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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주택용 전기요금의 황당한 `진실`

몰랐다...주택용 전기요금의 황당한 '진실'
[게릴라칼럼] 주택용에만 6단계 누진제...요금인상 전에 체계부터 고쳐야
[오마이뉴스] 안호덕 12.06.20 09:14 | 최종 업데이트 12.06.20 15:02


수년째 기르던 열대어. 유일한 취미였지만, 지금은 열대어 어항을 비웠다. 겨울철 실내 습기조절에 좋고, 아이들 정서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작했던 열대어 키우기를 그만둔 건 각종 공과금을 좀 줄여보자는 아내의 제안 때문이었다. 도시가스, 전화요금, 인터넷 회선비, 상·하수도 요금에 전기요금까지 서로 경쟁하듯 오르기만 하는 공과금. 수입만 빼고 모든 것이 오르는 판국이니 줄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결정이었다. 에어펌프와 온도 조절기까지 전기에 의지해야 하는 어항이 정리대상 1호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전기요금이 또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한전이 4월 13.1%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종별 요금 수준 균형을 이유로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서는 한전의 누적 적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성수기인 7월 전에 전기요금을 인상해서 절전 효과를 높이자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의 발언을 감안하면 한전이 제시한 인상 폭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만간 큰 폭으로 오를 가능성이 크다. 언론에서는 지식경제부 안팎의 의견을 근거로 산업용 전기 7% 주택용 전기 4% 인상을 예측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는 전력 수급 위기상황에 대비해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간 사상 처음으로 정전 대비 위기대응 훈련도 실시한다.


기업은 저렴한 요금... 가정은 6단계 누진제

한전이 설명하는 전기요금 인상 이유는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전기요금을 사용자에게 부과함으로써 누적 적자가 증가하고 있고, 2011년 말 기준으로 82조 7000억 원의 부채를 기록하기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요금 인상 의도는 조금 다르다. 작년과 같은 전력수급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올려 사용량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전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부에서는 수급대란을 막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인상하여 한전이나 정부가 의도한 적자 메우기와 수급 대란의 해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인상 논리만 지나치게 앞세워 서민의 살림살이에 가혹한 짐을 보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와 의심은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기요금 부과 체계를 보면 더욱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서민에게 요금 인상만 강요한다면 한전이나 정부의 요금 인상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택용 전력만 해도 그렇다. 일반 가정에 공급되는 전력량 요금은 100kWh 단위로 6단계 누진제가 적용된다. 100kWh 이하는 kWh 당 57.3원의 사용 요금을, 100kWh 초과는 118.4원, 200kWh 초과는 175원, 300kWh 초과는 258.7원, 400kWh 초과는 381.5원, 500kWh 초과는 670.6원이 적용된다. (이상 주택용 저압 기준)

500kWh가 초과된 전력량 요금은 100kWh 이하의 요금에 비하면 무려 11.7배의 누진요금이 적용되는 셈이다. 여기에 기본요금도 사용량에 따라 차등 적용을 받고 있어, 일반 가정에서는 100kWh를 초과할 때마다 요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누진제가 소비절약을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대형마트나 교회·사찰 등에 부과되는 일반용 전력이나 산업체에 부과되는 산업용 전력에는 이런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또, 아파트 등의 집단 밀집 지역에서 수전변압기가 설치된 경우는 주택용 전력 고압 요금을 적용받아 단독 주택 등에 부과되는 주택용 전력 저압 요금보다 상대적으로 요금이 저렴하다. 실제 단독주택에서 500kWh를 사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월 전기요금은 12만 240원. 주택용 고압 요금 적용받는 아파트는 월 9만5690원으로 주택용 저압이 월 2만 4550원, 일년에 29만4600원을 더 부담하는 셈이다.


달빛분수 한 달 전기요금 1,460만 원? 가정용이라면 3,187만 원

일반용 전력은 주택용·교육용·산업용·농사용·가로등 등을 제외한 곳에 공급되는 전력으로 오피스텔·상가나 대형마트·백화점·사찰·교회·아파트 옥외 조명 등에 공급된다. 계약 전력 300kW 이하는 '일반용 갑'. 300kW 이상은 '일반용 을'의 요금을 받는다. 일반용 갑의 경우 kWh당 96.40원∼105.0원(여름철 기준. 봄, 가을 겨울은 낮음)으로 주택용 2단계 누진 금액 정도이다. 일반용 전력의 경우 누진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300kW이상이 계약된 일반용 전력을의 요금 적용은 시간대별로 다르다. 여름철의 기준으로 전기를 적게 사용하는 시간 (경부하. 23:00-09:00). 보통 사용시간 (중간부하. 시간대 09:00-11:00. 12:00-13:00.:17:00-23:00),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 (최대부하 시간대 11:00-12:00 13:00-17:00)으로 나누어 요금을 책정하게 되는데 최대부하 시간대는 kWh당 162원∼172.9원으로 주택용 전력보다는 다소 비싼 편이다. 그러나 경부하 시간대 요금은 kWh당 46.2원∼52.6원 정도로 주택용 요금의 3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대형마트의 야간 개장과 아파트 옥상 찬란한 경관 조명 등은 원가에도 못미치는 경부하 요금제로 인해 에너지 소비를 더 조장하는 셈이다. 더구나 이런 곳은 공휴일도 경부하 요금을 적용받는다.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고 심야 노동을 강요, 건강권과 수면권을 침해하고 대형 자본에 특혜로 간주되는 경부하 요금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예전부터 이어왔음에도 이번 요금 인상 논의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2011년 9월 15일 전력대란 당일 세빛둥둥섬 얼마 전까지 화려하던 세빛둥둠섬 외관조명은 현재는 밝히지 않는다. 서울시에 세빛둥둥섬 전력 사용량 및 전기요금 자료를 청구했지만 민간이 운영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반용 전력 요금을 부과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안호덕

