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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노동과 삶

"그러게 누가 다치래?"

"그러게 누가 다치래?"...이게 의사가 할 소린가요
[병원에서 배우는 노동인권①] 산재 환자는 왜 병원에 가면 작아지나
[오마이뉴스] 전수경 | 14.03.17 19:20 | 최종 업데이트 14.03.17 19:20


노동건강연대는 2013년 산재를 입고 치료 재활중인 노동자들, 치료가 끝나고 생업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하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산재 노동자들은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충분히 치료받지 못한 채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개인의 질병도 사회구조와 떨어져서 볼 수 없기에 의료인들이 노동자를 진료할 때 더 많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가이드를 만들었습니다. [편집자말]


▲ 병원 청소노동자가 일하는 모습. ⓒ 노동건강연대

<'일하는 사람의 인권'을 생각하는 의사를 위한 열 개의 진료실 가이드>라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얇지만 새로운 시선을 담으려고 했습니다. 책을 신청하면 보내준다고 홈페이지에 알리니 많은 분들이 메일을 보내옵니다. 원래 기획했던 책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삼은 인권교육 책이었습니다. 노동하면서 알아야 할 직장 안에서의 권리, 사회적으로 주장할 권리를 읽기 편하게 담아, '권리를 찾자'라고 말할 셈이었습니다.

책을 기획하던 중에 산재로 양손을 잃은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평소 잘 아는 분인데 전에 듣지 못하던 말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손을 다쳐 병원에 갔을 때 의사를 붙잡고 내 손 좀 살려달라고 우는데 의사가 왜 여기 와서 이러냐고, 그러게 왜 다쳤냐면서 화를 내는 거야, 나는 울면서, 욕하면서…, 오래 전 일인데도 생각이 나."

이 말을 들으면서 책의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동자에게 인권을 가르치는 책이 급한 게 아니구나. 의사들, 전문가들이 노동자를 우습게 안다, 노동하는 사람들에 기대어 살면서도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교육과정에서 인문적, 철학적 소양,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시각을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의사가 됩니다.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를 사회와 동떨어진 '순수한 개인'으로 보고 환자의 사회적 삶, 직업, 노동이력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환자가 산재, 직업병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의사들은 귀찮아하고 거부감을 표합니다. 노동을 경원시하고 하대하는 편견의 굳은살에 직업적 권위의식이 더해져, 환자로 간 노동자가 직업병 신청에 곤란을 겪어도 공감을 못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일 때문에' 다치고 아픕니다

산재의 직업병 판정이나, 장애인의 등급판정, 국민연금에서의 장애급여 판정 등에서 의사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의사가 직업과 병의 연관성을 '심판'하는 현행 산재보험제도는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다른 사회보험제도와 유리된 일부 정규직 노동자만의 리그가 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왔습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시간이 없는 노동자, 병원에 가도 직업을 묻지 않는 의사를 바다 밑 광대한 빙산으로 깔고, 바다 위에 드러난 좁은 삼각뿔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일부 의사, 법관들이 산재냐 직업병이냐 따지는 게 현실입니다. 기업과 보험기관 관료들은 산재보험 인정을 점점 어렵게 만들어 수면을 높입니다.

그래서 기업에게 산재보험료를 걷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은 5조 원 흑자를 냈다고 자랑이랍니다. 비정규직, 하청, 파견, 알바, 이주… 노동자들에게 갔어야 할 산재보험 5조 원. 이것은 사회보험 받으려는 이들을 잠재적 부정수급자로 생각하고 걸러내는 복지정책의 결과물입니다. 이들은 촘촘한 거름망을 통과할 엄두를 못 냅니다. 일단 신청을 해야 거름망 안에라도 들어가는데 신청서 내는 순간 해고통지서도 날아오니까요.

산재보험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사람을 위해 제도가 있나요, 제도를 위해 사람이 있나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공무원들은 산재보험에 비교적 수월하게 접근해왔습니다.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다수의 노동자, 위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더 절실히 필요한데, 그들에겐 제도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이 글을 의사와 의대 학생들이 읽으면 좋겠고, 일하는 사람들, 우리 자신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의식을 갖지 못한 채 나쁜 제도를 유지하는 파트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나와 당신이 함께 읽었으면 합니다.

