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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럴수가/조작과 탄압들

검찰, 증거조작 규명 ‘하다만 수사’

검찰, 증거조작 규명 ‘하다만 수사’…윗선 놔둔채 ‘봉합’
검찰 수사결과
[한겨레] 김원철 기자 | 등록 : 2014.04.14 20:44 | 수정 : 2014.04.14 22:47



‘국가정보원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이재윤(54) 국정원 대공수사처장(3급·팀장)을 재판에 넘기는 것으로 ‘윗선’ 수사를 끝내 ‘부실·축소 수사’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위조로 결론 낸 문서의 위조 과정을 명확히 밝히지 못해 향후 재판에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보안법상 날조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것도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윤갑근)은 14일 “최아무개 대공수사단장(2급) 이상의 상급자에게는 증거 입수 경위와 관련해 보고된 게 없다”며 이 처장을 최종 ‘윗선’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3급 직원이 이 모든 일을 계획하고 벌였다고 믿기에는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검찰은 이 처장이 4급인 대공수사국 김보현(48·구속기소) 과장, 권세영(51·시한부 기소중지) 과장과 함께 증거조작 관련 회의를 주재한 뒤, 국정원에서 파견한 중국 선양 주재 총영사관에 있는 이인철(48) 영사에게 전문으로 증거조작 관련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전문은 2급인 최 단장이 결재권자다. 검찰은 전문을 보내도록 결재한 최 단장을 두 차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뒤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윤갑근(50) 수사팀장은 “최 단장은 내용을 알지 못한 채 결재만 했다”고 말했다.

2급 대공수사단장 결재에도
‘참고인 신분’ 두차례 조사 그쳐
“간첩사건, 형식적 결재 말 안돼”

출입경기록 위조 경위 못밝혀
보안법 ‘날조혐의’ 적용 안해
중형 피하기 ‘봐주기 기소’ 지적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내용도 모른 채 ‘그냥 결재했을 뿐’이라는 국정원 쪽과 검찰의 설명을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무엇보다 1심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가 선고된 유우성(34)씨의 항소심은 국정원 대공수사국과 검찰 공안 라인의 사활이 걸린 재판이었기 때문이다. 증거 위조에 적지 않은 예산도 들어갔다. 국정원 사정을 잘 아는 사정당국 관계자는 “일상적 업무에 대한 전문이라면 내용을 모르고 결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공수사국에서 이 사건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있던 사건인데 최 단장이 형식적으로 결재했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최종 윗선’으로 지목된 이 처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도 ‘형평’에 맞지 않는 모양새다. 윤 팀장은 “이 처장은 증거조작 총책임자지만 범행을 주도한 건 과장이다. 27년간 대공수사 업무에 복무한 점도 감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장들보다 상급자라면 책임이 더 클 수 있는데 국가에 대한 ‘공헌’을 이유로 불구속하고 만 것이다.

애초 검찰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를 지닌 정보기관의 특성상, 김 과장 등 실무진이 이번 일을 독자적으로 꾸몄을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지난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할 때 검찰은 실제 댓글을 단 실무진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종명 전 3차장, 민병주 심리전단장 등 윗선만 기소했다. 상명하복 질서가 강한 곳에서 수족 노릇을 한 부하들만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은 사건의 실체 또는 상식적 법감정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증거조작 사건 수사에서는 당시와 정반대로 아랫사람들만 법정에 서게 됐다. 전 정권의 국정원장은 구속까지 됐는데, 역시 만만찮은 ‘국기문란’ 범죄와 관련해서 현직 국정원장은 아무 책임을 지지 않게 된 셈이다.

증거조작 전모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점도 검찰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사건의 발단이 된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의 위조 여부를 끝내 밝히지 못했다. 윤 팀장은 “사법공조 요청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회신받을 때까지 출입경기록 관련자들은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했다”고 말했다. 이 문서는 김 과장이 중국의 또다른 협조자로부터 받았다는 사실 외엔 현재까지 드러난 게 없다.

검찰은 위조 문서로 결론 낸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기록 발급사실 확인서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위조해 국정원에 건넸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국가보안법상 날조죄를 적용하지 않은 점도 검찰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국가보안법은 ‘다른 사람을 형사처분받게 할 목적으로 증거를 날조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하는데, 검찰은 처벌 강도(형량)가 낮은 모해위조증거죄를 적용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국정원의 수직적 위계질서, 거액의 자금 사용 등을 감안할 때 윗선의 승인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증거조작은 전형적인 증거 날조인데 보안법을 적용하지 않았다. 부실한 정도를 넘어서서 사실을 왜곡하고 은폐한 수사”라고 비판했다.


출처 : 검찰, 증거조작 규명 ‘하다만 수사’…윗선 놔둔채 ‘봉합’