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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박정희·박근혜

박정희 성공한 정책, 알고보니 일본과…치욕

박정희 성공한 정책, 알고보니 일본과…치욕
민족문제연구소 ‘유신 40년 기념’ 전시회
일제 군국주의 파시즘을 조국 근대화로 포장

[경향신문] 황경상 기자 | 입력 : 2012-08-17 22:13:08 | 수정 : 2012-08-18 11:04:18


“마치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청년 지사와 같은 의욕과 사명감을 품고 그분들을 모범으로 삼으려 합니다.”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인 1961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A급 전범 출신인 기시 노부스케와 도쿄 요정에서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가 말한 메이지(明治)유신의 지사들은 바로 정한론을 펼친 사이고 다카모리, 조선침략의 원흉으로 불린 이토 히로부미 같은 인물들이었다.

박정희는 1930년대 일본 군부의 급진세력들이 추구한 일왕중심의 국가 개조론인 ‘쇼와(昭和)유신’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쇼와유신’은 국가가 혼란할 때 군부가 직접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정당정치와 대중의 다양한 여론을 사회 혼란이라 생각하고, 민주주의를 방종 또는 국가의 ‘적’으로 돌리며 강력한 반공정책을 내세운 사상이다.

그 사상은 박정희가 1972년 장기집권을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에 고스란히 담겼다. ‘유신’이라는 용어 자체가 메이지유신과 쇼와유신에서 비롯됐다. 유신체제가 표방한 ‘총력안보’ 또한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에 돌입하면서 구축한 전시총동원체제(총후국방)라는 개념에서, ‘고도국방’은 만주국이 표방한 ‘고도국방체제국가’에서 따왔다. 용어만 아니라 내용도 빼닮았다.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총력운동이 새마을운동으로, 애국반상회가 반상회로, 조선기류령(寄留令)이 주민등록제로 또다시 등장했다.

결국 유신체제는 겉으로는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일제 군국주의 파시즘으로부터 각종 통치 시스템을 차용한 ‘부끄러운 유산’에 불과했던 셈이다. 유신 40주년인 올해 광복절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식민의 유산, 유산의 추억’ 전시회를 다음달 22일까지 연다. 장소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정권 시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산화해 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1. 일제 ‘농촌진흥운동’과 ‘새마을운동’


일제 말 각종 기관지는 모범일꾼을 표지모델로 삼아 미담과 성공수기를 소개하고 그들을 본받으라고 촉구했다(왼쪽). 새마을운동 역시 지도자의 성공담을 퍼뜨렸다. ‘자력갱생’과 ‘농가경제부흥’을 내걸었지만 농촌 통제 수단으로 작용한 일제의 농촌진흥운동과 국민총력운동은 ‘유신체제의 실천도량’으로 불린 새마을운동과 빼닮아 있다.


2. 국가주의적 교육의 표상 ‘교육칙어’와 ‘국민교육헌장’


1890년 공포한 일제의 ‘교육칙어’는 천황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를 제일의 덕목으로 하는 교육지표로 국가주의적 교육의 표상이다. 1968년 12월 박정희 정권이 공포한 ‘국민교육헌장’ 또한 국가의식과 반공의식을 주입시켜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데 활용됐다. ‘우리들은 대일본제국의 신민’임을 다짐하는 ‘황국신민서사’ 또한 ‘태극기 앞에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하는 ‘국기에 대한 맹세’와 닮은꼴이다. 사진은 일제시대 교과서에 수록된 교육칙어(위쪽)와 1968년 교과서에 수록된 국민교육헌장.


3. 월요일 아침이면 전교생 모아 놓고 ‘애국조회’


일제강점기 애국조회를 진행하는 모습(위쪽)과 1970년대 애국조회의 모습. 유신체제는 특히 애국조회를 중요시했다. 월요일 아침 전교생이 학교 운동장에 집합해 ‘교육칙어’ 대신 ‘국민교육헌장’을 외고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게양하면서 ‘황국신민서사’ 대신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낭독했다.


4. 학교를 사실상 병영으로 만든 ‘교련’


일제강점기 학생 군사훈련(위쪽)과 1970년대 교련훈련 중인 고교생들. 일제 말 학생 군사훈련은 지원병이나 징병 등 전쟁동원의 예비단계로, 학교를 사실상 병영으로 바꾸어놨다. 박정희 정권은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인 대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1971년 1학기부터 일제의 학생 군사훈련을 본뜬 ‘대학교련’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5. 주민 통제 목적 ‘애국반상회’와 매월 25일 ‘반상회’


일제는 전시체제기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열 가구를 한 반으로 하는 애국반상회를 조직했다. 5·16 쿠데타 직후부터 운영된 반상회는 1976년 5월 말부터 매월 25일을 ‘정례 반상회의 날’로 지정해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참여토록 했다. 일제 말 애국반 회보(왼쪽)와 1977년 배포된 반상회보.


6. 즉시 연행·취조가 가능했던 상시적 ‘불심검문’


불심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 대한 감시통제수단으로 효과를 거뒀다(왼쪽). 1953년 부활한 불심검문은 특히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악용돼 상시적으로 실시됐고,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유인물·불온서적이 발견될 경우 즉시 연행·취조했다.


7. ‘국민개창운동’과 ‘건전가요 국민개창운동’


일제 말 전시체제기에는 국민가요를 다 함께 부르자는 국민개창운동이 벌어졌다. 애국행진곡(왼쪽)은 국민가요로 보급된 대표적 일본군가다. 박정희 정권 또한 많은 대중가요를 금지곡으로 지정하는 한편, 모든 음반에 건전가요 수록을 의무화하고 관제 경연대회를 열면서 건전가요 국민개창운동을 벌였다.


출처 : 박정희 성공한 정책, 알고보니 일본과…치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