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외면했던 KBS…최초 알린 KBS 기자는 ‘해직’
[KBS] 이세중 기자 | 입력 : 2020.05.19 (13:36) | 수정 : 2020.05.19 (13:38)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입니다.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금, 공영방송 KBS의 역할도 적지 않습니다.
40년 전, 군인들이 총칼로 광주 시민들을 짓밟는 동안 KBS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시민들의 폭력성만 부각해 보도했고,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지닌 시민들을 ‘폭도’라는 단어로 규정했습니다. 심지어 북한 괴뢰의 선동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왜곡 보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 KBS 뉴스를 통해 광주의 실상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자는 두 달 뒤 해직됐습니다. KBS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시민들과 군의 대치가 극에 달하는 상황이었지만, 국내 언론 중 이를 제대로 보도한 언론사는 없었습니다. KBS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자들이 광주 상황을 취재해도, 당시 신군부가 장악한 보도국에서 군인들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군복을 입고 권총까지 찬 보안사령부 군인이 보도국 내부를 돌아다니며 기자들을 위협했습니다.
당시 편집부 차장이었던 장두원 전 KBS 기자는 “기자들이 보도는 하지 못하지만,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5.18 관련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도하면 즉결처분한다는 계엄사의 포고령이 있어 목숨 걸고 보도하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5.18 나흘째인 5월 21일, KBS 7시 뉴스 담당이었던 장 기자는 지방 취재 내용과 외신 보도를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광주의 실상을 보도하기로 결심합니다. 보안사 요원에게 “보도해도 좋겠냐”고 물었고, “죽고 싶으면 보도하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 기자는 보도국장에게 보도 허락이 떨어졌다고 거짓 보고를 했고, 즉시 아나운서를 불러 미리 작성해둔 원고를 건넸습니다.
장두원 기자는 “메인 뉴스인 9시 뉴스에 비해 짧은 기사 위주로 나가는 당시 7시 뉴스는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이 적었고, 7시 뉴스 책임자는 나였기 때문에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방송을 본 보안사는 발칵 뒤집혔고, 당시 KBS를 담당하던 보안사 요원은 교체됐습니다. 그리고 보도 통제는 더욱 엄격해졌고, 이날 이전과 이후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KBS 보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5월 21일 저녁 KBS 7시 뉴스의 보도는 국내 언론 중 가장 먼저 광주의 실상을 알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KBS 뉴스를 녹화해두지 않아 증거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0년 민주화 심의위원회에서 1년여간 조사를 벌인 끝에 관련 증거를 확보해 공식 인정했습니다. 특히, 국방부가 만든 신군부 언론탄압에 대한 내부 보고서를 찾아낸 것이 주요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담긴 해직 언론인 명단에서 장두원 기자의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최초 보도한 지 두 달 뒤인 7월 장 기자는 해직됐는데, 그 사유에 대해선 ‘반정부’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복직 투쟁을 이어간 장 기자는 8년 만인 1988년 KBS로 복직했습니다.
당시 KBS 7시 뉴스의 ‘광주 보도’는 영상도 없이 오로지 아나운서의 음성으로만 광주의 실상을 단 한 차례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이외 주요 뉴스에서 광주 상황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보도가 없었던 일 마냥 전혀 다른 내용의 왜곡 보도만 이어갔습니다.
이후에도 KBS는 오랫동안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보도와 다큐멘터리를 숱하게 방송됐습니다. 1989년에서야 처음으로 광주 시민의 아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광주는 말한다’를 내보냈지만, 더욱 거세진 정권의 방송 통제 속에 사장이 교체되는 진통 등을 겪으며 다시 한 번 무기력하게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훌쩍 2000년대 이후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날의 진실이 상당수 밝혀지지 않으면서, KBS는 여전히 지난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입니다. KBS가 어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역사 앞에 고개 숙이고, 잘못을 뉘우친 이유입니다. KBS가 저지른 잘못을 씻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이제라도 제 역할을 하는 것,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보도에 앞장서는 일일 겁니다.
출처 [취재후] 5.18 외면했던 KBS…최초 알린 KBS 기자는 ‘해직’
[KBS] 이세중 기자 | 입력 : 2020.05.19 (13:36) | 수정 : 2020.05.19 (13:38)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입니다.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금, 공영방송 KBS의 역할도 적지 않습니다.