▲ 가죽으로 구두를 만드는 노동자 ⓒ 노동건강연대


[사례①] 사무직, 스물두 살 김민경(가명)의 일기

2월 3일 : 거래처에 다녀오다가 발목을 삐었다. 다칠 때는 몰랐는데 점점 부어오르고 통증이 심해진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가봐야겠다.

2월 4일 : 의사 선생님이 가능하면 움직이지 말라며 반깁스를 해준다. 깁스를 하고 나니 발목이 흔들리지 않아서 좋고 한쪽 발로 콩콩 뛰어다닐 수 있어서 훨씬 편하다.

2월 5일 : 택시를 타고 회사에 출근했다. 사장님께 출근을 했다고 인사를 드리니, 언제 다 낫는지부터 묻는다. 언제 다 나을지는 모르지만 일은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사무실 출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넉 달, 빨리 나아야 할 텐데.

2월 6일 : 다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서 바닥에서 일어났다. 보기는 좀 안 좋지만, 문틀을 양 손으로 잡고 나무 타듯이 오르며 일어나면 된다. 이제 화장실에 혼자갈 수 있다.

2월 20일 : 모든 일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사무실 내 자리에서 일어나 손잡이를 돌려 방문을 열고, 다시 몸으로 밀어서 유리문을 열고, 자동으로 닫히게 되어 있는 철문을 몸으로 밀어야 화장실에 갈 수 있다. 살짝, 잠깐, 금방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과장이 언제 깁스를 푸는지 묻는다.

3월 5일 : 평소보다 카드 값이 많이 나온다. 병원비는 의료보험 덕에 많이 들지 않는데, 택시비랑 휴대전화 요금이 만만치 않다. 오늘은 지하철 타기를 시도해보았는데, 느리게 걷다보니 사람들이 밀치고 지나가고, 한 번씩 쳐다보고 간다.

3월 18일 : 온몸이 피곤하다. 부딪힐 만한 물건이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는지 계속 긴장하고 있으니, 집에 들어오면 매일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반대쪽 발이랑 무릎, 허리, 고관절도 아프다. 병원에서는 다리 치료가 끝나면 척추교정을 받으라고 한다.

3월 27일 : 과장이 부쩍 짜증을 낸다. 사무실에 미안해하지 않는다고 뻔뻔하단다. 업무효율이 떨어져서 나도 사무실에 미안하다. 그래도 출장도 가고 잔심부름도 하고 있는데….


[사례②] 요양보호사 이혜순(가명)의 이야기

▲ 요양보호사 이혜순(가명)씨. 일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자기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 노동건강연대

46세의 이혜순씨.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소개하며 요즘 많은 중년 여성들이 따는 자격증이라고 했다. 외로운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고, 돈도 벌 수 있다 한다. 혜순씨는 지금 다니고 있는 마트 캐셔 일을 그만두고 싶던 참이었다. 쉬는 시간도 제대로 없어 용변은 그냥 참기 일쑤고, 8시간 넘는 시간을 꼬박 서서 계산을 해야 하는데다가, 가끔 나타나는 진상 손님들 때문에 감정을 추스를 여유조차 없다. 하지정맥류를 앓는 동료들도 있다.

혜순씨는 꽤 많은 학원비를 내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동네 요양보호사 사무실을 통해 가정방문을 하게 된 그녀.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날 무렵, 그녀는 일을 하러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신세를 졌다. 병원에 누워 지난 일 년을 생각하면 마트 캐셔 일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배추를 쌓아둔 한 노인은 김치를 담그라 했다. 김치를 해준 집이 몇 집인지 모르겠다. 남자 노인이 있는 집에 갈라치면, 무슨 일이 생길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방문을 갔더니 할아버지가 하의를 모두 벗고 있더라는 동료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온몸이 욱신거린다. 허리가 많이 아프고 어깨, 손목이 저리다.

노동상담 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더니 산재신청을 해야 한다고 설명해준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직업병으로 골병이 든 것을 근골격계질환이라고 하는데, 의사한테 소견서를 받아서 산재신청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의사가 껄끄러워 한다. 소견서 같은 거 꼭 해줘야 하냐고 묻는다. 그 나이에 누구나 집안일 많이 해서 그렇다며, 소견서를 써주지 않는다.

결국 혜순씨 돈으로 치료 중이다. 산재보험은 국가에서 하는 보험이라면서 환자에게 일을 다 맡겨버리고, 환자가 준비해야 하는 일이 힘들다는 생각에 주눅이 든다. 어서 나았으면 좋겠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나 고민이 시작된다.


