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혐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혐오
혐오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
[민중의소리]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 발행 : 2020-02-06 17:01:16 | 수정 : 2020-02-06 17:05:18


▲ 신종 코로나 여파로 텅 빈 식당 모습. ⓒ뉴시스

동네가 한산하다. 저녁의 거리도 휑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신종 코로나)로 사람들이 일찍 집에 들어가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리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신종 코로나 전염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은 모습이다.

현재(2월 6일 오전)까지 한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23명이다. 확진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고 감염된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에 걸려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은 충분히 상상가능하다. 그러나 이 같은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로 우려스러운 일이다.

신종 코로나의 발원지가 중국 우한시라는 점 때문에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중국인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인을 받지 않는 식당이 생겨나는가 하면, 온라인에는 중국인은 더럽다며 싫어하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일본에서는 중국인이라고 폭행을 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혐오는 질병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는 평등 감각을 깨뜨리므로 위험하다. 그렇게 흔들린 인간 존엄성의 가치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6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 캠퍼스 내 외국인 관광객 출입을 제한하는 안내문이 붙여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출입금지 안내문을 보고 있다. 2020.02.06 ⓒ김철수 기자


중국인 혐오가 동양인 혐오로 확장되는 이유

신종 코로나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혐오도 확장되고 있다. 유럽의 중국인에 대한 혐오는 인종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1차 대전 시기 나치의 유대인 혐오를 연상케 한다. 정치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저서 『혐오와 수치심』에서 유대인에 대한 혐오가 정교한 사회공학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유대인을 유동적이고 끈적이는 혐오스런 속성을 지닌 암세포나 세균으로 묘사하며 탈인간화시켰던 배경에는, 사회적 성공을 한 유대인을 격하시키기 위한 정교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이 결합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최근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서구 국가와 비견되는 발언력을 가지게 됐다. 이 때문에 중국이란 존재는 서구 국가에 위협적일 뿐 아니라, 일부 서구인들이 가진 우월주의를 훼손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기 쉽다. 단지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확산시킨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의 경제력 증대에 대한 국가 차원의 견제와 일부 서구인의 우월주의적 감정이 신종 코로나를 계기로 중국인에 대한 혐오로 급속히 전환된 면이 있다.

이러한 ‘중국인 혐오’가 ‘동양인 혐오’로 확장되고 있다. 혐오는 혐오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실감된다. 여러 언론을 통해 유럽에서 동양인 혐오로 피해를 겪은 경험담이 알려지고 있다. 프랑스 마트에서 스카프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자신을 대하거나 채소를 손으로 만지지 못하게 하는 경험을 한 한국인, 이탈리아 유명 음악원에서 ‘동양인 학생(한․중․일)은 학교에 나오지 말라’는 문자를 받은 동양인 유학생들이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한 한국인이 유럽인들에게 아무리 ‘저는 중국인과 달라요. 한국인이에요’라고 말한다 한들 효과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른바 구분은 ‘누구의 위치’에서 ‘누가’ 구분하려 하는가와 관련된다. 서구인의 위치에서 보면 중국인과 한국인은 아시아인이고 동양인이다. 외모로나 국가들의 위치에서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구분과 배제는 누구의 시점과 위치이냐에 따라 달라질 뿐, 타자화라는 동일한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세세하게 구분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혐오는 이렇듯 확장가능성이 높다.

▲ 국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네번째 확진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관광을 하고 있다. 2020.01.28 ⓒ김철수 기자


국가의 의무와 세계시민의 책임

그렇다면 전염병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물론 신종 코로나가 이렇게 확산된 데에 중국 당국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발생 초기 신속하고 엄중한 대응을 하지 않고 신종코로나 발생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WHO(세계보건기구)에 공유하고 함께 대처방안을 세우지 않은 등의 책임은 중국 정부에 있다. (분명한 것은 중국 당국의 잘못이 중국인의 잘못은 아니다)

시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를 주지 않을 때 병에 대한 미신과 편견이 확산되고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 그렇기에 국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혐오는 감염을 숨기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사회구성원에게 알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고, 국가가 자신의 책무를 충분히 수행할 때 전염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1969년 WHO는 ‘공중보건위험에 상응하고 제한된 방식으로 국제이동과 무역에 대한 불필요한 방해를 피하면서 질병의 국제적 확산을 예방 방어 관리 및 대응하기 위해’ IHR(국제보건규칙)을 제정했다. 2005년 IHR이 전면 개정되면서 인권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병리학 상 전염병은 인간 또는 동물에 일어난 질병 중, 병원체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동물 간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파되는 질병을 말한다. (감염병은 특정 병원체 등으로 일어나는 질환으로 전염이 안 되는 감염병도 있어 감염병과 전염병은 다르고 감염이 더 큰 범주다) 전염병은 전파되는 것이므로 전염병 발생 시 차단과 격리 조치를 취하게 된다. 이 조치가 병에 비례해야(최소침해의 원칙) 하고 인권을 존중하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 IHR 내용이다.

전염병 확산을 막는 목적이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키려는 것이지만,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건강권 이외의 인권이 모두 침해해도 상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조건 차단하고 격리시키는 것이 국가의 의무는 아니라는 뜻이다. 인권적으로 전염병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IHR에서는 ‘비차별적인 방법으로 지체 없이 보건조치를 착수하고 완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32조 여행자의 대우에는 ‘당사국은 여행자에 대한 보건조치를 수행함에 있어 여행자의 성별, 사회문화, 민족 또는 종교 등의 사항을 고려하여 인권적으로 대우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정해져 있다. 여행자에게 정보 제공 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를 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다. 이를 보면 최근 중국인에 대한 처우는 심각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중국 여행객들더러 떠나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씁쓸하다.

다행히 씁쓸한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시민들 중엔 우한 시민들을 응원하는 영상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전주시에서는 유학생을 비롯한 국내 거주 중국인에 대한 상담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전염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것은 혐오가 아니라 존중과 연대라는 원칙을 되새길 때다.


출처  [명숙 칼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혐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