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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의료 민영화

11년간 에이즈 투병중…한·미 FTA는 공포 그 자체다

11년간 에이즈 투병중…한·미 FTA는 공포 그 자체다
[하니Only] | 등록 : 20111115 15:35 | 수정 : 20111115 15:57


한-미 에프티에이(FTA) 국회 비준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FTA를 추진하는 정부나 찬성론자들은 국익론을 내세워 비준을 압박한다. 반대론자들은 나라 경제가 미국에 종속되고, 나라 안에서는 1%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협정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FTA를 둘러싼 괴담과 유언비어에 구속 수사 방침”을 밝혀 논란을 증폭시켰다.

일반 국민들은 FTA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FTA는 나라 간 협정일 뿐 아니라 국민들의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한겨레>는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함께 노동자, 농민, 학생 등 각계각층의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눈높이와 처지에서 한미 FTA를 짚어보는 ‘FTA와 나’를 몇 차례에 걸쳐 싣는다. 첫 기고 자동차 노동자편(첫회 기고 링크: ▷ “FTA의 자유는 노동자에게 고통전담일 뿐”)에 이어 두번째로 에이즈 환자가 직접 겪은 투병기와 FTA에 대한 우려를 보내왔다. <편집자주>





[연속 기고-‘FTA와 나’] 〈2〉 AIDS 환자편
에이즈 치료제, 제약사 독점으로 약값이 한 달에 수백만원
버티고 버티다 오른쪽 눈 실명…FTA 체결전 이미 통제불능



▲ HIV는 어릴 때부터 중이염을 앓아온 윤가브리엘(뒷모습)의 청력마저 절반은 빼앗아갔다. 지난 12월1일 대학로에서 ‘글로벌케어’가 세계 에이즈의 날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을 그가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환자에게 한미 FTA는 공포, 그 자체다!

나는 거의 날마다 오전 11시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8년 전에 폐결핵을 앓으면서 다리에 말초신경증이 찾아왔다. 신경과에서 말초신경증 약을 수년 동안 종류별로 다 먹어봤지만 소용이 없다. 의사 말로는 말초신경증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검사를 해도 별 이상이 안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약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발바닥부터 종아리까지 전기가 흐르듯 저리는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으로 변해 이제는 저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눈에는 졸음이 가득하지만 다리 통증으로 잠자리를 뒤척이다 늦은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거나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도 잦은 편이다.


# 매일 밤 엄습하는 통증, 그것보다 무서운 건…

늦은 오전 시간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일곱 알의 약을 먹고, ‘푸제온’이란 주사약을 주사기로 뽑아 내 몸에 찌르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이 TV를 켜고, 뉴스채널을 찾아보는 일이다.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처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걱정스런 마음으로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는 11년 넘게 에이즈(AIDS·후천성 면역결핍증)란 병으로 투병하고 있는 에이즈 환자이다. 내가 먹고 있는 약들과 ‘푸제온’이란 주사약은 모두 에이즈 치료제이다. 나는 에이즈 치료제를 11년 넘게 먹어왔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먹어야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이렇게 약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면서 다국적 제약사의 잔인한 횡포로 생명의 위협까지 겪은 나로서는 한-미 FTA가 걱정을 넘어 불안과 공포로 다가온다.


# “다국적 제약자본이 에이즈를 ‘죽음의 병’으로 만들어”

에이즈 치료법이 개발된 건 1995년이다. 서로 다른 기전의 약을 혼합해 먹는 ‘칵테일 요법’이 개발되면서 다양한 치료제들이 이 시기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에이즈 환자들은 치료법이 없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칵테일 요법으로 인해 생명을 얼마든지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에이즈는 ‘죽음의 병’이 아닌 만성질환이 되었지만 다국적 제약자본이 에이즈를 ‘죽음의 병’으로 만들고 있다.

