까? 이런 질문을 꺼내자 황귀순 지부장은 현장에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겠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공사가 청소나 하는 우리를 같은 직원으로 대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또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되면 부산지하철노조(위원장 임은기) 조합원 수가 크게 늘 텐데 이것이 싫은가 보죠. 또 공사 간부들이 퇴직하고 낙하산으로 내려갈 자리가 필요해서 자회사를 고집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용역 자회사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아요.”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의 처지와 사회적 위치를 잘 안다. 청소 노동은 하급 직업군 아닌가. 그러니 직접고용과 기본적인 노동 복지만 이뤄진다면 일반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을 용인하는 것은 물론 최저임금을 받아도 만족할 수 있다.”
차별 대우도 좋으니 신분만 보장해 달라! 이게 농성 중인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이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노예’에서 벗어나 ‘시민’이 돼도 차별은 여전할 테지만 그래도 ‘시민’이라는 신분을 쟁취하고자 했던 저들의 외침과 어느 부분 닮았다.
출처 “청소노동자는 같은 직원으로 대하기 싫은가 봅니다”
부산교통공사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임금차별 해도 좋으니 직접고용 해달라”
[오마이뉴스] 육근성 | 20.02.12 08:12 | 최종 업데이트 : 20.02.13 10:06
▲ 여성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 겸 침실로 사용하는 공간. 이 좁은 방에서 여섯 명까지 누워 눈을 붙인다. 몸을 뒤적거릴 수도 없다. ⓒ 육근성
밤 10시. 그제야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한다. 얼른 눈을 붙여야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니까. 다음 날 아침 6시. 다시 청소작업에 투입된 그녀. 오후 3시가 돼서야 퇴근 준비를 한다. 하루 18시간 일을 한 셈이다. 노동 강도는 살인적이다. 동료 한 명이 휴가를 가면 이런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대체할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일터는 부산지하철 역사다.
그녀는 주 6일 매일 두 끼를 휴게실에서 해결한다. 하지만 싱크대조차 없다. 조리도구는 전기밥솥 하나가 전부다. 그녀와 동료들이 모은 돈으로 산 것이다. 빨간 플라스틱 용기에 쌀을 담아 화장실로 간다. 걸레 빠는 곳에서 쌀을 씻는다. 회사가 주는 식비는 용역업체마다 다르지만 대개 월 1,000원~1만 원. 한 끼에 20원~200원인 셈이다. 이마저도 회사와 싸워서 얻어낸 결과다.
그녀에게 여름은 잔혹한 계절이다. 하루 2~3만 보 이상 움직여야 하는 노동. 땀으로 범벅되기 일쑤지만 씻을 곳이 없다. 세면이라도 하려면 정규직 역무원의 침실로 가야 한다. 이럴 때면 비참한 생각이 든다. 휴식 시간엔 부채질하느라 팔이 아플 정도다. 그녀는 부산교통공사(이하 공사)의 용역회사 비정규직 여성 청소노동자다.
그녀가 속한 회사는 공사의 11개 청소용역업체 중 하나. 지하철 개통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수의 계약으로 청소용역을 맡아온 업체다.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공사는 용역업체에 떠밀고, 용역업체는 원청인 공사의 책임으로 돌린다. 업체의 갑질뿐 아니라 성차별도 문제다. 이들 용역업체의 거반은 보훈처에 등록된 관변단체들이다.
공사의 직접고용 반대 이유는 비용과 합리성
▲ 용역업체의 갑질을 규탄하는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 ⓒ 육근성
“일, 물론 고되지요. 하지만 용역업체의 갑질이 더 힘들어요. 업체가 심어놓은 분임장과 반장은 노동자를 감시하고 노조 가입을 막아요. 노조에 가입하면 왕따당하거나 먼 곳으로 인사이동 시켜 출퇴근조차 힘들게 해요. 반장급들은 거의 다 남자들이에요. 이들은 청소도 안 해요. 남자들도 계단 닦고 그래야 청소노동자 아닙니까?”
부산지하철노동조합 황귀순 서비스지부장의 말이다. 청소노동자들은 실사용자와의 직접 대면을 요구해 왔다. 용역업체에 의해 가로막힌 노동환경 개선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주장은 단순하고 상식적이다. ‘사용자가 우리를 직접 관리해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다. 하지만 공사는 또다시 ‘간접 대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새로운 용역 자회사를 만들겠다는 게 공사의 결정이다.
결국 청소노동자들이 농성에 들어갔다. 벌써 두 달째다. 용역업체라는 ‘방패막이’를 끝내 놓지 않겠다는 공사에 맞서기 위해서다. 이에 공사 측은 ‘새 용역회사의 운영은 과거와는 다를 것이며 노동 복지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은 공사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들의 직접고용 요구는 용역업체에 의한 노동착취의 경험에 터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에 근거한 농성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사가 밝힌 직접고용 반대 이유는 비용과 합리성, 두 단어로 요약된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이 증가할 것이며 청소 분야는 용역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게 공사 측 해명이다. 하지만 이 해명의 행간에서 실사용자의 속내가 읽힌다. 용역회사는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장치이고, 청소 노동은 ‘직접고용 부적합’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직업이란 말인가.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이 오히려 비용 절감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고용이 이뤄진다면 연간 100억 원에 달하는 용역업체의 관리비, 부가세, 이윤 등이 절약된다는 게 이러한 주장의 근거다. 노조는 이 중 일부를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비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직접 고용과 기본적인 노동 복지만 이뤄진다면...”
▲ 시위에 나선 부산지하철노조. 임은기 위원장(가운데), 황귀순 서비스지부장(오른쪽). ⓒ 육근성
“용역업체의 이윤만 해도 연 32억 원입니다. 청소노동자가 1,000명이니까 이 돈이면 1인당 300만 원에 달합니다. 이 중 일부라도 노동 복지에 쓴다면 청소노동자 처우 문제는 해결됩니다.”
황귀순 서비스지부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실 고용주인 공사는 왜 용역 자회사 설립을 고집할까? 이런 질문을 꺼내자 황귀순 지부장은 현장에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겠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공사가 청소나 하는 우리를 같은 직원으로 대하기 싫은 모양입니다. 또 청소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되면 부산지하철노조(위원장 임은기) 조합원 수가 크게 늘 텐데 이것이 싫은가 보죠. 또 공사 간부들이 퇴직하고 낙하산으로 내려갈 자리가 필요해서 자회사를 고집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용역 자회사를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아요.”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의 처지와 사회적 위치를 잘 안다. 청소 노동은 하급 직업군 아닌가. 그러니 직접고용과 기본적인 노동 복지만 이뤄진다면 일반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을 용인하는 것은 물론 최저임금을 받아도 만족할 수 있다.”
차별 대우도 좋으니 신분만 보장해 달라! 이게 농성 중인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이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노예’에서 벗어나 ‘시민’이 돼도 차별은 여전할 테지만 그래도 ‘시민’이라는 신분을 쟁취하고자 했던 저들의 외침과 어느 부분 닮았다.
출처 “청소노동자는 같은 직원으로 대하기 싫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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