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 출신 삼성 자문위원의 노조와해 ‘활약’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재판기록 2만 쪽 분석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송아무개씨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노조 와해 전략 컨설팅
[한겨레21 제1301호] 조윤영 기자, 박태우 기자 | 등록 : 2020-02-21 16:23 | 수정 : 2020-02-26 12:21
“‘쌍용차 사건 때 그 난리를 치고도 노조원은 모두 버림받았다. 너네(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그 꼴 나게 된다’는 점을 인지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2014년 1월 21일 자문단 회의가 열린 첫 주, 삼성전자 본사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를 위해 연 5억 원(성공보수 1억4천만 원 포함)이라는 거액을 지급하고 자문 계약을 한 ‘컨설턴트’ 송 아무개 씨의 취임 일성이었다.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송 씨를 영입한 뒤, 2014년 2월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C동 316호에서는 매주 자문단 회의가 열렸다. 송 씨의 자문을 듣기 위해 열린 ‘316회의’였다. 목 아무개 삼성전자 인사팀 상무와 최 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종합상황실장(전무)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노조 대응 전체 전략과 구체적인 실행 방법 등이 결정됐다.
삼성은 컨설턴트 송 씨를 ‘송 (자문) 위원’이라 불렀다. 송 위원이 “첫째”, “둘째”, “셋째” 식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직원들은 “아, 그렇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무 업무를 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던 노사 담당자들은 송 위원의 “아날로그적인 현장 경험”에 상당히 의존했다. 이런 사실은 목 아무개 상무가 송 위원과 함께 자문 계약을 한 백 아무개 노무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위원님, 노무사님, 차주 움직임이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그쪽 계획이나 동향 포착된 게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재판기록 2만여 쪽에는 송 위원이 기획한 삼성그룹,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전략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상세하게 나온다.
통상 협력사 노조 문제는 삼성전자가 관심 가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는 데다 고용노동부 수시감독도 있었다. 2013년 10월 충남 천안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최종범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노조는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농성 등 강경투쟁에 들어갔다.
‘비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한 삼성전자가 노조 와해를 위해 위법을 감수하고라도 “노조 생리와 성향을 잘 아는” 송 위원을 투입해 노조 대응 전력 보강에 들어간 이유였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를 잇는 ‘핵심 연결고리’였던 송 위원은 법적으로 노무관리나 노사관계를 자문할 수 있는 공인노무사도 아니었다. 송 위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노동운동권 출신이었다.
금속노조 동향과 고위 간부들의 의사결정 방식, 배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위장 폐업 논란에 대비한 폐업 시기와 방법 등을 자문했던 것은 노사 담당자들도 중시한 송 위원의 풍부한 “아날로그적인 현장 경험”, “관련 법규 이해”, “대인 관계” 때문이었다.
대학생 때 노동부 장관 부속실을 점거해 “노동운동 탄압하는 노동부는 자폭하라”며 농성투쟁까지 벌인 노동운동권 출신 송 위원이 노조 와해 컨설턴트로 변심한 배경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송 위원을 아는 한 인사는 <한겨레21>에 “노사정위원회 등에서 일하다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한 뒤, 기업과 법무법인(로펌)에서 노조 역사 등을 강의하곤 했다. 그런데 돌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토론회에 나와 노동계 전망과 노사관계 안정화를 말해 (송 위원에게) 왜 그러냐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송 위원은 노조 와해 컨설팅을 하기 전인 2009∼2012년 삼성그룹에서도 노동계 전략과 전술 등을 네 차례 넘게 강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진 경찰대 출신 강경훈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부사장은 2012년 설과 2013년 추석 때 명절 선물을 주며 송 위원과 친분을 유지했다. 삼성이 송 위원과 맺은 컨설턴트 계약도 그가 추천한 결과였다.
“삼성그룹 노사 부문에서 유력한 의사결정권자”이던 강경훈 부사장이 “삼성전자 인사팀은 노조 집단행동과 단체교섭 경험이 일천하니 내가 잘 아는 송 위원과 계약해 컨설팅 받아보라”며 목 아무개 상무에게 조언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전략은 송 위원 영입 이후 질적으로 달라졌다. 노조 생리와 정파, 동향 등에 정통한 송 위원이 기획한 폐업 시나리오는 구체적인 전술로 실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소진 전략’이었다.
에어컨 등 수리 업무가 폭증하는 여름철 성수기 전, 노조 동력을 약화하기 위해 전례 없는 ‘고용 승계 없는 폐업’ 소문을 퍼뜨렸다. 노조 가입률이 높은 해운대·아산 협력업체의 순차적인 폐업으로 ‘노조 활동=실직’이라는 불안을 높였다.