에이즈 치료제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거의 다 특허로 독점하고 있어 약값이 너무나 비싸다. 환자가 처음 먹게 되는 1차 치료제는 약값이 한 달에 백만원이 넘는다. 1차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2차 치료제를 복용하면 2백만원에 가까운 약값이 나온다. 나는 1, 2차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겨 최근에 개발된 3차 치료제를 쓰고 있는데 한 달 약값이 4백만원이 넘는다.

▲ 지난 12일 제약회사 ‘로슈’ 앞에서 ‘로슈’가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 공급을 거부한 것을 두고 에이즈 환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강하게 비판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건강세상네트워크


# 3차 치료제, 한달 약값만 4백만원

‘로슈’라는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회사가 있다.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특허를 가지고 있어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은 회사다. 로슈는 2004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푸제온을 국내에 시판하기 위해 식약청의 허가를 받고, 보건복지부가 1년에 1800만원의 약값을 책정해 보험등재가 되었다. 하지만 로슈는 스위스 약값 기준으로 1년에 약 3200만원의 약값을 요구하며 푸제온의 공급을 거부했다. 그러더니 로슈는 2005년과 2007년에 다시 약값 인상신청을 하여 결국에는 1년에 2200만원을 요구했고, 아직도 푸제온은 건강보험을 통해 공급되지 않고 있다. 2002년부터 1, 2차 치료제에 모두 내성이 생긴 나는 3차 치료제인 푸제온이 꼭 필요했지만 로슈의 공급거부 횡포로 약을 쓸 수가 없었다.


# 다국적 제약회사의 공급거부, 버티고 버티다 오른눈 실명

내성이 생긴 내 몸에는 바이러스가 온몸으로 퍼져나갔고, 버티고 버티다 2006년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바이러스가 신경계에 와 마비 증세가 왔고, 망막에도 바이러스가 염증을 일으켜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다. 남아 있는 왼쪽 눈도 망막이 떨어지려 해 고정하는 수술을 세 번이나 했다. 그때 의사에게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제약사의 횡포 때문에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 외국에 있는 에이즈 구호단체에 내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해 한 구호단체로부터 푸제온을 무상공급 받아 나는 다시 살아났다. 2008년 내가 활동하고 있는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와 환자단체, 보건의료 단체, 인권단체 등이 연합해 푸제온 공급을 위한 공동대응을 펼쳤다. 그때 우리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등의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로슈의 횡포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다국적 제약사 앞에 정부는 아무런 힘이 없다는 말 뿐이었다.


# FTA 체결 전 이미 다국적 제약사는 통제불능

이렇게 한-미 FTA가 체결되기 전에도 특허를 가지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가 비싼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을 거부해 환자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한- 미 FTA가 통과되면 특허가 더 강화되고, 더 연장되어 비싼 약값으로 더 오랫동안 먹어야 한다. 그리고 비싼 약값을 들어주지 않으면 공급을 거부하는 횡포도 심해질 것이다. 이 문제는 에이즈 치료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암, 백혈병, 중증의 당뇨치료제 등 어지간한 약들의 특허는 모두 다국적 제약사들이 가지고 있다. 그나마 약을 싸게 먹을 수 있었던 복제약도 한-미 FTA가 통과되면 독소조항 중 하나인 특허-허가 연계 제도로 인해 만들기도 어려워진다. 기존에는 특허가 끝나면 식약청의 유효성, 안전성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아 복제약을 출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특허-허가 연계 제도는 특허를 가지고 있는 오리지널 제약사의 허락까지 받아야 한다. 오리지널 제약사가 허락해주지 않으면 복제약을 출시하지 못하고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소송에서 오리지널 제약사가 지더라도 소송기간 동안 비싼 약값을 물어야 하는 환자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배상을 받을 수도 없다. 특허를 가지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는 복제약이 만들어지면 약값이 내려가니 당연히 허락을 안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들의 비싼 특허 약을 더 오랫동안 팔아먹을 수 있고, 독점기간도 연장되니 다국적 제약사에게는 일거양득인 것이다.


