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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정치·사회·경제

방진 마스크와 순면 방한대, 현대차 공장의 두 마스크

방진 마스크와 순면 방한대, 현대차 공장의 두 마스크
[KBS 취재K] 변진석 기자 | 입력 : 2020.03.05 (13:10) | 수정 : 2020.03.05 (14:13)



마스크 사진 2장이 있습니다. 왼쪽은 1급 방진 마스크입니다. 오른쪽은 “100% 순면” 방한대입니다. 자외선 차단과 꽃가루 방지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GV80과 펠리세이드 등을 생산하는 울산 제2공장 노동자들이 받아든 마스크입니다. 누가 어떤 마스크를 쓸까요?

미루어 짐작하셨겠지만 1급 방진 마스크는 현대차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준 것입니다. 방한대는 하청업체가 소속 노동자들에게 준 것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는 바이러스

현대차는 중국에서의 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2월 5일부터 17일까지 생산설비를 멈췄습니다. 휴업을 전후한 당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일반 부직포 마스크가 지급되고 있었습니다.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마스크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2월 25일 현대자동차 노사는 ‘코로나19 관련 특별합의’를 체결했습니다. 마스크 10만 개를 확보하고 사내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KF94 마스크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28일 울산 제2공장에서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2공장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협의대로 마스크가 지급되고 선별진료와 퇴근조치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는 확진자 발생 상황이 고지되지도 않았고, 선별진료도 제공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마스크도 받지 못했다는 게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주장입니다.


“속된 말로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

지난 2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가 자체 전수 조사를 해봤습니다. 지회에 소속된 28개 하청업체 전부에서 코로나19에 대비한 마스크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겨울용 방한대를 마스크로 지급한 뒤 매일 빨아서 쓰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용도와 상관없이 어떠한 마스크도 받지 못한 노동자도 있었습니다.

원청인 현대자동차는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2월 6일 발표한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장 대응지침’에서 원청의 책임을 규정한 바 있습니다.

지침은 “사업장의 경영자는 소속노동자(하도급, 파견, 용역노동자 포함) 가운데 코로나19 환자(격리대상자 포함)가 발생하면 즉시 적절한 격리가 이뤄지도록 조치한다.”, “사업장 차원에서 경영유지 및 업무 지속을 위한 전담부서 또는 전담자를 지정하고 대비‧대응계획을 수립한다. 이때 사내 협력업체를 포함하여 계획을 수립토록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원청 회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말고 사업장 안전을 위해 노동자들의 건강에 신경 쓰라는 말입니다.

금속노조는 논평을 통해 “현대차가 돈이 없어 그런 건 아닐 테고 사옥부지에만 10조를 쓰는 회사가 치졸하게 마스크 가지고 이러는 것은 속된 말로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 한진중공업 고공농성을 이끌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트윗


마스크, 지급은 했지만 앙금은 여전

현대차 관계자는 “제2공장 정규직 직원들에게는 노사협의에 따라 방진 마스크를 지급했다. 2월말 확진자 발생 즈음 부직포 마스크 만개, 이번주 월요일에 추가 5천개를 하청업체에 제공했다. 하청업체에는 유사시에 대비해 마스크를 확보해두라고 독려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도 “오늘부터 마스크를 받은 것을 확인했다. 협력하겠다는 의사도 전달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회사를 상대로 건강권 쟁취 투쟁은 계속하겠다”는 뜻도 덧붙였습니다.


삭풍은 없는 사람들에게 더 매섭게 몰아친다

현대차는 우리나라 재계 순위 2위 기업입니다.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서 존재감이 뚜렷한 말 그대로 대기업입니다. 코로나19 위기가 계속되는 요즘, 이런 규모의 기업 사업장에서도 차별이 발생했습니다. 다른 회사의 사업장들은 어떨까요?

대리운전노동자, 택배 노동자 등 특수고용노동자들도 차별을 받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 관련 물품이 지급돼야 하지만, 사업주들이 뒷짐만 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자비로 마스크를 사서 쓰고 있다고 합니다.

역시 하청노동자로 밀집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콜센터 노동자들은, 일부 사업장에서 마스크 등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원청에서 충분한 수량을 확보해 사업장에 일괄적으로 배치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메르스 당시 병원 풍경을 돌아봅니다.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달리 안전장갑도 마스크도 지급받지 못한 채 공포에 떨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때의 가슴 떨렸던 불안을 아직도 트라우마로 호소합니다.

메르스 이후 5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나요?


출처  방진 마스크와 순면 방한대, 현대차 공장의 두 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