송 위원은 소진 전략 측면으로 ‘그린화(조직 안정화) 전략’을 썼다. 재취업 과정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차별 취급해 긴 시간 실직 상태에 놓인 노조원의 조합 탈퇴를 유도했다.
최종범 조합원이 자살한 뒤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지원하기로 한 리스 차량을 노조원과 비노조원에게 차별 제공해 분열을 조장하는 “강력한 무기”로 활용했다. 특히 리스 차량에 “블랙박스도 부착”해 “노조 활동 대응에 유용”하게 쓰려 한 사실도 드러났다.
언론과 고용노동부 활용도 능숙했다. 직장폐쇄 또는 폐업이 부당노동행위로 보이지 않게 협력업체 대표들이 관할 노동지청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폐업의 명분을 쌓게 했다. 관할 노동지청에서 협력사에 직장폐쇄를 지도할 경우 “노동지청과 협력사가 같은 편이 되는 기회 활용” 가능성도 내다봤다.
교섭 장소와 상대방, 과정 등을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교섭’도 송 위원의 아이디어였다.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블라인드 교섭이 열리면 인근 다른 호텔에서 송 위원은 진행 과정을 수시로 확인하며 막후 지휘를 했다.
“저희가 말 그대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을 때 백○○ 노무사와 송 위원 두 명을 자문단으로 모시게 돼 큰 도움이 됐다.” 같은 해 5월 백 노무사가 자문위원을 먼저 그만둘 즈음 신 아무개 삼성전자 인사팀 부장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내용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뒤 약 1년 만인 2014년 6월, 협력업체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과 노조가 기준단체협약(모든 협력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뒤 송 위원 통장에는 사례금 명목으로 1천만 원이 들어왔다.
이때 송 위원은 자신이 작성한 ‘타결 이후 대응방안’ 문건에서 이렇게 자평했다. “회사의 완승이고 비노조 정책의 실패가 아니다.”
법정에 선 송 위원은 “삼성전자 및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전략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획, 결정된 거다. 컨설턴트로 자문하는 위치에 불과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7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송 위원은 법정 구속됐다.
출처 [단독] 운동권 출신 삼성 자문위원의 노조와해 ‘활약’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재판기록 2만 쪽 분석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송아무개씨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노조 와해 전략 컨설팅
[한겨레21 제1301호] 조윤영 기자, 박태우 기자 | 등록 : 2020-02-21 16:23 | 수정 : 2020-02-26 12:21
▲ 2014년 5월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삼성 서초사옥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쌍용차 사건 때 그 난리를 치고도 노조원은 모두 버림받았다. 너네(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그 꼴 나게 된다’는 점을 인지시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2014년 1월 21일 자문단 회의가 열린 첫 주, 삼성전자 본사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를 위해 연 5억 원(성공보수 1억4천만 원 포함)이라는 거액을 지급하고 자문 계약을 한 ‘컨설턴트’ 송 아무개 씨의 취임 일성이었다.
송씨의 소중한 ‘아날로그적 현장 경험’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 출신 송 씨를 영입한 뒤, 2014년 2월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C동 316호에서는 매주 자문단 회의가 열렸다. 송 씨의 자문을 듣기 위해 열린 ‘316회의’였다. 목 아무개 삼성전자 인사팀 상무와 최 아무개 삼성전자서비스 종합상황실장(전무) 등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노조 대응 전체 전략과 구체적인 실행 방법 등이 결정됐다.
삼성은 컨설턴트 송 씨를 ‘송 (자문) 위원’이라 불렀다. 송 위원이 “첫째”, “둘째”, “셋째” 식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직원들은 “아, 그렇구나”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무 업무를 하지만 실전 경험이 없던 노사 담당자들은 송 위원의 “아날로그적인 현장 경험”에 상당히 의존했다. 이런 사실은 목 아무개 상무가 송 위원과 함께 자문 계약을 한 백 아무개 노무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위원님, 노무사님, 차주 움직임이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혹시 그쪽 계획이나 동향 포착된 게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재판기록 2만여 쪽에는 송 위원이 기획한 삼성그룹,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전략이 어떻게 실행됐는지 상세하게 나온다.
통상 협력사 노조 문제는 삼성전자가 관심 가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하는 데다 고용노동부 수시감독도 있었다. 2013년 10월 충남 천안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최종범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노조는 서초사옥 앞에서 노숙농성 등 강경투쟁에 들어갔다.
‘비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한 삼성전자가 노조 와해를 위해 위법을 감수하고라도 “노조 생리와 성향을 잘 아는” 송 위원을 투입해 노조 대응 전력 보강에 들어간 이유였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를 잇는 ‘핵심 연결고리’였던 송 위원은 법적으로 노무관리나 노사관계를 자문할 수 있는 공인노무사도 아니었다. 송 위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노동운동권 출신이었다.
