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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재계 “38조” vs 노동계 “5조”…통상임금 추가비용 진실은?

재계 “38조” vs 노동계 “5조”…통상임금 추가비용 진실은?
‘통상임금에 상여금 포함’ 쟁점 점검
경총은 전체 노동자 1340만명 대상
올해분과 지난 3년치 소급분 계산
“경제에 부담” 주장하며 저지 공세

노동계는 초과근로 해당자만 적용
연봉계약자 빼면 414만명도 안돼
“체불임금 해당…추가비용 아니다”

[한겨레] 이정국 기자 | 등록 : 2013.05.20 20:53 | 수정 : 2013.05.22 20:43


▲ 민주노총이 5월14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방미 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의 통상임금 축소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통상임금 문제를 꼭 풀어나가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발언으로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확립된 상황에서 행정부 수장이 어떻게 이 문제를 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탓이다. 재계는 법원의 판단을 따르면 모두 38조원에 이르는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며 “일자리 감소 우려”를 ‘전가의 보도’마냥 꺼내 들었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부풀려진 수치”라고 반박하며, 사법부 판단을 존중할 것을 거듭 촉구했다.


■ 재계 “38조원 비용 발생”

재계는 “고정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사법부 판단을 인정하면 당장 38조5500억여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달 낸 협회지 <경영계> 5월호에서 간단한 근거를 제시했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휴일·연장근로 수당처럼 통상임금에 연동된 각종 수당이 연간 7조6400억여원, 퇴직금과 사회보험료 같은 간접노동비용이 1조2250억여원 발생한다는 것이다. 민사상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이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지난 3년치 각종 수당을 계산하면 24조8000억원이란 추청치가 나온다. 여기에 올해 발생하는 1년치 수당 8조8650억여원과 새로 발생하는 퇴직급여 충당금 4조8000억여원을 모두 보태면 모두 38조5500여억원이라는 숫자가 나온다는 게 재계 주장이다.(표 참조)

이 추정치를 근거로 경총은 상장회사 순이익의 54.9%, 모든 산업 임금총액의 8.9%를 차지하는 추가비용이 발생해 한국 경제에 중장기적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 노동계 “뻥튀기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에 대해 ‘뻥튀기 분석’이라고 비판한다. 한국노총은 2012년 농업을 뺀 산업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총액 317만원 가운데 기본급과 정기적 수당인 직무·직책·자격 수당 등을 포함한 정액급여는 247만원,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이 포함된 초과급여는 18만1000원, 고정 상여금 등이 포함된 특별급여는 52만7000원으로 본다. 이 가운데 특별급여가 정액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3%다.

이 특별급여에는 고정 상여금과 성과급, 임금인상 소급분, 학자금 등 변동적 임금이 포함돼 있다. 특별급여 모두를 고정 상여금으로 가정해 통상임금에 포함하더라도,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등에서 추가되는 금액은 특별급여가 정액급여에서 차지하는 비중인 21.3%를 초과할 수 없다. 이를 근거로 계산해보면 연장·휴일근로 수당 등 초과급여의 최대 21.3%에 해당하는 3만8553원(18만1000원×21.3%)이 1인당 월간 추가 부담액이다. 2012년 현재 임금노동자는 모두 1770만명이나 이 가운데 연장·야간·휴일근무를 하는 주 40시간 초과 근로자는 32.5%이므로, 실제로는 575만명이 통상임금 청구소송 당사자가 된다. 또 이 가운데 28%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4명 이하 근무 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결국 당사자는 414만명으로 줄어든다. 여기서 또 통상임금 청구소송 대상자가 아닌 포괄 연봉계약자를 빼면 그 숫자는 더 적어진다.

414만명이 모두 월 3만8553원을 청구하더라도 1596억여원이 나온다. 3년치(36개월)를 청구하더라도 5조7456억여원에 불과하다는 게 한국노총의 설명이다.


■ “그래봐야 체불임금”

경총과 한국노총의 분석이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양쪽이 적용 대상 범위를 다르게 보기 때문이다. 경총은 전체 노동자수 1340만명을 적용 대상으로 봤다. 한국노총은 실제 통상임금의 재조정으로 연장근로 수당이 올라가는 일부 노동자를 대상으로 했다. 이 지점에서 경총의 주장이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강훈중 한국노총 대변인은 “재계가 주장하는 38조원은 상당히 과장돼 있어 국민과 언론을 현혹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경총 분석은 최대치를 가정한 것인데,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경총 경제조사팀 관계자는 “통계 기준이 달라 그런 것일 뿐”이라면서도 1340만명 노동자 전원을 대상자로 적용한 이유에 대해선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 노동자 1인당 추가비용을 묻는 질문에 “계산해 봐야 한다. 의미없다”며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총의 38조원을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이는 결국 지난 3년 동안 지불했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은 데 따른 ‘체불임금’일 뿐이라는 게 노동계의 지적이다. 강훈중 대변인은 “재계가 산출한 38조원이 맞다고 하더라도 이는 새로운 비용이 아니라 노동자가 당연히 받았어야 할 체불임금이다. 이 돈이 노동자에게 추가적으로 지급된다고 해도 이는 소비를 진작시키고 고용과 투자를 촉진하는 지속가능한 선순환 경제구조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투자다”라고 말했다. 박성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대변인도 “재계가 자꾸 비용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못받은 체불임금을 돌려받는 것일 뿐이다. 또 그 돈이 노동자에게 들어간다고 해서 경제가 위축된다는 근거는 없다”고 꼬집었다.





연장·휴일근로 임금이 낮근무보다 적다
‘노동가치의 불평등’
정상근무 외엔 상여금 적용 안돼
노동법따라 1.5배 받아도 불이익



통상임금
노동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노동의 대가로 지급하기로 정한 급여. 시급·일급·주급·월급 또는 도급금액을 말함.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연차·유급휴가 수당의 산출 기준이 됨.

통상임금 문제의 쟁점 가운데 하나는 ‘노동 가치의 불평등’이다. 밤 늦은 시간까지 노동을 해도 오히려 정상적인 낮 근무보다 보상을 덜 받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낮 근무의 대가에는 상여금이 포함돼 있는데, 연장근로나 휴일근로 수당을 계산할 때는 상여금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임금을 재산정해 지급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서울고법의 판결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넣지 않을 경우 발생하게 되는 노동가치의 형평성 문제를 받아들였다. 당시 재판부는 “만약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기본 근로에 대해서는 상여금이 고려되지만, 연장근로 등에 대해선 그렇지 않음으로써 연장근로의 시간당 노동가치가 더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로 판시했다. 이는 앞으로 남은 추가 소송에서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될 예정이다.(<한겨레> 14일치 9면)

실제 한국지엠 노동자들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우리로 법률사무소의 분석자료를 보면, 한국지엠 노동자 남아무개(52)씨의 경우 주간 노동에 대한 시간당 임금은 1만4713원이었지만, 휴일근로에 대한 시간당 임금은 8163원이었다. 휴일근로 때 평일 낮 임금의 1.5배를 주도록 하는 노동법상 가산금을 포함해도 시간당 임금은 1만2245원에 그쳤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노동자를 늦은 밤까지 일하도록 하는 것이 낮 시간에 일을 시키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는 얘기다.

우리로 법률사무소의 양제상 변호사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헌법 이념이 계속 훼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임금 정의의 차원에서도 꼭 개선돼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출처 : 재계 “38조” vs 노동계 “5조”…통상임금 추가비용 진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