# 국민들도 건강보험료 폭탄 맞을 것

만일 한-미 FTA가 통과되면 특허-허가 연계 제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환자들만이 아니다. 건강보험료를 내는 우리 국민 모두가 피해를 보는 심각한 문제다. 그 비싼 특허 약의 약값을 WTO(세계무역기구)가 인정한 특허기간 20년보다 더 오랫동안 내야하니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약값도 더 오랫동안 비싸게 내야한다. 국민들이 피, 땀 흘려 일해서 낸 보험료로 다국적 제약사 배만 불리는 일이다. 올 초 직장 의료보험료가 예고도 없이 10~20% 인상해 많은 직장인들이 보험료 폭탄을 맞았다. 10월에는 전세값 폭등으로 건강보험료가 평균 17%에서 많게는 39%까지 보험료 폭탄을 맞았다. 한, 미 FTA가 통과되면 우리 국민들은 다국적 제약사 배를 불리기 위래 더 많은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아야 한다.

정부는 특허-허가 연계 제도로 국내 제약사들이 많은 피해를 본다며 대책마련으로 연구와 개발 등에 지원하겠다고 한다. 결국, 이것도 다국적 제약사 배를 불리기 위해 우리 국민 세금으로 피해보는 국내 제약사 지원하는 꼴이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 인도 중부 차티스가르주 자그달푸르에서 지난 7월 지역주민들이 백내장 수술을 받기 위해 의료진의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자그달푸르/AP 뉴시스


# 선진국 수준의 약값 요구

우리는 다국적 제약사가 요구하는 특허 약의 비싼 약값이 과연 우리 국민소득 수준에 맞는 정당한 수준인지 따져 봐야 한다. 최종적으로 로슈가 보건복지부에게 요구한 푸제온 연간 약값 2,200만원은 선진 7개국(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태리, 스위스)을 기준으로 한 약값이었다. 선진 7개국은 국민소득이 4만달러였고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2만달러도 안되었다. 그럼에도,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민소득 2만달러도 안 되는 우리에게 국민소득 4만달러 수준의 선진 7개국 약값을 요구한다. 푸제온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가 써야하는 스프라이셀, 항암제 등, 특허 신약들은 모두 선진 7개국의 약값을 요구한다. 정부가 우리 국민소득 수준에 맞게 약값을 책정을 하면 공급을 거부하는 횡포를 부리는 것이다.


# 인도의 사례로 본 다국적 제약사의 독점 폭리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로 인한 독점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한다는 것을 인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도는 2005년도까지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WTO TRIPS)이 적용되지 않아 값싼 복제 약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한 달에 백만원이 넘는 에이즈 치료제가 인도에서는 1/10~1/20 정도 밖에 안 한다. 인도 제약사들은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 국가에는 더 싸게 파는데 그래도 이윤이 남는다고 한다. 인도의 사례만 봐도 다국적 제약사들이 특허를 명목으로 90% 이상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인도가 EU와 FTA를 체결하려고 하여 값싼 약을 그나마 먹을 수 있었던 저개발 국가 환자들은 지금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었다.


# 매년 3백만명의 에이즈 환자가 약을 못 먹어 죽어간다

한-미 FTA뿐만 아니라 전 세계 FTA는 부당한 약값을 요구하며 공급을 거부하는 횡포를 부리고,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배를 불리는 협정이다.

유엔에이즈(UN AIDS)통계에 의하면 매년 3백만명의 에이즈환자들이 약을 먹지 못해 죽어 간다.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의 저개발 국가 환자들이다.

FTA는 값싼 복제 약을 못 만들게 해 국제지원으로 어렵게나마 약을 먹고 있는 환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잔인한 협정이다. 환자에게 한-미 FTA와 전 세계 FTA는 공포 그 자체다.

윤 가브리엘(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


출처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055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