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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통합진보당 탄압

부실한 녹취록 찜찜한 USB

부실한 녹취록 찜찜한 USB
이석기 의원 재판에서 공개된 녹음 파일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해석이 엇갈린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녹취록이 414군데나 틀렸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협력자가 건넨 USB의 암호를 누가 풀었는지도 논란이다.

[시사IN 331호] 고제규 기자 | 승인 2014.01.17 08:57:40


마침내 ‘블랙박스’가 공개되었다. 지난해 11월12일 시작된 이석기 의원 재판은, 주 4회 집중심리제로 진행되고 있다. 1월7일부터 내란 음모 사건의 핵심 증거인 녹음 파일 검증에 들어갔다.

검찰과 국정원은 내란을 모의했다는 지난해 5월10일 곤지암 모임과 5월12일 합정동 모임의 녹음 파일만 공개되면, 입증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해왔다. 그런데 녹음 파일이 법정에서 공개되었지만, 검찰과 변호인단의 ‘동상이몽’ 해석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언론과 법원에 공개되거나 제출된 녹취록은 세 가지 버전이 있다. ‘<한국일보> 녹취록’ ‘검찰 녹취록’ ‘변호인 녹취록’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2일자와 3일자 <한국일보>에 5월12일 모임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여론 재판은 ‘유죄’로 끝났다. 문제는 국정원이 작성한 최초 녹취록인 <한국일보> 버전이 부실투성이였다는 점이다. 검찰과 국정원도 논란이 일자, ‘결전 성지→절두산 성지’ ‘성전 수행→선전 수행’으로 수정하는 등 모두 121개를 고친 녹취록(검찰 녹취록)을 법원에 증거로 냈다.

▲ 지난해 9월4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가운데)이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되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재판부는 녹취를 푼 국정원 직원에게 “내용을 수십 번씩 들었다면서 처음 들을 때 절두산 성지로 듣지 못했나”라고 물었다. 국정원 직원은 “(절두산 성지) 절두산을 몰라서 들리는 대로 (결전 성지로) 들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결전 성지와 절두산 성지는 글자 수 자체가 달라서 잘못 듣기가 쉽지 않은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재한 거 아니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변호인단은 121곳을 고쳤다는 검찰 녹취록도 잘못되었다고 반박했다. 검찰 녹취록에서 재차 414군데, 841개 단어, 2712개 글자를 고친 ‘변호인 녹취록’을 1월7일 법원에 냈다. 재판부는 이 변호인 녹취록도 증거로 채택했다.

법원에 제출된 검찰 녹취록과 변호인 녹취록을 살펴보면, 같은 녹음 파일을 듣고 푼 것인지 의아할 만큼 차이가 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우주과학의 승리 북남외교다(검찰본)’와 ‘우주과학의 승리였던 광명성 2호다(변호사본)’ 따위다. 검찰은 ‘북남외교’로 들었고, 변호인단은 ‘광명성 2호’로 들은 것이다. 이런 차이는 재판 내내 가장 큰 쟁점이었던 ‘지휘원’이라는 표현을 두고도 계속되었다.

검찰은 2013년 5월10일 곤지암 모임에서 이석기 의원이 “김근래 지휘원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화를 내며 ‘지휘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김근래 지금 오나, 지금 뭐 하는 거야”라고 녹취를 풀었다. ‘지금 오나’를 검찰이 의도적으로 ‘지휘원’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앞서 법정에 나온 녹취 작성자인 국정원 직원은 “수십 번을 들어도 지휘원으로 정확히 들린다”라고 증언했다. 실제로 김근래씨가 ‘지휘원’으로 불렸다면, 이는 RO가 이석기 의원을 총책으로 상하 명령체계가 명확한 지하조직이라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국정원 협력자 이씨의 상반된 증언

