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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라퐁텐의 우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라퐁텐의 우화
[민중의소리] 이원영 수원대 교수, 한국탈핵에너지학회(준) 준비위원 | 발행 : 2020-02-21 15:53:40 | 수정 : 2020-02-21 15:53:40


“전갈이 간청해서 개구리 등에 올라가 강을 건넌다. 건너는 도중, 전갈의 눈에 개구리의 목덜미가 보인다. 킬러 본능이 작동한다. 찌른다. 결국 개구리도 죽고 전갈 자신도 강물에 빠져 죽는다.”

널리 알려진 라퐁텐 우화의 하나다. 자신마저 죽을 걸 알면서도 찌르고 보는 게 전갈의 본능이라는 것이고, ‘결과가 자신에게 유리하건 말건 저질러놓고 보는 게 생물체의 본능’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사람도 생물체요, 사람이 모여 만든 권력도 생물체의 속성을 고스란히 가진다. 총기가 철부지의 손에 들어가면 총기 난사가 일어난다. 개과천선한 ‘대도’라도 어수룩한 현장이 눈에 보이면 ‘털이’ 본능이 발동한다. ‘가짜뉴스’도 쓸 지면이 있으면 쓰고 본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기후협약을 탈퇴할 수 있으니 탈퇴하고 본다. ‘기후위기야 어찌 됐건 이래 봬도 내 독침은 건재하다구.’ 일본 아베 총리도 마찬가지다. 원전 오염수를 버릴 수 있으니 버리겠다고 떠든다. ‘바다야 오염되건 말건, 내 독침도 쓸만하다구.’

이런 권력자들이 잘 쓰는 수법이 있다. 위기 조장 수법이다. 일단 내지를 힘이 있으므로 흔들고 본다. 그러면 수상한 언론이나 호사가들이 일제히 무서워하거나 무서운 척 해준다. 기세등등하게 공포 분위기를 원인자 불명의 상황으로 전개한 후, 구세주인 양 등장해서 문제해결 능력을 과시하는 것. 트럼프 대통령의 주특기이기도 하다. 이 뻔한 수법이 아직 인류에게 잘 먹힌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4월 14일, 일본 후쿠시마현 오쿠마의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재건 현황 등을 살피고 있다. ⓒ제공 : 뉴시스, AP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는 이미 결론이 나 있다. 실정을 잘 아는 일본의 전문가 두 사람이 작년 5월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이구동성으로 “기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안전해질 때까지 오염수를 보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과학 저널리스트인 마키타 히로시 박사는 “일본 정부가 오염수에 트리튬(삼중수소) 외에는 다른 방사성 물질이 없다고 하면서 (다른 핵종이 있음을) 숨겨왔다는 사실이 지난해 8월 드러났다”며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은 데다 다른 방사성 핵종이 발견된 이상 해양 방출은 안된다”고 말했다.

원전 엔지니어인 고토 마사시 박사는, “오염수의 절대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방류한다면 방사성물질 농도가 낮더라도 어떤 피해를 일으킬지 불확실하다”면서, "트리튬 오염수를 대형 탱크에 100년 이상 비축하여 선량이 감쇠하기까지 보관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기준치 이하로 희석했다고 해도, 일상적으로 방출되는 분량에 더해 비축된 1000조 베크렐이 바다에 투기되면 총량적 문제가 생긴다”며 “따라서 방사선 양이 1000분의 1로 감쇠하는 123년간 대형탱크에 보관해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짚었다.

고토 박사는 “133만t의 용량은 대단한 양이 아니다. 석유 비축탱크와 같이 10만톤급 대형 탱크를 만들고 저장함으로써, 방사능 감쇠를 내다볼 수 있고 트리튬의 처리기술이 개발될 가능성도 있다. 비용도 330억엔 정도면 된다”고 설명했다.

▲ 2019년 5월 24일 오후 '한국탈핵에너지학회' 창립준비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환경위원회 공동주최로, '일본 원전오염수 관련 전문가 초청 강연회'가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도시바 전 원자력발전소 엔지니어 출신의 원자력시민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고토 마사시(後藤政志) 박사가 발표하고 있는 모습. ⓒ민중의소리

330억엔이라니, ‘아베 정권의 명운을 건 판돈’ 치고는 너무 적지 않은가. 이제는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빈 땅이 많다. 오염수 보관 탱크를 설치할 곳은 얼마든지 있다. 오염수가 방출되면 어민뿐 아니라 생선을 입에 넣을 일본 국민도 피해를 본다. 왜 일본국민들은 나서지 않을까? 아마도 나서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돌 하나 옮기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능력이 안되는 권력자들은 내심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해서 나서주기를 기다린다. 그때까지 계속 ‘이상한’ 짓을 하기 마련이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보편적 가치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지 못한 자의 본능이다. 그런 식으로 판을 흔들어 집단의 반응을 본 후,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는 퇴행적 습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독재자가 위기를 곧잘 조장하는 것도 그런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전갈의 독침’ 같은 ‘원전 오염수 바다 방출’ 협박의 진실은 바로 이런 권력자의 퇴행적 본능이다. 그렇다면 말려야 한다. 우리도 그 어리석은 짓에 대해 경고하여야 하지만 일본국민도 나서서 분명하게 의사표시를 해야 한다. 누가 그 나라의 주인인가?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 바다 방출에 반대하며 일본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김철수 기자


출처  [기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라퐁텐의 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