서울시 자료에 의하면 반포대교 달빛무지개 분수 전기요금은 '일반용 고압 을'에 적용을 받는다. 2011년 8월 전기사용량은 3만 6017kWh로 전기요금 1464만 8530원을 납부했다. 이를 주택용 전력 저압 요금으로 환산한다면 3187만 4190원(한전 사이버요금 계산기로 계산한 결과, 2012년 1월 1일 단가) 이 된다. 물론 이런 단순 비교로 달빛 무지개 분수 전기 요금의 적정성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 전력과 일반용 전력 요금 차이는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대형마트·대형 오피스텔의 전기요금도 일반용 전력이 아니라 누진제를 적용한 주택용으로 적용할 경우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광업 및 제조업에 공급되는 산업용 전력 또한 일반용 전력의 요금 체계와 유사하며 일반용보다 저렴하다. 한국전력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 산업용 전기는 원가 회수율이 87.4%로 일반용이나 주택용보다 낮다. 비록 몇 차례 인상이 있어 왔지만, 수출 경쟁력 확보와 물가 안정을 이유로 어떤 종별 전기요금보다 낮게 유지해 왔던(농업용 제외) 것이 산업용 전력 요금이었다. 때문에 전기는 기업에서 쓰고, 전기 요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2011년 9월 종별 전력 사용량 및 전기 요금 총액을 조사했다. 정보공개 청구로 받은 한국전력 자료에 따르면 주택용은 전체 전력 중 16%를 사용하고 전체 요금 중 21%를 부담했다. 이어 비하여 산업용 전력은 전체 전력의 55.5%를 사용하고 전체 요금의 47.7%를 부담했다. 일반용 전력은 전체 전력 중 23.6%를 사용하고 27.6%의 전기요금을 부담했다.

이 자료만 보더라도 산업용 전력이 수차례 인상을 거듭했지만 아직까지 주택용이나 일반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요금을 적용받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교육용·농사용· 가로등·심야전력 등으로 나누어져 요금이 부과 되는데 대부분 주택용보다 훨씬 저렴하다. 농사용이나 가로등 전력은 주택용 전력가격의 30∼40%에 불과하다.

19일 민주통합당 이낙연 의원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2011년도 산업용 전력 원가보상액 자료'에서도 이 내용은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전력사용량 상위 20개 기업에 전기요금 할인 혜택을 주느라 한국전력이 입은 손실이 7792억원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요금 인상 전에 요금체계 정비해야

역대 정권은 전기 요금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혜택을 부여해 왔다. 수출과 물가 안정을 위해 산업용 전력 요금을 낮게 책정해 왔으며, 농업 경쟁력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농업용 전력을 저렴하게 공급했다. 전기가 남아도는 시간이라고 해서 경부하 요금제를 시행하여 오히려 전력 낭비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 반드시 필요한 경감 대책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온갖 경감 대책에 소외되어 6단계 누진제를 적용받는 주택용 전력 요금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앞의 자료에도 지적했듯이 주택용 전기는 전체 사용량의 16%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한전의 누적 적자가 크다면 그 원인은 온갖 경감 대책을 남발한 정권에 있다. 또, 전기 요금을 올려서 사용량을 줄여 전력대란을 막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지금과 같은 요금 체계를 두고 성과를 내기 어렵다. 전기 사용량을 줄여야 할 곳은 주택보다는 낮은 요금제를 이용하여 추울 정도로 에어컨을 가동하고 심야영업을 하는 대형마트나 퇴근 시간을 늦춘 기업들이 먼저여야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전기 요금 인상이 자칫 없는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가득이나 누진제에 억눌려 사는 서민을 앞세워 해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전력을 아껴 써야 할 당위성을 공감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6단계 누진제를 적용하고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주택용 전력요금 인상을 해야 된다는 논리는 공감할 수 없다. 때문에 야당인 민주통합당이나 여당이 새누리당조차 주택용 전기요금 인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먼저 해야 할 일은 전기 요금 체계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2011년 9월 15일. 블랙아웃이라는 사상 초유의 대란이 일어났을 때, 한강 대부분의 다리들은 화려한 조명을 내뿜고 있었다. 또, 세빛 둥둥섬은 현란한 야외 조명이, 옆에서는 달빛 분수에서 분수쇼가 펼치고 있었다. (관련기사 : '암흑천지 속에서 한강은 '빛잔치' 기사) 일반용 전력·가로등 전력의 값싼 요금으로 빛잔치를 하는 동안 서민의 보금자리는 암흑천지가 된 날이었다.


출처 : 몰랐다...주택용 전기요금의 황당한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