▲ 1980년 5월 27일 KBS 9시 뉴스 보도
40년 전, 군인들이 총칼로 광주 시민들을 짓밟는 동안 KBS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시민들의 폭력성만 부각해 보도했고, 민주화를 향한 열망을 지닌 시민들을 ‘폭도’라는 단어로 규정했습니다. 심지어 북한 괴뢰의 선동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왜곡 보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 KBS 뉴스를 통해 광주의 실상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자는 두 달 뒤 해직됐습니다. KBS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죽고 싶으면 보도하라’는 계엄사 요원...보도국장 속여 7시 뉴스로 보도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는 시민들과 군의 대치가 극에 달하는 상황이었지만, 국내 언론 중 이를 제대로 보도한 언론사는 없었습니다. KBS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자들이 광주 상황을 취재해도, 당시 신군부가 장악한 보도국에서 군인들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군복을 입고 권총까지 찬 보안사령부 군인이 보도국 내부를 돌아다니며 기자들을 위협했습니다.
당시 편집부 차장이었던 장두원 전 KBS 기자는 “기자들이 보도는 하지 못하지만,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5.18 관련 뉴스를 조금이라도 보도하면 즉결처분한다는 계엄사의 포고령이 있어 목숨 걸고 보도하는 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회상했습니다.
▲ 장두원 전 KBS 기자
하지만 5.18 나흘째인 5월 21일, KBS 7시 뉴스 담당이었던 장 기자는 지방 취재 내용과 외신 보도를 정리한 자료를 바탕으로 광주의 실상을 보도하기로 결심합니다. 보안사 요원에게 “보도해도 좋겠냐”고 물었고, “죽고 싶으면 보도하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장 기자는 보도국장에게 보도 허락이 떨어졌다고 거짓 보고를 했고, 즉시 아나운서를 불러 미리 작성해둔 원고를 건넸습니다.
장두원 기자는 “메인 뉴스인 9시 뉴스에 비해 짧은 기사 위주로 나가는 당시 7시 뉴스는 상대적으로 감시의 눈이 적었고, 7시 뉴스 책임자는 나였기 때문에 방송에 나갈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방송을 본 보안사는 발칵 뒤집혔고, 당시 KBS를 담당하던 보안사 요원은 교체됐습니다. 그리고 보도 통제는 더욱 엄격해졌고, 이날 이전과 이후 광주의 실상을 전하는 KBS 보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두 달 만에 ‘해직’...다시 왜곡 보도 이어간 KBS 뉴스
5월 21일 저녁 KBS 7시 뉴스의 보도는 국내 언론 중 가장 먼저 광주의 실상을 알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KBS 뉴스를 녹화해두지 않아 증거가 없어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0년 민주화 심의위원회에서 1년여간 조사를 벌인 끝에 관련 증거를 확보해 공식 인정했습니다. 특히, 국방부가 만든 신군부 언론탄압에 대한 내부 보고서를 찾아낸 것이 주요했습니다.
▲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신군부 언론통제 사건 조사결과보고서. 편집차장 장두원 기자의 해직 사유는 ‘반정부’(反政府)로 기록돼있다.
이 보고서에 담긴 해직 언론인 명단에서 장두원 기자의 이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최초 보도한 지 두 달 뒤인 7월 장 기자는 해직됐는데, 그 사유에 대해선 ‘반정부’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후 복직 투쟁을 이어간 장 기자는 8년 만인 1988년 KBS로 복직했습니다.
당시 KBS 7시 뉴스의 ‘광주 보도’는 영상도 없이 오로지 아나운서의 음성으로만 광주의 실상을 단 한 차례 전했을 뿐이었습니다. 이외 주요 뉴스에서 광주 상황은 전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이 보도가 없었던 일 마냥 전혀 다른 내용의 왜곡 보도만 이어갔습니다.
이후에도 KBS는 오랫동안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보도와 다큐멘터리를 숱하게 방송됐습니다. 1989년에서야 처음으로 광주 시민의 아픔을 다룬 다큐멘터리 ‘광주는 말한다’를 내보냈지만, 더욱 거세진 정권의 방송 통제 속에 사장이 교체되는 진통 등을 겪으며 다시 한 번 무기력하게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훌쩍 2000년대 이후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날의 진실이 상당수 밝혀지지 않으면서, KBS는 여전히 지난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입니다. KBS가 어제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역사 앞에 고개 숙이고, 잘못을 뉘우친 이유입니다. KBS가 저지른 잘못을 씻기 위한 최선의 노력은 이제라도 제 역할을 하는 것,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보도에 앞장서는 일일 겁니다.
출처 [취재후] 5.18 외면했던 KBS…최초 알린 KBS 기자는 ‘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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