[사례③] 용접공 김경식(가명)의 이야기

김경식씨는 언제부터인가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세밀한 동작을 하는 부분에 장애를 느끼기 시작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병원을 찾은 그는 파킨슨씨병 진단을 받았다. 삶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 아들 녀석이 어디선가 들었다며 산재신청을 해보자고 했다. 그는 15년간 용접공으로 일을 했는데, 파킨슨씨병과 용접일이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아들과 함께 노무사를 찾았다. 그리고 용접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망간 용접봉이 파킨슨씨병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노무사는 직업병 인정기준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주었다. 몇 년간 그를 치료했던 의사는 그가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노무사는 말했다.

"의사가 직업을 물어봤다면, 초기에 산재신청을 해봤을 텐데 말이죠."

김경식씨의 삶은 파킨슨씨병으로 인해 크게 변했다. 병원비가 무섭게 들기 시작했고, 일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몇 개의 일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고, 그는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아들은 직업병에 대해서 공부했다. 우리는 모두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건강상태가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거의 안 한다는 이야기, 병원에서도 운이 좋아야 의사의 권유로 산재요양 신청을 하는데 그런 행운은 거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경식씨는 산재신청을 위해 주치의를 만났다. 초진소견서, 의무기록지, 필름 등 준비할 서류가 많았다. 주치의는 "일 때문일 수도 있나보죠. 근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모르는데 어떻게 업무 때문이라고 쓰죠? 병명이 뭔지는 써드릴 수 있습니다. 직업 때문이라고 써달라니 불쾌합니다"라고 말했다.

꾸준한 치료 때문에 자주 본 의사였다. 바삐 돌아가는 대학병원이었지만 상냥했던 그였다. 의사는 다시 찾아오라 했다. 김경식씨는 직업병 소견서를 왜 안 써주는 걸까 불안에 휩싸여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한참임을 새삼 깨닫는다.

▲ 용접공 김경식(가명)씨. 산재 이야기를 꺼리는 의사 때문에, 너무 많은 준비 서류 때문에 앞길이 막막하다. ⓒ 노동건강연대


"의사가 직업 물어봤다면, 초기에 산재신청을 해봤을 텐데"

거래처에 다녀오다가 발목을 삐끗했다면 산재입니다. 산업재해라는 말은 대형 공사현장의 추락사고나 붕괴, 공단의 유해물질 누출 같은 대형 사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민경씨나 혜순씨의 경우처럼 사소한 사건도 산재가 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이를 문제 삼았을 때 받는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 덮는 일이 많을 뿐, 무수히 많은 산재가 일어납니다.

일을 하다 일어난 사고, 질병만이 아니라 원래 병이 있었는데 일을 하다가 악화된 경우에도 산재로 봅니다. 대법원도 그리 판단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업무수행뿐만 아니라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과다한 직무 때문에 자연적인 진행 속도보다 급하게 악화된 경우도 산재라고 봅니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느라 눈이 나빠지면, 진상 손님 상대하다가 탈모가 생긴다면, 바이어와 과음하다가 간이 나빠진다면 산재입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나이가 많든 적든, 일의 숙련도가 높든 낮든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산재를 입습니다. 전문직은 보통 야간이나 휴일근무가 일반화되어 과로가 당연시되고, 책임의 정도가 커서 긴장감이 높으며, 계속적인 학습이 있어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과로, 만성피로, 긴장, 두통, 어깨결림, 스트레스, 불면증을 달고 사는 사무직에게도 늘 산재와 과로사 위험이 있습니다.

더 힘든 것은 질병과 사고 이후의 생활입니다. 산재는 육체·정신·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이 일을 해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모두 노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느라 아프다면 산재이고 직업병입니다. 아버지의 무거운 목덜미와 어깨, 어머니의 무릎, 당신의 뻐근한 손목, 모니터 앞의 굽은 등 모두 일을 하고 있기에 아픈 것이니 말입니다.

누가 아플 때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환자가 진료실을 방문한 것이 하는 일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후로는 산재와 직업병이 특별해 보이지 않습니다. 산재와 직업병은 우리 곁에 함께하는 흔하고 평범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산재 노동자 사례 수집에는 천지선 변호사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전수경 기자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출처 : "그러게 누가 다치래?"...이게 의사가 할 소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