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정의가 이겼다”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 “정의가 이겼다”
해고노동자 고동민씨 인터뷰
구속·허드렛일·생활고… “가장노릇 하게 돼 다행”

[경향신문] 평택 | 최인진 기자 | 입력 : 2014-02-07 21:27:29 | 수정 : 2014-02-07 21:27:29


7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40·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대외협력실장·사진)는 항소심 승소 판결에 “꿈만 같던 그 꿈이 이뤄졌다”며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밝혔다. 가슴이 먹먹하다는 고씨는 “정의가 이겼다고 생각한다”며 “회사도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여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직원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길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고씨는 2009년 쌍용차 파업사태 때 그 중심에 있었다. 노조 간부였다는 이유로 파업이 끝나자마자 구속 수감됐고, 이후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당시 고씨에게 적용된 죄목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업무방해죄 등 20여개나 됐다. 고씨 가정의 생활이 뒤틀린 것도 이때부터였다.

고씨는 파업 후 살던 전셋집을 내놓고 시골 작은 집으로 이사갔다. 그는 다시 기술을 배워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책임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불안감이 가장 컸죠.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쌍용’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간 그의 이력서는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강성 노조 출신으로 찍힌 탓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찜질방 아르바이트나 건설 일용직 등과 같은 허드렛일밖에 없었다. 그는 “회사에서 쫓겨난 뒤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고씨는 해고노동자 가운데 86.8%가 빚이 있고, 그 규모도 평균 50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마이너스 통장 연장이 안돼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도 수두룩하다고 전했다.

▲ 7일 쌍용자동차 해고무효확인 항소심에서 승소한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이 기쁨을 나누며 웃고 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뒤집고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 김기남 기자

뒤틀린 것은 생활만이 아니었다. 고씨는 “파업이라는 아픈 상처가 소외감, 배신감, 패배감 등 다양한 이름이 돼서 나와 가족을 괴롭혔다”고 털어놨다.

그는 “내가 구속됐을 때 태어난 막내 기온이(5)를 포함해 자식 셋을 혼자 키우며 고생하는 아내에게 이유없이 짜증내고 아이들에게 버럭 화내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고씨는 지난 5년간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서울 대한문 분향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복직 투쟁을 하며 지내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이따금 집에 옷 갈아 입으려고 들어갈 때 보는 것이 전부였다. 외식은 고사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도 사주지 못할 정도로 생활 형편이 어려워졌다. 그는 “아들이 학원에 보내달라고 보채는 것도 어떨 때는 마음에도 없는 매로 다스려야 했다”고 말했다. 학원비 20만원이면 한 달치 식비를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쌍용차 작업복을 입고 다시 출근하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고씨 부인 이정아씨(40)는 옆에서 조용히 눈시울을 적셨다. 이씨는 “남편이 복직하면 공원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고 함께 놀자던 아이들과의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쌍용차 파업사태 때 ‘해고노동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노숙 투쟁을 벌여 수차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아내 이씨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센터인 ‘와락’에서 지금도 일하고 있다.


출처 :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 “정의가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