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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통합진보당 탄압

롯데리아는 과연 '내란음모'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롯데리아는 과연 '내란음모' 장소가 될 수 있을까
[내란음모사건 중간점검] 32개 녹음파일이 보여준 것과 보여주지 못한 것
[오마이뉴스] 박소희 | 14.01.17 09:05 | 최종 업데이트 14.01.17 09:37


"조서에 나온 건 아니지만 롯데리아가 시끄럽다는 것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롯데리아에 두 번이나 갔는데 오전에도 시끄럽고, 오후에도 시끄럽네요."

지난 10일 조용하던 법정 곳곳에서 순간 "큭큭"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원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 김정운 부장판사의 이 말 때문이었다.

농담처럼 보였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말이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장이다. '시끄러운 롯데리아'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피고인 7명의 핵심 공소사실인 형법상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는지, 이들이 비밀지하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인지 등을 결정짓는 장소 중 하나다.


소음과 잡음이 뒤섞인 녹음파일

호송차 타고 법원 떠나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첫 공판일인 지난해 11월 1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의원이 재판을 마치고 호송차량에 올라타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7일부터 재판부는 제보자 이아무개씨가 녹음해 국가정보원에 제출한 녹음파일 32개를 법정에서 직접 재생·청취하고 있다. 이 파일들과 제보자의 증언은 핵심 증거다. 10일 "롯데리아에 두 번이나 갔다"는 김 부장판사의 말은 직접 갔다왔다는 뜻이 아니라, 녹음파일 가운데 제보자 이씨가 피고인 2명(홍순석 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한동근 수원새날의료협동조합 이사)과 그곳에서 만나 나눈 대화 녹음 파일을 들었다는 뜻이었다. 기자도 법정에서 32개 파일들을 대부분 들었다.

문제는 너무 시끄럽다는 점이다. 세 명의 대화는 옆자리 사람들로 보이는 목소리에, 매장에 울려퍼지는 최신가요, 부스럭거리는 잡음 등에 묻혀 알아듣기 힘들었다.

롯데리아뿐이 아니었다. 돈까스전문점, 설렁탕집, 카페 등 다른 장소에서 만났을 때를 녹음한 파일들도 상태가 비슷했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제대로 들려야 검찰 주장대로 '세포모임'을 열었는지, 변호인 말마따나 '친목모임'인지 판단할 것 아닌가. 재판부로서는 난감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내란음모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 중 하나라고 검찰이 주장하는 지난해 5월 10일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 청소년 수련원모임 파일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7일 오전 공판 때 이 녹음파일을 들은 기자들은 휴정시간에 서로 "들려요?"라고 묻기 바빴다.

또 하나의 결정적 증거라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리스타교육수사회 모임을 녹음한 파일은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잘 들릴 뿐 내란음모의 전말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이 파일을 듣고 각각 작성했다는 검찰과 변호인단의 녹취록은 서로 450군데 이상 다르다.

결국 핵심은 녹음파일 자체다. "직접 증거는 녹음파일"이라고 강조했던 재판부는 증거조사가 끝날 때마다 해당 파일을 USB에 복사해가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16일 37차 공판 끝무렵 "법정에서도 듣고 사무실에서도 들었더니 귀가…" 하면서도 "양 측에서 이쪽이 맞느냐, 저쪽이 맞느냐 하는 중요한 부분은 재판부가 별도로 듣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그들에게 한반도는 전쟁 위기였다

법정 나서는 이석기 의원 변호인단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7명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 심재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이 지난해 11월 12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첫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검찰과 재판부는 매주 4차례 열리는 공판을 소화하고 있다. ⓒ 유성호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석기 의원 등은 2013년 5월 한반도 정세를 '전쟁 위기'로 파악했다.

이 의원은 곤지암과 합정동 모임에서 줄곧 당시 상황을 "대격변기, 새로운 질서가 교체되는 치열한 격동기, 새로운 전환기"라고 표현했다. 그해 3월 28일 3인 모임에 참석한 홍순석 부위원장도 "전쟁 위기가 예상외로 그 .....(안 들림-기자 주)가 굉장히 셀 것 같다"며 우려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정세 판단만으로 내란음모가 성립되지는 않는다. 형법상 내란음모죄는 ▲ 국토 일부를 점령하거나(국토 참절) 국가 제도·기관을 무력화할(국헌 문란) 목적으로 ▲ 폭동을 모의한 경우를 뜻한다. 음모라면 대략적인 내용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내란음모죄는 내란죄를 실행, 착수하기 전에 그 내용을 두고 2인 이상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합의하는 것"이라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합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물론 합정동 모임에서 "전쟁 위기에 물질·기술적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석기 의원의 말에 사람들은 총, 폭파 등을 언급한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올 때면 큰 웃음소리가 나온다. 그들이 주고받은 것은 농담일까, 음모일까?


북한과의 연계? 아직은 "장군님"까지

'북 연계설'도 아직까진 설(說) 수준이다. 피고인들이 "북한과 연계됐다"는 제보자의 주장과 그들이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하는 비밀지하조직 RO"라는 검찰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녹음파일 속 의심스러운 장면은 하나 있었다. 홍순석 부위원장과 한동근 이사, 제보자는 지난해 4월 5일 새날의료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영화 한 편을 함께 감상한다.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에 맞서 월미도에서 싸우다 전사한 북한군 중대를 그린 북 전쟁영화 <월미도>였다.

"장군님을 지키는 것이 조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는데 OO 가족들을 지키고, 애들을 지키는 게 우리 OO같아요. 장군님 뜻이 그런 거잖아. 인민을 지키고, 인민의 가족을 지키고."

영화를 본 홍 부위원장의 소감이다. 검찰은 14일 재판에서 이 모임을 녹음한 파일의 증거조사 후 "한동근 피고인도 (김일성)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언급했다"며 "<월미도>의 주제와 참석자들의 소감을 비춰볼 때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을 주제로 하는 영화를 보고 어떻게 (변호인 쪽 주장대로) 반전평화운동을 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장군님"이라는 호칭, 거기까지였다. 그 '장군님'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 '장군님'은 무슨 지시를 했는지 등은 아직까지 나온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곤지암과 합정동, 그리고 롯데리아 등은 과연 내란을 음모한 장소로 드러날까? "장군님"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직접 북한과 관계를 맺은 흔적은 나타날까?

16일 공판에서 검찰이 동영상 파일의 증거 신청을 철회한 만큼 공판 진행이 빨라질 전망이다. 매주 4회씩 공판이 열리고 있는 만큼 설 연휴 전후로 피고인 신문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빠르면 2월 중순께 1심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재판부는 오늘도 잘 들리지 않는 녹음파일을 듣고 또 듣고 있을 것이다.


출처 : 롯데리아는 과연 '내란음모' 장소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