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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死大江

저 길고 황량한 ‘자전거 길’을 보라

저 길고 황량한 ‘자전거 길’을 보라
4월22일 개통된 4대강 자전거길을 직접 달렸다. 주말 한강 자전거길을 제외하면 이용객이 거의 없었다. 자전거도로 공사로 황폐화되고, 침수 위험에 놓인 곳도 적지 않았다.
[시사IN 247호] 송지혜 기자 | 기사입력시간 2012.06.12 09:22:59


4월22일 낙동강 자전거길 385km가 개통되면서 인천 아라뱃길에서 부산 낙동강 하구둑을 잇는 국토 종주 자전거길이 완성됐다. 금강과 영산강 자전거길도 같은 날 개통됐다. 이로써 4대강 국토 종주 자전거길은 총연장 1757km에 달하게 됐다(왕복 거리 기준·아래 지도 참조).

이날 인천 서구 아라빛섬에서 열린 제4회 대한민국 자전거대축전 개막식 겸 4대강 자전거길 개통 축하 행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국은 자전거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4대강 길을 따라서 달리다보면 마음껏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이포보에서 본 남한강 자전거길 주변이 황폐하다. ⓒ시사IN 백승기

그러나 아직 소통이 마음껏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지난 5월30일, 기자가 찾은 경기도 여주 이포보는 한산했다. 한강 종주 자전거길인 이포보는 국토해양부가 16개 보 가운데 으뜸 절경으로 꼽은 곳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대강 공사 중 7명이 목숨을 잃은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자는 이포보에서 양평역까지 약 16km 구간을 3시간여에 걸쳐 달렸다.

평일인 데다 날씨까지 흐려서인지 출발한 지 30분이 넘도록 마주친 사람이 없었다. 한참을 달리니 하자포 3리 부녀회가 운영하는 자전거 휴게소가 나타났다. 나무 벤치와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 있지만, 아쉽게도 판매하는 사람이 없다. 알고 보니 평일에는 장사하지 않는단다. 이포보 입구에서 자전거 대리점을 하는 전창선씨(45)는 “단체손님이 오지 않으면, 평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평일에 간간이 오는 한두 사람 때문에 장사를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이날 자전거도로에서 만난 이들은 10명 안팎이었다.


한강 자전거길은 주말에 크게 붐벼

그러나 주말이면 한강 종주 자전거길은 크게 붐빈다. 경기도 일대에 위치한 이들 자전거길은 주변이 시골마을이라 경치도 좋고 자전거 타기도 좋다는 평을 받는다. 이포보에서 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던 이세정씨(62)는 “주말에 양평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상행선을 타려 했는데, 자전거를 실을 공간이 없어서 30분을 기다렸다”라고 말했다. 서울과 경기를 오가는 중앙선 열차는 주말이면 기차 맨 앞칸과 뒤칸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그런데 자전거를 싣고 한강을 찾는 사람들로 이들 객실이 꽉 차서 기차를 그냥 보냈다는 것이다.

▲ 양평군에서 설치한 통행금지 표지판. ⓒ시사IN 백승기

문제는, 4대강 자전거도로 중 주말에나마 이렇게 이용객이 몰리는 것은 수도권뿐이라는 사실이다. 이포보를 찾기 사흘 전인 5월27일, 기자는 낙동강 하구둑 자전거길을 찾았다. 석가탄신일이 낀 황금 연휴였다. 그러나 부산 낙동강 자전거길을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낙동강 하구에 조성된 을숙도공원이 자전거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시민들로 북적대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전거길에 섰다. 자전거길 곁으로 8차선 도로가 붙어 있었다. 붉게 페인트칠이 된 아스팔트 자전거도로를 달구는 햇볕에다가 바로 도로에서 뿜어내는 자동차 열기에 살이 익을 것만 같았다. 부산 사하구 하단동에서 사상구를 거쳐 양산으로 가는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은 외진 곳에 있어서 지역 주민조차 이용하기 어려워 보였다. 주차장 시설이 없어 다른 지역 주민들이 자동차를 타고 와서 자전거를 타는 일도 불가능했다.


여전히 공사 중, 끊긴 도로도 있어

여전히 공사 중인 구간도 눈에 띄었다. 을숙도를 나와 하구둑을 지나는 다리에 설치된 자전거도로는 인도와 함께 이용되고 있었다. 폭이 1.5m가 채 되지 않아 길을 가던 남성 두 명이 마주 오는 자전거에 부딪힐 뻔했다. 이 구간을 지나면 낙동강을 따라가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나온다. 원래 이 길은 낙동강 다리처럼 폭 1.5m인 자전거도로 겸 인도였다. 그런데 4대강 자전거도로를 만들면서 인도를 허물어 자전거도로를 내고, 갈대숲을 허물어 인도를 조성했다.


