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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책임’ 해경 지휘부 영장청구서 보니…“해경청장, 엉뚱한 지시”

‘세월호 구조책임’ 해경 지휘부 영장청구서 보니…“해경청장, 엉뚱한 지시”
해경 지휘부, 세월호와 교신 유지
구조 계획 수립 의무 불이행
퇴선 유도 지휘도 하지 않아
‘유죄’ 김경일 정장 판결도 인용

[한겨레] 박준용 기자 | 등록 : 2020-02-23 18:42 | 수정 : 2020-02-23 19:47


▲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지난 2014년 7월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에 출석해 기관보고를 하기에 앞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53분경,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은 해경의 무선통신(주파수공용통신·TRS)으로 ‘여객선에 올라가 승객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안정시키라’는 엉뚱한 지시를 내렸다.”

지난달 6일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이 김석균 전 청장 등 해경 지휘부 6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밝힌 ‘범죄사실’의 한 대목이다. 23일 <한겨레>가 입수한 김 전 청장 등의 구속영장 청구서의 부속서류 ‘범죄사실 요지’를 보면, 특수단이 해경 지휘부의 어떤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했는지 나타난다.

특수단은 지난 18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김 전 청장 등 지휘부 10명을 불구속기소를 했는데, 이들의 구체적 범죄 혐의를 담은 공소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조치’로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해경, 세월호 사고 초기 교신 지휘 부실

특수단은 해경 지휘부가 ‘수난구호법’과 ‘주변해역 해영 해상사고 대응 매뉴얼’, ‘해양수색구조 매뉴얼’ 등에 규정된 구조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 결과 승객 303명(사망자 304명 중 사고 즉시 사망한 1명 제외)이 숨지고, 142명이 다치는 참사(업무상 과실치사상)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수단은 먼저 세월호 참사 당일 해경 상황실·지휘부가 세월호와 교신을 유지하고, 구조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목포해경과 서해해경, 해경 본청 등 각 해경 구조본부 모두 동일한 문제가 지적됐다. 목포해경 상황실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4분쯤부터 세월호 승객, 선원 등으로부터 다수의 122 신고를 접수했다. 이를 통해 해경은 ‘선체가 기울어 승객이 추락하고, 승객들은 선내에서 퇴선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을 파악했다. 하지만 목포 해경은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도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고, 접수된 신고내용을 다른 구조세력들에게 제대로 전파하지 않았다”고 특수단은 판단했다.

▲ 4.16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 회원들이 2019년 11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세월호참사 전면 재수사와 책임자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특수단은 서해해경이 승객의 ‘비상탈출’ 결정을 선장의 판단에 맡겨버린 점도 ‘구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당일 오전 9시 23분, 진도 해상교통관제시스템(진도VTS)은 세월호와 교신한 뒤 “세월호가 50도 정도 좌현으로 기울었고, 선장이 승객들의 비상탈출 여부를 해경에 문의한다”고 서해해경 상황실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해해경은 “퇴선 여부는 현지사정을 잘 아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유연식 당시 상황담당관)이라고 일축해 논란을 빚었다. 해경 본청도 세월호 전복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전달받았는데도 직접 세월호와 교신해 승객들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없었다고 특수단은 판단했다.

영장청구서에는 해경 지휘부 및 사고 당시 출동한 목포해경 123정 모두 오전 8시 54분경부터 30분가량 세월호의 상태나 내부 승객들의 상황, 퇴선준비 여부 등 파악, 구조계획을 세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선유도 ‘부실 지휘’ 책임도 기재

해경 지휘부가 승객 퇴선 유도를 제대로 지휘하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 의한 퇴선 유도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현장에 출동한 123정은 세월호 승객이 퇴선하도록 구조할 의무가 있었다. 특수단은 참사 당일 세월호 4층 왼쪽 갑판까지 완전히 침수된 시점까지도 해경 지휘부는 승객들의 퇴선 유도 지휘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김석균 전 해경청장과 김수현 전 서해해경청장은 “잠시 후 침몰함” 등 긴박한 보고를 받고도 “승객들을 안정시키라”는 등의 상황과 맞지 않는 지시를 내렸다고 판단했다. 또 김문홍 전 서장은 오전 9시 59분에야 뒤늦게 123정장에게 퇴선유도를 지시했다고 봤다.

특수단은 이 지시가 “사실상 이행 가능성이 없는”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이미 구조 가능성이 희박해진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김 전 서장은 이외에도 퇴선 유도 시점을 실제보다 54분 가까이 앞당겨 허위로 기록한 ‘목포서장 행동사항 및 지시사항’ 문건 생산을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특수단은 해경 지휘부가 참사 당일 출동한 항공기 1대 헬기 3대 등에 퇴선 조처를 지휘하지 않은 책임도 적용했다. 항공 구조사들이 세월호 갑판 등으로 이동해 메가폰·육성으로 선내에 대기 중인 승객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퇴선유도 지휘를 해야 했는데, 이런 조처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수단은 해경 구조본부를 두고 “현장 상황에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리거나, 현장 구조세력에 대한 지휘·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임관혁 단장. <한겨레> 자료사진


123정장 판결 참고한 특수단...‘은폐 시도’ 다시 도마에

특수단은 ‘퇴선조처’와 관련해 해경의 의무와 당시 상황을 두고 김경일 전 123 정장에 대한 판결을 참고했다. 김 전 정장의 ‘구조 방기’와 관련해 2015년 대법원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확정했다. 1심은 징역 4년, 항소심은 징역 3년을 김 전 정장에게 선고했는데,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결을 정당하다고 봤다. 특수단은 영장 청구서에 김 전 정장의 항소심 판결을 인용해 세월호에 대기하던 승객들의 상황을 설명했다.

“선내에 대기하고 있던 일부 승객들이 퇴선방송 등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중략) 승객들이 휴대전화나 육성으로 선내에 있던 다른 승객들에게 퇴선 조치를 전파할 수 있었으며, (중략) 출입문 등을 통해 갑판 등으로 나오거나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항소심은 세월호 참사 당시 ‘퇴선방송’을 두고 “해양경찰로서 이행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조치”라고 판단했다. 특수단은 이를 통해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의 의무를 규정했다. 퇴선방송을 하지 않은 것은 해경의 기본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다. 특수단이 해경 지휘부에 대해 파악한 내용은 2014년 검·경 합동수사본부이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이는 감사원이 세월호와 관련해 해경을 감사한 결과에도 상당수 포함된 내용이다.

다만 특수단은 과거 검경 합동수사본부와 달리 법적 처벌의 범위를 현장에 출동했던 김경일 전 정장뿐만 아니라 김석균 전 청장 등 해경 지휘부로 확대했다. 당시 검찰이 해경 지휘부가 아닌 김 전 정장 한 명에게만 법적 책임을 물은 과정 등 ‘사건 축소 시도’에 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한겨레> 보도들([단독] 우병우 “해경 상황실 서버 수색 말라”…세월호 수사팀에 압력, [단독] 황교안, 세월호 수사 외압 드러났다)을 통해 당시 해경 수사와 관련한 은폐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출처  ‘세월호 구조책임’ 해경 지휘부 영장청구서 보니…“해경청장, 엉뚱한 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