정작 1월7일 법정에서 이 대목이 공개되었는데, 잡음과 소음 때문에 검찰이 들었다는 ‘지휘원’뿐 아니라 변호인 주장대로 ‘지금 오나’도 모두 불분명했다. 애초 변호인단은, 제3자인 녹취 전문가에게 일부 녹음 파일을 풀게 한 뒤에 법원에 제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녹취 전문가들마저 잡음과 운동권식 용어가 낯설다며 제대로 풀지 못해 변호인단이 나눠 풀어서 제출했다. 검찰(국정원)과 변호인단 모두 자기 입맛대로 풀어서 법원에 제출한 셈이다. 동상이몽 해석의 최종 판단은 재판부로 돌아갔다.

법정에서 공개된 녹음 파일은 모두 국정원 ‘협력자’ 이 아무개씨(47)가 제공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씨가 녹음한 47개 파일 가운데 32개 녹음 파일을 증거로 채택해 공개한다. 이씨는 5월10일 곤지암 모임과 5월12일 합정동 모임 때는, 국정원으로부터 동영상 촬영용 손목시계도 제공받았다. 음성 녹음은 이씨가 안주머니에 넣은 디지털 녹음기로, 동영상 촬영은 손목시계 장치로 따로 이뤄졌다(손목시계 장비는 녹화만 되지 녹음은 되지 않았다).

▲ 지난해 9월26일 김수남 수원지검 검사장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협력자’ 이씨는 법정에서 2010년 5월27일 국정원 홈페이지에 ‘20년 운동권으로 살아왔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짧은 글과 전화번호, 이름을 남기며 제보했다고 밝혔다. 두 달 뒤인 그해 7월 초 국정원 직원 문 아무개씨와 처음 만났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법정에서 “(문 직원이)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선배였고, 집도 반경 200m로 가까웠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이씨에게 교통비 등 실비만 제공했을 뿐 경제적인 이익을 제공하지 않았다며 제보의 순수성과 증언의 신뢰성을 법정에서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단은 국정원의 공작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씨가 국정원에 건넸다는 USB 때문이다.

‘협력자’ 이씨에 따르면, 2010년 7월 초 처음 만난 국정원 문 아무개 직원은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사건이다. 이와 관련된 자료가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 이씨는 2009년 11월 이상호씨(구속)한테 받은, 북한 원전 등 학습자료 33개 문건이 담긴 USB를 2010년 10월에 국정원 직원 문씨에게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2010년 3~4월 이후에는 (USB를) 사용하지 않고 옷장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날씨가 더워지고 하면서 없어진 줄 알았다. 그해 10월에 지퍼가 달린 바지 주머니에서 다시 찾아 국정원에 건넸다”라고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USB에는 암호가 걸려 있었다. 이 암호가 풀린 시점이 2010년 8월5일 오후 2시였다. ‘협력자’ 이씨는 USB를 2010년 3월 잃어버리고 그해 10월 뒤늦게 찾아 국정원에 넘겼다고 했다. 그런데 넘기기 전인 8월5일 USB 암호를 누군가 풀었던 것이다. 변호인단이 암호가 풀린 시점을 제시하자, “날씨가 더워지고 하면서 없어진 줄 알았다”라고 증언했던 이씨는 “암호를 풀었다면 아마도 내가 풀어서 (8월5일에) 보았을 것이다”라며 상반되는 증언을 했다.

변호인단은 이 USB를 국정원의 올가미로 의심한다. 국정원이 이씨 소유의 USB를 먼저 습득해 암호를 풀어본 뒤, 그에게 ‘프락치’ 노릇을 강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정작 검찰은 이 USB를 법원에 증거로 내지 않았다).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자 이씨는 “나는 술과 도박에 빠진 국정원의 프락치가 아니다. 프락치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법정에 나왔다”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1월 안에 모든 증거 조사를 마치고, 2월 중순께 이석기 의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할 예정이다.


출처 : 부실한 녹취록 찜찜한 U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