그렇게 자전거로 20여 분을 달리자 이번에는 자전거도로도, 인도도 끊겨버렸다. 그 경계에는 컨테이너가 놓여 있었다. 아직까지 새 인도를 완성하지 못해 자전거도로로 사람이 오가고 있었다. 공사 중임을 알리는 표지판에는 ‘자전거길 조성’이라고 적혀 있었다. 인근 아파트에서 사는 남지수양(18)는 “자전거도로를 개통했다고 해서 다 완공된 줄 알았는데, 얼마 안 가 끊겨버렸다”라며 컨테이너 앞에서 자전거를 돌렸다.

부산 사상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4대강 자전거도로와 기존 자전거도로 구간이 겹쳤다. 부산시와 관할 구청에서 낙동강 하구둑 조성 사업을 새로 시작하면서 자전거도로가 끊겼다”라고 말했다.

금강이나 영산강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토해양부는 4대강 자전거길을 완공하면서 자전거길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자전거를 이용해 4대강 국토 종주를 한 이들에게 종주 사실을 확인해준다는 내용이다. 인증센터에서 수첩을 구입해 각 코스의 인증센터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종주가 인정된다. 그러나 자전거길이 완공되고 한 달이 넘은 5월27일 현재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을 포함한 4대강 자전거길을 완주한 이는 131명에 불과하다. 인천 아라서해갑문에서 한강 구간을 거쳐 부산 낙동강 하구둑까지 종주 인증을 받은 이는 554명이었다.

이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4대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 이항진 상황실장은 말했다. “자전거도로는 이용객의 수요와 안전을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급조된 사업이다. 당연히 부실한 부분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라는 것이다.

▲ 낙동강 하구둑에서 부산 사상구로 넘어가는 길은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섞여 있다. ⓒ김흥구


4대강 공사로 침출수 유입 의혹도

정부는 4대강 국토 종주 자전거길을 두고 ‘전국을 잇는 친환경적 인프라가 완비되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친환경이라는 표현부터 말이 안 된다고 이항진 실장은 말한다. 그에 따르면, 한강 아라뱃길을 달리는 일부 구간에서는 물이 썩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4대강 공사 중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를 건드려 침출수가 유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낙동강에서는 강폭을 맞추려고 멀쩡한 나무를 잘라 수변부 곳곳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포보 홍보관에서 만난 김 아무개씨(32)는 오밀조밀했던 남한강이 자로 잰 듯 특색이 없어져버렸다고 했다. 여주보에서 이포보까지 3시간여를 걸어왔다는 그는 “자전거도로를 놓느라 유기농 채소와 참외 재배단지가 황무지로 변했다. 그 길에 돈을 들여 조경공사를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전거도로 양쪽으로 난 길은 주민들이 일궈놓은 밭을 지나면서 황량한 풍경으로 변했다.

송상석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진짜 친환경적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자전거 교통 분담률을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자전거를 레저가 아닌 생활 속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폭이 1.5m 정도밖에 안 되는 낙동강 하구둑 자전거도로에서는 사고 위험이 높다. ⓒ김흥구

그러나 4대강 자전거길을 생활용으로 여기는 이는 거의 없다. 평소 자전거를 애용하는 대학원생 최 아무개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요새 ‘4대강 자전거길 생겨서 좋겠다’는 말을 부쩍 많이 듣는다. 하지만 그는 “22조원이 넘는 세금으로 만든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자전거길을 설치하면서 ‘시민을 위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주말에 레저용으로 깔아놓은 자전거길보다 도심에서 차를 몰지 않고 자전거만 끌고 나가도 생활이 가능한 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0년째 ‘자전거족’으로 살고 있다는 대학생 김동현씨(27) 또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위해 자전거길이 들러리를 서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항진 상황실장은 나아가 “강이 범람해 자전거도로가 침수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강변에 자전거도로를 설계한 구간의 경우 여름이면 도로가 유실돼 재보수를 하는 일이 많다는 것. 지난해에도 4대강 자전거길 일부인 북한강 자전거도로가 유실됐다. 실제로 양평역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자전거도로가 망가져 아스팔트 공사를 새로 한 흔적이 발견됐다. 이렇게 자전거길이 망가질 때마다 드는 유지·보수 비용은 당연히 국민 몫이다. 송상석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한강과 남한강 자전거길 일부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이용자가 없다. 풀숲을 갈아엎고 만든 도로에 달리는 자전거도 거의 없는 괴이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출처 : 저 길고 황량한 ‘자전거 길’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