금속노조 동향과 고위 간부들의 의사결정 방식, 배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위장 폐업 논란에 대비한 폐업 시기와 방법 등을 자문했던 것은 노사 담당자들도 중시한 송 위원의 풍부한 “아날로그적인 현장 경험”, “관련 법규 이해”, “대인 관계” 때문이었다.
효과적인 ‘소진 전략’, ‘그린화 전략’
대학생 때 노동부 장관 부속실을 점거해 “노동운동 탄압하는 노동부는 자폭하라”며 농성투쟁까지 벌인 노동운동권 출신 송 위원이 노조 와해 컨설턴트로 변심한 배경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송 위원을 아는 한 인사는 <한겨레21>에 “노사정위원회 등에서 일하다 노동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한 뒤, 기업과 법무법인(로펌)에서 노조 역사 등을 강의하곤 했다. 그런데 돌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토론회에 나와 노동계 전망과 노사관계 안정화를 말해 (송 위원에게) 왜 그러냐고 묻기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송 위원은 노조 와해 컨설팅을 하기 전인 2009∼2012년 삼성그룹에서도 노동계 전략과 전술 등을 네 차례 넘게 강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진 경찰대 출신 강경훈 당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부사장은 2012년 설과 2013년 추석 때 명절 선물을 주며 송 위원과 친분을 유지했다. 삼성이 송 위원과 맺은 컨설턴트 계약도 그가 추천한 결과였다.
“삼성그룹 노사 부문에서 유력한 의사결정권자”이던 강경훈 부사장이 “삼성전자 인사팀은 노조 집단행동과 단체교섭 경험이 일천하니 내가 잘 아는 송 위원과 계약해 컨설팅 받아보라”며 목 아무개 상무에게 조언한 것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전략은 송 위원 영입 이후 질적으로 달라졌다. 노조 생리와 정파, 동향 등에 정통한 송 위원이 기획한 폐업 시나리오는 구체적인 전술로 실행됐다. 대표적인 것이 ‘소진 전략’이었다.
에어컨 등 수리 업무가 폭증하는 여름철 성수기 전, 노조 동력을 약화하기 위해 전례 없는 ‘고용 승계 없는 폐업’ 소문을 퍼뜨렸다. 노조 가입률이 높은 해운대·아산 협력업체의 순차적인 폐업으로 ‘노조 활동=실직’이라는 불안을 높였다.
송 위원은 소진 전략 측면으로 ‘그린화(조직 안정화) 전략’을 썼다. 재취업 과정에서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차별 취급해 긴 시간 실직 상태에 놓인 노조원의 조합 탈퇴를 유도했다.
최종범 조합원이 자살한 뒤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지원하기로 한 리스 차량을 노조원과 비노조원에게 차별 제공해 분열을 조장하는 “강력한 무기”로 활용했다. 특히 리스 차량에 “블랙박스도 부착”해 “노조 활동 대응에 유용”하게 쓰려 한 사실도 드러났다.
언론과 고용노동부 활용도 능숙했다. 직장폐쇄 또는 폐업이 부당노동행위로 보이지 않게 협력업체 대표들이 관할 노동지청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폐업의 명분을 쌓게 했다. 관할 노동지청에서 협력사에 직장폐쇄를 지도할 경우 “노동지청과 협력사가 같은 편이 되는 기회 활용” 가능성도 내다봤다.
교섭 장소와 상대방, 과정 등을 공개하지 않는 ‘블라인드 교섭’도 송 위원의 아이디어였다.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블라인드 교섭이 열리면 인근 다른 호텔에서 송 위원은 진행 과정을 수시로 확인하며 막후 지휘를 했다.
“회사의 완승이고 비노조 정책의 실패가 아니다”
“저희가 말 그대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을 때 백○○ 노무사와 송 위원 두 명을 자문단으로 모시게 돼 큰 도움이 됐다.” 같은 해 5월 백 노무사가 자문위원을 먼저 그만둘 즈음 신 아무개 삼성전자 인사팀 부장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내용이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설립 뒤 약 1년 만인 2014년 6월, 협력업체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과 노조가 기준단체협약(모든 협력사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단체협약)을 체결한 뒤 송 위원 통장에는 사례금 명목으로 1천만 원이 들어왔다.
이때 송 위원은 자신이 작성한 ‘타결 이후 대응방안’ 문건에서 이렇게 자평했다. “회사의 완승이고 비노조 정책의 실패가 아니다.”
법정에 선 송 위원은 “삼성전자 및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 와해 전략은 이미 오래전부터 기획, 결정된 거다. 컨설턴트로 자문하는 위치에 불과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17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송 위원은 법정 구속됐다.
출처 [단독] 운동권 출신 삼성 자문위원의 노조와해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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